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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10.11.01| 조회수518|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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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1  조건으로 있다... 있지 않다... 둘은 사실 동일한 말입니다. 문제는 "조건으로 있다"고 표현하든, "있지 않다"라고 표현하든, 설령 "있다"고 표현하더라도...그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아는 겁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경]에 나오는 표현으로 "불법을 배우지 않은 이"의 관점에서..."있지 않다"가 모호한 만큼, "조건으로 있다" 역시 모호한 겁니다. 있으면 있는 것이지, 있지 않은 것이 뭔가? 마찬가지로...있으면 있는 것이지, 조건으로 있는 것은 뭐냔 말이죠... 그렇지 않나요? 단지 있지 않음이란 표현을 보면...머리속에서 체화된 논리의 문제가 곧바로 등장하니, 속에서 뭔가 "욱"하기 쉬울 뿐이죠... 뭔가 짜증 비스므리한게 슉슉~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1 ======
     있다는 것의 정의는, 사유체계에 따라 다양할 수 있습니다. 원래 고대 인도의 인중유과에 따른 있음을 설명하면 더 좋은데, 너무 난삽해질 듯 해서 빼버렸습니다. 여하간 빼버린게 아주 많아요... 덕분에 부실할지언정 적당한 분량의 글이...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그 정도 이상을 하긴 어렵구요. 읽는 것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무래도 몸에 오랫동안 남습니다. 특히 꾸준히 하나의 기준에 입각하여 생각하는 경우, 거으 죽을 때까지 갈 수 있단 말이죠.
     어차피 불교는 연기를 아는 겁니다. 연기를 안다는 것에는, 소극적인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이 있어요. 굳이 역사와 같은 거창한 표현이 들어 올 필요가 없죠?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1 ======
     연기를 안다... 안다...
     중국 화엄종은,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이란 언명조차 지관수행을 결부시켜 말하는 전승입니다. 그러한 중국 화엄종의 전승을 단순히 연기의 이해 내지 소극적 측면만 드러낸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방편을 말하는 불교에서,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대보살들은, 방편을 드러내는 것이거든요...
     일체 불법은 방편이예요. 저는 연기조차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연기는 아주 유용한 방편입니다. 오직 이 방편, 이 의지처에 의지하여...그리고 이 의지처에 의지함을 알면서...세계를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최소한 이 또한 나름 대로 의미에 젖은 생이지 않겠습니까?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1 /////
    본글 이해의 편리를 위해, 본글 논리 전개 과정을 적습니다... 이미 읽은 분이 있어서요... 꼬리말로다가...

    있다와 없다는, 판단법칙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러한 판단법칙이 어떻게 있는가?"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략 설명했어요... 왜 그러냐 하면, 불자는 조건을 알려는 무엇인 까닭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이 성립할 수 밖에 없다는 점, 직관적으로 성립한단 말이죠... 그게 우리 조건이거든요... 감지체계는 그렇단 말입니다. 그러한 점이 지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있음이라는 판단의 직접적 부정인 있지 않음이란 표현이 등장한단 거죠... 있음이라는 판단이 이미 성립하기에 있지 않음이란 언명이 나오는 거죠.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1 ======
    연기라는 판단법칙만 기억한다면, 있다와 없다의 판단 이전에 멈춰야 하지만...직관적으로 그러한 판단이 성립하게 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판단 즉 산냐는, 결단코 드러납니다. 샨냐가 결부되지 않는 드러남은 없어요.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야...불교 유심론에서 말하는 증자증분이라든가, 사띠와 사띠에 따른 위빠싸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꾸 도인적 사고로 가면 안되구요. 우리의 조건은 긍정되어야 합니다. 피할 수 엄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면...그야 말로 뜬구름 잡기가 되는 거죠. 불자는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압니다. 행함이 있어, 행해짐이 있고...그것이 우리 조건이니까요.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1 cf. 일주 정도 후에, 위의 본글은 [현재의 기억] 게시판으로 이동한다는...
  • 작성자 잊지않기 작성시간10.11.01 컴을 켜놓고 너무 오랫동안 나갔다 오게 되었네요. 그래서 다시 쓸려고요.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라는 것은 '연기즉공'을 표현한 것이지요?
    아니 보다 엄밀히 보면 '공'이라고 해야 하나요
  • 작성자 잊지않기 작성시간10.11.02 "있다"와 "없다"는, 존재 유무를 직접 징표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이다.
    일진법 체계인 감지 체계가, 기억기능과 맞물린 판단기능에 따라, 이진법 체계인 가장 기본적 판단 체계를 성립시킨다
    감지는 감지를 감지하지 못한다... 연기라는 판단법칙은, 감지를 감지하지 못하는 감지의 특성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 땐땐땐
  • 작성자 잊지않기 작성시간10.11.02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낮에는 무언가 나름대로 사유공식을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잘안되네요.
    오늘은 포기해야 겠어요.
    뒷골이 막 댕기려고 해요. 흑!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2 전에 적은 중국 화엄종 법장조사에 따르면...
    있지 않으니(색즉시공), 괴로움을 여의고...
    없지 않으니(공즉시색), 열반을 여의죠...

    공이 연기라서, 워낙 다의적입니다. 언어는 신호체계가 아니라 상징체계니, 뭐든 다의적이겠지만...

    사실...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그러는데요. 아놔~뭔가 참신하고 쌈박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감지된 것이 있다는 직관적 판단이 성립하지 않는 한, 감지된 것을 보다 자세히 알려는 직관적 의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직관적 판단과 직관적 의도는 필요불가결하게 붙어 있습니다. 하나의 덩어리죠.

    본글이 좀 뒤숭해서, 죄송하다는... 좀 매끄럽게 다듬어야 할 듯 한데...
  • 작성자 잊지않기 작성시간10.11.02 아니예요.
    좀 무식하게 말해보면 '연기즉공'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한 것 같거든요.
    생각의 단초가 되고요.
    본글을 생각해보려고 하니 단락마다 죽 딸려오는 것이 많았어요.
    엄밀하게 표현해줘서 감사하지요.
    계속 생각을 해볼께요.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2  공과 관련해, 대상 내지 연기의 한변만 등장하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런즉 행자의 고뇌를 담은 수행법문일 수 있는 거죠...
     우리들은 한쪽만 보게 됩니다... 물론 양변을 동시에 살피려는 노력은 합니다만... 감지체계로 조건지어지다 보니, 드러남은 그렇게 조건지어질 수 밖에 엄다 보니... 피할 수 엄는... 어떻게 보믄, 기독교의 원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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