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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 바라밀, 우리도 부처님 같이...
얼마전 구례 화엄사 선원장을 지낸 원로급 스님(69세) 20대 아가씨를 성희롱하여 고소를 당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순박한 우리 불자님들은 어쩌다 그런 스님이 계셨겠지... 하고 자비롭게 넘어가실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경허 스님 입적 100주년을 맞아 경허 스님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종단 차원에서 한창 추진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모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어느 중견 재가 불자님이 경허 스님의 파계와 막행막식의 삶을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불교평론'이라는 불교계의 대표적 학술지에 실었다가, 많은 스님들과 일부 불교계 관련자들의 반발을 사며 폐간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불자님,
불자님은 이런 불교계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청정한 계율 지킴을 목숨처럼 여기고 사는 스님네들을 보기가 어려운 슬픈 현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여기 한 스님네의 일화를 소개해 올립니다.
깊이깊이 통찰해보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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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앞에 참회하시는 부처님
" 대중이여, 나는 이제 참회를 행하노니, 대중들은 내 행위와 내 언어에서 무엇인가
비난할 만한 것을 보고 듣고, 또 의심나는 생각을 지니지 않았던가?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나를 가엾이 여겨, 부디 지적해 주오. " -잡아함경 45의 15-
오늘은 참회<자자(自恣)>의 날 (장아함경 45의 15)
24 부처님께서 사밧티(城)의 동쪽 근교 미가라마티 강당(Migaramata) 에 계실 때이다. 여름
안거(安居)가 끝나는 마지막 날인 칠월 십오일, 해가 지고 달이 뜨자, 부처님을 비롯한 오백
명의 대중들이 넓은 마당에 나와, 마주 보고 빙빙 둘러 앉았다.
직책을 맡은 비구가 이 모임의 뜻을 선포한다.
" 대중들이여, 들으시라. 오늘은 참회(Pavarana, 自恣)가 있는 날,
만약 대중에게 이의가 없다면, 교단은 참회를 행하려하오. "
대중은 침묵으로써 이의가 없슴을 동의하였다.
25 참회는 장노(長老, Ayusmant-아유솔만)에서부터 아랫 사람 쪽으로 차례대로 행하도록 약
속되어 잇다.
제일 먼저 대중 앞에 나선 것은 부처님 자신이다. 부처님께서 대중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합장한 손을 높이들고 큰 소리로 외치신다.
" 대중이여, 나는 이제 참회를 행하노니, 대중들은 내 행위와 내 언어에서 무엇인가 비난할
만한 것을 보고 듣고, 또 의심나는 생각을 지니지 않았던가?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나를 가엾이 여겨, 부디 지적해 주오.
죄를 알면 마땅히 그 죄를 제거하리이다. "
26 부처님께서 이렇게 세 번 외자, 엄숙한 침묵이 장내를 뒤덮었다.
침묵은 그 청정함을 긍정하는 것이 된다. 때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오른 어깨에 걸
치고, 부처님 앞에 꿇어앉는 비구가 있다. 그는 대중의 우두머리격인 사리풋다(Sariputra,
舍利弗)이다.
"아니오이다, 세존이시여! 누구도 세존의 행위와 언어에서 비난할만한 점을 발견한 자는 없
나이다."
겸허한 삶을 향하여
27 석가모니 당시의 상가(Sangha) 공동체에서는 계율이 절대적인 의미를 갖고, 대중들의 생
활을 구체적으로 인도해 갔습니다.
깨치느냐 못 깨치느냐는 그 한 사람의 내면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스러운 상가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인격을 논하는 것은 계율이라는 객관적인 척도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반달에 한 번씩 행하는 포살(布薩, Poshadha)과, 매년 여름 안거가 끝나는 마
지막 날에 행하는 참회(자자)는 상가 공동체의 가장 성스럽고 중요한 모임인 것입니다.
이 포살과 참회를 통하여 불자 형제들은 자신을 깨끗이 정화하고, 상가 공동체는 청정과 화
합과 일치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28 포살과 자자는 그 형식에 다소 차이가 있슴에도 불구하고, 근본 정신은 스스로 행하는 자
기 참회(自己懺悔)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계율은 남을 비방하고 부정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계율을 세우신 속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노라면, 우리가 몸과 맘과 뜻으로, 알게 모르게 지은 허물(身口意 三業)이 참 많습니
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죄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와 당신의 참생명은 본래 맑고 깨끗한 것이 아닙니까?
진흙 속에서 솟아나는 연꽃처럼, 물들래야 결코 물들 수 없는 것이 내 불성(佛性)의 신비가
아닙니까?
계율은 진흙 속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는 등불이고, 참회는 몸에 믇은 때(垢)를 말끔히 씻어
주는 청정한 샘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9 "나를 가엾이 여겨, 부디 지적해 주오. 죄를 알면 마땅히 그 죄를 제거하리이다."
대중 앞에 무릎 꿇고 합장 고백하시는 저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나와 당신과 일체 중생의 허
물을 다 자기 허물로 받아들이고, 저와 같이 눈물을 머금고 참회하십니다.
저 부처님을 보고도, 우리가 함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내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불가결한 경우가 아닌데도, 남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오락을 위해서, 취미를 위해서 물고기를 낚고, 들짐승을 사냥할 수 있겠습니까? 제 이익을
위하여 흑인 노예에 발목을 자르고, 국가 경제를 위하여 전쟁 무기를 장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 저 부처님 따라 무릎 꿇고 합장하며, 지극히 겸허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렵니까?
풀 한 포기도 차마 뽑지 못하는 연약한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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