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의 수행인 八正道와 팔정도의 마지막 支인 正定
불교의 가르침(佛法)의 핵심 또는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四聖諦이다. 불법=사성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연기법도 사성제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八正道를 수행하지 않으면 사성제를 아는 것이 아니다.
십이연기의 첫 번째인 無明은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다. 팔정도의 첫 번째인 正見은 사성제를 아는 것이다.
붓다의 열반 직전에 법을 구하려하여 마지막 제자가 된 유행승 수밧다에게,
붓다는 스스로 “29세에 출가하여 51년 동안 출가생활을 하여 바른 법을 위해 머믈렀지만,
오직 팔정도에만 沙門(진정한 수행자,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있으며 다른 교설들에서는 어떤 사문도 없다”고 하였다.
즉 팔정도=사성제로서 팔정도에는 계, 정, 혜 삼학이 온전하게 존재한다.
팔정도에서, 正見이 있으면 正思가 생기고, 정사가 있으면 正語가 생기며, 정어가 있으면 正業이 생기며.정업이 있으면 正命이 생기며
정명이 있으면 正念이 생기며, 정념이 있으면 正定이 생긴다(잡아함 28권 749경, 중아함등)고 하여 순차적으로 닦아나가도록 되어 있다.
팔정도의 목표는 마지막 支인 정정이다.
한 道가 있으니 이른바 정정으로서 그것을 익히고 도우며 준비하는 7支가 있다...
이 7지의 익힘과 도움과 준비가 있어 잘 나아가 마음이 하나가 되는데(心一境性) 이것을 정정이라 한다(중아함49권189경등).
결국 팔정도의 마지막 지인 정정을 위하여 팔정도를 수행하는 것이다.
불교 수행에서 正定(samma samadhi 바른 삼매)이 가장 높은 修行次第이다.
2. 붓다는 정정(바르고 완전한 삼매)인 사선에서 깨달았고 사선에서 열반에 들었다.
초기불교에서 正定(samma samadhi 바른 삼매)은 四禪이다.
사무색정도 멸진정도 아니다. 여기에서 samma가 바른(正)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었지만 원래는 ‘완전한(perfect)’
그리고 ‘모든 것에 이른(thoroughly)’이라는 뜻이 있다.
완전하고 긍극적인 삼매가 바로 사선이라는 것이다.
붓다는 사선에 의하여 깨달았다.
마지마 니까야 마하삿짜까경에 의하면 붓다는 태자시절 농경제 때에 초선의 행복했던 경험을 생각하며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 아닐까?” 의문을 제기한 후에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다” 라고 알게 되어 初禪, 二禪, 三禪, 四禪을 이루고 사선에 들어간 후 깨닫게 된다.
마지마 니까야 念身(몸에 의한 마음챙김)經등 경전에 일관되게 나오는 것은 四禪 三明(六通)으로 깨닫는 것이다.
붓다는 열반 직전까지 오직 팔정도에만 사문(진정한 수행자)이 있다고 하였다.
팔정도의 가장 높은 마지막 단계가 정정인 사선이며 또한 붓다는 제4선에서 열반에 들었다.
모든 번뇌를 소멸하게 하는 지혜는 네 번째 선정을 얻은 후에 성취하게 된다는 마지마 니까야 찹비소다나경의 내용이
붓다의 가장 근본적이고 일관된 가르침이다.
3. 불교의 수행은 sati수행이며 sati가 완성된 청정한 상태가 제4선이다.
그렇다면 팔정도중에 불교의 실제적 수행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념처경에 자세히 나와 있는 팔정도의 正念(samma sati 바른 마음챙김)이다.
불교의 모든 수행은 sati 수행이다.
불교의 수행과 다른 수행법을 실제로 구별하게 하는 것이 명료하게 깨어있음(sati)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초기불교이든 선불교이든 금강승 불교의 족첸수행이나 마하무드라수행이든 마찬가지다.
선불교에서 아무리 마음이 평화롭고 깊은 상태에 있어도 화두가 또렷하고 星星하게 잡히지 않으면 무기공의 黑暗鬼窟에 빠진 것이다.
존 카밧진이 봉암사를 대표하는 선승인 정명스님에게 스님이 깨달음을 많이 이야기 하시는데 그 깨달음을 깨어있음으로 이해해도 되느냐고 질문했을 때,
스님은 같은 이야기라고 답변한다.
이 마음챙김(sati)수행이 극대화된 것이 正定(samma samadhi 바른 삼매)이며 바른 삼매는 四禪이다.
사선의 가장 높은 단계가 평정(upekkhaka捨)에 의해 sati(念)가 완성된 청정한 상태(捨念淸淨 upekkhaka sati visudhi)인 第四禪이다.
즉 제사선에서 sati가 가장 확고하고 청정한 상태로 되는 것이다.(시간이 없어 사선에 대한 설명은 생략)
4. 불교수행과정의 단계
마지마 니까야 산수목건련경과 디가니까야 사문과경(沙門果經)에는 불교수행과정의 순서와 단계가 자세히 나와있다.
두 경 다 가장 먼저 계율을 구족해야 하며 그 다음이 감관의 제어이다.
눈으로 형상을 보고 그 모양에 사로잡히지 말고 눈의 감관을 잘 제어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귀로 소리를 들을 때, 코로 냄새 맡을 때, 혀로 맛볼 때 , 마음으로 분별할 때도 또한 마찬가지다.
산수목건련경에는 그 다음에는 음식의 양을 안다. 이 몸을 지탱하고 거룩한 수행을 하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
이어서 비구는 깨어있을 때나 잠잘 때나 항상 바르게 수행해야 한다. 낮에는 경행과 좌선에 의해 장애를 떨쳐버려야 하며,
초저녁에도 마찬 가지이며, 한 밤중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아래로 하여 누운 후, 새벽에는
다시 일어나 경행과 좌선을 하여 장애를 버리고 마음을 맑게 하여야 한다.
즉 낮에는 물론 초저녁과 새벽에도 좌선과 경행을 하여 수행에 전념할 것을 이야기 한다.
그 다음이 산수목건련경과 사문과경에 함께 나오는 내용으로 正念(마음챙김sati)正知(분명한 알아차림sampajanna)의 성취이다.
정지정념이란 모든 행동 행주좌와에서 먹고, 마시고, 씹고 대소변 볼 때까지도, 잠에서 깨어날 때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분명히 알아차려 24시간 전부가 수행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다음에 사문과경에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위장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하는 소욕지족을 말한다.
산수목건련경의 음식의 양을 아는 것을 포함하는 내용이다.
그다음 단계는 두 경에 함께 나온 것으로 외딴처소에서 가부좌로 상체를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후에 감각적 욕망, 악의, 혼침과 게으름, 들뜸과 회한, 회의적 의심등 다섯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다섯가지 장애를 제거함으로서 비로서 초선에 들어가게 된다.
경전의 내용을 다시 요약하여 이야기하면 초선에 들어가기 전까지 수행단계는 계를 갖추고, 모든 감각기관을 제어하고,
의복과 음식의 양을 알아 소욕지족하고, 낮에는 물론 초저녁과 새벽에도 좌선과 경행을 하여 열심히 수행하며,
행주좌와의 모든 행동과 먹고 배설하는 행동까지 눈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모든 행동을 알아차릴 수 있는 정념정지를 성취한 후,
가부좌로 앉아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다섯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한다. 그 후에 비로서 초선에 들어간다.
오개를 제거한다는 것은 대단히 높은 수행단계이다. 오개는 마음챙김(正念)과 반대되는 것으로 마음챙김에 의해 제거된다.
이와 같은 수행단계는 팔정도의 정정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정견부터 정념까지의 팔정도의 7지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디가 니까야(장부경전)의 사문과경에는 불교의 수행단계가 가장 자세히 나와 있다.
사문과경은 아자사타투왕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어 붓다의 말년에 설해진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경에도 사선의 성취이후에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는 누진지를 얻는 것으로 나와 있다.
무색계선정이나 멸진정의 이야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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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사띠 마음챙김 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을 말합니까??
답: sati란 팔리어로서 우리말로는 마음챙김, 알아차림, 깨어있음, 새김, 마음지킴, 마음다함등 그 밖에
아주 다양하게 번역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라는 번역을 가장 많이 씁니다.
영어로는 미국에서는 mindfulness로 번역이 정착되어 있습니다.
sati의 본래 뜻은 주의를 대상으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하고 기억하여 잊지 않음의 의미도 있습니다.
마음챙김은 어떤 대상에 주의를 기울여 놓치지 않고 명료하게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질문: 정견이나 정념에서 정은 무엇을 말함인가요? 바른 이게 무엇을 말하나요?
답: 正見이나 正念에서 正은 팔리어samma를 번역한 것으로 바른, 완전한 등의 뜻이 있습니다.
정견은 바른 견해로서 가장 간단하게 사성제를 아는 것입니다.
정견은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즉 무상 고 무아를 아는 것, 연기, 중도를 아는 것, 사성제를 아는 것입니다.
정념은 내가 무엇을 하건 주의를 기울여 놓치지 않고 명료하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가 택시를 탈까 생각중이면 그 생각을 명료하게 알아차리는 것이고,
택시를 타는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을 놓치지 않고 명료하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