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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12.06 드러난 일체는 나의 욕망에 조건지어진 것
대상화하여 바라본 그것은 나의 잠재적 성향에 결탁된 그림
보이는대로 보았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기실 보고싶은 대로 본 것일뿐
보고자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본적 없는 것 또한 보이지 않는다(간주작용 없슴).
이제 보고자 하니 보이고, 본적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니 드러난다.
보고자 하니 존재가 되고, 본적 없는 것에 이름을 정하니 존재가 된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준 순간
너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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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본적 없는 것 또한 보이지 않는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엄마는 단지 형체로 감지될 뿐 엄마라는 간주작용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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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12.06 갓 태어난 아기에게.. 엄마는 단지 형체로서 감지되었고 그렇기에 무언가 있다는 산냐는 결정되었으나,
6의식에 의해 전오식을 종합하고 추리 판단한 엄마는 있지 않다. (엄마라는 상으로 내적작용을 일으킬 질료가 없으므로)
그러므로 본적 없는 것(엄마)은 보이지 않는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엄마는 없다. -
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12.06 어허~~ 불교문외한님 의 <아>를 보니 이것도 설명해야겠네요
위에 <나>는 중생을 의미함. 즉 오온의 가합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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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의 가합이기에 무아인데요.. 기초중 기초잖아요.
불자로서 얼마간이라도 바르게 공부했다면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많은 중생은 4번뇌를 떠날 수 없는 중생인 듯... <아만>도 중생의 번뇌중 대표인 4번뇌에 속하죠.
중생의 4번뇌: 아치(취x) 아견 아애 아만 -
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12.06 [ 자신이 아는 것 있으면 드러냄으로 기쁘고 , 모르는 것 있으면 배움으로로써 또 기쁘고.. 어떤 사람이 틀렸으면 보살펴 줌으로써 그 또한 기쁘고] 이런 것이 우리에게 활력을 주는 요소로서의 카페가 가지는 순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모르는 것을 지레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남이 틀리게 적었다고 화를 낼 이유도 없지요.
무엇이 틀리고 무엇이 오해인지 서로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됨으로써 카페가 우리에게 좋은 공간이되잖아요.
카페에 글이 없다면 대화를 막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카페는 무엇으로 존속할까요?
자신을 드러내야 뭐가 잘못된 것, 고쳐야할 점인지 알려지고 지적받을 수 있잖아요.
글 많이 올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