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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세가지 의식상태 등

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11.08.05| 조회수218|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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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연아짱 작성시간11.08.05 동대 김성철 교수님의 책 [백문백답]에 보니까, 꿈이 없는 잠은 없다고 하셨더라구요. 단지 꿈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라고요. "꿈이 없는 것"과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구별하죠?
  • 작성자 연아짱 작성시간11.08.05 제가 알기론, 찰스 타트 같은 초심리학자도 현재의식도 일종의 변성의식상태의 하나로 상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옛 사람들이 말하듯이 꾸지도 않은 꿈을 꿨다면서 용하다는 점쟁이를 시험하려고 찾아가서 말했는데, 아니 어떻게 된 것인지 그 점쟁이 말대로 됐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사실 그 꿈을 꾸지 않았다고 점쟁이한테 실토하면서 그런데 어떻게 당신의 예언이 적중했는지 물어보니, 사실 당신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꿈이고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도 있고요. "누구나 일상을 기준으로 최소한 하루 몇 시간동안은 소멸하잖아요" 이 말씀이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5  그렇군요...
     본글의 [수면에서 깨어난 상태, 꿈꾸는 수면상태, 꿈이 없는 수면상태... 그리고 이러한 세가지 의식상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긍정할 수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다 알아요...]는,
     [수면에서 깨어난 상태, 꿈꾸는 수면상태, 꿈이 없는 수면상태... 그리고 이러한 세가지 의식상태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긍정하고 있습니다.]정도로 고쳐져야 할 듯...

     ["꿈이 없는 잠"은, 하나의 사실인가? 아니면 하나의 가정인가?]
     역시 요가 이야기인데요...특히 관조기법을 해보면, 꿈이 멈추는 시점이 있습니다... "보통 말해지는 꿈"이 진행되다가, 본글에서 "흑암"이라고 표현된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 상태가 나옵니다.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5 물론 ["명료함과 함께 하는 꿈꾸는 잠"이기에,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건데요... 오히려 스스로 일으킨 명료함을 유지하려는 힘에 따라...[소멸]이 아닌, ["흑암"이라고 표현된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 상태]가 등장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거죠...
     위에 적었듯...상좌불교도 대승불교 특히 유심론도, 수면상태에서 멈춘다는 주장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좌불교와 유심론 모두에서 긍정하듯, 어차피 찰나생멸한다면...잠자는 상태만이 아니라, 잠에서 깨어난 상태에서조차...소멸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상좌불교와 유심론의 찰나생멸 모두가, 이미 소멸은 말하고 있어요. 잠에서 깨어난 상태에서조차, 그렇단 말입니다...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5 그러면 우리가 잠자는 동안...현실을 기준으로 몇 시간 가량 소멸에 머물렀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어떤 교학상 문제를 일으키진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위의 본글과 같이 "꿈이 없는 잠"을 "소멸"로 주장한 이유는, 소멸을 가능한한 구체적으로 와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소멸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에도, 소멸이 구체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 상태가 뭐냐? 찾아 본 즉, "꿈이 없는 잠"이었다는 거죠... 그냥 그렇게 주장하면, 너무 엄어 보이니까...나름 설득력을 갖출려고 한 거란 말이죠... 그리고 관조기법을 해보니, "꿈이 없는 잠" 자체는 알려진 적이 엄다는 결론에 이르렀거든요. 관조기법의 결론은, 잠은 걍 자야 된다는 거예요.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5 꿈이 엄는 잠을 관조하는 것은, 제대로 잠을 자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믿고 있습니다. 확신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 언어적 사유를 통해서도, 특정 체험에 준하는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해당 체험자가 가질 습관을 형성하면 된다. ]
     그리고 이에서...대승의 본지를 찾았고, 수 많은 선배 대보살들이 힘들게 구축한 교학의 본지를 찾았습니다. 그냥 체험하는 것만이 길이라면...타 유파와 경쟁하는 것도 아닌 부분에서, 그처럼 공을 들일 필요는 없거든요... 저는 교학을, 체험에서의 울퉁불퉁함을 평등하게 구현하게 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그 많은 설법 역시, 마찬가지란 거죠..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5  물론 현재 제가 보기에는, 그처럼 표면적이라고 평가될 일상적 습관만으로는 힘을 쓰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충분히 강한 신심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 스스로 힘을 기르는 연습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위의 본글이, 수면을 이용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겁니다. 평소에는 그런 연습이 힘들어요... 피곤합니다. 직접 선정에 드는 연습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수면을 건드리는 일은 피곤한 거예요. 하지만 평소에는 걍 일상에서 꾸준히 알아차림하면서 좀 힘을 기르다가...내일이 쉬는 날이거나 휴가기간이라면, 좀 피곤해도 상관 엄잖아요? 그럴 때마다 꾸준히 시도하는 거죠.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5 그러다가 스스로의 몸이 형상이 없고 1인칭인 꿈의 상태도 형성하고, ["흑암"이라고 표현된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 상태]도 알려지는 일도 생길 겁니다. 그렇게 되면, 꿈에서 색계 4선의 형성등 제반 선정수행도 할 수 있어요... 요가도 선정을, 자발적으로 일상에서 꿈으로 들어가는 일로 봅니다. 불교라고 짜다리 다르지도 않습니다. 삼매수행 자체가, 불교에서 수용한 거예요.

     꿈을 꿨는데, 기억 몬할 수도 있지 않는가? 그럴 수 있습니다. 완벽하려고 할 필요는 엄어요... 완벽이라는게 가능한 것 같지 않아요... 제 수준에서는 그래요... 그러니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고, 목적한 바에 적합하고 유용한 일을 하면 되는 겁니다.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5  물론 선정이 꿈이라고 하면, 폼이 안나긴 하죠...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예요... 우리가 스스로 취하고 있는 어리석음은, 일체 선정을 포함하는 겁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미 무량한 소위 선공덕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그게 제가 보는 관점이죠... 수행이라는 것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알아 우리의 어리석음을 평등하게 구현해 내는 일이라고 보는 겁니다. 이것이 화엄종의 취지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엄행자는, 본글 말미에 적었듯, 열반을 찾아 헤메지 않습니다. '일차적 의미의 열반' 내지 소멸도, 어리석음의 하나일 뿐이라고 봅니다. 없음은 조건으로서의 없음입니다. 스스로의 조건에 종속된 없음일 뿐이라는 거죠...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6  밝음과 어둠이 의식되는 것은, 욕계 내지 색계의 일입니다. 밝음과 (밝음의 또 다른 발현형태로서의) 어둠은, 색온이거든요...
     [의식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일]과 같이 복잡한 작업은...무색계 선정 전체를 포함하여, 어느 정도 깊은 선정에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일상에서도 어느 정도 깊은 층계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당장 이곳에서 이야기된 바 있는 호흡연습이 어느 정도 나아갔어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겁니다.

     없음은,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의 상태는...멍청한 상태는 아닙니다. 멍청한 상태는 기억에 있어요... 위의 본글 바로 밑의 [찰라생 찰라멸-간단한 실험]에서도 지적했듯, 마음의 유무를 말하는 거죠.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6 인식자 자체가 푹 쉬고 있는 부재가 아니라, 인식자라고 칭해진 것 자체가 없는 겁니다.
     꿈 없는 잠을 없음으로 의제한다는 것은, "잠자는 나는 있었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경험을 말하는 겁니다. 언젠가 적은 적이 있는데, 어떤 기억도 없이 잠에서 깨어나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일은 아주 신기한 일입니다. 자신이 잠자고 있었다는 기억이 없잖아요... 그냥 잠이 와서 잤고, 잠이 깨었을 뿐입니다. 잠이 안들고 깨어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와 같이 아무런 기억도 없이 여러 시간이 지났다면...당황하지 않겠습니까? 당황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비정상이죠... 문제가 심각하죠... 하지만 유독 잠과 관련하여서만은, 아무도 당황하지 않아요...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6  넷에서 오래 활동하다 보니, 하지 않았던 말이 별로 없는데요... 지금 적는 것도, 다 과거에 했던 말이예요... 저는 없음이 경험적으로 알려졌을 때, 당황했습니다. 언어적 사유로 없음이 있어야 한다고 확신에 이를 정도였는데도, 당황했습니다... 없음이 그러한 것인 줄 몰랐거든요... 언어적 사유로 생각한 없음은, 그냥 상상력의 끝일 뿐이거든요... 더 이상의 생각을 진행할 수 없게 하는 종착점 같은 거죠... 하지만 경험적으로 알려진 없음은 그런게 아니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뭔가 잘못된 줄 알았어요... 요가수행 중 명료함을 놓친 것이 아닌가 의심까지 했었습니다. 제가 경험했다고 주장하려고, 이런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6 없음을 알아야, 대승불교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말하는 거예요... 그것도 그냥 막연하게 알아서는 너무 모호해서, 대승의 언명이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어려워요. 어느 정도 이상의 구체성을 획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성을 획득할 수록...대승의 구체적 이해가 가능해져 깊이 있는 이해의 출발점에 설 수 있습니다.

     자꾸 자극적인 말이 나올려고 하는데 말이죠... 그러니까...불교에서는 어떤 의식상태든, 설령 없음이라도...본질적으로 우월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잠이 안들고 깨어 활동할 때를 기준으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한 경우, 그 필요한 노력의 정도에 따라...노력이 많이 필요할 수록, 좀 상층부 의식상태로 쳐주는 거죠...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6  어쨌건...위에 적은 [잠이 안들고 깨어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와 같이 아무런 기억도 없이 여러 시간이 지났다면...당황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지적을 눈여겨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당황하라는게 아니고... 최소한 [우리가 믿는 바들이 얼마나 형평성 없이 자의적으로 적용되는 것인가?]를 점검해 볼 기회는 될 수 있다는 거죠...
     [찰라생 찰라멸-간단한 실험]에서도 알 수 있지만, 찰나생멸이라는 문자로 아는 것과 교학상 말해지는 찰나생멸이 같은 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없음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적당한 다른 표현이 없어요. 의식의 소멸이 알려지면, 잠에서 깨어나 당황하지 않듯, 의식의 소멸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됩니다...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6  그야...자면서도, 없음은 당연히 알려질 수 있죠... 무색계 선정으로 나아갈 수도 있으니, 소멸도 알려지죠... 그러한 일과 관련하여 본글에서는...[다만 무색계 선정과 관련하여서는, 명료함을 갖춘 꿈에서 무색계선정을 성취하기에 적절한 행위를 해야 합니다]라는 정도로만 적고 지나갔습니다. 소멸 내지 없음은, 고의로 언급하지 않았죠...
     왜 그랬냐 하면요... 당장 우선적으로 목적한 바가, 꿈 없는 잠을 소멸로 의제하여 소멸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구요. 다음으로 혹 꿈을 이용할 분인 경우...우선 꿈을 꿀 때, 꿈꾸는 줄 알고 명료한 꿈을 꾸려고 노력해야 하구요. 그리고는 잠에 들어가는 과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야 하거든요...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6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닌 한, 어려운 순서가 그럴 거예요. 용 빼는 사람 엄거든요. 저한테 어려우면, 십중팔구 넘한테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쉬운 것부터 하려고 해야 합니다. 무색계에는 그냥 들 수 없습니다. 따로이 뭔가 별도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쓸데 엄이 뭔가 많이 제공되고 의욕이 과도한 경우, 잠을 안자려는 무모한 사람이 나옵니다. 저는, '24시간 깨어있음' 즉 '잠 안자는 일'을 이야기하는거 싫어합니다. 잠은 자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을 안자려고 하면, 악몽이예요. 24시간을, 자는 것도 아니고 안자는 것도 아닌 상태에 있게 됩니다. 물론 다이어트는 확실히 되구요... 극에 이르면 몸무게 30킬로 대로 진입합니다.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8.06 ===
     신심이 확고하고 교학에 어느 정도 능통하면, 힘은 호흡연습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를 나눠 이야기하지만...진입에서의 어떤 장벽을 제외하면, 힘을 다스리는 거는 비슷해요. 그런데 사람이 아는게 많으면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아집니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누구는 이게 땡기고, 누구는 저게 땡기고 그러거든요. 또 기왕에 화엄행자라면, 어리석음을 많이 알수록 좋죠... 노느니 이거라도 한다고... 그런 거와 비슷한 거라는... 또 법을 드러내려면, 아는게 많아야 되요. 큰 그물을 만들어서, 그물을 넓게 던져야 되거든요. 그럴 수 있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할 필요성도 강해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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