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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 마주하기]

무상삼매

작성자별☆|작성시간09.05.12|조회수324 목록 댓글 0

 

엄밀히 말해 < 무상삼매 >는 요가의 용어입니다.

요가수트라에 따르면...요가는 삼매를 크게 둘로 나누어 '유상삼매(유종삼매)'와 '무상삼매(무종삼매)'로 구별합니다.
유종삼매 혹은 무종삼매에서 '종'이란 표현은 '(미세한) 잠재의식의 인상' 즉 '심의식의 뿌리'를 의미하는 겁니다. 소위
힌두교 계열의 어느 스쿨이든 무상삼매는 요가적 삼매의 궁극을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요가적 궁극은 각 스쿨
마다 동일하지 않습니다.

 

'스쿨(school)'은 '동일한 견해로 분류되는 일단의 사람들'등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통 '학파'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예로 라마누자의 베단따의 경우 불교의 식무변처를 무상삼매로 규정한다 볼 수 있죠. 반면 샹카라의 베단따의 경우 불교
의 비상비비상처를 무상삼매로 규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라마누자 계열
의 베단따 혹은 샹카라 계열의 베딴다라 이름하더라도 그 안에 또 다양한 스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
게 되면 단정적으로 말하기 곤란합니다. 심지어 라마누자의 베단따와 샹카라의 베단따에서 궁극은 동일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며 실제 오늘날 이러한 견해가 다수설이예요.

 

역사적으로 형성된 견해는 매우 많아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분별을 하기 위해 일단 각 스쿨의 가장 전형적 특징을
드러내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여타의 힌두교 계열과 불교를 분별하는데 있어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힌두교 계열의 학파는 <고전 샹키아>입
니다. 고전 샹키아의 경우 무상삼매는...제가 소위 < 없음 >이라 이름한 '경계(상태)'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님이 적은 대로...거칠게 말하자면...<무상삼매=무상정등각=무기공=(識이)없음=일차적 의미의 열반=아라한과>라는 형태
의 견해를 제시한 바 있어요. 바른 이해를 위해 보완을 필요로 합니다.

 

<없음>은 비상비비상처 다음 경계이긴 하지만...<일차적 의미의 무상정등각>이라고 표현해야 옳습니다. 또한 감지하는
기능이 드러나지 않기에 '(識의) 없음'이라 이름한 거죠. 행자가 소위 일상이라 이름할 조건의 산냐등만 알고 그러한 산냐
에 집착하기에...'그와 같은 조건에서' 즉 '그와 같이 조건지어져 있어'...제행무상에 따라 산냐가 없는 상태가 드러남에...
<없음=識의 없음>으로 드러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없음'은 그 자체로 보면 조건지어져 있지 않지만
'있음'과의 관계에서 조건지어져 있다>고 표현하면서...그러므로 <결국 '있음'에서 조건을 탈피하는 것이 관건임을 알게 된다>
고 부연설명한 바 있습니다. 소위 인도 종교 철학은 공부를 할 때 섬세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처음엔 모두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고대에 각 스쿨에 속한 이들이 저마다 다름을 알고 논쟁
을 벌이기도 했다는 점을 기억하여...섬세하게 분별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알 수가 없습니다. 고대의 그 시절 각 스쿨
에 속한 이들이 저마다 다름을 알고 논쟁을 했어요. 그와 같이 논쟁을 벌였던 분들은...오늘날 어설프게 공부하고 '모두 같
다'고 말하는 이들보다...스스로의 스쿨이 지녔던 견해에 대해 더 잘았을 것이고...그렇기에 상대 스쿨과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러한 사실을 놓치면 상대의 신념과 견해를 알 수 없고...상대의 신념과 견해를 알 수 없으면 상대의 신념과
견해를 존중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을 존중하란 거죠...<인간을 보라!>

 

물론 <모두 같다>는 견해에도 인간이 들어 있어요. 결국 그들의 꿈을 보고 그러한 다름에도 이런 저런 까닭으로 같다는 견해
를 세운다는 사실도 알라는 겁니다. 일체 견해를 접할 때마다...그 견해와 함께 한 이들의 꿈을 보라는 거예요. 우리는 인간입
니다. 그러니 어떤 견해에서든...<진리>가 아닌 <인간 그 꿈>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질문과 관련해 무상삼매의 단어를 살펴 보겠습니다. <무상삼매>에서 <무상>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는
<'부정접두어 a'+sam+초월적 지혜(prajna)>의 합성어입니다. 상온(산냐)는 <sam+세속적 지혜(jnana)>의 합성어예요.
'상'이 바로 산냐예요. 무상삼매 혹은 유상삼매라고 할 때의 '상'이 바로 산냐란 단어입니다.

 

단지 요가에서는 삼매를 초월을 중심으로 관련짓기에 'jnana' 대신 'prajna'란 단어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prajna'는 소위
'반야'로 번역되는 것인데...jnana와 prajna는 세속과 초월 중 어느 쪽으로의 경향성을 의미하는가의 차이일 뿐 모두 '지식'
을 의미합니다. sam은 소위 '평등'으로 번역되는데 동등함을 의미합니다.

 

'산냐'는...<sam+jna(na)>의 합성어로...'서로 다를 수 있는 두가지를 동등한 하나로 보는 작용'을 의미합니다.
바로 <사유, 판단, 동일시, 간주, 이름>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런 작용으로 드러나는게 바로 '지식 혹은 지혜'란 말입니다.

 

요가등 소위 힌두교 계열의 스쿨들은...소위 '참 나'라 이름할 보다 근원적인 어떤 경계를 찾으려 했기에...삼매라는 경계 자체
에 '초월적 지혜'를 의미하는 'prajna'란 단어가 선택된 겁니다. 반면 불교에서는 무색계선정 그 중 비상비비상처라고 이름할
지라도 그냥 '지식(세속적 지혜)'을 의미하는 'jnana'란 단어가 선택된 산냐와 함께 한다고 해요.

 

요가수트라를 보면 무상삼매는 '심의식의 지멸'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고전샹키아와 동일합니다. '의식의 소
멸'이 무상삼매예요. 그럼에도 무상삼매라 이름하기에 그 경계 자체가 (궁극의) 지혜라 불리웁니다. 결국 '참 나'란 이름 자체
가 결국 '지혜 없는 지혜'를 의미해요. 바로 그 '지혜 없는 지혜'란 이름 즉 '궁극의 지혜'가 어떠한 경계(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소위 힌두 계열의 일체 스쿨은 동일한 입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나'를 찾는 것이 소위 힌두 계열의 일체
스쿨에서는 곧 지혜의 완성이 된 겁니다. 그리고 '참 나'라 이름할 경계가 무엇이며 세속과 어떠한 관계인가에 대해 스쿨이
갈라지기 시작한 겁니다.

 

<종국에 가서까지 이러한 산냐의 흐름을 형성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소위 힌두 계열의 스쿨>과 <불교 계열의 스쿨>과의
<차이점>인 겁니다. 이러한 차이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다른 꿈이 되는 거예요. 꿈이 인간이니 다른 인간이 드러
납니다. 이와 같이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인간 그 장엄한 꿈'이 펼쳐지는 거예요.

 

<앎>이란...그것을 '나의 것'이라 생각하여 소유하고 선언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하나의 <앎>에는 그 자체
에 궁극이라 이름할 속성이 절대적으로 함유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어떤 <앎>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이
며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일 뿐입니다. <앎>이란 확장되는 속성의 무엇이 아닙니다. <앎>의 길을 가는 이는 <앎>만을 봅니다.

 

인간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꿈을 담을 수 있어야 해요. 그게 불자의 길입니다.

<서로 다름>과 <서로 같음>이 해살 놓음 없이 함께 하죠.

 

 

< 불교 이해와 수행의 기초 > 2. 지향점과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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