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정 토 진 종 ]

탄이초 1 - 13장

작성자잊지않기|작성시간10.09.03|조회수1,092 목록 댓글 0
탄이초는 사실 매우 위험한 문장이 많습니다.
아무나 번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정토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번역한 것을 편집했습니다. 꼬릿말부분은 나름대로 제가 해석한 것입니다.
탄이초는 매우 희귀한 책이라 그 가치를 아는자만이 압니다.
일본인은 심지어 탄이초가 자국어로 되어있다는 자체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탄이초를 공부한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불교의 모든 종파를 공격할 수 있지만 정토진종만큼은 매우 이례적으로 공격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오히려 비판보다는 배워야할점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정토진종의 해석은 오히려 목사들이 해석하는 형편입니다.
저또한 탄이초를 보고나서 일본불교에 두손 들었습니다.

제1장.

아미타부처님께서 목숨을 걸고 맹세하시고 약속하신 본원의 불가사의한 작용으로 구제를 받어반드시 정토에 태어난다는것을 굳게 믿고 염불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때 바로 아미타부처님께서 거두시어 버려지지 않으시는 최대의 이익을 주시어 무량한 지혜와 자비의 작용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에는 노인이라든가, 젊은이라든가, 선인이라든가, 악인이라든가 하는
차별은 없다. 단지 신심 하나만은 긴요하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는 것은, 악만을 겹쳐서 죄가 깊은 우리, 타고 있는 불과 같이 번민하고 괴로와하는 마음이 격렬한 우리들을 구제하겠다고 발원하신 것이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본원을 믿는데는 다른 어떠한 선도 필요없다. 염불보다 수승한 선은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악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을 방해할 만한 악은 없기
때문이다. 라고 신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제 2 장.

당신들이 머나먼 간또에서 교도까지 십여개국의 국경을 넘어서 생명을 걸고 찾아온 그 목적은 아미타부처님의 정토에 왕생하는 길을 물어 듣고 확실히 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신란이 염불 이외에 정토에 가는 길을 알고 있다거나, 또는 그러한 것들이 쓰여져있는 경전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여 그 진상을 알고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만약에 그렇다고 하면 나라나 히에이산에 훌륭한 학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니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정토에 왕생하는 요점을 납득하고 흡족할 때까지 잘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신랑에게는 단지 염불하여 아미타부처님에게 구제받고저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 그것을
믿을 뿐 특별한 연유라고 하는것은 하나도 없다.

염불은 참말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씨앗이 되는 것일까? 또는 지옥에 떨어지는 업일 것인가? 하는 것들은 나에게는 알바가 아니다.

가령 호넹상인에게 속아서 염불하여 지옥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염불 이외에 수행함으로써 부처가 될 수 있는 몸이 염불을 했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다면 속았다하는 후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수행도 하지 못하는 이 몸이기에, 나에게는 어차피 지옥은 면할 수 없는 결정된 곳이기 때문이다.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이 진실이라면 석존께서 설하신 가르침도 거짓말이 아닐 것이며 석존이
설하신 가르침이 진실이라고 하면 선도대사의 해석도 거짓말이 아닐 것이며, 선도대사의 해석이 진실이라면 호넹상인의 가르침 또한 어찌 거짓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호넹상인의 가르침이 진실이라면 신란도 지금까지 허망한 거짓말을 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답답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몸이 받은 나의 신심은 이런 것이다. 그러니 이 후로는 염불을 받아들여 믿든 않든 그것도 당신들 각자가 결정할 일이라고 신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제 3 장

선인조차 아미타부처님의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하물며 악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세간 사람들은 항상 이런식으로 말하고 있다.
악인인데도 정토에 태어난다. 하물며 선인은 말할 것도 없다 고 말한다.

여기에는 우선 그럴듯한 도리가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지 모르나 아미타부처님의 본원 타력의 마음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힘을 신뢰하고 선행을 닦아서 그것에 의하여
깨달음을 열고자 하는 사람은 한줄로 본원의 작용을 믿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미타부처님 본원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도 자력에 빠진 마음을 뒤집어 타력을 믿으면 아미타부처님 진실의 세계에 태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번민이나 걱정거리를 모두 다 구비해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염불 이외에 다른 어떠한 수행으로도 미혹의 인생을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을 깊이 슬퍼하시어 본원을 일으키신 아미타부처님의 진의는 이러한 악인을 부처로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 때문에 타력을 믿는 악인은 가장 수승한 왕생의 정인인 것이다.

그러기에 선인조차 아미타부처님의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하물며 악인은 말할 필요가 없다라고 신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의미심장한 말들이 나옵니다. 1.어떠한 악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을 방해할 만한 악은 없기때문이다. 2.어떠한 수행도 하지 못하는 이 몸이기에, 나에게는 어차피 지옥은 면할 수 없는 결정된 곳이기 때문이다. 3.선인조차 아미타부처님의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하물며 악인은 말할 것도 없다. 4.본원을 일으키신 아미타부처님의 진의는 이러한 악인을 부처로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 때문에 타력을 믿는 악인은 가장 수승한 왕생의 정인인 것이다. 이런말들을 풀어헤쳐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타력수행의 길입니다 ---

제 4 장

자비에도 성도의 자비와 정토의 자비 두 가지가 있다.
성도의 자비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힘으로 온갖 생물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며
보육하고저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구제하기란 지극히 곤란하다.
정토의 자비라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스스로 본원을 믿고 염불하여 서둘러서 부처가
되어 부처의 대자대비의 마음을 가지고 마음먹은 대로 살고 있는 모든 것들을 구제하는 것을말한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애처럽고 가여운 일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일이 있어도 자기 마음대로
구제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성도의 자비는 수미일관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본원을 믿고 엄불하는 것만이 참답고 철저한 대자대비라고 할 수 있다라고
신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제 5 장

신란은 부모님에게 명복을 빌며 불공을 올리고 염불한 일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다라고 말한 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모두 다 기나긴 세월동안 생애을 윤회하는 동안에 부모로도 되고 형제로도 되어왔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나 다 염불하는 사람들은 다음생애는 부처가 되어 구제할 것이다. 염불이 만약에 자기 힘을 신뢰하여 이루어지는 선행이라고 한다면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불공도 올리고 염불을 회향하여 부모님을 구제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력에 사로잡힌 마음을 버리고 염불하여 부지런히 아미타부처님의 정토에 태어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정토의 깨달음을 연다면, 가령 지옥에서도 아귀에서도 축생에서도 어떠한 세계에서 어떠한
고통에 빠진다해도 부처님의 자유자재한 작용으로 우선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구제해 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신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제 6 장

오로지 염불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중에는 "자기제자다" "다른 사람 제자다" 하며 다투고 있는것은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란은 제자라고 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그것은 자기 역량으로 사람에게 염불을 하도록
할 수 있다면 제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나 다만 순전히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에 이끌려
염불하는 사람을 자기 제자라고 하는 것은 전혀 말도 안된다.
"맺을 연이 있으면 맺어지고 헤어지는 연이 있으면 헤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까지 모시고 염불하는 스승을 배신하고 다른 사람을 따라 염불을 한다면 아미타부처님 세계에 태어날 수 없다. 고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부처님께서 주신 신심을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고 돌려 받고자 하는 것인지, 그러한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아니될 일이다.
만약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의 자연도리에 맞는다면 스스로 부처의 은혜를 알고, 또 스승의
은혜도 알 것이다 라고 이렇게 신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제6장에서 신란이 신교보라는 제자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신교보는 제자중에 뛰어난 제자였는데 부처님의 말씀이 납득되지 않는 곳이 있다고 하면서 떠나게 됩니다. 그때 신란은 신교보가 가는 것은 신교보자유이다. 순전히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에 이끌려 염불하는 사람을 나의제자라고 하는 것은 전혀 말이 안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신교보는 명호또한 강물에 내던졌습니다. 그때 신란은 흥분하지 않고 강물에 고기가 명호를 보거나 물어뜯어도 미타와 인연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제 7 장

염불은 어떠한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외줄의 큰 길이다.
(그러기에 염불하는 사람을 무애일도라고 한다)
왜그런가 하면 염불을 믿는 사람에게는 천지신명이 공경하고 모시기 때문에 마계에서나
외도에서도 방해할 수 없다.
어떠한 죄악도 그 행위결과를 느끼는 일이 없다. 어떠한 선도 이 염불에 미치는 것이 없다.
그러기에 염불은 무애일도인 것이다. 라고 신란성인께서 말씀하셨다.

제 8 장

염불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행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 자기의 분별로서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이라고 한다.
자기의 분별로서 이루어지는 선도 아니기 때문에 비선이라고 한다.
염불은 전혀 아미타부처님 본원의 작용인 타력이지 자력의 분별을 벗어나 있다.
그러기에 염불을 칭하는 행자에 있어서는 행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라고 이렇게 신란성인께서 말씀하셨다.

제 9 장

"염불을 칭하고 있으나 펄쩍 뛰어오를 것같이 환희의 마음이 그토록 절실히 느끼지 못하며
또 부지런히 아미타부처님의 정토에 가고자 하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하고 물어본 즉 '신란도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유이엥보야, 너도 같은
마음을 기지고 있었느냐? 곰곰히 생각하고 생각해보면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춤을 출 만큼
기뻐해야할 일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정토에 점점 왕생하는 것은 결정된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뻐할 마음을 누르고 기뻐하지 않게 하는 것은 번뇌의 짓인 것이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은 이미 이런 것들을 잘 알고,
"번뇌덩어리인 범부야"하고 불러 주시기 때문에 아미타부처님의 타력의 비원은 이와같은
우리들을 구제하시기 위하여 일으키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더 믿음직하게 생각
될 것이다. 또 아미타부처님의 정토로 급히 가고 싶다는 생각이 없고 잠시 병이라도 나면
죽는것이나 아닐까 하고 마음 졸이게 되는 것도 번뇌의 짓인 것이다.

먼 옛부터 지금까지 헤매어 오던 고뇌의 고향을 버리기 어렵고 또 태어나 보지도 않는 것은
참말로 어디까지나 번뇌의 심한 뿌리가 강하고 단단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헤어지기 섭섭할지라도 이 세상 연이 다 되어 자기로서는 어찌하지 못하게
되어 생명이 끝날때 아미타부처님의 정토로 가게 되는 것이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급히 정토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을 특히 측은하게 생각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점점 아미타부처님의 대자대비의 본원은 믿음직하며 왕생이
결정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펄쩍 뛰어오를 환희의 마음도 있고 급히 정토로 가고싶다고
하면 번뇌는 없는 것일까? 하고 도리어 의심스럽게 생각될 것이다. 라고 이와같이 신란성인
께서는 말씀하셨다.

※ 여기서도 의미심장한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무애의 일도, 비행, 비선. 주옥같은 의미들이 나의 심장을 멈추게 만듭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말들을 풀어헤쳐나가야 합니다. 무애의 일도, 비행, 비선... 염불은 어떠한 행도 어떠한 선도 아니다. 거침없는 무애의 일도이다.. 나중에 자세히 할때가 있을 것입니다.

※ 9장또한 신란님의 자기 자신에 대한 통한의 참회가 들어있습니다. 이미 타력을 받으신 신란인데도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루하루가 지난다는 것은 왕생이 가까이 왔다는 것으로 오히려 즐거워해야하는 신란인데도 번뇌에 가리워 싫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타력을 받으면 번뇌즉 보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 아 슬프다. 너무 슬프다. 어리석은 신란. 애욕의 광해에 침몰해서. 이성을 원하는 마음. 나는 저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은 다른사람을 짓밟는 마음이다.기뻐할 마음이 조금도 없는 신란이었다. 번뇌때문에 그렇다. 보통 구원받으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마음을 알면 알수록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 알면 알수록 어떻게 나같은 것이 이렇게 구원받았나. 기뻐하지 않을수 없다. 하루 지나면 극락에 가까이가는데. 하루하루 극락에 가까이 가는데 기뻐하지 않는 신란이었다고. 얼마나 바보같은 신란인가. 라고 말했습니다. 항상 악만을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참회한다. 그대로 였구나.

※ 어떠한 선도 하지못하는 몸이어서 지옥밖에는 갈곳이 없다. 이미 결정된 것이다. 나는 지금 이죄악생사의 범부. 죄악.-애욕,명예욕,이익욕, 극락에 가까에와도 기뻐하지 않는 마음. 광겁부터 항상 빠져있고 항상 유전하는 나. 옛날부터 범부였다. 죄악범부가 나였다.
끝이 있는 목숨을 가지면서 끝없는 것을 돌고있다. 출리의 연 있을리가 없다. 아무리 부탁해도 줄수가 없는 것. 가능성이 없다. 전혀 없다는 뜻이다. 다음에도 있을리가 없다. 영원히 없다. 전혀없다. 이것이 확실했다. 반드시 떨어진다. 어쩌면이 아니다.
미타의 은혜를 받으면 항상 참회의 삶으로 살아갑니다. 그참회가 보리인 것입니다

제 10 장

염불에는 인간의 분별이 없는 것을 가지고 본의로 한다. 그것은 인간의 사려나 분별을
가지고서는 말로 나타내어 찬사를 하거나 설하는 것도 생각으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신란성인께서는 말씀하셨다.

제 11 장

문자하나 모르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염불을 칭하고 있는데 대하여 '너는 아미타부처님
서원의 불가사의를 믿고 염불하는 것인가' 하는 등으로 겁을 줄 뿐, 서원과 명호의 두 가지의 불가사의한 뜻을 잘 이해하도록 설명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헷갈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일은 아무쪼록 주의하여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아미타부처님은 모든 사람들을 전부 빠짐없이 구제하시고야 말겠다는 서원의 불가사의한
활동으로 우리들을 위하여 유지하고 부르기 쉬운 명호를 골라서 ' 이 명호를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정토에서 맞이하리라' 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아미타부처님의 대비본원에서 나오는 불가사의한 힘에
구제받아 이 미혹의 세계를 떠나 정토에 태어난다. 고 믿고 염불을 부를 수 있는 것도
부처님의 마음에 의한 것이다라고 결정한다면 거기에는 자기의 사려에 그대로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에 이루어져 진실한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원의 불가사의가 구제의 근본이라고 믿으면 스스로 거기에는 명호의 위대한 활동도 갖추어지므로 서원불사의와 명호불사의는 원래 하나인 것이지 달리 틀린 것이 아니다.
다음에 스스로의 사려나 분별에 있어서 선과 악의 두 가지에 대하여 선은 왕생에 도움이 되고 악은 왕생에 방해가 된다는 두가지의 양상으로 구별하여 생각한다. 이것은 서원의 불사의를 믿지 않고 자기의 마음으로 왕생하기 위한 행을 분발하여 원래 염불은 본원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부르는 염불조차도 자력의 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본원의 불사의를 의심하고 염불하기 때문에 이것은 또한 명호의 불가사의도
믿지는 않는 것이다.
본원과 명호의 불가사의는 믿지는 않으나 염불의 힘으로 변지, 해만, 의성, 태궁이라는
방편세계에 왕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력의 염불을 하는 사람도 구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완수하시겠다는
맹세로 마침내 진실한 정토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명호의 크나큰 힘에 의한 것이며 이것은 그대로 서원불사의한 활동에 의한 것으로서
서원과 명호는 완전히 하나인 것이다.

제 12 장

여러 가지 경전과 그 주석서를 읽으며 학문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토에 왕새할 수 있을 것인지 미덥지가 않다고 말하는데 대하여 이것은 전혀 논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의 진실한 취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모든 성교는 어떠한 것이든 본원을 믿고 염불하면 부처가 된다고 설하고 있다.
이외에 어떠한 학문이 왕생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하는 것일까, 참말로 이 도리에 갈팡질팡
하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학문을 해서 본원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경전과 주석서를 읽어가며 공부를 한다해도 성교의 참마음을 몰라서야 너무나 딱한 일이다.

문자 하나 모르는 무학자로서 경전과 주석서의 줄거리조차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부르기 쉽게 하고자 하는 나무아미타불의 명호이기 때문에 이 염불을 이행이라고 한다.

이것에 대하여 학문을 중심으로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성자의 길로서 이것을 난행이라 이름한다.

' 학문하면서 방향을 잘못 잡아 명예나 재물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이 일생이 끝이 나고
다음에는 정토에 태어나서 부처가 된다는 것도 어떻게 되겠는지' 하고 가르쳐 주시는
확실한 문서도 현재에 있는 것이다.

오로지 염불만 하며 생활하는 사람과 성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 교의에 대하여 논쟁을 하며
'자기의 종지만이 우월하고 타인의 종지는 뒤떨어진다' 는 등의 식으로 말하기 때문에 불법을 비방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자기가 믿는 불법을 파괴하고 가르침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령 모든 종파사람들이 똑같이 '염불은 쓸데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 종교는 천박하고 저속하다. 고 말하더라도 조금도 다투지 말고 우리와 같은 능력도 없고 평범한 인간이고
문자 하나 모르는 무학자가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을 한 줄기로 믿으면 즉시 구제된다는
가르침을 듣고 믿고 있기 때문에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저속한 가르침으로 보일 것이나 우리에게는 더없는 거룩한 가르침이다.

가령 염불보다 다른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우리들에게는 힘이 모자라기 때문에 거기에 쫓아서 수행할 수 없다.
'나나 다른 사람도 다같이 생사의 미혹에서 벗어나 깨닫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본의일 것이나 우리들이 염불하는 것을 제발 방해하지 마십시요' 라고 말하고 보기 싫은 태도를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적대하겠는가.

거기에 또 '논쟁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여러 가지 번뇌가 일어난다. 진실로 지혜 있는 자는 다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 라고 하는 확실한 가르침의 말씀도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안 계신 신란성인이 말씀하시기를 ' 이 염불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또 비방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라고 전부터 부처님께서 설하여 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미 믿고 있다. 그러나 또 비방하는 사람이 있음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실한 것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토에 왕생하는 것은 점점 결정된 것으로 생각해야 된다.
만약 비방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믿는 사람은 있을 것이나 어째서 비방하는 사람이 없을까 하고 생각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꼭 사람에게서 비방을 받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전부터 믿는 사람과 비방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잘 알고 계시어 사람들에게
의심을 일으키지 않도록 설하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최근에는 학문을 하여 그 힘으로 사람을 비방하는 것을 누르고 오로지 노의나 문답에 주력을 집중하고자 몸의 자세를 갖추고 있는 것일까.

학문을 하면은 점점 깊이 부처님의 본원의 진실한 마음을 알아 그 비원이 얼마나 광대한 것인가를 양해하고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죄심한 몸으로는 대체로 왕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에는 선인, 악인이라든가 정결한 사람, 더러운 사람이라든가 하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설하여 들려 주므로서 그것이 학문했다는 사람의 가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무 일도 없이 순박하게 본원의 마음에 맞게 염불하는 사람에게 까지도
'학문해야만 왕생 할 수 있다'는 등 하는 말로 겁을 주는 것은 불법을 방해하는 악마이며
부처님에게 덤벼드는 적인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자신에게 본원타력의 진실한 신심의 부족할 뿐 아니라 잘못하여 타인에게도 갈피를 못 잡게 하게 되는 것이다.

삼가 두려워해야한다. 신란님의 마음을 거역함은 더 한층 슬픈 일이다.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에 어긋나는 것을.


※ 우리와 같은 능력도 없고 평범한 인간이고 문자 하나 모르는 무학자가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을 한 줄기로 믿으면 즉시 구제된다는 가르침을 듣고 믿고 있기 때문에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저속한 가르침으로 보일 것이나 우리에게는 더없는 거룩한 가르침이다.

※ 저속하고 평범한 인간일수록 왕생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라는 의미심장한 말에 다시한번 고개를 숙입니다. 무학자가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을 한 줄기로 믿으면 즉시 구제된다. 아! 이또한 무슨 말인가? 무학자가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을 한 줄기로 믿으면 즉시 구제된다. 어떠한 무식쟁이도 어떠한 악도 본원을 방해할수 없습니다. 탄이초는 맨도날과 같습니다. 그뜻을 잘못해석했다가는 큰일납니다. 역설의 역설..

※ 이세상에 가장 큰악은 무식도 아니고 역방도 아닌 미타를 의심하는 것이었다. 미타의 본원 정말이었다. 염불 정말이었다. 의심이 사라진 상태. 무학자가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을 한 줄기로 믿으면 즉시 구제된다. 나는 2개의 악인이었다. 하나는 내자신이 하나의 선을 할수 없는 악인이고 하나는 미타의 본원을 의심하는 악이었다. 이두개의 악이 사라질때 기의신심,법의신심 이종신심이 일어난다.내가 의심했었다는 것을 알때와 의심이 없어질때가 동시에 일어난다. 믿어도 의심하는지 조차 모르고 믿는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알고 있다. 미타에게 믿음을 받았을 때만이 내가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의심도 없어진다.
성자의 길을 가려는 자는 자력불교의 자이며 믿음으로서만 가려는 자는 염불하는 자이다. 저속하고 평범하기에 염불을 하는 것이다

탄이초 13장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고 하여 악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요컨데 본원에 응석부리는 본원자랑으로서 그런 사람은 정토에 왕생시킬 수 없다고 하는 말에 대하여 이것은 본원을 의심하는 것이며 또다시 선악이 숙업에 의한 것임을 모르는 것이다.

또 악을 생각해서나 행하는 것도 어쨓든 과거의 악행이 그렇게 시키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계신 신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토끼털이나 염소털 끝에 묻은 먼지만큼의 아무리 지응 죄악이라 해도 과거의 사려나 언동에 의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또 어느때 유이엔보는 내 말을 믿느냐. 하고 물으시기 때문에 네 믿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그러면 내가 하는 말에 절대 거역하지 않겠느냐하고 거듭 말씀하셨다.

그래서 겸손하게 승락했던바 성인께서는 그렇다면 우선 사람을 천명 죽여주겠느냐, 그러면 너의 왕생은 틀림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기에 나는 존엄한 말씀이나 단 한사람도 이 나의 힘으로는 죽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니 그렇다면 어째서 신란의 말을 거역하지 않겠다고 했느냐고 말씀하시며 이것으로 잘 알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왕생하기 위해서 천명 죽이라면 당장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사람도 죽일수 있는 업연이 없기 때문에 죽이지 못하는 것이다. 또 반대로 아무리 죽이지 않겠다고 생각해도 백명 천명이라는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우리들이 자기 마음이 좋은 것은 왕생을 위하여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이 나쁜 것은 왕생을 위하여 나쁜일이라고 스스로의 생각에 사로잡혀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의 불사의한 힘으로 구제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을 알려 주신것이다.

일찌기 신란께서 살아계실때 비뚤어진 생각에 빠진 사람이 있어 죄악을 범한 사람을 구제하시러 나쁜 짓을 좋아하고 그것을 가지고 왕생의 업으로 삼고자 여러 가지 나쁜 짓을 거듭한다는 소문을 들으신 성인꼐서는 서신을 통하여 아무리 독을 없애는 약이 있다고 하여 독을 좋아서 마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고 쓰신 것은 그러한 사견에 사로잡히지 못하게 하기 위한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악이 왕생하는 방해된다는 것은 아니다.

계율를 지키므로서 만이 본원을 믿을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어찌하여 생사의 미혹에서 해방할 수 있겠는가.

이와같이 한심한 죄악의 몸이라고 해도 본원을 만나 그 부처님 마음을 얻음으로써 참으로 본원의 존중함을 뽐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몸에 갖추어지지 않은 악업은 설마 범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 바다나 강에서 그물을 치고 낚시를 하여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들과 산에서 새와 짐승을 수렵하여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나 장사를 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모두 다 똑같아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될 업연에 재촉 받으면 인간은 어떠한 짓이라도 하게 되는 것이다. 라고 신란께서는 말씀하셨는데 요즘에는 정말로 자기가 신심가나 되는 것처럼 굴면서 착한 사람만이 염불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혹은 염불도량에 써서 붙이기를 이러이러한 짓을 한 사람은 이 도량에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전혀 표면의 형체만 가장 재지에 우수한 자만이 선행 분발하고, 오직 불도에 정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고 있으나 그 내실은 잘못된 거짓말로 꽉 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본원을 자랑삼아 그것에 응석부려 범한 죄악도 숙업에 재촉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무엇이든 모두다 과거 행위의 결과라고 받아들이고 오직 본원을 믿어 타력에 의하여 살게되어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유신초에도 아미타부처님에게는 도대체 얼마만한 힘이 있는 것이라고 알기에 자기와 같은 죄가 깊은 몸은 도저히 구제되기 힘들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가르치고 계신 것이 아닌가.

본원을 자랑하며 그것에 응석을 부릴만한 마음에 있어서만이 타력을 믿은 신심도 확실히 정해질 것이다. 대체로, 이 몸의 죄악과 번뇌를 완전히 끊어버린후에 본원을 믿는다고 한다면 본원에 응석부리는 마음이 없어도 좋을 것이나 번뇌를 끊어버리면 곧 부처가 되기에 그 부처에게는 오겁사유의 본원은 전혀 필요없는 것이 될 것이다.

본원을 자랑마라. 응석부리지 말라하고 경고하는 사람들도 역시 죄나 불결한 것을 모조리 그 몸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본원을 자랑하고 응석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떠한 악을 본원에 응석부리는 본원자랑이라고 하는 것일까.

결국은 본원을 자랑하는 사람은 정토에 왕생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실은 도리어 본원을 받아들일 마음이 얕고 유치할 것이다.


※ 내가 지금 악을 생각하거나 행하는 것도 과거의 숙업인 것이다. 이말은 과거에 내가 행한 업이 지금 연에 맞아서 튀어나오는 것일뿐 내의지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마음을 마음대로 컨트롤 할수가 없는 것은 이때문입니다. 내가 나쁜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해도 나쁜생각은 튀어 나옵니다.

※ 어떤 사람이 몇만명을 죽인것도 숙업에 의한 것입니다. 만약 한사람도 죽일수 없는 업을 가진자에게 천명을 죽여봐라 해도 죽일수 없는 것입니다. 숙업에 의해 내자신이 조정당할 뿐입니다. 그래서 누가 악인이고 누가 선인이라고 얘기할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닥치는 환경에 의해서 숙업에 의해서 조정을 당할 뿐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업에 의해서 조정을 당합니다. 그러한 연이 나에게 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뿐입니다. 내의지대로 조정되는 것은 없습니다.

※ 악을 물리치는 약이 있다고하여 악을 우습게 봐서 행하는 것을 경계하는 얘기입니다. 아무리 본원의 힘이 커도 악을 스스로 남발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본원자랑을 하는 사람이 왕생할수 없다고 받아들이것 또한 마음이 얕고 유치하다고 얘기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