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 마음을 공부한다. 무엇으로 살아가느냐?
사람들은 하늘의 뜻 주제자가 있다고 믿음.
하늘도 믿고 달도 믿고 태양을 믿음
주제자는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복을 빌고 건강을 비는 종교가 되었다.
유식은 부처님 열반후 약 900년경
무착보살이 신심이 대단하여 미륵보살을 향에 중생을 교화 할 수 있는 법을 달라고 발원하였다. 무착보살 동생 세친보살이 유식30송을 만들어 줌. 무착보살이 미륵보살을 만나 도솔천(천상)에가서 유식을 배워왔다는 설화로 보기도 함. 무착보살의 간절한 발원으로 삼매에서 만나 배웠다는 설도 있음. 삼매 속에서 우주법계를 관하신다. 중생에 맞게 처방하고 교화하신다. 무착보살 삼매에 들어 금강경도 미륵보살에게 배움
유식은 부처님 경전에서 발췌한 것이 아니고 무착보살이 심득한 것이다.
경전에서 발췌한 것은 자기 것이 아니다. 새로 접하니 당황하는 사람 많아 다시 원력 세워 미륵보살 님이 해주시기를 원하니 밤에 음성으로만 설법을 하셨다는 설화도 있으나 유식30송들은 사람이 삼매 중에 교감이라고 본다.
분별하는 것이 마음에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다.
감각기관이 적은 것은 하등동물 단세포 동물.
사람은 감각기관이 많다.
눈: 가리면 보이지 않고 빛이 없으면 볼 수 없고
귀: 가려도 볼 수 있고 빛이 없어도 들을 수 있다.
코: 향수 만드는 직업을 갖은 사람은 코가 발달된 사람.
입: 입맛으로 일을 하여 먹고사는 사람.
촉감: 세포 감각 만저보면안다.
의식: 위것을 거느리는 능력
① 자성차별 능력: 자기 것이 낫다
② 수련차별 능력: 좋으니까 가져야 겠다.
③ 개탁차별 능력: 끈보고 뱀으로 보는 것. 개탁차별과 분멸의 차이점은 분별은 있는 그대로 분별하는 것. 인간은 개탁분별을 제일 많이 한다.(잘못 된 계산)
모성애가 가장 무섭다. 아기를 불구덩이에서도 구해온다. 폭격에는 아기를 무의식적으로 방패마기를 한다. 본능인 8식이 먼저
아탐에 가려 아치가 된다. 아만 잘났다는 생각 때문에 남을 업신여긴다.
천재는 동시에 모든 것을 다하지만 수행자는 여덟 가지 감각기관을 쉬어라 동하지 말아라
업이 바뀌려면 쇠가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오는 고통이 있어야 한다.
여덟 가지 의식을 죽이고 나오는 것이다. 이것을 살불살조하라고 하는 것이다.
눈. 귀. 코. 입. 촉감을 전5식이라 한다. 전5식이란 일선에 나와있는 감각기관
면전의식이 올바른 사람과 면전의식이 나쁜 사람이 있다.
본 것을 본대로 들은 것을 들은 대로하면 세간 사에 일인자가 된다.
면적의식이 잘못되면 중생이다.
성소작지: 면전의식이 좋은 사람 성소 작지가 이뤄진 사람은 지혜가 작동
묘관찰지: 6의식이 지혜로 바뀌면 묘하게 관찰을 한다. 갈림길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사람 있고 선택을 할 때마다 잘못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6식은 고치기 쉽다
7식(말라식)은 깊이 들어와 바꾸기 더 힘들다 예지력 꿈 성자는 7식으로 살지 않고 8식(아뢰야식)으로 살기에 예언은 하지 않는다.
7식은 아탐 아만이 있으면서 예지능력있다
불바다가 된다해도 이것을 끄는 것은 사람이다.
능장: 자체적으로 세상을 통찰하고
소장: 상황 따라 대치할 수 있는 능력
집장: 네 가지 번뇌
6식으로 집착은 자고 나면 없어진다
자고 나도 미워한 마음 계속 나오면 7식에까지 간병이라
이것은 무서운 것이라 미워할 때마다 나오는 독소가 남을 미워하기 전에 자기를 먼저 친다.
사람이라 하루는 미워해도 자고 나면 떨어내야 한다.
업을 짓지 않는 것이 더 좋으나 짓더라도 하루를 넘기지 마라
이래야 하는 일에 장애가 없고 몸이 가볍다
자체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능장(창조능력)
적응능력 지옥에 가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면전 의식이 좋아야 한다
6식 안이비설신의 일시에 정지하면 죽는데 깊은 잠을 잠잘 때도 끊어진다
그런데 살아있는 것은 7식과 8식이 있기에 끊어져도 살아있는 것이다.
죽고나면 7식까지 끊어진다.
임종시에는 8식 하나만 남는다.
일생 살아온 마지막 총 경절체는 8식이 한다.
임종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이 된다.
네 가지 방법으로 내생에 윤회를 한다.
① 업감연기: 인연에 의해서 태어난다 연기
독생불능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물에도 오행(五行)이 있다 철분이 있고, 물과 물이 부디 치면 불이 난다.
우주의 요소가 한가지라도 빠지고는 물체가 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합성하여 만물의 생명체다(연기법)
각기 흩어지면 생명체가 끝나는 것이다. 반복하면서 윤회한다.
연기 윤회의 주체가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만나고 어떻게 하면 흩어지느냐
그 주제자가 유식(마음)이다 연기의 주체가 유식이다.
업의 감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물건을 고르는데 자기가 살아온 취향에 따라 고른다 취향이 업이다. 취향을 벗어나기 어렵다. 사람마다 다른 것은 업이 다르기에 취향이 다르다.
감각적으로 살아온 사람. 감각적으로 살지 마라. 본능감각. 이것보다 뿌리 깊은 감각은 없다. 일상적인 감각은 화가 나다가도 잠들면 잊는다. 본능 감각은 꿈속에서도 나타난다. 7식의 아탐(본능) 임종시 본능이 가장 작동이 된다. 교수형이 죽음을 황홀하게 간다. 황홀하다는 것은 본능을 한다. 강한 본능 인간은 족보가 없다. 죽고나면 손자로 태어난다. 자기 주변과 멀리 떨어져서 태어나면 그릇이 큰 사람이다. 자기 가족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임종시 여자가 임종할 때는 남자가 들어가지 말고 남자가 임종할 때는 여자가 들어가지 마라 딸이나 아들이라 하더라도
조사임종은 제자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남들 앞에서 가는 사람은 수행이 적은 사람이다. 짐승은 임종할 줄 아는데 사람이 임종은 제일 못한다. 산에 가서 짐승 뼈를 본적이 있는가. 짐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임종을 한다. 고기도 임종을 할 줄 알기에 바다에서 고기 뼈를 보았는가. 임종직전에는 본능이 작동되는데 이성을 보면 동물 속으로도 들어가서 개돼지로도 태어난다. 본능의 불이 꺼지고 죽어야 가려서 태어난다.
조사 선지식들은 삼매에서 돌아가신다. 이 세상은 잘 참는 사람 것이다.
삼매가 어려울 때는 염불력으로 가자 염불이 이루어지면 감기도 낫는다. 아플 때 염불이 안 되는데 안되면 이까지것 하며 끝까지 해봐라 임종을 수용하면 업감연기는 하지 않는데 금방 죽을 거면서 의사가 오진햇다고 죽는 순간까지 모르는 사람은 업감연기를 한다.
② 뢰야연기: 아뢰야 연기 마음으로 연기를 하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 의지력 훈련을 해라 탐진치를 없앤다. 이것이 얼만큼 끊어 졌는가. 공부를 얼마큼 했는가. 몸둥아리 극복 참선 이것이 끊어지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나타난다.
③ 진여연기: 진리 실상 참진자 같을 여 진리에 의해서 윤회를 한다.
④ 법계연기: 화엄경에서 설명이 되는데 우주를 법계라 한다. 별하나 천체가 수억만 계가 우주에 잇는데 일사불란하게 질서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법계라 한다. 법의 질서를 깨면 파멸이다. 몸둥아리의 질서가 깨지면 몸뚱아리도 파면인데 마음의 질서가 깨지면 몸도 깨진다. 법에 의하여 유지하면 존재한다. 이 질서를 말한 경전이 화엄경이다. 모든 우주의 질서를 설명한 경전
이 세상을 주제자의 주체가 무엇이냐?
신이 이 세상을 주제 했다고 믿었다. 신이 아니고 마음이라는 것을 부처님이 깨달았다. 팔자가 나쁘냐고 한탄하는 사람은 좋아 질 수가 없다. 마음을 잘 쓰면 하는 일 마다 잘 된다.
화엄경에 마음이라는 것은 몸에 있지 않고 마음의 세계가 따로 있고 몸의 세계가 따로 있다. 외형이 같다고 해서 속까지 같지 않다.
내몸뚱이 내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의 세계가 따로 있고 몸의 세계가 따로 있다. 마음으로는 태평양속에 들어갔다 나와도 죽지 않는다. 몸은 들어갔다 나올 수 없다.
몸이 좋아하는 것 마음이 좋아하는 것 따로 있다. 몸이 좋아하는 것 마음이 좋아하는 것 따로 가면 귀격이 못된다. 몸과 마음이 같지 않다.
화엄경의 야마궁전품 唯心偈
신불주어심 (身不住於心) 몸은 마음에 있지않고.
심역부주신 (心亦不住身) 마음또한 몸에 있지 않다.
이능작불사 (而能作佛事)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불사다.
자재미증유 (自在未曾有) 마음의 조화를 이루니 경험하지 않은것도 알아지더라. 이세상이 있기 전 세계도 왔다 갔다 하는 능력이 생긴다.
기량이 천차 반별이다. 중국에 한나라를 세운 유방 한신(유방을 도왔다.)
한신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통일 한신은 제나라 임금이 되었다. 궤책이라는 사람이 하늘이 준 것을 가지지 않으면 거꾸로 허물을 받게 되고 때가 되었는데도 움직이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 법. [한신은 유방의 나라를 임명받아 제나라 임금이 된 것임] 유방이 준 임명장을 찢어 버리고 임금을 하라. 용기와 책락이 주인을 놀라게 하면 몸뚱이가 위태롭다. 공노가 천하를 덮어 버리면 상을 받지 못합니다. 공이 적을 때 상을 받지 공이 크면 누가 상을 주는가. 한신은 그릇이 적어서 유방의 나라에서 싸우면 다 이겼고 유방은 전쟁을 하면 다 폐했기에 유방이 힘이 없었다. 한신이 독립하면 유방이 칠 수가 없었다. 한신이 싸움을 더 잘함. 유방은 지기만 했다. 한신은 그릇이 적어 임명장 받고 임금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유방 부인이 죽게 함.
업장소멸 하는데 가장 기본
① 지혜가 열리면 얼음이 녹듯이
② 지헤는 있고 신심이 없으면 천하다. 부처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하세요.
③ 훈련 이모든 것이 각자 마음에 있다. 발심이 되지 않을 때도 기도를 많이 하라.
말미암을유 까닭을 말하는 것
논어에 공자는 관(觀)기소유하고(사람을 살펴볼 때 지금 까지 살아온 과정)
식이소이(지금 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찰기소안(그 사람이 어느방향으로 방향을 틀고 잇는지 살핀다.) 그러면 그사람을 알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 만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
(유식은) 아(我)와 법(法)을 가설함으로 말미암아 가지가지 현상계가 변화하는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저 (가지가지 현상계)는 의식에 의해 변하고 이 변화의 주체(能變)는 오직 셋[심(心), 의(意), 식(識)]이 있을 뿐이다.
가설아법 때문에 한치의 오차가 없는 수학도 가정설이다.
팔만대장경은 가설이다. 어제는 아니엿는데 오늘은 진짜게 될 수도 있기에
아: 나
법: 나 밖의 모든 것.
내가 주간적 입장에서 보면 삼자적인 입장에서 나도 법이 된다.
아가 무엇인가. 내 지식도 내것이 아니다. 지식도 내것이 아닌데 물건도 내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자꾸 검토하면 살자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화가 된다. 10년후에 어떤 사고 방식을 가졋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본래 아가 없다. 부처님은 무아(無我)
인본주의 사상에 빠져 세상이 혼탁해 졋다. 각자 자기가 제일이다
인본주의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
무아(無我)법을 통달해야 인본주의가 된다. 잘 살자고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잘 살려면 무아(無我)가 되어야 한다.
월남사람들 고집피우다 나라를 잃엇다.
노지가 설명하기를 방에 물건이 없어야 방 구실을 한다. 마음이 텅비어 있어야 큰 그릇이 된다. 그릇은 비워 았어야 그릇으로 쓸수 있다.
바뀌살 30개가 모여서 바뀌가 만들어 진다. 바뀌살이 서로 주인 노릇하면 바뀌가 될 수 없다.
티벳 고산지대에 양이 얼어 죽는다. 같이 붙어 있으면 따뜻한데 자기 따듯한 생각은 하지 않고 너를 왜 따뜻하게 해줘 라는 생각에 서로 다 얼어 죽는다.
나에 대하여 심찰하고 법이 과연 무엇이냐?
관혼상제를 법이라고 한다. 그나라는 그나라사람의 관혼상제가 있고 법이 잇다.
사람 사는곳 얼굴 모양 다르듯 다른 것을 이해 주고 수용해줘라 이것이 진리다.
상대방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수용할줄 알아야 법을 아는 것이다.
아와 법은 가설 때문에 있다 유가설아법
유종종상전 가지가지 모습이 바뀌어 간다.
아와 법을 가설하므로 모든 것은 변하면서 바뀐다.
변하는데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은 마음이다.
자기를 혁신해 본적이 없다.
자기 역할하지 않으면 빚이다. 남편은 내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런생각은 착각이며 남편한테 빚이다. 부처님은 물 한그릇 마시더라도 자격이 있는가 흘러가는 물도 훌떡 마시지 마라. 마음을 고치고 남에게 이롭게 살아라.
땅덩어리가 큰 중국이 일본한테 망한 것은 영웅이 많아서다. 내가 났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무아(無我)가 아닌 내가 잘났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을 이겨야 하는데 요즘이 좋은 시기이다. 일본수상되면 울고 나간다. 남의 허물 캐는 사람이 업이되어 국제적으로 상대 안하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 나쁜 것을 배우고 있다.
만물은 아와 법 때문에 변한다. 진아(眞我)는 무아(無我) 이며 가아는 집착이다. 식에 의해서 진아(眞我) 가아가 된다. 만법은 식에 의해 변한다. 무아(無我)가 되지 않으면 싸운다.
능변(能變) 은 팔식의 마음
소변은 변화하는 주체
세가지 마음은 심(心=8식), 의(意=7식), 식(識=6식)]이
쉴때는 발전을 위하여 공부하는것
[인너넷상에 올라온것 퍼온내용]
유식은) 아(我)와 법(法)을 가설함으로 말미암아 가지가지 현상계가 변화하는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저 (가지가지 현상계)는 의식에 의해 변하고 이 변화의 주체(能變)는 오직 셋[심(心), 의(意), 식(識)]이 있을 뿐이다.
< 해 설 >
이 유식은 부처님께서 오직 마음이 있을 뿐 무아(無我) 무법(無法)임을 설해 주신 이치를 요약해서 체계화한 것이다. 또 현상계의 모든 모습이 변화하는 이치를 아(我)와 법(法)을 가설하여 설명하고, 변하는 바 현상계의 모든 것은 의식(마음)의 작용에 의한 것이고 의식은 심·의·식 삼식(三識)뿐임을 밝혔다. 삼식은 아뢰야식(阿賴耶識), 말나식(末那識), 의식(意識)이다.
이 첫 송(一頌)에서는 아(我)와 법(法)은 가설일 뿐 무아·무법임을 밝히고 당초에 무아·무법이나 아법(我法)을 가설함으로 현상계의 모든 법이 변화함을 알게 했다. 이는 실상(實相)은 변하지 않음을 깨우쳐준 송(頌)으로서 아(我)와 법(法)을 비롯한 일체만법(一切萬法)은 마음에 의해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였다.
가설(假說) : 가설은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법문을 말한다. 진리(眞理)는 불언불설(不言不說)이기 때문에 현상계의 아(我)와 법(法)은 진설(眞說)할 수가 없으므로 가설이라 한 것이다.
아법(我法) : 일체만법(一切萬法)을 인식하고 분별하는 주체를 아(我)라 하고 나로부터 인식되어진 일체만법을 법(法)이라 한다. 아(我)에는 주재하는 아(我)와 상주하는 아(我)와 일체에 충만한 아(我)의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주재하는 아(我)는 주도적으로 지배하고 소유하고 분별하는 주체 곧 나라고 하는 나를 뜻하고, 상주(常住)하는 아(我)는 끊임없는 윤회를 반복하면서도 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나를 뜻하고, 일체에 충만한 아(我)는 법계(法界)로 더불어 하나이며 항구불변(恒久不變)하는 아(我)를 뜻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我)는 천지(天地)에 있어 천지를 주재하고 나에게 있어 나를 주재하는 아(我), 영원하여 상주불변하는 아(我), 법계로 더불어 하나인 법계일신(法界一身)의 아(我)인 진아(眞我)를 말한다.
법은 일체사물의 존재는 일정한 법칙 또는 궤범(軌範)에 의해 존폐(存廢)하므로 이를 법이라 한다. 법에는 일체만물의 법과 세간법(世間法)과 출세간법(出世間法) 등의 법이 있고 법률과 사상 등도 모두 법이라 할 수 있다.
종종상(種種相) : 종종상은 과거, 현재, 미래의 가지가지 모습, 시작도 끝도 없이 거듭 존재하는 나의 실상(實相)과 일체만법이 상대적인 인과 법칙에 의해서 존재하는 갖가지 상태를 말한다.
피(彼) : 피(彼)는 대명사로서 위의 종종상전(種種相轉)을 의미한다.
식(識) : 식(識)은 8식(八識)을 말한다. 8식을 요약하여 3식(三識)이라 한다. 8식에 탐진치가 없으면 지인(智人)이 되고 탐진치가 있으면 범부(凡夫)라 한다. 사람은 누구나 8식이 있으나 지우(智愚)의 차별과 부귀빈천의 차별이 있는 것은 모두가 마음(意識)에 의해서이다. 마음에 의해 일체만물의 명(命)이 다르고 고하장단(高下長短)의 차별이 있는 것을 업연(業緣)의 소치라 하고 업연(業緣)이 곧 마음에 의해 지어지기 때문에 일체만법이 의식소변(依識所變)이라 한 것이다.
능변(能變) : 능변은 변화의 주체를 말한 것으로 일체만물이 변천하고 인간의 운명을 주도하는 실체이니 곧 주관적인 의식을 말한다.
유삼(唯三) : 삼(三)은 삼식(三識)을 말한 것으로 심(心: 阿賴耶識), 의(意: 末那識), 식(識: 六識)을 말한다. 나를 주재하는 것이 곧 이 삼식(三識)이요, 우주만법을 주재하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오직 이 마음뿐임을 말한 것이다.
일송(一頌)에서 유삼(唯三)이라 말한 3식(三識)은 이숙(異熟)과 사량(思量)과 요별경식(了別境識)이다. 처음은 아뢰야식이며 이숙(異熟)이며 일체종식(一切種識)이다.
잘 외어지지 않는 사람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 집중력을 키우기 위하여 참선하시고 참선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염불해도 집중력이 생긴다. 집중력을 살리며 공부하라.
이숙식: 8식 아뢰아식
사량식: 7식 말뢰아식
요별경식: 6식 의식
사람 씨가 8식의 아뢰아식 씨는 좋은 씨와 나쁜 씨 있다. 수도를 하는 것은 좋은 씨로 바꾸기 위하여 내가 자지우지 하고 죽어도 씨를 나쁘게 하고 죽으면 안되고 씨를 맑고 밝게 하고 죽은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다. 씨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 불씨는 작용하기 전에는 불이 아니다. 어느 것이나 부디 치면 불이 나기에 불씨는 어디에도 다 있다. 발아되기 전에는 씨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
전생은 이치로는 알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알 수가 없다.
이숙: 다른 결과로
① 변이이숙: 이숙은 씨가 가만히 있는 것 씨는 과로 나타난다 악을 심었으면 악의 과보를 받는다. 선행을 했으면 선행의 과보를 받는다.
② 이류이숙 내생에는 산천초목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귀하게도 태어날 수가 있다.
다음 생에는 짐승으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
사명대사가 사신인 나한테도 이러는데 다른 스님한테는 어떨까
서산대사는 사명대사가 살생을 많이 하여 후사가 없을거라하여 상수제자가 되지 못했다.
부사가 사명을 죽이라고 침을 보내니 사명은 대침 맞고 "누구 집에서 왔구나" 하며 어디로 도망가라고 했다. 사명은 인과에서 벗어난 것이다. 온 것을 미리 다 알고 있었다.
유식은 이 세상을 주제 하는 것은 마음 운명을 주제 하는 것도 마음이다.
마음 중에서 세 가지 마음이 있는데 이숙식, 사량식, 요별경식
아뢰아식 ,종자식, 함장식 이름이 많은 것은 작용의 한계가 많아서 이름도 많다.
③ 이시이숙: 인과가 동시가 아님
악과보는 지날수록 더 무겁고 무섭다. "악한사람이 잘되더라" 라는 말씀은 하지 마라.
종자식 아뢰야식 사람의 종자식 만물은 씨가 있는데 사람의 씨는 아뢰아식
임종 때가 가장 중요하다. 어머니 뱃속의 교육이 태어나서 10년교육보다 낫고 어머니 뱃속보다 임종시는 다음 생을 자우한다. 기능적인 교육을 받고 있는데 너무 소흘하고 있다. 법적인 근거 찾지 말고 상식 선에서 하라 법 이전으로 돌아가라.
일이 터지면 부채질 하지말고 해결하려고 해라 이런 행동이 아뢰아식에 입력되고 함장 된다. 내생에는 엉뚱한 데로 간다.
사량식: 7식이 하는 것 가장 바쁜 것이 7식이다. 잠잘 때도 쉬지 못하는 것이 7식이다 꿈을 꾼다. 밖에서 오는 것 사량
아뢰아식이 있는 안에것 계산 습관적인것
사량식이 깨끗하면 성공한 사람들이다.
속으면서 살자. 한 두사람의 라이벌은 있을 수 있어도 많은 사람들한테 칭찬 받는다.
적은 지혜를 가진 사람은 삐리 빠리하고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어수륵하다.
요별경식: 경계를 가려낸다. 6식
책을보려하는데 싫은 사람 좋은 사람 등 작동이 되면 요별경식을 제대로 못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 : 아뢰야식은 8식이니 이숙(異熟)이라 하고 종자식이라 한다. 이를 무몰식(無沒識)이라고도 하는 것은 아뢰야식이 함장하고 있는 종자는 생사윤회에 유전(流轉)하면서도 멸몰(滅沒)되지 않기 때문이며 축장된 인은 과로 변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이숙식이라 하며, 오관(五觀)·육식(六識)·칠식(七識)·선악(善惡) 등 모든 심식(心識)의 주처(住處)가 되므로 함장식이라 한다.
누구룰 미워하고 죽거나 보고싶은 사람을 못보고 죽으면 어뚱한 곳에 짚어 넣고 간다.
일송(一頌)에서 유삼(唯三)이라 말한 3식(三識)은 이숙(異熟)과 사량(思量)과 요별경식(了別境識)이다. 처음은 아뢰야식이며 이숙(異熟)이며 일체종식(一切種識)이다.
< 해 설 >
이 송(頌)은 1송(頌)의 능변유삼(能變唯三)을 밝힌 것으로 제8 이숙식(第八異熟識), 제7 사량식(第七思量識), 제6 요별경식(第六了別境識) 등을 말한 것이다. 3식(三識) 가운데 첫째는 아뢰야식이니 이를 이숙식(異熟識) 또는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이 송에서는 3식의 명칭을 세워서 3식의 공능(功能)을 설명하고 제8 아뢰야식의 별칭(別稱)을 세워서 능변(能變)의 주체가 곧 마음임을 밝혔다.
이숙(異熟) : 이숙(異熟)은 제8 아뢰야식의 다른 이름으로 선악(善惡)의 인(因)을 함장(含藏)하기 때문에 종자라 하고 선악의 인(因)에 의해서 받는 과보가 다르기 때문에 이숙(異熟)이라 한 것이다. 이숙(異熟)에는 세 가지 뜻이 있으니 변이이숙(變異而熟), 이류이숙(異類而熟), 이시이숙(異時而熟) 등이다.
변이이숙(變異而熟)은 인(因)이 변하여 과(果)가 되어 성숙됨으로 변이이숙이라 하고, 이류이숙(異類而熟)은 인과가 같지 않음을 말한 것으로 선악의 원인이 무지(無智) 또는 대지(大智)로 바뀌어 성숙되므로 이류이숙(異類而熟)이라 하고, 이시이숙(異時而熟)은 인과가 동시(同時)가 아님을 말한 것으로 금생의 인(因)이 일·이생(一·二生) 또는 몇 천 생을 지나 과를 받는 것을 말한다.
사량(思量) : 사량은 제7말나식을 말한 것으로 항상 쉬지 않고 살피고 사량하고 계교(計較)하며 아애(我愛)를 집착한다. 이 7식은 8식의 인(因)을 의지하며 육근의식(六根意識)의 분별을 주도하는 중간의식(中間意識)의 역할을 한다.
요별경식(了別境識) : 요별경(了別境)은 제6식(第六識)을 말한 것으로 안·이·비·설·신·의 등의 감각기관이 눈은 보고 귀는 듣는 것처럼 각기 각각의 경계를 요별(了別)하기 때문에 요별경식(了別境識)이라 한다.
1송에서는 아뢰야식, 말나식, 육식의 총칭만을 말하고 여기에서는 3식의 역할 한계를 설명했다.
유식에서 변이를 설명하는 것은 아뢰야식 중에 함장되어 있는 십선종자(十善種子)가 성숙하면 인간으로서 천상(天上)으로 변현(變現)되고 계율을 잘 지켜 깨끗한 종자가 성숙되면 인간세상에서도 귀족으로 변현되고, 탐·진·치(貪·瞋·痴)의 종자가 성숙되면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으로 변현된다.
뿐만 아니라 아뢰야식은 종자식(種子識)이 되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운명을 좌우하는 요체가 되고 제7 말나식과 제6 의식은 금생의 운명에서는 끊임없이 반복하여 역할을 하지만 내세로 연결되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말나식(末那識)과 제6 의식은 아뢰야식의 종자를 훈습(熏習)하여 업인(業因)을 함장케 하므로 육근의 감각기관과 의식 7식의 사량분별의 식(識)이 선(善)을 행하여 훈습한다면 악업의 과보로 빈천의 보(報)를 받는 중생이라 할지라도 선업의 인(因)이 되므로 아뢰야식을 변이하는 식이라 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 : 아뢰야식은 8식이니 이숙(異熟)이라 하고 종자식이라 한다. 이를 무몰식(無沒識)이라고도 하는 것은 아뢰야식이 함장하고 있는 종자는 생사윤회에 유전(流轉)하면서도 멸몰(滅沒)되지 않기 때문이며 축장된 인은 과로 변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이숙식이라 하며, 오관(五觀)·육식(六識)·칠식(七識)·선악(善惡) 등 모든 심식(心識)의 주처(住處)가 되므로 함장식이라 한다.
선을 지은 사람도 선이 다 하면 악이 온다.
그럼 언제 업이 다 없어지겠는가?
三界九地
♣ 욕계 : 五趣(오온)雜居地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 색계 : 四天(四禪)
초선정 (근심이 없어지면)
이선정 (고통이 없어지면)
삼 정 (기쁨도없어지면...*육체적인 것 육체적인 것이 정신적인것보다 나중에 끈어진다.)
사선정 (즐거움도 없어지면...*정신적)
四禪 憂苦憙樂이 끈어졌다.
♣ 무색계 :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허공처럼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식이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마음이 다 통달),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는 경지),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이 그것이다.
색계와 무색계를 합하여 八定
♣ 멸진정: 이것까지를 구차제정
이것을 닦으므로 아뢰야식에 들어있는 업보가 소멸 어떤 업보도 없어진다.
멸진정은 업보가 없어진다.
우리 소견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남의것을 탐하려고 한는것도 잘못
마음이 일어나면 죄가 일어난다.
마음이 일어나면 망념이 일어난다.
마음이 일어나면 취사로 된다. 취할것인가 말것인가
顚倒몽상 때문에 잘못된 소견이 나온다.
이 세상은 1시간도 영원한 것이 없다.
자세히 보면 영원한 것은 없다. 이순간도 우리 세포는 변한다.
중생은 영원한것에서 무상을 느끼고 무상한것에서는 영원하려 한다.
無常計常을 한다.
無樂計樂
중생은 죽으러 가면서도 즐겁다고 한다.
우리는 죽으러 가는 것이다.
이거또한 전도몽상이다
無我計我
눈코입귀가 다 자기가 주인이라고 하면 큰일인데 이것들은 자기가 아라고 하지 않는다.
살이 나는 흙으로 갈련다 하면 큰일인데 살이 아가 없다.
도덕경에 방의 쓰임세가 있을려면 방이 비워야 한다.
그릇이 그릇노릇을 하려면 그릇을 비우고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하려며 무아가 되었을때다.
지수화풍이 가고나면 나는 어디 있을것인가 이것이 무아다
無淨計淨
절에 큰 행사가 벌어 졌다. 정상적인 소임이 아닌 비상의 소임으로 한적이 있다.
설거지 하는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읗 한번더 행군다. 이렇게 아가 무서운 것이다.
전도몽상하여 산 것이 없식이 된다.
업식을 없앨려하니 사선 팔정을 해야 한다.
깨끗한 것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외출하려면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혹여 갑자기 죽엇을 때 물건이 흩어진 것을 보고 이사람 이렇게 살았어 할까봐 서랍등 정리전돈을 해야만 외출을 한다.
그럼 몸뚱이 안에 더러운 것은 어떻게 할것인가.
수만번 일어나는 더러운 마음은 어떻할것인가.
집안이 문제가 아니다.
거꾸로 살지마라 이런 것이 다 전도몽상이다.
전도몽상으로 살아온 것이 업식이다.
사선팔정으로 닦아라
이거와 반대로
상대에 무상하다. 실제로 무상한데
常計無常- 지는 해를 보고, 가을낙엽보고 눈물을 흘리고 한다. 그래봐야 항상 그 자리다. 장자에 이런말이 있다. 주물사가 쇠를 녹이는데 쇠가 하는말 "세상에서 나를 가장 좋은 칼을 만들어줘" 하면 주물자가 뭐라하겟는가. 주물사가 "저런고얀놈 봣나" 한다. 사람을 관장하는 사람에게 죽어가면서 "다음에도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줘" 하면 "저놈 내권한을 니가 왜 저레" 하면 괘씸해 한다. 이것도 전도몽상이다.
樂計無樂 깊은 경지로 가면 즐겁다(4선천) 자기는 깊은 경계에는 가지도 않고 "저사람 왜 옷을 저렇게 입고 다녀" 한다. 전혀 상관없는 일에 락을 없앤다. 영원불멸한 我가 있는데 초목으로 되던지 사람으로 되던지 영원하다. 늙어서 죽으면 어쩌나. 나 없어질까봐 걱정
淨計無淨 흙에 물을 부으면 진흙탕물이나 바다로 빠져나가면 다 깨끗한 물이다. 쓰임새를 잘못만나 잠시 더러울 뿐이다. 업식이 윤회를 하는 것이다.
화엄경의 야마궁전품 唯心偈
신불주어심 (身不住於心) 몸은 마음에 있지않고.
심역부주신 (心亦不住身) 마음또한 몸에 있지 않다.
이능작불사 (而能作佛事)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불사다.
자재미증유 (自在未曾有) 마음의 조화를 이루니 경험하지 않은것도 알아지더라. 이세상이 있기 전 세계도 왔다 갔다 하는 능력이 생긴다.
마음이 영원이 존재 한다
不可知執受 處了하는 8식에는 능장(能障) 소장(所障) 직장이 있다. 능장(能障) 소장(所障) 집장(執藏)하는 데는 선악 의 종자 선을 심으면 선한 사람 악을 심으면 악한사람. 선악의 종자에는 6가지 의미가 있다. 7식이 선악의 업인을 지어서 8식이 훈습하여 저장했다가 반드시 보응을 받게 하는 선악보응(善惡報應)의 인(因)에 대하여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는 6가지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① 찰나멸의(刹那滅義) : 멸이란 멸생(滅生)을 의미한다. 핵(核)이 멸하여 나무가 되듯이 전자(前者)가 멸하여 후자(後者)가 생한다. 따라서 사람이 전자의 인이 씨가 되어 태어나면서 씨인 전자의 8식은 멸하는 것이다.
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인은 멸하고 다음과가 생긴다. 인(씨)은 멸하고 과(사과)가 생기는데 과가 나는 어디에 씨였다 하지 않는다. 과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사과 씨에는 사과열매가 열린다. 이미 결정난 것이다. 사과 씨를 심었는데 벼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전에 사과 씨가 어디서 왔다고 말하지 못한다. 인은 이미 없어지며 과가 생겼다. 삐뚤어진 씨는 사과가 삐뚤어지게 나온다. 맛없는 사과는 인이 잘못되고 과(경계)가 나빠 맛이 없는 사과가 된 것이다. 맛있는 사과는 좋은 씨(인)에 좋은 과(경계)가 되어 맛있는 사과가 된 것이다. 생멸(生滅)이 찰나(刹那), 멸생이 찰나, 태어난 자는 죽고, 죽는 자는 태어난다.
② 과구유의(果俱有義) : 과구유(果俱有)는 전8식(前八識)의 핵이 이미 멸하고 새로 태어난 생명체에는 전8식의 원인이 하나도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서 과구유라 한 것이다.
소멸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은 사과 씨에는 맛이 있고 없고 가 이미 결정나 있다. 영민 하게 태어난 사람, 미련하게 태어난 사람 등 이미 결정이 나있다. 미련한 놈이 전생은 알아서 무엇 하려고 전생을 알려고 하는가. 얼마큼 죄지었는가 알려고 하는가? 이런 것을 궁금해하는 사람 치고 정상적이지 않다. 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것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③ 항수전의(恒隨轉義) : 항수전(恒隨轉)은 전8식의 인이 현행(現行)의 과보를 다하면 다음의 다른 인을 세운다는 뜻이다. 다른 곳으로 바뀌고 바뀌고 한다. 부처님께서 생멸이 본래 없다 하셨다.
④ 성결정의(性決定義) : 성결정(性決定)은 선인선과(善因善果)·악인악과(惡因惡果)가 결정적으로 변할 수 없음을 뜻한다.
화내는 사람이 안내고 있다가 화나기 시작하면 확 올라와 화를 내기에 잘 못 바꾼다. 그러면 이것을 없애려면 용광로에 들어갔다 와야 바꾸어진다. 용광로에 들어가려면 참선과 염불이다. 용광로에 들어가는 것은 지식으로 계산으로 들어가는 자리가 아니다. 몇 억겁에 쌓아온 업이 일시에 없어져 버린다. 홍로점설 (紅爐點雪) 화로(용광로)에 눈(몇 겁의 업)이 떨어지면 금세 없어진다. 참선문 염불문에 들어가면 일시에 녹아 내린다.
⑤ 대중연의(待衆緣義) : 대중연(待衆緣)은 제8식의 종자가 인으로 있다 해도 이에 상응하는 연이 없으면 생할 수 없고 언제까지라도 연이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인연을 기다려서 태어난다. 임종때 선업을 가지고 죽으면 태어날 때 아무뱃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선과를 이룰 수 있는 엄마를 만날 때 이루어진다.
⑥ 인자과의(引自果義) : 인자과(引自果)는 8식 중 낱낱의 종자는 자신의 과보만을 인도(引導)하여 생하기 때문에 보시의 인은 부귀의 과를 받고 불살생의 인은 장수의 과를 받는다는 뜻이다.
보시 많이 한사람은 부자 불살생을 하면 장수 비명횡사 전생에 살생과보 농장을 하더라도 닭 한 마리라도 자기 손으로 죽이지 마라. 나를 위해서 잡지 마라. "그까지것 이리 가져와 내가 죽여줄게" 하는 사람은 살생을 하지 않았더라도 살생의 과보 똑 같이 받는다 독한 사람이 되지 마라. 살생하지 말고 보시 많이 하라 선(善)인(因)된다. 방생하라고 하니 물고기 방생을 한다. 물고기 방생은 놀부가 제비 다리 부러트려 치료해주는 것과 같다. 믈고기 방생은 복 받는 것이 아니고 죄를 받는다.
이와같이 인과응보에는 6가지가 있다.
제 3 송
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유식(唯識)이란 마음이다. 마음을 유식이라 한 것은 마음은 마음을 통칭한 것이고 유식은 갖가지 마음의 작용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삼계는 오직 마음의 작용에 의해 존재한다 한 것이다. 유식은 이러한 마음의 작용을 설명한 사상으로서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마음을 분발하게 하는 요문이라 하겠다.
제8아뢰야식은 그 작용을 알 수 없고 집수(執受)와 처(處)와 요(了)의 작용도 알 수 없다. 항상 촉(觸)과 작의(作意)와 수(受)와 상(想)과 사(思)로 더불어 상응하되 오직 사수(捨受)로만 한다.
不可知執受: 불가지(不可知) 알수가 없다. 내마음 내가 모른다.
① 능장(能障)(32쪽에 설명): 주체적으로 받아드릴수 있는 능력 불가지하다.
② 소장(所障): 7식이 선악 인과를 8식에 저장 7식이 업을 지으면 7식이 지어논 업이 그대로 8식으로 가지고 온다. 8식은 부하가 죄를 지어도 받아 드린다. 7식은 8식의 부하다. 8식에는 악한 것을 걸러서 받는 것이 아니고 악한 것은 악한 것으로받아드린다.
③ 집장(執藏): 아(我)라는 것을 집착하는 능력.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내것이라고 집착한다. 관렴에도 집착한다.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사람 제사지내는 것 보고 왜 저렇게햬?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사람 제사 지내는 것을 보고 왜 저렇게 해? 하지 말고 저 지방에서는 저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라. 사람은 어려서 본 것 들은 것 만이 제이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생소하여 그런다. 지식과 관렴에 집착한다.
마음은 ① 자체적능력 ② 받아드리는 능력 ③ 받아드린 것을 집착하는 능력을 능장(能障) 소장(所障) 집장(執藏)이라고 한다. 마음은 이런 것을 다 가지고 있다.
집지(거머지고) 집수(받아드리는 것) 컴퓨터는 용량초과면 못 받아드리는데 사람의 능력은 다 받아 드려도 용량초과가 되지 않는다. 내의식이 무안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견성 자기 다듬는 일이 바쁘다. 불가지집수(不可知執受)
不可知處 : 인간은 호화스럽고 사치스럽고 편안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8식은 지옥에 갔다 놓아도 두려울것이 없다. 불속에 갔다 놓아도 몸은 탈지 모르나 8식은 타지 않고 8식은 불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물속에 들어가도 8식은 물에 영향을 받지 않고 다른 곳에 가 계신다. 처(處)가 불가지(不可知)하다. 인간만큼 위대한 것이 없다. 어마어마한 한계를 훤씬 뛰어 넘는 능력이 있다.
不可知了 : 요별 가려내는 능력이 끝도 없다. 이런 능력응 수련하면 끝없이 나온다. 자기를 다듬는 일에 소훌하겠는가?
8식 능력 : 觸 作意 受 想思(사료) (5변행 심소) 변행은 두루 두루 움직이는 것. 심소는 마음자리
不可知執受 處了하는 8식에는 능장(能障) 소장(所障) 직장이 있다. 능장(能障) 소장(所障) 집장(執藏)하는 데는 선악 의 종자 선을 심으면 선한 사람 악을 심으면 악한사람. 선악의 종자에는 6가지 의미가 있다. 7식이 선악의 업인을 지어서 8식이 훈습하여 저장했다가 반드시 보응을 받게 하는 선악보응(善惡報應)의 인(因)에 대하여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는 6가지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① 찰나멸의(刹那滅義) : 멸이란 멸생(滅生)을 의미한다. 핵(核)이 멸하여 나무가 되듯이 전자(前者)가 멸하여 후자(後者)가 생한다. 따라서 사람이 전자의 인이 씨가 되어 태어나면서 씨인 전자의 8식은 멸하는 것이다.
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인은 멸하고 다음과가 생긴다. 인(씨)은 멸하고 과(사과)가 생기는데 과가 나는 어디에 씨였다 하지 않는다. 과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사과 씨에는 사과열매가 열린다. 이미 결정난 것이다. 사과 씨를 심었는데 벼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전에 사과 씨가 어디서 왔다고 말하지 못한다. 인은 이미 없어지며 과가 생겼다. 삐뚤어진 씨는 사과가 삐뚤어지게 나온다. 맛없는 사과는 인이 잘못되고 과(경계)가 나빠 맛이 없는 사과가 된 것이다. 맛있는 사과는 좋은 씨(인)에 좋은 과(경계)가 되어 맛있는 사과가 된 것이다. 생멸(生滅)이 찰나(刹那), 멸생이 찰나, 태어난 자는 죽고, 죽는 자는 태어난다.
② 과구유의(果俱有義) : 과구유(果俱有)는 전8식(前八識)의 핵이 이미 멸하고 새로 태어난 생명체에는 전8식의 원인이 하나도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서 과구유라 한 것이다.
소멸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은 사과 씨에는 맛이 있고 없고 가 이미 결정나 있다. 영민 하게 태어난 사람, 미련하게 태어난 사람 등 이미 결정이 나있다. 미련한 놈이 전생은 알아서 무엇 하려고 전생을 알려고 하는가. 얼마큼 죄지었는가 알려고 하는가? 이런 것을 궁금해하는 사람 치고 정상적이지 않다. 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것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③ 항수전의(恒隨轉義) : 항수전(恒隨轉)은 전8식의 인이 현행(現行)의 과보를 다하면 다음의 다른 인을 세운다는 뜻이다. 다른 곳으로 바뀌고 바뀌고 한다. 부처님께서 생멸이 본래 없다 하셨다.
④ 성결정의(性決定義) : 성결정(性決定)은 선인선과(善因善果)·악인악과(惡因惡果)가 결정적으로 변할 수 없음을 뜻한다.
화내는 사람이 안내고 있다가 화나기 시작하면 확 올라와 화를 내기에 잘 못 바꾼다. 그러면 이것을 없애려면 용광로에 들어갔다 와야 바꾸어진다. 용광로에 들어가려면 참선과 염불이다. 용광로에 들어가는 것은 지식으로 계산으로 들어가는 자리가 아니다. 몇 억겁에 쌓아온 업이 일시에 없어져 버린다. 홍로점설(紅爐點雪) 화로(용광로)에 눈(몇 겁의 업)이 떨어지면 금세 없어진다. 참선문 염불문에 들어가면 일시에 녹아 내린다.
⑤ 대중연의(待衆緣義) : 대중연(待衆緣)은 제8식의 종자가 인으로 있다 해도 이에 상응하는 연이 없으면 생할 수 없고 언제까지라도 연이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인연을 기다려서 태어난다. 임종때 선업을 가지고 죽으면 태어날 때 아무뱃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선과를 이룰 수 있는 엄마를 만날 때 이루어진다.
⑥ 인자과의(引自果義) : 인자과(引自果)는 8식 중 낱낱의 종자는 자신의 과보만을 인도(引導)하여 생하기 때문에 보시의 인은 부귀의 과를 받고 불살생의 인은 장수의 과를 받는다는 뜻이다.
보시 많이 한사람은 부자 불살생을 하면 장수 비명횡사 전생에 살생과보 농장을 하더라도 닭 한 마리라도 자기 손으로 죽이지 마라. 나를 위해서 잡지 마라. "그까지것 이리 가져와 내가 죽여줄게" 하는 사람은 살생을 하지 않았더라도 살생의 과보 똑 같이 받는다 독한 사람이 되지 마라. 살생하지 말고 보시 많이 하라 선(善)인(因)된다. 방생하라고 하니 물고기 방생을 한다. 물고기 방생은 놀부가 제비 다리 부러트려 치료해주는 것과 같다. 믈고기 방생은 복 받는 것이 아니고 죄를 받는다.
이와같이 인과응보에는 6가지가 있다.
마음은 훈습(훈련)에 의하여 생겨난다. 능훈 소훈이로 나눈다.
능훈(能熏 자체적으로 훈습 )에 네 가지의 성질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① 생멸성(生滅性) : 찰나 생멸하는 본체가 상주하여 영원하지 않으므로 전변(轉變)하는 작용에 의해서 선도 되고 악으로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심성(心性)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훈습하는데로 바뀔수가 있다.
② 승용성(勝用性) : 승용성(勝用性)은 능훈(能熏)의 작용이니 7식의 작용을 인식하여 분별하고 연려(緣慮)함을 말한다. 작용이 뛰어나다. 자체적으로 익히는 것. 불가지 불가사의 하다. 무엇보다도 좋다.
③ 증감성(增感性) : 증감성(增感性)은 증진(增進)하고 감쇄(減殺)함을 말한 것으로 선이 증진되면 악이 감쇄되고 악이 증진되면 선이 감쇄됨을 말한다. 선이 늘어나면 악이 줄어 든다. 악이 늘어나면 선이 줄어 든다. 24시간 죄를 짓는다고 하면 죄의 가지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8시간 잠자고 죄를 짓는다. 한가지 가지고 반복을 하는 것이다. 많으면 다른 것은 적어진다. 관세음을 만번하면 악을 지은 것을 감소된다. 뜻을 알든 모르든 많이 하라. 금강경을 2시간 읽는다. 선을 2시간 쌓았기에 악을 감소한다. 악을 2시간 연속으로 하지 못한다. 수행자를 화나게 하지마라 수행자는 집중력이 있다. 배워서 많이 쌓아 두면 악이 물러 난다. 힘이 들어도 많이 하여야 한다. 악을 상쇄 시켜놓고 일을 하라.
④ 화소훈성(和所熏性) : 화소훈(和所熏)은 능훈(能熏)의 7식과 소훈(所熏)의 8식이 화합하여 훈습되기 때문에 일컬어진 말이다.
7식과 8식이 기가막히게 조화를 이룬다. 이런 능력이 내 8식 기능 안에 많이 들어 있다. 7식이 능훈이 되었는가 8식은 능훈의 힘이 없다 자체적으로 업을 짓지 않는다. 7식은 그런 기능이 있고 8식은 소훈이다 저장하는 능력이 잇다. 7식을 능훈(能熏)이라 하고 8식을 소훈(所熏)이라 하는 것은 7식이 업인을 직접 만들기 때문이며 8식은 7식이 만든 업인을 소장(所障)하기 때문이다. 직접 업인을 짓는 7식의 능훈과 7식이 지은 업인을 소장(所障)하는 8식의 소훈이 각각 네 가지의 성질을 갖추고 있으니 다음과 같다.
① 견주성(堅住性) : 8식은 7식이 지은 업인을 소훈하되 처음부터 불변하고 부동하여 영구히 견주(堅住)하므로 7식의 훈습을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견주성이라 한다. 8식은 제자리에 있기에 7식이 같다 주면 저장을 한다. 7식이 지은 업을 8식이 받는다 이유는 죽을 때 8식을 가지고 가니까
② 무기성(無記性) : 8식은 그 성질이 비선비악(非善非惡)이어서 7식의 각종 훈습을 받아들이므로 무기라 한다. 8식은 선악을 구별하지 않는다. 8식은 가져만 오면 다 받는다 업은 7식이 짓고 받는 것은 8식이 가지고 있는다. 기억을 하지 않는다.
③ 가훈성(可熏性) ; 8식은 그 성품이 유연하여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7식이 지은 모든 훈습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가훈성이라 한다. 무엇이든 가능하게 익혀 진다. 8식은 능력이 끝이 없다. 무한하다고 하는데 나도 도전해 보자 라고 생각을 해보자
④ 화능훈성(和能熏性) : 7식의 능훈성(能熏性)과 화합하여 7식이 지은 선악시비 등의 모든 업인을 훈습하여 지니므로 화능훈이라 한다. 화합하지 않고도 화합이 된다. 업은 훈습에 의하여 명필이 될려면 훈습이 있어야 한다. 훈련으로 우리는 바꾸어 질수 있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되는 훈습을 해야 한다. 처세술등 이런 처세술이 좋은 나라는 미국사람이다. 빠져들때는 무섭게 빠져들고 놀때도 잘 논다. 한국 사람은 못 따라간다. 미국 스님들 참선을 8시간 시켜보면 못할줄 알았으나 몇시간씩 아주 잘한다. 눈에는 눈물이 있었는데 다리는 흩트러지지 않았다고 함. 인간은 훈련으로 바꿀수가 있다.
불가지(不可知): 팔식의 대략(大略)을 살폈으므로 다시 이 송(頌)을 살펴보면 불가지(不可知)의 뜻은 공유적(共有的)이어서 불가지집수(不可知執受). 불가지처(不可知處).불가지료(不可知了)의 의미로 쓰여졌고 집수(執受).처(處).요(了)는 모두 팔식의 소연경(所緣境)과 행상(行相)이다. 팔식의 경상(境相=경계) 인식작용은 요지(了知)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지(不可知)라 말한 것이다.
집수(執受): 불가지집수(不可知執受)인 제팔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심(心)의 주체(主體)이며 경계를 요별(了別)할 수 있는 능연(能緣)이다. 능연(能緣)은 반드시 소연(所緣)이 있게 되고, 소연(所緣)이 없다면 능연(能緣)의 심(心)이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능(能)의 심(心)은 소(所)의 경(境)을 인(因)해서 생긴다. 집지수지 집수는 밖에것을 받아드려서 지닌다. 빨간 것이 있으면 빨간 것을 받아드리고 파란색이 있으면 파란 것을 받아 드린다. 팔식이 집수(執受)하는 데는 두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근신(根身)이요. 또 하나는 종자(種子)다.
근신(根身)은 일체중생의 신체(身體)는 아뢰아식이 투입(投入)될때를 생(生)이라 하고 이 때가 생명의 시작이 되며, 아뢰아식이 떠날때를 사(死)라 하고 이 때가 생명의 끈이 되는 것이다. 모든 생명을 유지하고 잇는 동안 그 장단(長短)에 관계없이 아뢰야가 집수(執受)하고 있음을 말한다.
종자(種子)는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과 새롭게 훈습함을 말한 것으로서 시방법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자는 모두 아뢰아식에 의지하여 보장(保藏)되고 훈습되어야만 종자가 상실도지 않으며 연(緣)을 만남으로써 보응(報應)을 받는다. 이와 같은 아뢰야식의 근신(根身)과 종자의 움직임은 심히 미묘해서 법부가 능히 알 바가 아니므로 불가지집수(不可知執受)라 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아뢰아식이 떠나면 안락사를 해야 하고 떠나지 않았으면 안락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식물인간이라도 아뢰야식이 남아 있으면 안락사를 하면 안된다. 아뢰야식이 남아있을때의 안락사는 살생이다. 의사들이 이런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심리학자는 이런 것을 공부했는데 의사들도 해야 한다. 심리학자들이 이런 것을 같다 하여 유명해 진 것이다. 종자는 똑같지 않고 변한다. 토질이 어떤것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씨만 좋아야 된다고 말할수 없다. 밭(경계)도 좋아야 한다. 씨앗과 좋은 밭을 만나야 큰 인물 만난다. 이러한 인연은 겨자씨에 바늘 꼽히기 보다 어렴다. 송시열씨 아버지가 이러한 원력을 세워 아들을 낳았다고 함. 딸가진 엄마들은 내가 그런 영향이 될 때는 내가 하고 내가 그런 능력이 없을때는 내가 세상에 지혜가 될만한 큰 인물을 낳아야겠다고 원력을 세워 엄마가 이런원력을 세워 자기 몸가짐 하고 수행하고 공부하면 이런 인(씨)이 만나진다. 씨가 좋은 놈이 태어날 자리가 없어 아무데서나 태어난다. 젊은 아이들이 이러한 원력을 갖게 만드러 주어야 하는 것은 어른들은 몫이다.
처(處) : 불가지처(不可知處)인 처는 아뢰야식이 작용하는 처소(處所)이니 산하대지. 우주만유(宇宙萬有)를 지칭한다.
의보(依報)라고도 말하는 이것은 모든 바깥 경계이며, 팔식이 연(緣)하는 모든 대상(對象)을 의미한다.
요(了): 불가지요(不可知了)인 요(了)는 요별(了別)의 뜻으로서 견분(見分)의 인식 작용을 의미한다. 아뢰야의 요별(了別)은 범부에게는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작용을 말하고, 제 육식과 칠식의 작용이 쉬어질 때 곧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경지에서 아뢰야의 요별작용(了別作用)은 현실화 된다. 가려낸다. 자기 감정을 떠나서 가리는 사람은 잘 가리는 것이다. 이해 당사자가 되면 잘 못가린다. 자기 자식이 잘못했는데 자식이 뭐가 잘못했냐고 할때 사람이 따뜻한 방이좋다고 하여 물고기도 따뜻한 방은 안돼고 물고기가 물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우리가 물속에서 살수 없다. 중생세계를 분별한다. 잘 구별할 때 제대로 된 눈이라고 한다.
아뢰야(阿賴耶)의 심법(心法) 곧 심리현상(心理現象)은 무부무기(無覆部記)이므로 혹(惑)을 일으켜 업을 짓는 일이 결코 없으며 오직 칠식에 의해서 훈습(熏習)될 뿐이다. 아뢰야(阿賴耶)가 외경(外境)과 상응함에 5변행심소(五遍行心所)만이 상응하므로 이를 사종편(四種遍) 또는 사일체(四一切)라 이름한다.
공부길을 알면 7일이면 끝난다. 가닥이 잡히면 7일이면 된다. 8식 살아 있을 때 작용하면 이 사람은 부처다. 사람은 8식작용을 하지 않는데 죽고 나면 8식이 작용을 한다. 6식 7식 죽고 나니 8식만 남아 내생으로 간다. 일생 살아 있을 때 8식 작용하고 죽어서도 작용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음식을 먹으면 음식의 영양분에 따라 내 몸뚱이가 달라지듯이 일생동안 살아온 습이 8식이다. 8식의 작용은 불가지(不可知=알수없다) 하다. 살아서도 8식을 쓰는 사람이 있고 죽어서도 못쓰는 사람도 잇다. 컴퓨터는 용량이 초과하면 사용못하나 인간에게는 박사 여러개 따다고 용량이 넘치는 것이 아니다. 8식은 처 가 불가지 어디를 갔나 나돠 살아 난다. 요(了) 가려 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요별능력. 인간은 8식을 가지고 있으나 사용을 못하는 이유는 6식 7식이 나오지 못하게 한다. 6.7식은 나설 때 안나설 때 다 나선다. 6식 7식을 잠재우면 8식이 나온다. 나를 비판해도 끝덕도 하지 않는 것이 수행자. 8식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자리 8식은 자기 지어 놓은 습의 인연에 맞는 때를 찾아 다시 태어난다. 8식은 어느 상황에서도 견디는 힘이 있기에 나서지 않는다 설사 지옥이라도 이겨나갈수 있기에 느긋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8식은 분별이 붙지 않는다.
8식은 觸(촉) 부디치면 아무게가 와서 부디치는 구나, 作意(작의) 창조능력, 受(수) : 수용하는 것 다 저장 相(상) 밖에서 일어나는 것, 捨(사) : 안에서 일어나는것
8식은 捨受(사수)다 인간은 받아드리는데는 고(苦) 고통, 락(樂) 즐거운 마음, 사는 불고 불락 담담한 마음. 8식은 동요없이 사수로 받아 드린다. 8식에 저장된 것을 꺼내 쓸려면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삼매속에서만 나온다. 삼매에는 6식 7식이 정지되니까 수용되있던 것 꺼내 쓰는 것이다. 이 능력은 천지를 덮는 능력이 나온다. 그러기 때문에 수행을 해야 한다. 절집에서 교제로 쓰지를 못하는 이유는 어려워서 스님들이 이해를 못한다. 유식을 제일 잘하신 분이 원효대사님 유식에 통달하니 일체 유심조가 나온 것이다. 의식은 시비나 하고 기도교는 7식 종교 예언 게시 7식은 악(惡)의 심소가 훨씬 많다. 악(惡)은 39개 선(善)은 11개 선이 적기에 나쁜 예언이 많다. 종교의 깊이의 한 개 8식은 捨受를 하여 무안하다. 버릴사자의 뜻을 터득하라. 미워하는 마음을 버려라. 좋아 했던 마음을 버려라. 집착을 버려라 버리면 바다처럼 큰 마음 더 발전되면 허공같은 마음 시어머니가 미워도 며느리가 미워도 수용이 된다. 감정적으로 오는 것을 버리는 것 이러면 8식이 나온다. 이러한 사람들이 아들딸들이 인물이 나온다. 이율곡 보다 신사임당이 더 인물이다. 자기가 높아 져야 한다. 안중근 의사 어머니가 아니 였으면 그렇게 유명해 질수가 없다. 어머니가 탄원서 내주면 아들을 플어 주겠다고 하는데도 엄마가 내주지 않았음. 안중근 필적을 위조하여 나가면 어머니 모시고 잘 살려고 함니다. 라고 보냈더니 나는 너 같은 자식 둔적이 없다고 함.
捨受 텅빈마음으로 한다. 이세상에서 수명이 가장 긴 것 허공, 허공은 천녁적 만년적것 다 보았지만 사수를 하였기에 동요가 없다. 8식은 전생능력이 없어 못하는 것이 아니고 기록을 해 놓지 않아 무기(8식) 기록하면 8식 용략이 줄어 든다. 집수 수용능력이 무한대 한데 기록을하면 줄어 든다. 거울에 기록하면 얼마나 기록하겠는가 거울은 무한대 하게 다 받아 드리는 능력이 있다. 인간의 참 능력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전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8식 함장식 능장(能障) 소장(所障) 집장(執藏) 능장(能障): 자발적으로 소장(所障): 밖에서 오는 것은 모두 저장 집장(執藏): 지니고 있는 능력 지니고 있을 뿐 쓰지를 않는다. 허공에 우주 천체가 다 메달려 있을 뿐 작용이 있으면 유한이요 작용이 없으면 무한하다. 8식은 무심 허심으로 한다. 이러한 8식은 6식 7식이 쉬어지면 나온다. 이것을 쉴려니까. 염불을 해라. 일념으로. 참선 6식 7식을 잠재우려 한다.
제 4 송
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무부무기(無覆無記) 절대로 기역을 해두지 않는다.
觸(觸 作意 受 想思=오변행(五遍行)심소(五遍行心所)도 똑 같이 無覆無記 한다.
항(恒) 8식은 영원하다. 전(轉) 계속 변한다. 항전은 항수전의를 줄인말 변하지 않으면 영원하지 않다. 움직여야 하지 가만있으면 섞는다. 세상이 영원한 것은 생노병사가 되기에 영원한 것이, 사람이 죽지 않고 나기만 한다면 안 된다. 키가 변하는 것도 해당되나 변하라고 하니 아침에 약속한 것 저녁에 변하면 안 된다. 옛날에 존경했던 사람들인데 지금 만나보면 퇴보한 사람이 있다. 질문을 하면 대답이 딱딱 나오든 사람도 지금은 어리어리해졋다. 의식퇴보는 불행한 것이다. 항수전 한시도 쉬어있진 않고 발심하여야 한다. 유교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사별삼일에 괄목상재라 했다.(선비를 삼일 만에 만나니 다른 사람처럼 변화가 되어있다.) 이정도 되어야 사람 사는 맛이 있는 것이다. 절에를 몇 년다녀도 변화가 없으면 남편이 “야 절에는 다니면 뭐하냐” 향상이 있으면 이런 말 듣지 않는다.
덮을 부 물들지 않는다. 덮히지 않는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친하긴 친하되 유는 하지 않는다. 도둑하고 친할 수는 잇는데 도둑놈은 안 된다. 화이불류(和而不流) 물이들고 집착을하고 집착을 해야 기억을 하는데 물이 들지 않으니 기록을 해두지 않는다.
천도재는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천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집안에서 모두가 고통을 받고 잇는데 한 아들이 성공을 하면 고통에서 다 풀린다.
제주가 일깨워지지 않고는 천도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천도는 스님들 한데 의지를 한다. 자식이 하는 것이지 스님한테 미루지 마라 스님이 돌아가신 분과 간절하겠는가. 자식이 간절하겠는가. 의전은 스님한테 부탁하고 제주는 제계를 하라. 제계란 나를 바꾸는 것 날 나아준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이때 바꾸지 않으면 언제 바뀌겠는가. 돈 주고 천도를 사지 말고 집전은 스님한테 맡기지만 제계는 제주가 해야 한다.
날마다 삼천배만 하던 사람과 빈둥대고 놀던 사람이 은사스님한테 기도 잘하는 사람 비교하며 혼만 났는데 세월이 지나 그사람은 정신이상이고 혼났던 스님은 동국대 교수가 되었다. 이런 것을 봐도 종교는 잘 믿어야 한다. 기도의 의미를 제대로 알자.
기도는 제충전이다. 충전도 마냥하면 전화기가 망가진다. 매일 눈뜨자마자 기도를 하라. 그 힘으로 하루를 살아라. 다른 일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시험공부하지 않고 관세음보살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눈뜨자마자 관세음보살 생각나면 관세음보살 3번 눈떴을 때 생각나지 않으면 108번하라.
내일 기도해야지 하고 생각나지 않는 사람은 하루에 1시간씩 계속해라 일어났을 때 관세음보살 생각났을 때까지 하라.
어떤 고민이 있을 때 의식(6식)으로 판단하면 해결나지 않고 7식은 해결 나고 8식은 빠르게 답이 온다. 점광석화(店鑛席化) 해결난 것을 기억하는 것은 6식이다. 8식은 기억하지 않는다. 지난일 기역은 6식 8식은 부딪쳤다(촉) 는 하나 기억하지 않는다.
瀑流 : 폭포수가 아니고 홍수가 나가지고 물이 범람해다. 류수가 빠를 때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 속도는 사람이 계속할 수가 없다. 폭류가 없어지는 경지는 6 7식이 복류처럼 움직인다. 8식도 기억만 하지 않지 따라 간다. 아라한 경지가 가면 8식 동요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지는 갈비뼈 수술하는데 마치하지 않고 하는 경지
제8 아뢰야식은 무부무기(無覆無記)이니 촉(觸) 등 오변행(五遍行)심소(五遍行心所)(五 行心所)도 또한 이와 같다. 항상 움직임(恒轉)이 마치 폭류(瀑流)와 같으니 아라한(阿羅漢)의 자리에서 버려진다. 수술할 때 마치하지 않고 하는 경지 이러한 마음들이 잠자려면 아라한 경지가 되어야 한다. 8식은 중생에게는 아뢰야식, 보살의 마음은 8식이 아뢰야식이 되지 않고 진여, 부처님은 불성
불성을 언급하지 않았고 수행의 첫 단계인 아라한을 말했다. 두 번째는 보살 3번째는 부처님(1 아란한 2.보살 3.부처님) 아란한 단계만 가도 아뢰야식이라는 이름이 없어진다.
아라한(阿羅漢) : 제팔식(第八識) 아뢰야(阿賴耶)의 이름을 버리면 중생의 소견을 버리고 아라한(阿羅漢)의 위(位)에 이르러야 가능하다. 중생의 집착과 번뇌를 모두 버린 아라한위(阿羅漢位)에 3가지가 있다.
① 살적의(殺賊義) : 번뇌라는 적을 멸진(滅盡)함을 말한다.
② 응공의(應供義) : 제루(諸漏)가 이미 멸진(滅盡)하여 도고덕중(道高德重)하고 세상의 복전(福田)이 되어 인천(人天)의 공양을 받을 만함을 말한다.
③ 불생의(不生義) : 영원히 열반(涅槃)에 들어 다시는 생사윤회를 받지 않음을 말한다. 윤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허공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고 윤회에 구애 받지 않는다(아라한경지). 아뢰야식이 진여로 바뀐다.
④ 사(舍) :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칠식과 상응하여 칠식이 전입(轉入)한 바를 깊이 보지(保持)하여 칠식으로 하여금 아견(我見)을 일으키게 함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깨닫기 위해서 닦는 수행법이 아공관(我空觀)이다. 아공관(我空觀)을 닦아 아애집장(執藏)(我愛執藏)이 없어짐을 사(舍)라 한다.
제 5 송
次第二能變 是識名末那
依彼轉緣彼 思量爲性相
二能變 :일능변은 아뢰야식 이능변 말나야식 삼능은 육식. 말라식은 말릴수 없는 의식 탐욕. 어리석음 미워하는 것 온갖 못된 것은 이것이 한다. 때리는 시어머닌 6식 말리는 시누이는 7식 6식이 화를 내도록 약간 조종하는 것이 7식이다. 탐진치를 7식이 가지고 있다.
依彼轉하며 저것을 위해서 전하며 저것은 8식(일능변)을 의지한다. 주인은 팔식 아래는 육식이 있다 중간에 있기에 이리저리 핑계를 잘된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말라식을 중간의식이라고 한다. 이것을 현대 심리학에서 고대로 베껴간 것이다. 사량(思量)으로 작용을 한다. 성상(性相)이란 성품 (性品)과 성품의 모습)을 삼는다. 다소곳한 사람을 보고는 여우같다고 말하는 것이 말라식 사량(思量)을 하기에 그렇다. 있는 대로 하면 되는데 한 가지 더 보탠다. 잘해주면 뭘 가져가려고 하지? 부정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사량(思量)식이다. 꿈을 꾼다. 극복하려면 꿈을 꾸지 않는 수행. 7식을 극복하지 않으면 8식이 열리지 않는다. 죽기 전 나의 주인은 7식이다. 7식은 8식에 의지하고
44쪽 성상(性相) 성은 마라식의 성품(性品) 본질 상(相)은 말라식의 움직임. 아뢰야식이의지처 말라식은 의지하는 놈이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아뢰야식이 말라식에 의지를 한다. 마라야식이 주체가 된다. 8식이 기탁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안의 어른이나 자식에게 의지하기에 아들이 실권이 있는 것과 같다. 7식 마음대로 하며 6식은 부하로 거느린다. 현재의 왕이다 7식 아뢰야식은 선왕(먼저왕) 선왕은 심왕(아뢰야식)이라고도 한다. 한쪽에 선왕을 모시고 아래로는 6식을 거느리고 완전 통솔을 다한다. 유식의 실태를 알고 실천하는 방법이 핵심이다.
44쪽-45쪽 의피 연피 의피전(依彼轉) :칠식은 팔식 중의 종자와 현행(現行)을 7식이 가지고 있는 사번뇌가 가장 못된 것이다. 7식은 (아견=소견 탐진치 아상) 견= 치=치 만=진 애=탐 탐진치 다 끊어지며 본능만 남는다.(애욕) 탐욕이 끊어지며 6식은 내버리기가 쉽다 7식은 잘 끊어지지 않는다. 탐진치에 아상까지 곁들인 7식이 8식을 기대 놓고 6식을 거느리면 7식이 조절력 있는 사람은 좋으나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은 문제가 크다. 복만 지었지 수행을 하지 않으면 탐욕이 끊어지지 않는다. 다른 것은 다 끊어지나 애욕은 죽는 순간까지 끊어지지 않는다. 유식 배운 사람은 탐욕이 나면 조절이 되고 배우지 않으면 조절이 되지 않는다. 이성탐욕이 끊어지면 다른 탐욕 끈기는 쉽다.
제7식은 4번뇌(四煩惱)를 항상 갖추고 있으니 말하자면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이며 그리고 이밖에 촉(觸) 등과 상응하여 함께 한다
7식의 심소(心所)를 설명한 것이 6송.
5송을 연결해 보면 일능변은 아뢰야식 二能變 은 말라식 삼능변은 의식 6식
능변(주체)식은 내가 자체적으로 일으키는 마음 주체 안으로 일어나는 마음. 소변(객체)은 상대방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 객체. 주체라 하지 않고 능변이라고 했는가 주체가 무엇을 하는가를 모르기에 주체가 하는 작용을 말한 것이 능변이다. 능히 변화한다. 내 마음은 누가 시켜서 변화 하는 것이 아니다. 내마음 하라고 시키는 것은 없다. 그것은 나다. 5송을 다시 설명해 보면 두 번째 능변이 마라식 依彼轉緣彼 思量爲性相 저것을 의지한다. 일변 아뢰야식을 의지해서 전 움직인다 연피 저것을 반연한다. 의피 8식에 의지하여 근본식 의지 연피 밖에것 반연하여 의지하여 밖같것을
두자를 다 8식으로 보면 8식을 위하여 움직인다. 내안의 주제자에 의해서 움직인다. 염피 밖같에서 오는 것을 8식에 반연해서 움직인다. 종은 주인에게 물어 보고 움직인다. 마음에 왕에 의해서 움직이고 밖같의 일을 마음에 보고하고 움직이는 체계가 있다.
7식이 작용을 많이 한다. 이 생각 저 생각 하게 된다. 7식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도 사량(思量)분별을 한다. 사량(思量)분별이 유별나게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 공부하는 사람이 사량(思量)분별이 많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열심히 해야 하는데 사량(思量)으로 계속 방해가 된다. 대부분 사람은 누구 때문이 아니고 안의 장애(사량(思量)이 많아)로 되지 않는다.
제 6 송
四煩惱常俱 謂我痴我見
幷我慢我愛 及與觸等俱
4번뇌가 사량(思量)을 하는 것이다. 아치=치 아견=주간 아만=오만=진-화내는 것 아애=탐할애자 탐진치만 했을까? 삼독이 아닌 사독을 했을까? 견은 고집부리는 것 탐진치의 마지막 탐지치가 없어지면 견(주간-보고 아는 것이 많다)은 없어진다. 8식: 촉(觸).作意.受.상사 五遍行心所(오변행심소(心所)) 사상가는 밖같것을 살피고 안에 것을 살피는 것 그렇게 살펴서 이야기를 해주니 우리는 따르면 되는데 살피지는 않고 자기 자기 주장만 이야기 하면 되지 않는다.
사상의 발로가 운동이어야 한다. 사상가가 실천하는 것이 운동이다. 사상가가 운동을 해야 한다. 받아 드리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어라 자기 몸을 내 던져라. 자기를 몇 백번 살피고 밖을 몇 백번 살피고 안 되겠다고 운동을 해야 세상이 맑아진다.
8 아뢰야식은 마음이 5개이다. 8식: 촉.작의.수.상사 불고 불락으로 촉은 하긴 하되 창작 하기는 하는데 고락을 여위였다 주간을 여의였다. 버릴사 주간을 여의면 내가 만들고 남이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유식30송 무착 보살이 만들었는데 이것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미륵보살님으로부터 배운 것을 기록했다. 불교에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하는 말을 이해하라. 남의 것을 훔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자기가 하고도 안했다고 하면 세상 사람이 더 잘 알아 진가가 올라간다. 남의 것 베끼는 것은 아가 있는 것이다. 내가 한 것을 안했다고 빠지면 我(아)가 없는 것이며 누가 하면 어떠냐. 思想(사상)만 남아 있으면 된다. 불교의 보이지 않는 不文律(불문율)이 되어 있다. 신신명도 작자 미상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 촉작의수상사(觸作意受想思))은 그렇게 하고도 버린다. 7식은 아뢰야식(阿賴耶識) 과 같이 하지만 버리지 않는다. 7식은 과시를 한다. 7식에 이르는 사람은 6식보다 높다. 겸손한척 하면서도 과시를 한다. 6식(의식)은 겸손하지 않고 과시만 한다. 7식은 심소(心所)가 9개(五遍行心所 + 四煩惱) 이렇게 만해도 이 세상에서는 귀인이다. 사람의 마음자리가 많은데 마음자리가 많이 나오면 중생이다. 마음자리가 너무 많이 나오면 쓸데없는 것을 다 막아 버린다.
46쪽 4번뇌설명: 이 송(頌)은 말나식(末那識)과 상응하는 4번뇌(四煩惱)와 심소(心所)(心所)를 설명하고 있다.
4번뇌(四煩惱) : 4번뇌는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 등으로 자성(自性)을 장애하여 성불(成佛)을 막고 환(幻)을 집착하여 업(業)을 일으키고 생멸(生滅)의 고통을 탐닉하여 스스로 고뇌를 자초하는 요인이 곧 4번뇌이다.
아치(我.痴) : 아치는 어리석음을 뜻하는 말로서 우치(憂痴)․무지(無知)․무명(無明) 등을 통칭한 뜻이다. 삼독(三毒)으로 지칭하는 탐․진․치(貪瞋痴)가 곧 4번뇌에서 표출되었으며 탐진치의 치(痴)와 4번뇌의 아치가 모든 중생이 끊어야할 무명이며 무명의 식(識)은 연기(緣起)의 주체가 된다.
어리석음에 불을 밝힌다. 우치(어리석음)는 무지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의 중용은 군자답고 떼에 딱딱 맞게 소인의 중용은 소인답고 문제는 거리낌이 없다. 조심하고 자재할줄 모른다. 소인은 무지하기에 거리낌이 없다. 무지를 없애기 위하여 공부를 한다..
무명이란 잘못 인식하곤 착각하는 것으로서 어리석음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치(痴)의 어리석음이란 나(我)를 집착함으로써 생기하는 소견을 말한 것으로 안으로 몽매무지(蒙昧無知) 하고 밖으로 일체법을 판단하지 못하여 진심(瞋心)과 만심(慢心)을 일으켜 해탈(解脫)할 수 없게 하므로 아치는 모든 번뇌 가운데 근본이 된다. 이와 같이 아치는 무지․무명(無知無明)의 뜻이 있고 무명(無明)에는 공무명(共無明)과 불공무명(不共無明)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어리석을 치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말과 같다.
1. 공무명(共無明)은 탐․치․만․의(貪痴慢疑) 등 모든 번뇌가 공존(共存)한다는 뜻이 있고 또한 모든 번뇌가 상응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상응무명(相應無明)이라고도 한다. 무명이란 본시 번뇌와 더불어 존재하므로 공(共) 또는 상응(相應)이란 전제를 붙인 것이다. 탐진치가 함께 움직이는 것.
2. 불공무명은 독행(獨行)과 항행(恒行)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독행은 단독으로 일어나는 무명으로 여기에 또한 두 가지 형태가 있으니 (1)은 분(忿)․에(喪) 등 수번뇌(隨煩惱)와 상응하는 것과 (2)는 분․에 등 수번뇌와 상응하지 않는 것이다. 독행무명은 홀로 일어나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일어남을 말한다. 화가 일정하게 나는 것은 아니다 났다 안 났다.
둘째 항행(恒行)은 제7식(第七識)이 항상 집아(執我)하는 무명으로서 이는 외경(外境)과는 무관하다. 밖같 경계와는 상관없이 집착되어 잇는 마음 이만하면 내 얼굴이 괜찮지 무명 불공무명 항행무명이 된다.
아견(我見) : 아견은 아집(我執)이다. 이는 범부중생(凡夫衆生)이 몸[肉身]과 마음[精神]을 집착하여 아(我)라고 여기는 것이다. 사실상 일체만법(一切萬法)은 실제로 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에 의하여 연(緣)이 구족되면 만물이 생(生)하고 연이 다하면 만법이 멸(滅)하여 찰나(刹那)에 생멸(生滅)하므로 존재(存在)가 허환(虛幻)하다. 그러나 중생은 인연소생의 참 이치를 알지 못하고 일체만법이 허환임을 인식하지 못하여 실아(實我)가 없는 데서 아(我)를 망집(妄執)하므로 이를 아견(我見)이라 한다.
아만(我慢) : 아만이란 오만하고 교만해서 남을 경시하고 스스로를 지고(至高)하다고 여기며 자신이 위대한 위인으로 생각되어 세상의 모든 허물이 나에게는 없고 모두 다른 사람들이 업을 짓고 죄를 지어 혼탁한 사회를 조장한다고 생각하므로 모두가 나와 같지 않고 나만이 분명하고 바르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 아만이라 하고 이러한 아만은 아집으로부터 나와서 오만해지므로 교만 또는 아만이라 한다. 만심(慢心)은 스스로 높고 위대하여 겸하(謙下)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으로부터 존경받을 수가 없고 위대해질 수도 없다. 교만과 아만은 교만하고 오만하기 때문에 인심을 상실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정진(精進)하지 못하므로 자신을 상실하게 된다.
아애(我愛) : 아애는 아탐(我貪)이다. 중생이 탐애(貪愛)하기 때문에 경계를 분별하여 마음에 드는 바를 탐하고 싫어하는 바를 싫어하여 시비(是非)를 일으키고 탐애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바를 즐거워하고 싫어하는 바에서 진심을 일으키고 탐애하기 때문에 경계에 집착하여 미혹(迷惑)을 자초(自招)한다.
이렇듯 제7식은 영원히 사량(思量)하고 집아(執我)하므로 항상 4번뇌와 더불어 상응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치, 아견, 아만, 아애 등 4번뇌는 윤회의 근본이며 업의 종자라 할 수 있어서 수행자는 반드시 이를 극복하여야 하고 4번뇌를 극복하는 것이 곧 해탈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7식 5변행 심소(心所)와 4번뇌 9가지 심소(心所)가 있다.
제7식은 4번뇌(四煩惱)를 항상 갖추고 있으니 말하자면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이며 그리고 이밖에 촉(觸) 등과 상응하여 함께 한다.
7식은 4번외와 함께 한다. 아견은 아집이다. 아만 교만 아집으로 나온다. 높이 올라갈수록 교만하지 않으면 더 올라가나 올라갔다고 교만하면 더 올라 가지 못한다. 어깨 힘들어 가면 더 이상 못 올라간다. 시골할아버지 같이 어수룩한 사람이나 승진할때는 올라간다. 도 닦는 스님 눈에서 불꽃이 튀면 공부중 눈빛이 죽으면 공부가 끝난 상태 나무도 새싹일 때는 부드러워 자라나 고사할 때, 죽을 때는 경직되고 굳으면 더 이상 성장은 없다. 인간은 경직되면 끝난다. 죽을 때까지 경직되지 마라 아애=아탐
촉(觸) : 촉등구(觸等俱)라 한 촉은 오변행(五遍行)심소(心所)(五遍行心所)(五 行心所)의 촉(觸)․작의(作意)․수(受)․상(想)․사(思) 중의 촉(觸)이다. 여기에서 촉등이라 한 것은 7식(七識)의 모든 식(識)을 총괄한 말이다.
7식의 심소(心所)는 4번뇌를 위시하여 5변행심소(心所)․8대수번뇌(八大隨煩惱)․5별경심소(吳別境心所) 중의 혜(慧) 등이다. 이 18심소(十八心所)가 모두 7식과 상응하여 작용하므로 촉등구라 하였다. 그러나 7식은 4번뇌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집착의 고통이 있는 것이다. 7식이라고 다 못쓰는 것은 아니다 지혜 혜자도 있다.
8대수번뇌(八大隨煩惱)
① 불신(不信) : 불신은 마음이 맑고 깨끗하지 못하여 삼보(三寶)에 대한 신앙심이 없고 진리를 믿지 않으므로 허환을 집착하여 성현(聖賢)의 실덕(實德)을 장애하여 정신(淨信)을 상실함을 말한다.
팔대 수번뇌 중 못 쓰는 수번뇌는 불신번뇌 상대를 못 믿고 부처님 법을 믿지 않음. 심성이 나빠 믿지 않는 사람 미치지 않아서 믿지 않는 사람은 큰 허물은 아니니 신심이 나도록 하라
② 해태(懈怠) : 해태는 게으름을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악(惡)을 끊고 선(善)을 닦는 일에 진력(盡力)을 다하지 않아서 정진(精進)을 게을리 함을 뜻한다.
무엇부터 해야 될지 모른다는 사람은 밥 먹지 마라 끓으면 생각나니 생각나지 않으면 밥 먹지 마라.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사는 것은 남한테 장애가 된다.
③ 방일(放逸), 방종 : 방일은 염(染)을 막지 않고 정(淨)을 수습(修習)하지 않아 제멋대로 방종하여 선근(善根)을 닦지 않음을 뜻한다. 사람은 놓으면 안 된다.
소말을 묶어 놓는 것은 텃밭을 다 짓밟을까봐 놓아먹이지 않는 것인데 사람의 마음을 놓아 버리면 대대손손 다 망한다.
④ 혼침( 沈) : 혼침은 마음이 경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사물을 변별하지 못하고 마음이 경안(輕安)하지 못하므로 정관(正觀)을 상실하여 바른 수행을 장애함을 뜻한다. 맛없는 사람. 남편 맛없는 사람 데리고 살려면 힘들다. 풍기는 향기가 있어야 한다. 매력 있는 사람. 맛있게 만들려면 천자문 금강경 원각경 외어라 그러며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척척 알아들어 인기가 좋다. 짜면 불타고 싱거운 면 소금 넣어야 하지만 맛없는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남이 보면 혼자 참선 다 하는것 같지지만 안에서는 이미 자고 있다
⑤ 도거(悼擧) : 도거는 마음이 경계에 대하여 고요하지 못하여 버려서 뛰어 넘지 못하고 멈춰 쉬지 못함을 뜻한다. 행동도 까불고 마음도 까불 듯이 나온다. 나쁜 병은 아니다. 뭔가 의욕은 있는데 잡히지가 않는다.
⑥ 실념(失念) : 실념은 과거에 경험했던 경계를 기억하지 못하여 정념(正念)을 장애함을 뜻한다. 어제 이야기 하고 오늘 잊어버리는 남 흉보고는 내가 언제 그랬는가하고 까마득히 잊어버린 사람 인기 없다. 온 동네 불란 일으키는 사람. 거짓말 하고 안 그랬다는 사람이 아니 얼굴에 표정도 없이 진짜로 잊어 버린 사람. 여러사람 고생시킨다. 자기는 했다는 생각이 없는데 자기 때문에 말썽이 나는 사람. 잃어 버리라는 것은 아견 아만 아견을 잊어 버리라는 말. 이것은 여러 사람 고생 시키는 것이다.
⑦ 부정지(不正知) : 부정지는 면전에 나타난 경계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일으켜 바른 견해를 훼범하여 정지(正知)를 장애함을 뜻한다. 똑같은 것을 놓고 삐뚤어진 사람. 정직한 사람은 설득하기가 쉬운데 부정직한 사람은 설득을 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 회의하다 부정지 있는 사람 있으면 회의가 따른 대로 간다.
⑧ 산란(散亂) : 산란은 경계에 대하여 마음이 흔들려서 안정을 상실하므로 정정(正定)을 장애함을 뜻한다. 옛 친구보다는 새 친구가 좋고 어제의 꽃 보다는 오늘 꽃 핀 것을 더 좋아 한다. 과일가게에 가서 이것저것 고르지 마라. 콩나물 가게에서 콩나물 값 깍지 마라. 장사 하는 사람 입장을 생각하라. 백화점에서는 현금으로 사면서 더 좋은 것 없어요 한다. 안 살집 물건은 처다 보지 마라 주인 마음만 흔들어 놓지 마라. 남을 베려하라. 콩나물 5백원이라고 하면 천원 주고 와라. 7식에 들어 있다.
제 7 송
有覆無記攝 隨所生所繫
阿羅漢滅定 出世道無有
제7 말나식(第七末那識)은 유부무기(有覆無記)에 속하며 생(生)하는 곳에 따라 얽매인다. 수행하여 아라한(阿羅漢)과 멸진정(滅盡定)에 든 자와 출세도(出世道)를 성취한 자에게서 없어진다.
제7 말나식(第七末那識)은 그 성(性)이 유부무기(有覆無記) 아뢰야식은 무부무기인데 7식은 유부무기(有覆無記)는 물은 드나 선악이 없다. 선으로 기가 막히면 좋은 표정이 나타난다. 고통은 고통으로 나타나는데 7식도 이것을 하지 않는다. 귀격은 담담한 표정 즐거움은 6식은 취하나 7식은 취하지 않는다. 의식이 아무리 즐거워도 근본 마음에는 같다 주지 않는다. 껍데기는 좋을 줄 모르나 좋은데 들어가 있는 것이 더 좋다. 참선 40분하면 망상이 끊어지고 시선이 집중이 되고 가만히 앉아 있으나 등에서 땀이 나고 좀 더 진전되면 몸이 깃털과 같다. 어떤 운동보다 좋은 것이다. 물이 들었는데 왜 무기(無記)냐 7식은 구체적이 아니다. 화를 내면 유부(有覆)가 되고 지나고 나면 잃어버린다. 7식 무기이기에 의식을 순환시키는 것을 7식이 많이 한다. 7식 종자는 함장 하였어도 가지고 있지 않는다.
隨所生所繫 생하는데 따라 얽매인다. 7식은 적응력이 뛰어나다. 소로 태어나면 소로 열심히 살고 돼지로 태어나면 돼지로 열심히 산다. 생하는 곳에 얽매인다. 시집가면 시집에 얽매어버리고 (所生所繫) 소생소개를 못하면 예전에는 이렇게 했는데 하며 적응하지 못하면 미움 산다. 얽매이면 집착이 생긴다. 집착을 중생은 욕심으로 집착을 하며 보살의 욕심은 원력이 된다. 보살님들은 원력이 있기는 있는데 구체적인 원력이 없다. 크게 과감할 필요가 있다. 원력이 없이 무슨 재미로 사는가. 얽매임이 집착이 되는 것이 문제이다. 집착이 어떻해야 없어지는가? 6식은 집착 없애지기 쉽다. 7식은 화가 나면 자기 스스로 제지가 되지 않아 남이 막아 줘야 한다. 엉뚱한 짓 하는 사람은 7식(얼굴이 백지장이 된다. 뼈를 화나게 한다) 6식은 화가 나서 쫒아가 그 상황에 가서 화내려 하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고 온다. (근육이 화가 난다.) 7식이 집착하는 것은 끌어 줘야 하는데 끄는 것은 아라한과(阿羅漢果)와 멸진정(滅盡定)에 든 자와 출세도(出世道)를 성취한 자에게서 비로소 물들고 얽매임이 없어진다.
아라한이 무엇이냐: 사선정을 닦고 사무색정 닦아서 사무색정을 다 끝나고 나서 그 다음에 이르는 자리가 아라한 구체적인 정신세계를 닦는 것이다. 사선정은 욕계(욕망)에서 벗어 나야 한다. 사선정(감정적인 것 극복) 사무색정은 사무색계를 닦는 과정 인간의 의식이 식이 일반범주를 초월하는 것 담장 하나만 있으면 밖에것 보이지 않으나 무색정에 들어가면 우주법계의 끝없는 공간이 확실하게 계합이 된다. 큰 범주로 바뀐다.
* 첫째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허공처럼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 두 번째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식이 무한하다고 보는 경지 마음이 다 통달),
* 세 번째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는 경지), 무소유 하나도 소유하지 않은 마음 스님들 3개월 이상 절에 살지 마라 그러면 애착이 생겨 기둥도 아까워 소유욕이 생긴다. 무소유경지만 가도 근심걱정이 없다.
* 넷째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우주법계를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는 정 팔 선정을 이루는 멸진정 구차제정 정을 9단계로 닦는다. 이것을 마치면 아라한에 이른다. 아라한은 집착이 없어진다.
멸진정(滅盡定) : 출세도 세간도 출세도 세간을 벗어난 도 세간도는 유위법 세계 유루의세계 인의예지를 가르치는 것. 출세도는 인의예지 현실적을 초월하여 정신세계 선악의 자리가 다 없어진 자리 선악을 나누면 세간도 선의 양면에는 악이 있다. 공자는 불세지 사업은 불교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당세사업이 아닌 만세사업 만대를 위한 사업 우리들은 인생사업도 못한다. 자기 공부를 해야 한다. 자기 공부가 되면 만세사업을 하여야 한다. 이것도 집착이 끈어진다. 만세사업을 하는 사람은 집착이 끈어진다. 집착이 끊어 졌기에 만세사업을 한다. 집착이 끈어지면 해탈이다.
유부무기(有覆無記) 경계에 동하고 장애를 받고 8식은 무부무기 경계에 동하지도 않고 장애도 받지 않는다. 7식은 동하기는 하나 끌고 가지는 않는다. 사량(思量)만 할 뿐이지 무기 기분 좋아 하지 도 나빠하지도 않는다. 기록을 하지 않는다. 경계에 동요는 하나 고락을 하지 않는다. 생하는 것에 따라 말라식에 능한 사람 시집가면 친정 잊어버린다. 있는 곳에 얽매인다. 출세간도 멸진에 들면 아라한이 된다. 7식에 문제는 유부 이것이 문제다 물드는 것 소생소계 메달리기를 잘한다. 유달리 집착이 심한사람. 집념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공부에 집념하면 좋고 나쁜것에 집념하면 나쁘다. 택산함괘가 나올 때 관상 좋으면 철인 관상이 요염하면 큰일 나는 사람 아무데나 빠지면 나쁘다.물드는것도 좋은 곳에 물들면 좋다. 그러나 출세간도는 좋은데 물들지 않는 것.
아라한의 경지 욕계 색계 무색계 욕계중생 5가지 장애속에 살고 있다. 덮을개 탐심.진심.혼침(눈뜨고 잔다.멍한상태).도거(산란심.후회).의혹(남을 믿지 않고 진리를 믿지 않고)
반조: 첫단계 반성 조금 더 올라가면 남은 보지 않고 나만 본다. 저 상황에 오면 나는 어떨까 그러면 그 사람을 허물할 수가 없다. 남의 상황을 보고 나한테 돌린다. 눈이 밖같것은 보지 않고 내 안만 본다. 이 자리는 시비가 끊어진 자리다. 돌이킬 반자를 쓴다. 시선을 안으로 돌린다. 밖같것을 보고 알지만 안을 볼 줄 알면 안에 삼천대천세계가 있어 보지 않아도 안다.
* 초선정은 탐심.진심.혼침.도거.의혹 5가지가 없어져야 한다.
* 이 선정 심사관찰 자세히 살피는 것 각관 열심히 규명하고 관찰하고 이런 자리가 끈어진다.살피지 안아도 알아지는 자리
* 삼선정 기쁠희 기뻐하는 마장, 비마 조금 있으면 없어질 텐데 무상, 희 고통이 끈어진자리
* 사선정은 즐거움이 끈어진자리 즐거울 락은 밖에서 오는 것 안에 있는 기쁜 마음 둘 다 끊어진 자리 담담한 마음 도덕경에는 있는 듯 마는 듯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은 있는 듯 마는 듯 담담한 자리 사선정을 끈은 것은 탐진치 심사관찰 희락이 끊어 진자리 그 다음에는
사무색정중
* 공무변처정 공간이 끝도 갓도 없는 공간. 사람은 이 세상을 자기 공간으로 할수 있는데 적은. 이 세상이 모두 자기 공간 새는 날아가고 싶은 공간은 다 자기 공간이다. 사람은 오르라 트려(좁게) 산다.
*식무변처정 아는 것이 끝이 없다
삼 무소유처정 무소유는 임종때
샛별을 보면 자기 공간이 없기에 자기가 다니는 곳은 다 자기 공간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공간만 생각한다. 이것이 중생이다
무소유는 임종때 밖에 모른다. 몸뚱이도 소유라 몸뚱이에 대해서도 보통 고통이 아니다.
비상 생각이 끊어진 자리 비비상 생각이 끊어 자리에서 만 가지지 생각 끝도 갓도 없는 생각이다. 우리는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판단하니까 한계에 부딪친다. 아라한 자리 구 차제정 (TAP정확하지 않음)
말라식 성상(性相)=사량(思量) 심소(心所)=사번뇌 5변행심소(心所) 작용=유부무기(有覆無記) 물들고 동하고 장애가 있고 그러나 감각이 없다. 불고불락 고통도 아니고 즐겁지도 아니하고 기록하지도 않고 기억도 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기 나는데 에는 얽매인다. 강아지 보면 지가 좋아 꼬리를 살랑살랑 거린다. 이런 작용이 먿는것은 아라한자리 멸진정자리 세간도의 자리에는 없다 이 자리는 아뢰야식으로 가면 보살경지로 구경지로 간다
제 8 송
次第三能變 差別有六種
了境爲性相 善不善俱非
제3능변(第三能變=6의식)은 차별(差別)해서 아는 것이 6종(六種)이 있으니 경계(境界)를 분별하여 아는 것으로 성상(性相)(性相)을 삼으며 선(善)과 불선(不善)과 비선비불선(非善非不善)인 무기성(無記性)을 갖추고 있다.
능변식의 핵심은 6근(안이비설신의) 만 가지고 차별이 되지 않는다. 6진(색성향미촉법)이 있어야 차별이 된다. 사람에게도 색깔(개성)이 있고 모든 물건에는 색깔이 있다. 물건은 빛깔이 있다. 바보도 색깔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개성이라고 한다. 물건은 눈으로 가려낸다. 귀는 소리를, 코는 향기, 미(味) 맛은 혀, 촉감 몸이 한다. 법은 의식 지나간 것 현재 정보 보관소 경계를 요별 한다 이것을 깊은 것이다 얕은 것이 두껍다 가볍다. 분별하는 것을 6식이라고 한다. 6근 6진 6식을 18계라고 한다. 밖같 경계를 가련 낸다. 요경으로 성상(性相)을 삼는다. 6근 가려내는 것 6식이 쉴틈없이 바쁘다. 阿賴耶識은 사수 선악이 없다. 6식은 속인다. 선악무기 다 있다. 잘 잊어버리고(무기) 불고불락 도인처럼 담담할 때도 있다. 처세에 능한 사람은 불고불락(6식에서) 6식에 불고불락은 진짜가 아니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 도인이라고 빠져 있는 것. 한수 높은 사람이 와서 찔러 보면 곧바로 무너진다. 일본에 병 고치는 사람이 “스님 어떤 염불을 할까요.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외어 만지면 모든 병을 낫게 했는데 참선을 잘 하는 사람이 어떤 염불을 했는가. 했더니 이생기심 응무소주를 했습니다. 했더니 그것이 아니고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고 바로 가르쳐 주어 염불을 했더니 그런 능력이 없어 졌다고 함.”
18세계(十八界)
6근(六根, 여섯뿌리, 느낌의 뿌리, 감각기관, 느끼는 곳), 6정(六情)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눈 귀 코 혀 몸 뜻함
6경(六境, 느낌의 대상, 세상), 6진(六塵)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빛깔 소리 냄새 맛 닿음 진리
6식(六識, 여섯 가리새)
견(見) 문(聞) 취(臭) 미(味) 촉(觸) 지(知)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보기 듣기 맡기 맛보기 느끼기 알기
3능변 6의식 요경으로 성상(性相)을 한다. 경계를 가려내는데 선악무기와 같이 있다. 선에도 악에도 무기에도 응한다. 그러나 이것을 감추고 안끼는데가 없다. 왜 능변이라고 하는가. 변화의 주체라는 뜻 능은 주체 마음의 주체는 능변 1능변은 아뢰야식 2능변은 말라식 3능변은 의식
아뢰야식에서 능력을 설명했는데 불가지 집수 처요 아뢰야식이 있는 자리가 불가지 하다. 아뢰야식이 받아드리는 용량이 불가사의 하다. 아뢰야식의 분별 능력 가려내는 능력 끝도 갓도 없다. 심소(心所) 촉. 작의. 수. 상. 사
말라식 사량(思量)으로 성상(性相)을 하고 사번뇌 5변행심소(心所) 아라한의 경지에는 없어 진다. 말라식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수행을 하면 없어지는 심소(心所)
6의식 차별을 하는데 6근 6경(진) 6식으로 한다. 가려내는데 바쁘다. 선악무기 전부 한다. 어떤 때는 착하고 어떤 때는 표독스럽게 보인다. 6식의 심상이 그렇게 생겼다. 경계를 분별하는 일.
요경위성상(性相)(了境爲性相) : 요경(了境)은 경계를 요별(了別)한다는 뜻이다. 6종의 특징은 한결같이 외경(外境)을 요별 함에 있다. 따라서 경계를 요별 하는 능변식(能變識)이라 한다.
6식은 경계를 요별하는 것이 그들의 성상(性相)이며 행상(行相)이다. 그러므로 위성상(爲性相)이라 하였다. 성(性)은 체성(體性) 또는 자성(自性)을 말하고 상(相)은 행상(行相) 또는 작용을 말한다. 행상 행동하는 모습(작용)이라고 한다.
범부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등 5관(五觀), 6식을 각기 별도로 쓰기 때문에 눈이 없으면 볼 수가 없고 귀가 없으면 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성자(聖者)는 6근을 자유로이 호용(互用)할 수 있어서 눈이 없어도 보고 귀가 없어도 들을 수 있으며 6근 중 하나만으로도 6근을 모두 쓸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 능력은 귀로 냄새를 받고 귀로 볼 수도 있다. 오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훈련을 안하는 것은 탐진치를 먼저 하기에 이런 수행이 밀리는 것이다. 부처님한테 꾸지람 듣고 3일 밤낮을 자지 않아 눈이 멀었으나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수행을 하여 천안제일 아나율다존자가 되었다.
제 9 송
此心所遍行 別境善煩惱
隨煩惱不足 皆三受相應
9송은 8송과 연결이 된다. 此心所는(6의식의 心所) 5변행(五遍行), 5별경(五別境), 11선(十一善), 6근본번뇌(六根本煩惱), 20수번뇌(二十隨煩惱), 4부정(四不定) 등이다. 이 6종식의 심소(心所)는 모두 고(苦), 낙(樂), 사(捨) 등 삼수(三受)와 상응한다.
8식 5 심소, 7식 9 심소, 6식 51심소
삼수는 선. 불선. 무기 또는 고(苦), 낙(樂), 사(捨) 등 삼수(三受)
苦는 기분 나쁘게 받아드린 것, 樂 기쁘게 받아 드린 것, 捨 기쁘지도 나쁘지도 않게 담담하게
차심소(此心所) : 이 송문(頌文) 첫 구의 차(此)는 요별능변식을 가리킨 말로서 6종식을 의미한다. 능변하는 마음이 8개(?)의 식(識)이기 때문에 이를 8식(八識)이라 하고 8식 모두를 심왕(心王)이라 칭한다. 식을 심왕이라 하는 것은 마음의 주작용(主作用)의 체(體)로서 경계를 주도적으로 요별 하기 때문이다.
식이 경계를 섭(攝)한 후에는 탐(貪)․애(愛)․뇌(惱)․원(怨) 등의 정서를 일으키므로 이를 심소유법(心所有法)이라 하며 약칭하여 심소(心所)라고도 한다. 마음이 작용하는 심소(心所)는 모두 51개인데 이 51개 심소(心所)는 모두 6식과 상응하고 이 가운데 34심소(三十四心所)는 전5식(前五識)과 상응하며 18심소(十八心所)는 말나식과 상응하여 8식은 5변행심소(心所)와 상응할 뿐이다.
이와 같이 8식이 5변행심소(心所)와 상응하다.54쪽 내용 참조
마음에 주작용 심왕(능) 상대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심소(心所)(소)
제 10 송
初遍行觸等 次別境謂欲
勝解念定慧 所緣事不同
먼저 제6의식인 3능변(三能變)과 상응하는 것은 변행심소(遍行心所)인 촉(觸)․작의(作意)․수(受)․상(想)․사(思) 등이요. 다음은 오별경심소(五別境心所) 즉 욕(欲)․승해(勝解)․념(念)․정(定)․혜(慧)니 이 다섯 심소(心所)는 반연하는 일(事)이 부동(不同)하다
5별경(五別境)
① 욕(욕망 욕구 욕망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선에 대한 욕망 좋고 악에 대한 욕망은 나쁘다. 6식은 선해봐야 선이 아니다. 의식으로 선한 사람은 웃고 겸손한 것 같아도 속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다.
선악을 떠난 선이 진짜이나 싫은 것에는 가지 않는다. 공부 못한 사람과는 친하지 마 완전한 선이 아니다. 공부 잘하거나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지 말고 친해야 한다.
진짜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바꿔졌다고 말하지 마라 약간의 의식 변화는 온다. 좋은 말을 많이 들었기에 초월해야 운명과 업이 바뀌는데 적극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
절에 가는가. 밝히고 가라. 가족 중심으로 수행하는 노력을 해라 부부가 함께 참선해라. 참선 자세를 잡아 주며 같이 앉아 잡아주면 남편교화 된다. 버리고, 안하려고 하는 마음도 있다. 이것은 좋은 심소다.
② 승혜 잘하려고 하는 마음, 남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마음, 잘보이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이 있어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③ 염 기억하는 힘 안 잃어버리는 힘 도교에서는 어떤 물건을 염력으로 움직인다는 엉뚱한 쪽으로 한다.
④ 정 몰입하는 힘이 있다. 자기 집에 위기가 처해지면 간절한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위기 극복이 된다.
⑤ 혜 감찰능력 혜와 염의 차이는 가리는 능력 선으로 가는 욕구가 정으로 가는 길목 선악을 초월하는 쪽으로 간다. 선악을 초월하는 자리는 정 뿐이다. 기억 불 망실 한번 본가 잊어버리지 않는 것. 지혜는 간택능력이 좋아야 지혜가 있는 것이다.
11선(十一善)
6근본번뇌(六根本煩惱) 탐진치 만이 악견
20수번뇌(二十隨煩惱)
4부정(四不定)
얼굴에 주름 있다고 겉대기 고치지 말고 승혜심 가지고 공부하라. 타고난 것이 몇 개 있다 못 벗어난다. 힘을 강하게 태어나는 사람, 부자로 태어난 사람 모래밭에 갔다나도 풀이 나서 부자가 된다. 이런 것은 못 따라간다. 승혜심은 따라 갈수 있다.
염도 연습하면 염력으로 된다. 자기가 주인이 되었을 때와 주인이 되지 않았을 때는 차이가 많다.
그러니 사람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옛날 노인네(시어머니) 동네 새로 이사 온 집 생일까지 기억을 한다.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경조사 기억하는 것 따라 갈수가 없다. 시어머니가 돌아가고 나니까 자기 시어머니와 같이 된다. 그 자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5변행 심소(心所)는 8 7 6식에 다있다. 5별경심소(心所)는 6식에만 있다. 작용은 다르나 수행자는 5별경심소(心所)가 유별나게 들어 나와야 한다.
6식에서 51개 심소(心所)다 잊어 버려도 욕 승혜 염 정 혜 있어야 이것을 의지하여 정에 들어가고 정에 들어가니 선악을 초월하고 선악을 초월하니 업이 바뀌고 업이 바뀌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공부는 듣고 마는 것이 아니다. 욕 승혜 염 정 혜 중정이 핵심 몰임 삼매를 통하여 엄청난 능력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소연사 5변행 심소(心所)와 5별경심소(心所)의 작용이 다르다. 나를 바꾸는 발심이 나와야 한다. 5별경심소(心所)에서 정을 하여 몰입삼매에 들어가야 한다.
8송에서부터 연결된다. 삼능변(제6의식은) 차별하는데 6가지(안이비설신의) 로 가려내고 경계를 가려 성상(性相)을 삼는다. 선(즐거울낙), 불선(고) 구비(불고불락=무기=담담함. 기록을 하지 않는다).
선은 선으로 기억을 하고 악은 악으로 기억함. 선악이 없이도 하고 자기 마음대로 밖에서 오며는 좋은 거다 나쁜거다 가린다. 구비. 즐거울 낙 괴로울 고. 8식 선악이 없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 시비가 없다. 갈등이 없다. 무기만.
7식은 유부무기(有覆無記) 물은 드나 보복은 하지 않는다. 밖같경계에 끄달리는 사람은 소인들이다. 의식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병난다. 6의식 희노애락이 나타나면 좋은 사람 아니다.
9송에서는 6식은 마음자리가 51개가 되어 바쁘다. 종교는 윤리강령은 아니다. 수행이 되면 윤리강령이 필요 없다. 8식의 마음을 쓰는 사람은 어느 것을 만나도 고통이 없기에 윤리강령이 필요 없다.
각종교가 기도라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축원과 같은 것이다. 다른 종교는 축원은 있고 기도가 없다. 기도가 있는 종교는 오로지 불교.
기도는 마음을 일념으로 만드는 것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생각만 하고 부른다. 하나된 마음으로 축원 하여야 성취가 있다.
왜 마음을 하나로 하여야 하는가? 6의식은 마음이 51개인데 이 마음이 제각기 놀면 안 된다. 마음 따로 몸따로인 사람은 천한사람이다. 이 마음은 하려하고 이 마음은 하기 싫어하고 51개의 마음이 제각기 움직인다.
안이비설신의가 전부 제각기 논다. 참선할 때는 더 그렇다. 과거 현재 미래 전생(이생에서 보고 듣지도 않은 것이 떠오를 때) 일념이 되지 않으면 관세음보살을 볼수가 없다. 심소(心所)를 설명했다. 학문 중에 유식(唯識)이 어려워 가르치지 않는다.
三受 苦. 樂. 捨 고통으로, 락으로, 받아들이고 사 불고불락. 담담하게 받아드리고 심소(心所)도 많고 좋은 일 나쁜 일 기억하니 바쁘다. 안이비 설 신의가 부딪쳐서 아는 것이 촉이다.
사람은 감각기관이 많으나 하등동문은 감각기관이 적다. 나이 먹었다고 못한다고 하지 말고 받아드릴수 있는 준비를 하면 끝없이 받아드린다.
10송에서는 5별경심소(心所) 설명 좋아하는 마음이 나오지 않으니까 잊어버리는 것이지 좋아하는 사람 전화번호는 잊어버리지 않는다. 염력(잊어버리지 않는 것)
염력으로 물건을 움직이고 하는 것이 정통이 아니고 들은것 잊어버리지 않고 본것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염력이다. 정력 삼매력 한 가지 일에 몰두 할줄알아야 한다. 혜력 정력을 하면 혜력은 저절로 얻어진다. 제 6의식에 이런 좋은 심소도 가지고 있다.
제 11 송
善謂信慙愧 無貪第三根
勤安不放逸 行捨及不害
6종심소(心所)(六種心所) 가운데 선(善)이란 이른바 신(信)․참(慙)․괴(愧)와 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痴) 등 3선근(三善根)과 근(勤)․안(安)․불방일(不放逸)․행사(行捨) 그리고 불해(不害)이다.
선에는 11가지 마음이 있다. 5변행심소(心所)빼면 46개(선11개 악 35개) 선의 마음자리보다 악의 마음자리가 많아 훌륭한 사람도 악의 요소가 따라 다닌다.
이 송(頌)은 제3능변식(第三能變識) 곧 제6식(第六識)과 상응하는 선심소(心所)(善心所)의 열한 가지를 설명한 구(句)이다. 이 송문에서 선(善)이라고 하는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었다 할 수 있다.
⒈ 신(信) : 신앙심(信仰心) 또는 신념(信念)이다. 바른 신(信)에 3종(三種)이 있다. 善중에 가장 첫째가 믿을 信字이다. 진리를 믿는 사람과 남의 말을 믿는 사람과 차이점이 있는데 남의 말은 믿으나 진리를 믿지 않는다. 남의 말도 가르쳐준 말은 믿지 않고 간접적인 말을 더 믿는다.
① 신실유(信實有) : 실유(實有)란 환유(幻有)가 아닌 제법실성(諸法實性)을
말한다. 이러한 실성(實性)을 믿는 것을 신실유라 한다.
② 신유덕(信有德) : 불보살(佛菩薩) 등 세간에 덕있는 성현(聖賢)을 믿는
것이다.
③ 신유능(信有能) : 세간 출세간의 재능(才能)․기예(技藝) 및 각종 학문을
닦음으로써 자신을 성취하고 세상에 이익을 끼칠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이상의 3종(三種)이 신(信)이 되어 정진한다면 마음이 안정되고 도업(道業)이 증진되므로 11선(十一善) 가운데 신(信)이 으뜸이 된다.
⒉ 참(慙) : 선(善)을 숭상하고 악(惡)을 스스로 수치로 여겨서 죄악을 짓지 않음을 말한다.
부끄러울 참 나쁜 업을 짓지 않는것 부끄러움을 아니까 (부작업)
⒊ 괴(愧) : 죄악에 대한 수치심이니 감히 죄업을 짓지 않음을 말한다.
부끄러울 괴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음 (지혜로움이 많은 사람) 참괴 심은 누구에나 있는데 악의 마음이 많아 선의 마음을 악이 이기기에 이런 생각이 금방 꺽여진다.
⒋ 무탐(無貪) : 사물을 수용함에 스스로 지족(知足)할 줄 알아서 일체 탐착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무탐진치는 삼독이 없는 마음이 선한 마음 무탐(탐욕이 없는 마음) 무진(성내는 마음) 무치(어리석은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정책을 세워졌다 정책을 말하지 않고 신하에게 묻는다. 자기가 생각했던 것 보다 좋은 면 좋은 쪽으로 바꾼다. 이러면 성군이다. 성군이 아닌 사람은 묻지도 않으며 그러시면 되지 않는다고 하면 귀향을 보낸다.
지혜 있는 사람은 묻는 사람이다.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도통한 사람은 묻고 한다. 그러나 보통사람은 도통한 사람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다 아는 것으로 안다.
묻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능한 사람이라도 묻다보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다. 살림하는 보살님들도 묻지 않고 하기에 발전이 없다. 스님들은 살림하는 것을 배운다.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물어보고 살림하고 하면 살림도 道가 된다.
⒌ 무진(無瞋) : 성내지 않는 마음이니 설사 재해(災害)를 당해도 인내로써 수용하며 어떠한 역경계(逆境界)에 대하여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서 성내고 한탄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⒍ 무치(無痴) : 사리(事理)를 명백히 요달(了達)하여 어리석은 마음이 없음을 말한다. 어리석음이 곧 무명(無明)이니 무치는 무명이 끊어짐을 말한다. 이상의 탐․진․치(貪․瞋․痴)를 삼독(三毒)이라 하고 3독의 마음이 없으면 3선근(三善根)이라 하며 이는 일체 선법(善法)이 되기 때문이다.
⒎ 근(勤) : 근(勤)은 정진(精進)의 뜻이니 선(善)을 닦고 악(惡)을 끊는 데 전념하여 물러섬이 없어 반드시 선법을 성취하고 악법을 단절함을 말한다. 부지런함도 선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큰 부자는 하늘에 있고 적은 부자는 부지런함에 있다“ 했다
⒏ 안(安) : 안(安)은 경안(經安)의 줄임 말로서 어떤 일에 몰두하여 부지불각(不知不覺)에 몸과 마음이 경쾌하고 안락함을 말한다. 능숙할 때까지 훈련을 하여야 한다. 설날 차례 상 차릴 때도 우물쭈물 제사상도 우물쭈물 능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사람은 매사 완전히 훈련을 하여 능숙할 때가지 해야 한다. 능숙할 때까지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맨날 서둔다. 훈련에 의하여 능숙해 지면 편안해진다.
⒐ 불방일(不放逸) : 방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방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규범을 지키고 정진(精進)에 전념함을 말한다. 방종(제멋대로사는것)하지 않는다.
⒑ 행사(行捨) : 행사는 집착을 끊는다는 뜻으로 괴로움이나 즐거움에 동요되지 않고 방하(放下)하는 것과 허둥대지 않고 적정(寂靜)에 주(住)하는 것이 있으니 이를 사(捨)라 한다. 단순히 사(捨)할 뿐 아니라 사로써 행(行)하기 때문에 행사라 한다. 불고불락(無記) 원수진 사람 이빨 갈며 머리에 넣어 두지 마라.
⒒ 불해(不害) : 모든 유정(有情)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지 않고 오로지 발고여락(拔苦與樂) 즉 고통을 덜어주고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므로 불해(不害)라 한다.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는 마음 이것도 중생의 불해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는 것. 보살의 불해 남의 고통은 덜어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
*11선 외우기 신.참.괴.(무)탐.진.치.근.안.(불)방일.행사.불해 뜻으로 외어지지 않으면 입으로 외워라
제 12 송
煩惱謂貪瞋 痴慢疑惡見
隨煩惱謂念 恨覆惱嫉?
6종심소(心所)(六種心所) 중 근본번뇌(根本煩惱)에는 탐(貪)․진(瞋)․치(痴)․만(慢)․의(疑)․악견(惡見)이 있으며 수번뇌(隨煩惱)에는 분(忿)․한(恨)․부(覆)․뇌(惱) ․질(嫉)․간(?)이 있으며.
번뇌에는 6번뇌 수번뇌 20개 마음 중에서 제일 많은 것이 번뇌다. 사람의 심소중(51심소)에서 번뇌가 26개가 된다.
貪嗔痴가 없으면 善, 있으면 惡, 煩惱의 기본 뿌리는 탐진치다. 탐(貪)․진(瞋)․치(痴)․만(慢)․의(疑)․악견(惡見) 세상사람 운명의 한계는 만이 생기면 더 크지 못한다. 부자가 되기 전에는 착하고 부자 되면 오만이 생긴다. 만이 생기면 그릇의 한계라는 점을 명심할 것.
의(疑) 의심의 반대는 신의 악견(저것은 죽어버리지도 않고 형제간에도 저놈의 형 죽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악견 크면서 이런 악견이 사라지는데 커서도 남아있는 것이 있다. 오만에도 사람의 기량에 따라 다르다.
영가스님이 육조스님 찾아뵙고 절도 하지 않고 육조스님을 빙글빙글 세 번 돌면서 주장자 땅땅치는 오만함. 한나라를 통일한 한고조와 항우는 비교되는 인물이다. 항우는 마음이 사병을 보며는 고생했는가. 밥은 먹었느냐 등등 부드럽게 그러나 유방은 사람을 불러놓고 평상에 걸터앉아서 여자 보고 발닦아달라하면 발 닥아 준 사람이 기분은 나쁘다 오만한 성격은 유방 부드러운 사람은 항우다. 그런데 유방은 오만하기는 오만한데 사람 일을 시키면 일의 대가를 크게 준다. 항우는 부드럽기는 한데 일 대가를 후하지 않게 주었다. 대가를 줄때도 아까워한다. 항우는 남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다.
남을 해치는 오만이냐 남에게 해치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오만에 큰 이익을 준다면 오만, 불오만을 따질 수가 없다. 남에게 이익을 주지도 않는 오만함은 안 되는 것이다. 탐.진.치.만.의.악견 육번뇌를 알았으니 이것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수행이다. 貪嗔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道 닦는 것이다.
번뇌에는 근본번뇌(根本煩惱)와 지말번뇌(支末煩惱)가 있으니 수번뇌는 지발번뇌에 속한다.
분 한 뇌 부 광 첨 교 해 질 간--소수(小隨)
무참 무괴---중수(中隨)
불신 해태 방일 혼침 도거 실념 부정지 산란--- 대수(大隨)
20가지 수번뇌
① 분(忿) : 역경계에 대하여 분개하고 분노심을 발하여 업을 짓는다. 일생을 한번 분심을 못 참고 버린 사람이 많다. 다 했던 일 나 안 해 하고 찢어 버린 사람 기분 나쁘면 하지 않는 것 분심을 참지 못해서이다.
② 한(恨) : 분한 마음이 계속되어 원한의 독(毒)을 내는 것이다. 남에게 원망을 많이 하는 사람. 자기가 잘못하고 누구 때문에 손해 보았다. 원망이 끊어지면 보통 마음이 편안한 것이 아니다.
③ 부(覆) : 은폐의 뜻으로 자기의 업을 은폐시키는 것이다. 자기허물을 덮어버린다 은폐해 버린다.
④ 뇌(惱) : 분한(分限)을 계속하여 포악해지는 것이다. 번뇌한다. 고민하다.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을 듣고 보면 고민 꺼리도 되지 않는다. 고민걸이를 가지고 고민하면 답이 딱 나고 고민을 해도 해도 답이 없는 고민거리가 되지 않는 것을 고민하면 답이 없다. 같은 고민을 하더라도 공부하는 것이 왜어 지지 않는 것에 대해 고민해 봐라. 뭐든지 하기 싫어질 때
⑤ 질(嫉) : 질투심으로 남을 음해하고 중상 모략함을 말한다. 여자가 질투가 많은지 알았더니 남자 질투는 살인이 난다. 자기 건강을 해치고 질투 때문에 일생을 망친사람 많다.
한나라때 한고조 유방 부인이 여후인데 실제로 여우 짓을 잘했다. 대단한 여자다. 자기 자식들로 400년 역사가 가기 싶지 않은데 남편과 같이 나라를 뺏은 사람 한신. 소하 이런 사람들을 힘도 하나드리지 않고 다 죽여 버린다. 이 여자가 똑똑해서 그런지 유방이 부인을 싫어하고 둘째 부인만 좋아하는데 태자를 둘째 여자의 아들로 하려고 한다. 첫부인인 여후가 화가 났다. 신하들이 끝가지 거부하여 둘째 부인 자식으로 하지 않았다. 여후가 장자방한테 다시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방법을 말하려하니 장자방이 알려주었다.
장자방한테 이런 지혜가 있는 것은 명예를 탐하지 않고 욕심 없어서이다. 천하 통일을 하고 임금이 내 마음껏 땅을 가지라고 했으나 “다 필요 없고 제가 말한 것을 가지고 천하 통일한 것만으로도 고맙다 상을 주시려 며 고향의 땅덩어리 조금만 달라”고 했다.
장자가 말하기를 답이 있기는 있다. 한고조 임금께서(여후남편) 꼭 필요해서 초청을 네 사람에게 했는데 그 네 사람이 응하지를 않았다. 그 네 사람을 태자하고 묶어주자 태자하고 어울리는 것을 한고조가 보면 태자 바꾸자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네 분의 귀인을 찾아가 간절하게 청하니까 네 명이다 왔다. 한고조가 명령을 해도 응해 주지 않았는데 그분들을 태자가 청해 잔치하는 모습을 한고조가 보게끔 유도하고 생전 보지 못한 사람들 모습에서 대단한 사람으로 느껴져 누구냐고 물으니 명령을 해도 오지 않고, 임금이 목메어 부른 사람들인데 불러도 오지 않더니 어찌 내 자식하고는 어울린가.?
당신은 오만하기 그지없고 태자는 착하고 순수하여 순수한마음으로 배우고자 하니 우리가 여기를 오지 않겠는가. 한고조가 돌아서 가며 내가 죽고 나서도 태자를 잘 보살펴 주거라. 둘째 부인한테 가서 틀렸다. 네가 오라고 하던 사람들도 오지 않던 사람들이 태자를 옹호 하고 있으니 단념 하라고 했음.
한고조가 죽고 나니 둘째 부인을 여후가 눈을 짖어버리고 팔다리를 잘라버리고 여후는 인체라고 사람 돼지라고 하여 돼지우리에 가두었다. 태자가 임금 되었을 때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구냐 하니 둘째어머니라고 하니 아들인 임금이 정사를 보지 않고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아들로서 어머니의 그런 것을 보고 정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하면 정사를 보지 않고 술만 마시고 지냈다.
처음에는 흉하게 소문이 나다가 태자가 그렇다고 하니 오히려 태자의 동정으로 어머니의 죄도 감춰지게 되었다. 여후의 고약한 소문은 어디로 가고 태자의 동정으로 어머니의 죄가 없어져 버렸다. 태자의 어진 마음으로 세상 사람의 마음을 다시 얻어 임금 자리를 지켰다. 한고조가 싸워 이룬 나라를 부인 여후 질투로 다 뒤집어엎을 뻔 했는데 태자가 다시 그 자리를 지킨 것이다. 그래서 한 고조가 400년이 간 것이다.
질투는 나망치고 집안 망치고 나라 망치는 것이다.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원효대사 여자가 3명이엿다. 공자가 왜 여자마음은 알지 못하겠다. 했는가. 공자가 3대가 축첩을 한다. 자기가 당한 사람은 그것을 주장한다. 예의도덕 주장한 사람은 자기가 당한 사람이다. 영가스님도 여자한테 당하면 여자는 독사보다 무섭다. 여자한테 한번 얽히면 빠져 나갈 수가 없다.
문집에다 써다. 문집은 자기의 핵심 사상인데 그곳에다 그렇게 써다. 남자는 질투하면 살인난다. 녹음기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하도 많이 당하면 가지고 다닌다. 내가 질투가 없으면 남도 질투가 없다. 수준이 낮은 사람은 소문에 약하여 어한 소리를 듣고 아하고 소문이 퍼지고 어한 사람은 슬며시 빠진다. 이럴 때 어한 사람이 더 나쁘다.
⑥ 간(인색할 간) : 인색한 마음이니 남에게 도움 주는 일을 않는 것이다. 첫째 말이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말이라도 후하게 둘째 행동이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인색하고 부자가 된 사람이 없다. 아끼고 부자 된 사람은 있다. 아끼고 아낀 것을 올바른데다 쓰는 것이고, 인색은 아끼느냐고 쓰지를 않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끼고 인색하지 마라. 꼭 필요한 것을 써야 한다. 돈을 잘 못쓰면 버리는 것이다. 부자가 필요한데 쓰는 것이 아니고 뺏기듯이 돈을 쓴다. 사회사업을 할 때도 꼭 필요한데 써야 하는데 뻐기듯이 하니 결국에 사기를 당한다. 끝까지 꼭지면 김선달 같은 사람한테 빼앗긴다. 아끼는데 꼭필요한 곳에 써라. 간은 간탐심이다. 아끼고 탐하는 마음 이런 마음 가진 사람을 누가 좋아 하는가.
번뇌는 30번뇌(4번회 6번뇌 20수번뇌) 번뇌를 없애는 것은 깨달음 아!~ 이것이 번뇌구나 노력해서 없어지는 것은 소인(?) 노력해서 생기는 것은 노력하지 않으면 깨지나 깨달은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 마음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말한 것이 유식(唯識)이다. 51개의 심소(心所)가 설명되고 이 마음을 어떻게 수행하느냐
옛날에는 글이 능해 보고 알았다. 수행하는데 수칙(수행의 법칙) 유식을 가지고 공부했다. 불교가 쇠퇴하면서 유식이 거의 다 없어지기 시작했다. 경전위주를 공부를 했고 경전을 보면 발심이 됐고 발심이 나면 보살이 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방법을 찾아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참선할 때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마음이 누구나 일어나나 수행하다 보면 반으로 줄고 그것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유식을 공부하면 마음으로 공부를 하는데 깊은 마음, 옅은 마음을 다 붙잡고 갈수 없으니 버릴 것은 버리고 가지고 갈 것은 가지고 가야한다. 그런데 놓을 것은 놓치못하고 가지고 갈 것은 붙잡고 가는 형국이다. 탐진치 악견 버릴 것. 6번뇌는 놓아 버려야 한다. 참선할줄알고 염불할 줄 알게 된다.
8송에서부터 의식의 심소(心所)를 설명하고 있다.(6식)
9송 구체적으로 5변행. 5별경 11선 20수번뇌
11송 6번뇌 탐진치만의 악견
12송 수번뇌(지말번뇌=가지번뇌)
밖에서 탐하고 밖같경계에서 6번뇌는 밖같에서 내는 번뇌 지역감정이 없어지려면 그 지역의 잘못된 풍습을 바꾸어 주면 그 지역이 발전이 된다. 누구나 오만심이 생기면 그때부터 발전이 되지 않는다. 학자들은 자기네들끼리 존경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존경하지 않는다.
[유식삼심송 63쪽 설명] 탐진치만의(5둔사=사혹) 이것을 버리지 않으면 육도를 계속 윤회한다. 5둔사가 운명을 만든다 주제한다. 사(使-쫒는다.시킬사) 명령한다. 내운 명은 5둔사가 주제한다. 주재자가 따로 있지 않다. 끈기 어렵다. 5둔사가 나를 몰고 간다.
사혹 밖같경계에 어둡다. 생노병사에 대처하지 못한다. 미사 사물(경계)에 어둡다. 악견(惡見)은 五利使라고도 하는데 이치에 어둡다. 악견은 견혹(見惑)이라고 하며 안에 것이 이치가 분명하지 않아 일어 나는 것 잘못된 소견(64쪽)
악견(惡見)은 五利使
① 신견(身見) : 아견(我見)과 아소견(我所見)이다. 모든 중생은 오온화합생(五蘊和合生)이어서 마침내 환멸(幻滅)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내 몸[我身]이 실제 존재한다고 여겨 탐진치 등 번뇌를 일으킴을 아견(我見)이라 하고 의식주(衣食住) 등을 소유함에 본래 정해진 주인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소유로 집착하는 것을 아소견이라 한다. 아견과 아소견을 통칭하여 신견이라 한다. 이 몸뚱이가 잠시 있다 없어질 것을 수용하지 못한다. 죽는다는 것을 상상도 못하고 산다. 죽기 전에 100만송을 하고 가라.
② 변견(邊見) : 어떤 수행자가 아견으로 사후의 세계를 추측하여 죽음 자체로 모든 것은 끝나고 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을 단견(斷見)이라 하고 또 어떤 수행자가 사후에도 영원불멸하여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여기는 것은 상견(常見)이라 하는데 이러한 생각을 공견(空見)․유견(有見) 또는 단견(斷見) 상견(常見)이라 하고 이는 모두 양변(兩邊)이 되어 중도(中道)가 아니기 때문에 변견이라 한다. 죽고 나면 그만이지 살 때 잘 살아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죽고 나면 그만 아니다. 죽고 나면 후회한다.
③ 사견(邪見) : 잘못된 생각, 삿된 생각이다. 사견 중에 가장 극심한 사견은 인과(因果)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인과를 믿지 않으므로 악행(惡行)을 자행하고 선근(善根)을 저해하여 자신을 해치고 남에게까지 피해를 주기 때문에 사견의 피해는 언설로 다하기 어렵다. 제일 잘못 믿는 사람. 인도의 나지니씨 같은 사람. 인과를 믿지 않는 것이 사견이다. 도둑질하면서 “누가 알아”
④ 견취견(見取見) : 자기의 견해는 옳고 다른 사람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라고 고집하는 것을 견취견(見取見)이라 한다. 남의 소리는 죽어도 안듣는다. 보살님들한테 이렇게 합시다. 하면 안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라고 하지 말고 네 알았습니다, 하면 될 것을
⑤ 계금취견(戒禁取見) : 계율에 집착하는 견해로서 예를 들면 인도 사람들이 소[牛]를 본받으면 생천(生天)할 수 있다고 믿고 중국 사람들이 채소를 먹으면 득도(得道)할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계율만을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삼양라면 인도로 수출했는데 소머리 그려졌다고 다 반품. 중국 스님들은 채식해야 된다. 계율이란 그 날에 특성에 따라 다르다. 잘못된 견해 똑 끈어버리기 힘들다. 5둔사가 남아있구나 아직도 내가 이렇구나 하며 반조한다. 기본계율은 살. 도. 음이다.
제 13 송
誑諂與害憍 无慙及無愧
掉擧與昏沈 不信幷懈
8송(八頌)에서부터 계속 이어지는 제6의식의 심소로서 속이는 마음(?), 아첨하는 마음(諂), 피해를 끼치는 마음(害), 교만한 마음( ),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無慙), 염치없는 마음(無愧), 산란한 마음(悼擧), 멍한 마음(昏沈), 믿음이 없는 마음(不信), 게으른 마음(懈怠) 등과.
어지간하면 공부해라. 밀어붙여라 . 공부하면 처처에 황홀경이 있다. 좋은 것 많이 먹으면 몸 좋아 지듯이 공부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마음이 무거우면 몸도 무겁다.
7 광(誑)의 뜻은 속이는 마음, 미혹한 마음, 가식적인 마음, 이율배반적인 마음이며 이러한 망령된 마음으로서 남을 이간하고 위선으로써 남에게 군림하고자 하며 폭력으로써 남의 것을 갈취하고자 하는 심소(心所)이다. 속이는 마음
8 첨(諂)의 뜻은 첨곡(諂曲)이니 힘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고 받드는 것을 첨(諂)이라 하고 마음이 왜곡되어 정직하지 못함을 곡(曲)이라 한다. 아첨과 왜곡은 자신뿐 아니라 남까지 망치게 하는 소인배의 심소(心所)(心所)이다. 아첨하는 마음
9 해(害)의 뜻은 남에게 이익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손해(損害)를 입히고 피해를 주는 악(惡)의 심소(心所)로서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마음자리이다.
10 교(憍)의 뜻은 교만한 마음이니 자신을 과시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을 말한다. 교만은 신분이 상승할수록 생기는 마음으로 사람이 교만한 마음이 생기는 순간 더 이상 상승할 수 없게 되어 인간의 한계를 짐작할 수 있게 되는 마음자리이다.
11 무참(無慙)의 뜻은 수치심이 없고 현선(賢善)을 숭상하지 않으며 거리낌 없이 죄업(罪業)을 짓는 것을 말한다.
12 무괴(無愧)의 뜻은 염치없는 마음이니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참회할 줄 모르는 마음이다.
13 도거(悼擧)의 뜻은 산란한 마음이니 안으로 마음을 쉬지 못하고 들떠 있어서 불안정하고, 바깥 경계에 쉽게 자극을 받아 허덕이는 마음이다. 머리를 들고 나타난다. 안에가 부글부글 끓는다. 참선만 하려하면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아 어려우나 혼침보다는 낫다.
14 혼침(昏沈)의 뜻은 마음이 미혹하고 양명하지 못해 마치 잠결에 행동하는 것처럼 의욕이 없이 진로의 향방이 불분명한 마음이다. 마음이 컴컴해진다. 형광등 같은 사람
15 불신(不信)의 뜻은 실상(實相)을 믿지 않고 덕(德)을 믿지 않고 능(能)을 믿지 않는 마음으로 이는 정법(正法)을 믿지 않으므로 타인(他人)은 물론 자신마저도 믿지 못하는 마음이다. 나를 믿지 않으니까 남도 믿지 않는다.
16 해태(懈怠)의 뜻은 향상(向上)에 뜻이 없어서 악(惡)을 끊고 선(善)을 행하는 일에 진력(盡力)을 다하지 않음을 말한다. 하루 일과를 정하고 다하지 못하면 자지마라.
제 14 송
放逸及失念 散亂不正知
不定謂悔眠 尋伺二各二
17 방일(放逸)의 뜻은 밖으로 경계를 탐착하여 염(染)을 막지 않고, 정(淨)을 소홀히 하여 방종한 마음이니 사람을 방탕하게 하여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게 하는 심소(心所)이다.
18 실념(失念)의 뜻은 과거에 익힌 경계를 기억하지 못하여 연결력이 상실된 마음으로 건망증에 해당된다. 이 심소(心所)는 도업(道業)을 성취하고자 발심은 하지만 바로 망각하는 습성 때문에 정념(正念)을 장애하여 성취할 수 없게 하는 마음자리이다. 이 책 저책 많이 보지 말고 한 가지를 가지고 공부해라 밭을 갈더라도 야물게 해 놓아라. 야물게 하지 않으면 실념(失念)이 된다.
19 산란(散亂)의 뜻은 바깥 경계에 끌려 정념(正念)을 상실하고 유탕(流蕩)한 마음을 일으키는 심소(心所)로서 안정감이 없어서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하므로 도업을 성취할 수 없게 하는 마음자리이다. 노래하는데 가면 노래하고 싶고 가는 것 보는 것 마다 하고 싶어지는 사람. 이런 것에 동요되지 않는 사람은 공부가 반은 된 사람이다.
20 부정지(不正知)의 뜻은 바깥 경계에 대해서 그릇된 견해를 일으켜 곡해(曲解)함으로써 정지(正知)를 장애하고 도업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의식이 치우쳐 바른 길을 상실하게 하는 심소(心所)이다.
안정이 되지 않은 것. 부정은 결정이 나지 않는 것 이쪽으로 갈수도 있고 저쪽으로 갈수도 있다. 허망한 중생이 부정지 중생이다. 자기 진로에 대해 결정이 나지 않은 사람. 지금부터 금강경 10만송을 한다. 그 공덕으로 대대손손 손자들 까지 인물 나온다. 할머니가 10만송 하고 돌아가면 할머니 극락왕생이 문제가 아니고 그 집안에 인물 나온다. 성문(법문 들으며 눈이 반짝반짝) 연각. 달리기 선수가 달리는 것 외엔 없다. 나를 변화는 것 공부 밖에 없다. 탐진치(貪嗔痴)가 끊어지려면 공부가 들어가 줘야 다른 것이 도망간다.
인간은 의식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고 본능가지고 살아간다. 의식은 조절이 되나 본능은 조절이 되지 않는다. 용광로에 들어갔다 와야 한다. 달리기 할 때 고비가 있다 그것 지나면 뛰어도 힘들지 않는 경지까지 가야 한다. 달리기 할 때 심장이 떠질 것 같다 이렇게 뛰다가 심장이 떠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면 터지지 않고 다리가 겹쳐지려고 할 때 겹칠 때까지 뛰자고 하면 겹치지 않고 간다. 이렇게 한번 극복하면 된다.
이상에서 밝힌 것은 12송(十二頌)에서부터 말한 20수번뇌(二十隨煩惱)의 심소(心所)이다. 이미 설명했듯이 수번뇌는 지말적인 번뇌에 해당되지만 끊어 버리기 쉽지 않으며 극복하기가 간단치 않아서 수행자의 수행 관문이라 하겠다. 끝으로 4부정심소(四不定心所)를 밝혀 번뇌의 미세함까지 끊어 본래 청정한 마음자리를 회복하고자 한 것이 본송(本頌)의 의미이다.
부정(不定)의 심소(心所)는 4종(四種)이 있으니 회(悔): 누위침 잘못된 면(眠)․정신적 휴식 수면의 심소(6식) 회와 면을 같이 본다. 심(尋(찾을 심) 사(伺) 살필사 이게 뭘까 나한테 없는 마음은 나오지 않는다. 탐진치가 많으면 심사가 적어진다. 찾고 살피고 善으로 살피는 경우 악으로 살피는 것 등이 있다. 각각 둘이다 선악이 둘이다. 휴식하는 심소(心所)가 6식에 있다. 잠이 깊이 들면 고놈이 주인이다. 尋(찾을 심) 사 심사: 살피고 찾고 살피고 찾고 한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 심사가 없다. 화를 잘 내면 심사가 약하다.
4부정지는 회(悔)·면(眠)과 심(尋), 사(伺) 등이니 이 이류(二類)는 각자 선·악 2성(二性)에 통한다.
제 15 송
依止根本識 五識隨緣現
惑俱惑不俱 如濤波依水
사량(思量)분별(思量分別)하는 마음인 전5식(前五識)은 모두 제8근본식(阿賴耶識)을 의지하여 반연을 따라 작용이 일어난다. 전5식(前五識)이 작용할 때는 눈과 귀 등 여러 식(識)이 함께 작용하기도 하고 일식(一識)씩 단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전5식이 근본식(根本識)을 의지하여 마음을 일으키는 정형(情形)은 마치 파도가 물을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과 같다.
依止根本識 근본식을 의지하여 5의식이 인연 따라 나타난다. 제6의식 작용은 자기 스스로 하지만 아뢰야식을 의지한다. 8식을 의지하지 않으면 의식 작용을 하지 않는다. 밖같경계는 5식(안이비설신)인연 따라 나타난다. 의지는 8식에 한다. 예를 들어 눈은 무엇을 의지하여 보는가. 시계를 볼 때 의식은 시계를 보는 것이 아니고 8식에 의지한다. 눈의 의지 처는 경계, 의식의 의지 처는 경계가 아니고 안의 아뢰야식이다. 귀는 소리가 경계이나 의식의 의지 처는 아뢰야식에 의지한다. 5식의 의지 처는 밖에 있다. 인연 따라 나타난다. 보는 것이 인연이면 보는 것으로, 냄새는 코로 상황에 따라 나타난다. 밖같의 상황에 따라서 작용을 해준다. 아뢰야식은 동요하지 않으나
惑俱惑不俱 손자(5식)에 의지하여 혹 갖추어 지고 혹 갖추어지지 않는다. 눈은 보려고 하면 9가지 인연이 되어야 보여진다. 눈을 거리가 있어야 본다. 비 설 신 7연 이식 명연 제외 파도가 물을 의지하는 것과 같다. 물이 없으면 파도가 생기지 않는다. 파도는 물을 작용이다. 마음의 작용이 무엇에 의하여 작용하느냐 의식은 8식 의지처, 안이비설신의는 색성향미촉법에 의하여 상황에 의해서 의지가 된다.
7식의 심소(心所)인 사번뇌(아치 아견 아만 아애)를 합하여 51심소(心所)+4번뇌=55개의 심소(心所)가 있다. 어떻게 하여야 극락에 가는가.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가.
8송부터 6의식 설명 10송-14송 6의 심소(心所)를 설명 51개의 심소(心所) 설명
15송에서는 눈이 보고 귀가 듣는 것은 근본식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미워하고 좋아 하는 것도 식의 원천이다. 식이 끊어지면 그것이 끊어지는 것이다. 산중에 앉아서 일생을 보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한 기간 기간 동안 자기를 버리고 수행하고 깨달으면 내려와 자기 공부한 것을 같이 나누워 주어야 한다. 자기 혼자 극락 가는 것 보다는 지옥을 여럿이 가는 것이 낫다. 공부해서 환원을 해야 한다. 안이비설신의는 8식에 의지하여 5식의 인연 따라 나타난다.
혹구혹불구(惑俱惑不俱)혹은 구하고 혹을 불구하고 마음이 일어나는 9가지 조건이 되어야 일어난다. 공간과 빛깔이 갖추어 줘야 한다. 눈은 9가지가 다 있어야 본다. 다 있어도 안근이 없으면 볼수 없다. 좋다 하면 좋은 종자가 있어야 받아 드린다. 깊은 지식은 깊은 지식을 쌓을 종자가 있어야 하고 참선해서 깊은 경지도 깊은 경지의 종자가 있어야 자라난다. 9가지 인연이 갖추어져야 눈은 본다. 귀는 빛이 필요 없다. 8가지 인연만 있어도 된다. 비설신 코 혀 몸은 공간 빛깔도 필요 없기에 7연만 있으면 된다.
혹구혹불구(惑俱惑不俱)는 눈은 9가지 인연, 귀는 8가지 인연, 비설신은 7가지 인연.
1500년전 이렇게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었다는 것은 사량(思量)분별로 할 수 없다. 이런 정의 안목은 도안이다. 지금은 가능하나 그때는 도안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지식이 없는 세상에 진정한 지식은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나온다. 지식이 아무리 향상되어도 지식은 능가 할 수 없다. 이것을 능가하려면 삼매에 들어가 능가해야 한다. 지식으로 받아 드린 상태에서는 능가할 수가 없다. 글씨를 잘 쓴 다해도 왕희지를 능가 할 수 없다. 왜 그런 것이 나왔는가? 왕희지의 난정기 장군인데도 글을 잘 쓴 것은 지식을 뛰어넘어 도의 경지가 넘어 갔다. 글을 쓰는 사람이 기계가 되지 않고 마음공부가 되고 나야 한다.
① 공연(空緣) : 공간 또는 거리이다.
② 명연(明緣) : 빛이니 밝음을 말한 것이다.
③ 근연(根緣) : 정색근(淨色根)이니 6근(六根)을 말함.
④ 경연(境緣) : 면전의 경계로 6진(六塵)을 말함.
⑤ 작의연(作意緣) : 5변행심소(心所)(五遍行心所) 중의 작의(作意)로서 모든 심(心)에 상응하여 일어난다.
⑥ 분별의연(分別依緣) : 제6식을 말한다.
⑦ 염정의연(染淨依緣) : 제7식이다. 아집(我執)이 강하게 일어날 때를 염(染)이라 하고 가볍게 일어날 때를 정(淨)이라 한다.
⑧ 근본의연(根本依緣) : 제8식이다. 모든 식(識)은 8식을 의지해서 일어난다.
⑨ 종자의연(種子依緣) : 각각의 식(識)이 스스로 의지하는 창고이며 모든 식(識)이 나오는 자리이니 종자를 의미한다. 색맹은 빛의 종자가 없다. 이상의 아홉 가지 연(緣)을 9연(九緣)이라 한다.
제 16 송
意識常現起 除生無想天
及無心二定 睡眠與悶絶
제6의식은 항상 현기(現起)하지만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날 때와 무상(無想)과 무심(無心) 2정(二定)에 들 때 그리고 잠잘 때와 민절(悶絶)했을 때는 현기하지 않는다.
제6의식은 항상 현기(現起)하지만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날 때와 무상(無想)과 무심(無心) 2정(二定)에 들 때 그리고 잠잘 때와 민절(悶絶)했을 때는 현기하지 않는다.
무상천과 그 무심의 2정이라야 맞죠? 무상천 무심의 무상천정 무상정 무심정 수면과 민절에는 의식이 안 생긴다.
이 송(頌)은 제6의식이 현기 하여 작용하는 상황을 설명한 송(頌)이다. 전5식은 근본 식을 의지하고 경계가 있어야만 작용하지만 제6의식은 외경(外境)과 상관없이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일거일동(一擧一動)에 쉬지 않고 작용을 한다. 단 무상천에 태어날 때와 무상(無想)·무심(無心) 두 정(定)에 들었을 때와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
무상천에 태어날 때와 무상·무심(無想·無心) 두 정(定)에 들었을 때는 모두 공덕과 수행에 의해서 작용하지 않으므로 무심(無心)의 경계라 할 것이요,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는 무기(無記)의 경계라 할 수 있다.
무상천(無想天) : 색계(色界)의 4선9천(四禪九天) 중 제4천(第四天)에 해당되며 삼계28천 중 제19천이다. 이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무상정(無想定)을 닦은 자가 사후(死後)에 태어나는 곳이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심상(心想)을 일으켜 윤회하게 되므로 구경지(究竟地)가 아니다.
무상정(無想定) : 무상천에 태어나기를 희망하여 일체의 심상(心想)이 멸한 정(定)이다. 무상천에 태어나거나 무상정(無想定)에 든 두 경지는 모두 몸을 안화(安和)하게 할 수 있으므로 정(定)이라 하며, 여기에 이른 자는 이것이 열반(涅槃)이라고 믿어 진멸(盡滅)할 분이 없으므로 외도 또는 범부가 닦는 정(定)이라 한다.
무상정이라는 삼매에 들어가면 제6의식이 없어진다. 7식과 8식을 쓴다. 촉 작의 수상사 8식 7식에는 이것과 사번뇌 도인의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에 얼마든지 속여 먹을 수 있으나 도인을 속이는 과보는 크기에 속이면 되지 않는다.
51개의 심소가 없어지니까. 뇌파 검사를 하면 잠자는 사람의 뇌파와 같다. 과학이 없는 상태에서 정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하다. 의식이 없어지면 삼매에 드는 것이구나 뇌를 쉬게 할 수 있다. 참선만큼 뇌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 없다. 뇌가 편안해 지니까 지혜가 나온다.
잡념이 없을 때 나온다. 눈뜨고 잠자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은 몰입하면 된다. 6식은 없어지고 7식이 작용을 하는 것이다. 7식이 작용하는 것은 뇌파도 모르고 귀신도 모른다. 뇌파의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사람도 아는데 기분 좋은 모습을 보면 안다.
정에 들어 있는 것과 깊은 잠, 기절할 때는 6의식이 쉬는 것은 같은 것이다. 정에 들되 잠자는 것과 같으면 무기정 6식은 자고 이게 뭘까 하는 것을 7식에 알라고 전가를 하고 의식이 쉬어야 이것이 정이다. 전가를 하지 않고 쉬면 그런 정은 있으나 마나다 삼매만으로는 견성을 할 수 없다.
7식에 전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7식에 전가하지 않는 것은 무기정. 똑같은 의문이라도 눈이 무얼까 하는 것과 의식이 7식이 뭘까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의문은 하되 깊은 마음이 의문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의문을 계속하는데 뇌파가 잠자는 것과 같으면서 의심하면 7식이 하는 것이다. 이런 경지는 체험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다.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무심(無心) : 이는 멸진정(滅盡定) 또는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탐욕(貪慾)과 분별이 모든 업(業)의 근본임을 알아 그것을 멸(滅)하고자 하여 제6식을 압재한 정(定)으로서 성자(聖者)가 닦는 수행 법이다. 이 정에는 6식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심이라 한다.
수면(睡眠) : 깊이 잠이 들었을 때는 6식이 완전히 정지(停止)한다.
민절(悶絶) : 혼미한 상태로 인사불성(人事不省)을 의미한다.
수면과 민절로 인해서 6식이 정지되는 것은 잠시여서 잠이 깨거나 혼절에서 깨어나면 다시 6식이 작용을 하게 된다. 6식의 분별은 무한하고 맑고 깨끗한 청정심(淸淨心)을 장애 함으로 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제 17 송
是諸識轉變 分別所分別
由此彼皆無 故一切唯識
이 모든 식(識)이 전변(轉變)하기 때문에 분별(分別)과 분별할 것[所分別]이 있다. 차(此)인 주관과 피(彼)인 객관이 모두 존재하지 않으므로 일체가 유식(唯識)인 것이다.
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을 거창하게 볼 것이 없다. 하늘을 만들어 놓은 것은 신 땅을 만들어 논 것은 신 정말로 내가 나고 죽고 존재하는 것을 깨닫고 나면 무슨 인연으로 왔으며 어떻게 내가 가는가. 내가 온 까닭 내가 가는 까닭을 알게 되면 내생명의 근원이 저의 생명의 근원, 생명의 근원이다. 우주도 전부가 하나다. 하늘을 신이 만들었다면 나도 하늘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교리가 시원치 않으면 조직이 있고 교리가 야물면 조직이 필요 없다. 교리가 좋으면 조직화 할 필요가 없다.
전변이란 변활려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생각도 변활려면 마음이 동해야 하고 그리고 변하는 것이다. 능변식 (자체의식) 마음이 잡념 들어온다고 염려하지 말아라 잡념이 일어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다. 일어남이 있기에 변화가 있는 것이다. 일어나는 마음이 문제가 아니고 의거하는 마음이 있느냐가 문제다 능분별(분별하는 놈) 소분별(분별대상) 피차가 다 없는 것이니 능가 소가 당초 없었다.
피차가 다 없는 것 창조고 비창 조고 당체 없다. 어떻게 하면 생기느냐 유식(마음)에 의하여 생긴다. 마음이 생기면 기강 형성이 되고 기가 형성이 되면 물질이 생기고 기가 모이지 않으면 물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기가 동하면 음기와 양기 주역은 음과양 이전을 구명하지 못한다. 음과양 이전을 규명한 것은 불교다. 음양은 서로 댕기고 충하고 천간은 합을 하고 지지는 돌아가며 계속 충을 한다. 천간은 묶어 놓고 지지는 충을 하는 원리이다. 음과 양의 원리 이전 의식 기도교는 신 팔만대장경에서 똑같은 가르침이다.
모든 식(識)은 8개의 식이며 8개의 식이 전변해서 나타나는 것은 아(我)·법(法)·종종상(種種相)이다. 종종상(種種相)은 일체만 법이니 일체만법은 실(實)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식(識)에 의해서 존재한다. 만법이 비록 얽혀서 무한하지만 모두 식(識)이 전변해서 존재하고, 식(識)이 전변해서 만법을 존재하게 하지만 모두 연생(緣生)에 불과한 것이다. 법계(法界)는 실로 식(識)의 전변(轉變)으로 연생(緣生), 연멸(緣滅)하므로 무자성(無自性)이라 하고 환유(幻有)라 하는 것이다.
시제식전변(是諸識轉變) : 전변(轉變)이란 선전후변(先轉後變)의 뜻으로 주관의 식을 전(轉)하여 객관의 경(境)을 이루어 일체만법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는 주체가 유식이요, 유식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전변에는 3종의 뜻이 있다.
75쪽 설명 시체 마음덩어리 견분 볼 수 있는 능력 상분 보이는 볼 수 있는 능력 상분 각각 경계 볼 능력은 있으나 볼 거리가 없으며 보지 못한다.
① 변현의(變現義) : 식의 전(轉)을 인하여 현상세계가 변(變)하고 현상세계가 변(變)함을 인하여 만 법이 드러남(現)을 말한다. 즉 유식의 체(體)로부터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의
2분(二分)이 변출(變出)되는 것이니
견분(見分)은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주체로서 능분(能分)이라 할 수 있어서 이는 유정(有情)에 속하고,
상분(相分)은 객관으로서 산하대지(山河大地) 등이니 소분(所分)이라 할 수 있어서 이는 무정(無情)에 속한다.
② 변이의(變異義) : 변(變)은 만 법이 생기(生起)하는 뜻이요, 이(異)는 만 법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不同)는 뜻이니 모두가 오직 식에 의해서 견(見)·상(相) 2분(二分)이 다르게 나타남을 말한다. 즉 식체(識體)는 본래 부동하지만 견(見)·상(相) 2분(二分)은 식에 의해서 변이(變異)하므로 변이라 하며 견분(見分)은 능(能)이 되고 상분(相分)은 소(所)가 되어 능소(能所)가 모두 식에 의해 변현(變現)하지만 작용이 각각 다르므로 변이라 한 것이다. 변하여 달라지는 것 변한다는 것은 생기 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지 않다. 발생하는 것이 같지 않다. 어느 것을 보고 마음 발생이 같지 않다. 견분 상분은 식체와는 다르기 때문에 변이라고 했다. 식체에서 산하대지를 구별하는 경우 식체와는 다른 견분 상분으로 산하대지를 구별하는 것 똑 같은 것을 구별하더라도 근본마음에서 보는 것과 견분 상분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③ 개변의(改變義) : 식체(識體) 자체가 변하여 아(我)·법(法) 2상(二相)이 되고 견(見)·상(相) 2분(二分)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어린아이와 어른의 식이 다르고 중생과 보살의 식이 다름을 말한 것으로 중생이 수행을 통하여 대보살의 식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식체가 변해 가지고 능소가 달라졌다. 아기때 능소하고 지금의 능소가 다르다. 아기 때는 아기 어른이 되어서는 어른이 된 식체 중생의 식체가 보살의 식체고 바뀔 수 있다. 의식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말은 이해를 하는데 쉽게 바꾸지를 못한다. 못 바꾸는 원인은 제법 똑똑하다고 생각하기에 못 바꾸는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바꿀 수가 있다. 지금 이말을 듣는 순간도 "나는 안 그래 "한다.
최상보살= 도로보살 한번 듣고 고친다. 하근기 보살은 인식은 되었는데 고쳐지지가 않는다. 이것은 각가의 업이다. 지금은 당장 안 고쳐지더라도 고쳐진다는 확신만 있어도 유식 공부한 보람이 있다.
분별소분별(分別所分別) : 분별은 식(識)이며 능(能)이며 주관이며 능전변(能轉變)으로서 능동적이고, 소분별(所分別)은 경(境)이며 소(所)이며 객관이며 전변된 견(見)·상(相) 2분으로서 피동적이다.
제 18 송
由一切種識 如是如是變
以展轉力故 彼彼分別生
일체종식(一切種識)이 여러 형태로 변함으로 말미암아 전전(展轉)하는 힘[力]이 작용되기 때문에 갖가지 분별이 생기(生起)하는 것이다.
18송-20송까지는 읽고 넘어 가도 된다.
由一切種識=종자식 如是如是變 여러 가지 형태 이와 같고 이와 같다.
以展轉力故전전력=사람에게는 전력이 있다. 자동차가 굴러가는 힘이 있다고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을 가동시켜야 한다. 彼彼分別生 가지가지 종종도 가지가지
이체 종자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한다. 사람이 말. 뱀. 돼지로 각각지 형태로 변할 수 있다.
믿고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불교 공부 못한다. 내생에 축생도 된다는 말을 믿으면 다음 생에 축생 되지 않으려고 남의것 조금도 가져오지 않는다. 선지식은 일념 삐끗하여 잘못 갈까봐 아주 조심을 한다.
혜암스님은 돌아가시기 1년전에 용맹정진을 하셨다고 함. 날마다 날마다
24시간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의식이 어디 가서 쉬어지는가 무상정에 가면 된다. 날마다 정에 든다는 말이고 죽음은 연습이 없기에 한번 잘못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무엇도 통하지 않는 자리 일생을 복을 짓고 그 순간 삐딱하면 잘못 간다. 일생 잘못 산사람이 죽을 때 잘 죽을 수가 없다.
선(善)과 악(惡)은 어디에서 나오며 목전(目前)에 전개(展開)되는 일체 만 법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제8아뢰야식에 잠장(潛藏)되어 있는 종자식(種子識)이 변하여 힘을 발휘하므로 만법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종자식(種子識)이 전변(轉變)하는 것은 모두가 업(業)에 의해서 가능하므로 수행자는 모름지기 업(業)을 맑히고 원력(願力)을 키우고자 발심(發心)하는 것이다.
일체종식(一切種識) : 일체종식(一切種識)은 아뢰야식의 다른 이름이며 그 안에 선·악 및 세간·출세간의 무량한 종자를 함장(艦長)하고 있기 때문에 일체종식(一切種識)이라 한 것이다.
종자(種子)는 습기(習氣)를 말한 것으로 일체 중생이 선·악의 업을 지을 때 그 습기(習氣)가 8식에 훈습되어 선·악의 종자가 그 안에 심어져 일단의 훈습시간을 경과한 후에 성숙된 것을 말한다. 습기(習氣)가 성숙된 후에는 그 안에서 외연(外緣)이 모여들 때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발아(發芽)하여 역량(力量)을 발휘하여 현행(現行)한다.
종자(種子)는 이숙(異熟)이라 하기도 하는데 종자는 선·악의 인(因)에 함장(含藏)되고 선·악의 인(因)에 의해서 과보가 다르기 때문에 이숙(異熟)이라 한 것이다. 이숙(異熟)에는 인(因)이 변이(變異)하여 과(果)가 되어 성숙되는 변이숙(變異熟)과 인(因)이 무기(無記) 또는 대지(大智)로 바뀌어 성숙되는 이류숙(異類熟)과 인(因)이 1·2생(一·二生) 또는 몇천 생을 지나 과(果)를 받는 이시숙(異時熟) 등 세 가지가 있다. 그러므로 제8식을 이숙능변(異熟能變)이라 하는 것이다.
여시여시변(如是如是變) : 제8아뢰야식은 일체종식(一切種識) 안에 함장되어 있는 무량무수한 경계를 변출(變出)할 수 있으므로 송문(頌文)에 '유일체종식(由一切種識) 여시여시변(如是如是變)'이라 한 것이다.
여시(如是)를 반복하여 여시여시변(如是如是變)이라 한 것은 제법종자(諸法種子)가 많고 그 변화의 순서가 무한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화함을 표현한 뜻이다.
얕게 공부하면 건망증 화를 잘 내면 건망증 온다. 화나면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린다. 화를 내면서도 안 놓치는 공부 탐욕을 부리면서도 안 놓치는 것 이러면 공부가 익어 가는 것이다.
익혀놓은 습기 선 한일을 해 놓으면 8식에 훈습되고 습관적인 기운 종자만 심어 놓았다가 훈순된후에는 나온다. 밖같 인연이 되었을 때 튀어나온다. 병아리 알을 엄마 닭이 쳐야 병아리가 나온다. 인발생기 10법계(우주법계) 의보 정보 엄청나게 크게 변하고 적게 변화가 될 수 있다. 발기 할 때 죽을 때 잘못 죽으면 태교 해도 소용이 없다. 죽을 때 잘 죽는 것이 10달 태교보다 더 중요하다. 임종을 아주 중요시 여기여 임종을 위한 특별한 것이 이루어 져야 한다. 8식 이숙 능변 다른 것으로 변할 수가 있다. 사람이 짐승으로 짐승이 사람으로 변화가 될 수 있다. 전전력 펼친다. 피피 가지가지
8송부터 3식 나왔고 9송 전체적 심소 설명 10송 5별경심소 심소를 구체적으로 설명 5별경심소는 쓸만한 심소다. 이 기능이 있기에 사람은 욕망이 있다.
승혜심이 있기에 더 잘하려고 한다. 염력이 있기에 기역하고 정력 한가지 일에 몰입 혜력 공평무사하게 이능력은 사람마다 있는데 특별하게 잘된 사람 있고 덜 된 사람 있을 뿐이다. 6의식의 능력 깊은 수행하지 않고 5변행심소만 챙겨도 이세상에서는 성공한 사람이다.
요즘 사람들은 욕망이 없다. 욕구가 없다. 욕망이 없으면 환락 쾌락으로 간다. 종교는 이세상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종교문화가 없으면 그 욕망이 다른 곳으로 간다.
사람은 뭔가를 추구한다. 종교는 나쁜 욕구가 없어지고 승화된 욕구만 남는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종교를 막으니 욕구가 없어 다른 곳도 다 없어져 버렸다. 중국 담배꽁초를 주우면 될 것을 마당에 굴리면서 계속 쓸고 있다고 함. 욕구 분출이 활력을 있게 한다. 샘솟는 욕구가 있어야 한다. 생기지 않는 이유는 밥먹고 살기에 절실함이 부족하다. 욕구가 살아나는 발심이 있어야 한다.
11송 11선 선은 작동하지 않고 악이 많이 작동하는가 선의 심소 보다 악의 심소 가 많다. 12송 악심소 근본번뇌를 설명(6번뇌+사번뇌 4부정심소 30개의 악이 있다.) 13송 14송 15송 16송 6의식의 심소를 쓰면 벗어 날수 없다. 더 깊이 들어가는 것 밖에 없다. 6식을 나두고 7식 8실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몰입을 하여야 한다. 몰입이 되지 않으면 간절하지 않다.
기도는 그 시간에 꼭 앉는거 뻬먹고 하는 것이 중요하고 기도하다보면 몰입을 체험하면 6의식 없어져 선악이 없어진다. 선도하지 말고 악도 하지 마라 6의식을 가지고 살면 선 아니면 악인데 깊이 들어가니까 선악의 자리가 없다. 마음이 깊으니까 태도가 다르다. 경계를 만났을 때 반응이 예전과는 다르다.
깊은 의식이 되기 전에는 기분 따라 좋고 나쁘면 나쁘게 나타난다. 좋은 경계가 왔을 때 순풍경계가 왔을 때를 더 조심해야 한다. 기분 좋은 경계에서도 담담하여야 한다. 선에도 악에도 동하지 마라.
16송 무상천 무심정에 들면 6식이 없어진다. 몰입하여 마음이 깊어지면 이 경계가 없어진다. 잠들면 없어진다. 오매일애(참선) 잠속에서 화두 는 7식이 든다. 7식은 꿈을 꾸기에 잠들면서도 된다. 꿈은 몇 초 동안에 한 생을 사는 이치 잠시에 한 생을 산다.
17송 8식 전부를 설명 제식 8식 전변 분별 소분멸 분멸하기도 하고 분별할 대상이 되기도 한다.차와 피가 다 없다 분별하는 놈 분별하는 물건 없다. 일체는 모두 마음뿐이다. 유식을 공부하면 불교가 흥왕할 때다.
18송 종자식이 여시여시 여러 형태로 변해서 전전력 79쪽 설명
전전력(展轉力) : 종자(種子)의 능력이 8식의 심(心)과 심소법(心所法)을 생기(生起)한 다음에 현행(現行)하고 다시 현행(現行)이 8식의 과(果)를 일으켜 아뢰야식에 훈습하여 각종의 새로운 종자를 이루는 힘을 전전력(展轉力)이라 한다.
이처럼 종자는 현행을 생(生)하고 현행은 다시 훈습하여 각각의 유(類)를 이루어 전전부단(展轉不斷)하므로 분별도 또한 이에 따라 부단(不斷)한다. 전전(展轉)은 전전(轉轉)의 뜻으로 전후(前後)를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사람이 였는데 전전력하여 짐승이 될 수도 있다. 뭐가 그럴까 하며 믿지 않으면 큰 착오 진짜 그런가 하고 확인하는 것이 참선이고 확인이 되지 않으면 신뢰라도 갖어라 확신이라도 가져라 부처님 말씀은 무조건 믿고 확신을 가져야 한다. 눈으로 확인한 것만은 못하지만 믿음과 확신만이라도 갖어라
피피분별(彼彼分別) : 피피(彼彼)는 중다(衆多)의 뜻으로 가지가지의 의미로 쓰인다. 아뢰야식은 수없이 많은 능변(能變)의 힘이 있어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무한한 전전력(展轉力)으로써 힘이 무궁하여 법계의 아(我)·법(法)을 가려낼 수 있다. 따라서 이 송(頌)은 고저장단(高低長短)과 시비선악(是非善惡)을 가려서 중생성불(衆生成佛)의 길을 제시하고 아뢰야식의 종자에 전전력(展轉力)으로써 천지(天地)의 주제(主帝)가 됨을 밝힌 송문(頌文)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전력이 생기는 것은 내 업으로만 생기는 것이 아니고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운명에 따라가는 것이 종교가 아니다. 업이 수승해도 상대의 환경이 잘못되면 잘못된 환경의 업으로 따라간다. 잘못된 환경에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조석으로 발원하라 선지식 좋은도반 나쁜경계 만나지 않게 발원하라 발원이 간절하면 다 이루어진다. 사람이 욕구를 크게 가져라 욕구가 없으니 발원도 하지 않는다. 고부간에 갈등이 심하다 하면 시어머니 마음 편안하게 내 마음 편안하기를 발원하면 이것도 된다. 사람 마음도 바꾸어진다. 언제든지 바꾸어진다.
제 19 송
由諸業習氣 二取習氣俱
前異熟旣盡 復生餘異熟
앞에서는 식의 작동 설명했고 18송부터는 6.7.8식의 마음 자리 작용하는 것을 설명한다.
由諸業習氣 습관된 기운 사람과 사람은 자기 기운과 같지 않으면 친해지지 않는다. 전생에 업이 같은 사람끼리 업이 같은 사람은 친하기도 하지만 미워하기도 한다. 사람은 자기 같은 것을 싫어하는 것이 있다. 누가 보기 싫어하면 너도 똑같은 놈 습기 이거 안 없어지는 것이다.
공부는 했는데 사람 처신이 왜 저래 하는데 욕심부리지 마라. 공부와 습은 같은 것이 아니다. 습기가 끊어지지 않는데 무엇 하러 공부하는가 하지만 습은 남아 있어도 의식이라도 똑발어야 한다 벗어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二取習氣俱 능과 소가 같이 있다.
前異熟旣盡 이숙 아뢰야식 다른 이숙이 생겨난다. 종자를 심으면 이 종자는 사그라 없어지고 다른 것이 나온다. 일통 일체 통이다. 식물의 생명 자람과 사람과도 같다 불멸하는 이유를 알겠다. 농사지은 볍씨가 벼를 키우기에 벼는 불멸이다. 껍데기는 부모한테 나두고 부모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불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생을 기억한다는 말은 맞지 않다.
내 이 말이 의심이 되면 관하여 보아라 전생을 기억한다는 사람은 다 이상한 사람이다. 다 기역을 하지도 않고 조선시대를 이야기 하곤 한다. 10년전 것도 기역을 못하는 것이다. 단 습기를 보고 아는 것뿐이다. 전생을 컴퓨터 디스켓처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 용량을 어떻게 감당을 하느냐? 나이 먹어서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제업(諸業)은 선·악·무기(善·惡·無記) 등의 업과 신·구·의(身·口·意)의 업과 유루업(有漏業: 거지의 업이 있는 사람은 얻어먹기를 좋아한다.) 과 무루업(無漏業 세상에 걸림이 없이 툭툭 버리기를 잘한다. 남방에서 10년 수행한 분과 우리나라 선방에서 10년한 스님은 완전히 쉬었다. 마음에 허덕임이 없다. 허덕임이 끊어졌다.
남방 쪽에서 공부하신 분들은 자만심이 많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나라의 선이 사람을 승화시키는데는 월등하다 우리나라 불교가 진수를 가지고 있다. 한문으로 번역될 당시 지금보다 훨씬 심도가 깊었기에 깊은 마음으로 정리를 하여 진수에 진수가 많다.
팃벳의 사저와 서보다 우리나라 시달림 하는 것이 훨씬 심도가 깊다.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시달림 염불 내용의 보물을 우리나라에 있는 줄을 모른다. 사자의 서는 49일간 죽은 사람과의 대화.
업장을 어떻게 하면 소멸하겠는가 6식에서 8식까지 따라온다. 6식은 몰입이고 7식은 선정 선정에도 깊은 선정이 있다. 멸진정은 업이 없다. 업은 결과물이다. 습관은 동작의 결과 아뢰야식에는 동작이 없기에 업이 없다. 8식의 마음은 허심할 뿐이다.)을 총칭하여 제업(諸業)이라 하고
습기(習氣)는 업의 기(氣)가 아뢰야의 장식(藏識)을 훈습하여 같은 업의 공능(功能)을 남기는데 이러한 공능(功能)을 습기(習氣)라 한다. 습기가 장식(藏識) 중에 머무르면 종자라 하고, 그 종자가 성숙하면 이숙과(異熟果)를 초래하게 되어 이를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한다.
제업습기(諸業習氣)를 크게 유루업(有漏業)과 무루업(無漏業)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그 중에 유루업의 습기는 선·악·무기 어느 것을 막론하고 모두 생사의 인(因)이 된다.
2취(二取)는 능취(能取-안에있고)와 소취(所取-밖에 있고)이다. 취(取)는 취착(取着)의 뜻으로 탐착(貪着)으로 이해하면 된다. 능취(能取)는 일체의 심(心)과 심소(心所)(心所)의 체(體)이며 소취(所取)는 취(取)할 대상이니 이를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이라 한다. 여기에서 견분(見分)을 취하는 것은 아집(我執)이라 하고 상분(相分)을 취하는 것은 법집(法執)이라 한다.
아집(견분) 법집(상분) 소취 견분과 상분 심소(心所)의 자리(능취)
2취(二取)는 모두 견분(見分)을 집착하여 실아(實我)로 여기고 상분(相分)을 집착하여 실법(實法)으로 여기는 것이 확고하여 집착하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아 시간이 오래되면 일종의 습기가 된다. 생사윤회는 모든 습기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모든 습기에는 3종이 있다.
견분은 몸둥이를 실아 라고 한다. 이 몸뚱이를 실아 라고 생각함으로부터 모든 고통이 생긴다. 내 몸뚱이에 먹고 입고 써버린 것은 어마어마하다. 실아 라고 여기지 않은 부처님은 먹는 것도 탐이 끌어지고, 근근히 먹고 옷도 떨어지면 입고 천 남은 것으로 하기에 괘색이라고 하여 승복의 유래다. 사는데도 투자하지 않는다. 유생들이 자기 절은 하나도 없는 중이 대궐 집에서 산다고 했다.
스님들은 한철밖에 못살았다. 기둥뿌리에 정이 들어 집착이 될까봐. 한철 될까봐 말없이 사라진다. 오고감이 없이 다닌다. 해재때 소리 소문 없이 없어지는 스님이 중물든 것이다.
상분(법집) 제법공상 모든 객관적인 것을 법이라고 한다. 법(法) 내 밖에 있는 것이 법이다. 만물이 법도가 있다. 수행자는 이것을 보고 자기 법도를 만든다. 만물의 움직임을 보고 지적인 것을 향상시킨 것이다. 지금은 집착하지 않고 법을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춘하추동이 깨어져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에도 여름음식 등등 순리도 사람이 바꿀 수 있다. 순리를 법에 집착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지나간 습을 버리지 않고 계속 반복하는 것이 밥집이다.
진시황이 임금이 되면서 법을 고치려 하니 대신들이 법은 그렇게 고치면 아니 되옵니다. 이럴 때마다 간신히 있다. 배운 자들은 자기배운 것을 버리려하지 않고 서민은 지나간 습관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학자말 서민 말 들으면 안됩니다. 그래 니가 최고다. 법이라고 하
는 것 객관적인 것을 다 법이라고 한다.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분에 집착하면 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생사 상속을 하는데 습기에 의하여 이로워지는데
첫째는 명언습기(名言習氣)니 이에 명칭(名稱)과 언설(言說)로 어떤 의미를 표시하는 언(言)·어(語)·장구(章句)·부호(符號) 등을 표의명언(表意名言)이라 하고 경계를 요별 하기 위해 묘술형언(描述形言)한 것은 현경명언(顯境名言)이라 하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이름에 대한 습기
둘째는 아집습기(我執習氣)니 아(我)란 본래 존재함이 없으나 집착하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아집(我執)에는 구생아집(俱生我執)과 분별아집(分別我執)이 있다. 구생아집(俱生我執)은 본능적이고 선천적인 것을 말하고 분별아집(分別我執)은 분별에 의해 일어나거나 학습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으로 습염적(習染的)이고 후천적이다. 이 두 가지의 아집은 6·7식에 모두 존재하고 그 근원은 7식 중 4번뇌로부터 온 것이다. 따라서 말나식은 아집의 근본이며 아집은 생사의 근본이다. 무유아
셋째는 유지습기(有支習氣)니 유지(有支)는 12유지며 12인연이다. 3계(三界)를 3유(三有)라 하는 것은 인(因)이 있고 과(果)가 있고 생사가 있기 때문이다. 유지습기는 업습기(業習氣)와 이숙습기(異熟習氣)로서 3계(三界)에서 과(果)를 받게 하는 업종자(業種子)를 불러 일으켜 감득(感得)한다. 여기에 2종이 있으니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선업(善業)과 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악업(惡業)이 그것이다.
본 송문(頌文)의 제업식(諸業識)은 곧 생사윤회의 근원이며 생사윤회의 주체이며 만 법의 주처(主處)이다. 마음의 주처(主處)와 소처(所處), 그리고 그 작용을 아는 것이 윤회에서 해탈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앞에 종자는 습기에 의하여 종자가 이로워진다.
제 20 송
由彼彼遍計 遍計種種物
此遍計所執 自性無所有
彼彼가지가지 遍計두루두루계산 있는 대로 계산하면 되는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계산 노끈을 보고 뱀이라고 하는 것 중생은 변계를 잘한다. 둘이서 쏙닥거리면 자기 흉본다고 틀어진고 삐친다.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고 또 삐진다. 遍計種種物 가지가지를 변계하나니 此遍計변계하는 자성자리는 있지 않다.所執 自性無所有 사람마음이 어떻게 생겨나고 작용하느냐 [84쪽 설명]
노끈을 보고 뱀이라고 했는데 노끈에는 뱀이 없다 실아 라고 보는데 실 아가 아닌 것을 실아 라고 보는 것이기에 변계소집을 하는 것이다. 성불하는 이유 변계에서 벗어나려고 우리는 변계소집을한다. 종교체면에 걸려 없는 것에 집착한다. 방언 등. 하늘에서 방언을 갖다 준 일이 없는데 자기가 터진 것을 하늘에서 받았다고 함. 귀신들린 사람은 자기 착각 관세음보살님 봤다는 사람도 자기 착각이나 그 착각은 좋은 것이다. 한 발만 더 들어가면 내가 지어서 만든 보살 님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세음보살 님을 봤다고 하는데 다 틀리게 보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기 판단이다. 관세음보살 님이 계시다면 다 똑같이 꿈에서 꾸어야 한다.
지가 불러서 지가 본다. 잘되는 것은 몰입이 된 것이다. 똑같은 몰입을 해도 관세음보살 님을 불러 몰입이 된 것이 더 낫다. 변계소집을 안 하려고 공부한다.
사람의 마음은 의탁이 한다. 이것이 잔이다 하면 잔이 있어야 한다. 잔을 보고 마음이 일어난다. 잔을 보고 잔이구나 하면 원성실성(자성) 잔을 보고는 잔이라 하지 않고 저게 집같기도 하고 잔으로 보지 않았기에 끝도 갓도 없이 계산이 끝나지 않는다. 계산이 끝나지 않아 변계하여 집착한다. 바로 "잔을 보고 잔이다." 계산하지 않고 바로 나오는 것
이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도움이 될까. 모임에서 말하고 따지려고 햇으나 내가 왜 그 말을 하지 않고 나왔지 바로 보고 계산하지 않는 것이 수행이다. 바로 보지 않았을 때는 계속 계산이 나온다. 바로 보면 공부 끝이다. 관법(灌法) 이 길이 지름길이다. 계산하는 사람은 돌아간다. 계산하면 계속 돌아간다. 돌아가면서도 노력하면 다행인데 계산조차 하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도 않는다.
갖가지 계산하는 마음으로 갖가지 사물을 계산하나니 이 계산하는 마음과 계산해서 집착하는 사물의 자성(自性)은 본시 있는 곳이 없다.
제20송부터 24송까지는 3성(三性)·3무성(三無性)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3성(三性)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타기성(依他起性)·원성실성(圓成實性)이며 일체 법이 3성을 떠나지 않지만 이 3성은 본래 무성(無性)이다. 본 송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해설한 송이다.
제 21 송
依他起自性 分別緣所生
圓成實於彼 常遠離前性
성품은 마음이다. 마음은 어떻헤야 생겨나는가 보면 생겨나고 들으면 생겨나고 부디 치면 생겨난다. 부디치는것에는 내경 외경이 있다. 외경은 내 눈 밖에서 들어오는 것 내경은 안에 들어 있는 것이 혼자 튀어 나올 때 밖같 경계가 나타나면 생각이 일어나고 안 경계가 나타나면 생각이 일어난다. 생각이라는 것은 그냥 이러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닌 무엇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의타기)에 의하여 일어난다.
마음은 외경이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성이 본래 청정하다는 말은 자성이 안에 들어 있으면서 깨끗한 것이 아니고 자성은 원래 없었기에 깨끗한 것이다. 피리를 불면소리가 나는데 피리 속에 소리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피리는 불어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피리 속에 소리가 있다면 잘치는 것 모치는 소리가 없다. 우리 마음도 다듬어진 사람은 좋은 마음, 다듬어지지 않으면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이 나온다. 자성이 존재하지 않았기에(본무자성) 보면 일어난다. 이런 마음을 의탁이라고 한다.
무궁무진한 게 들어있는데 왜 없다고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강월래가 꿈을 꾸면 여자가 도망가는데 그 여자를 잡으려 할 때 기어서 간다고 함. 배우지 않은 마음 경험하지 않은 마음은 없다. 참선을 하는 보살님들 명심해야 할 것은 경을 보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공상만 하게 된다. 공상이 현실화되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 것은 없다. 정말로 공부해야 하는데 확실하게 알고 공부해야 한다.
依他起自性 分別緣所生: 의타기: 내안에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것을 부디 치며 발생한다. 의탁기는 분별 연으로 생긴다. 연은 밖같것 인은 내안에것 인의 씨하고 밖의 연이 만나면 인연이 되는 것이다. 인만 있고 연이 없거나 연이 있고 인이 없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과 연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마음이다. 마음은 인연 화합 생이다.
圓둥굴원成實於彼 피는 의타기를 말함. 원만히 성실하다. 성실한마음은 의탁 常遠離前性전성을 멀리여여라. 사람이 밖같경계를 보면 마음이 일어난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계산을 하는 사람은 변계소집 변계(계산) 소집(집착) 저 사람은 예쁜 사람이다. 저 사람 갖아야지 하는 마음은 집착, 싫은 사람은 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도 집착
밖같 경계를 보고 변계소집 계산을 하고 집착을 하면 중생의 마음이고, 밖같 경계를 보고 변계소집하지 않고 집착을 하지 않는 마음을 원성실이라한다. 이것을 삼성이라고 한다. 마음은 의타기 해서 일어나고 밖같것을 보고 변계소집을 하면 중생의 마음이고 변계소집을 하지 않으면 원성실의 마음이고 제불조사의 마음이다. 변계소집을 하지 않는 마음이 불조의 마음이다. 변계소집을 하지 않으셨기에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 아시는 것이다. 어찌 다 아시느냐 아기 키우는 어머님 어머니 마음 버리고 아이 마음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아기 마음도 잘 알고 아이도 엄마 말을 잘 듣는다.
속인은 아는 것을 좋아하고 스님들은 훈습으로 인하여 일을 쉽게 한다. 스님들은 40-50명 밥을 해도1시간이면 된다. 보살님들은 몇 시간씩이 아닌 하루 전부터 들어가 해도 밥이 설었다. 그런 다. 머리를 깎으면 이상한 힘이 발동이 된다. 맛도 있고 빠른 이유는 보살님들은 부엌일을 연구를 하지 않고 스님들은 훈습.
보살님 보다 스님들은 사려가 깊기 때문이다. 마음은 인연에 의하여 경계, 상황에 의해서 생겨난다. 의탁의성 계산하는 마음은 변계소집 계산하지 않는 마음은 원성실성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하면 변계를 하지 않고 소집을 하지 않는가를 알아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인은 계산하면 변계소집성이레 정도는 하는데 방법을 찾지 않는다. 집안 일도 일 머리를 알고 하여야 하는데 동시에 2-3가지 할수있는일 한가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알아서 해야 하는데 나물을 세고 있다. 콩나물 다듬는 일로 시간 다 간다. 스님들은 한 주먹씩 다듬는다. 머리를 쓰지 않으면 몸이 힘들다. 절 마당 넓은 것을 스님이 쓸으라고 하면 금방 되는데 일반 사람은 엄두도 못 낸다. 일에 대한 사려가 있고 없는 것의 차이다.
마음은 어떻게 생겨나느냐 인연에 의하여 상황에 의하여 생겨난다. 경계에 의하여 생겨나는 것이 마음이다. 경계에 의하여 생겨나는 마음은 무엇이냐 의타기성이다. 의타기성한 마음을 가지고 계산하고 집착하면 변계소집이라고 한다. 계산하고 집착하지 않은 마음은 원성실성이라고 한다.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계산과 집착을 하지 않는가를 알아야 스님 같은 지혜가 나온다. 일반사람은 계산하면 변계소집이레 라는 정도만 알지 변계소집을 하지 않는 방법을 찾지 않는다.
의타기성(依他起性)의 의(依)는 의지, 의탁의 뜻이며 제법(諸法)은 타(他)를 의지하여 생(生)하므로 의타기(依他起)라 한다. 불이 스스로 타오를 수 없고 산천초목이 자생(自生)할 수 없고 인간 또는 일체 만 법이 자생할 수 없어서 의인탁연(依因托緣 인을 의지하고 연을 의탁하여 인과 연이 맞아 떨어져야 불이 붙는다.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불나지 않는다. 부싯돌도 정확하게 맞아야 불이 난다.)하여 인연(因緣)이 구족(俱足)되면 생기(生起)하는 까닭에 의타기(依他起)라 한다.
분별연소생(分別緣所生)이라 한 제2구의 뜻은 먼저 분별은 차별(좋다 나쁘다)하는 분별이 아니고 구별, 선별의 뜻이다. 연(緣)은 기성(起性-성품을 일으키는 인연)의 연(緣)이니 타(他)에 해당된다. 일체 제법(一切諸法)은 색(色-밖같경게)·심(心안의 마음)의 2류(二類)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색법(色法-상분, 소분별 일체 사물)은 드러나 있는 일체 만법이기 때문에 이를 상분(相分)이라 하며 분별할 바[所分別]인 모든 사물을 지칭하여 이를 색법(色法-사물을 말한다. )이라 한다. 이러한 색법은 모두 인연 법에 의해 생기(生起)하며 자생(自生)하지 못하고 연생(緣生인연으로 생기는 것 )이기 때문에 의타기(依他起 볍씨는 종자는 종자인데 인연이 구비되지 않으면 싹이 나오지 않는다. 볍씨는 100년후에 심어도 싹이 나온다. 그러기에 사람도 100년후에 몇생뒤에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맞다. 나를 확실히 알려면 벼 종자가 윤회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삶이다. 일체 만 법은 다른 점이 없다.)인 것이다. 죽으면 내생이 있을까? 내생이 있다. 볍씨의 종자와 같은 것이다.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원만(圓滿), 성취(成就), 진실(眞實)의 의미로서 불성(佛性), 법성(法性), 진여(眞如), 법신(法身) 등이 구족히 모두 원성실성(圓成實性)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법성, 진여, 법신 등이 곧 원성실성이며 원성실성이 곧 법성, 진여, 법신 등이다.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의타기성(依他起性)에서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면 원성실성(圓成實性)이고 분별을 일으키면 변계소집(遍計所執)이 된다. 법상(法相 보이는 것 )은 유한(有限)하나 법성(法性)은 무한(無限)하며 법상(法相) 허가(虛假)이나 법성(法性부동하고 불변한다.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다. )은 진실(眞實)하다. 따라서 제법의 법성(法性)은 부동불변(不動不變)하고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며 담연(湛然편안하고 담담하다.) 상주(常住 영원히 주하고 )하고 원만 시방(圓滿十方)하므로 원성실자성(圓成實自性)이라 이름한다.
원성실성은 변계소집만 하지 않으면 된다.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는 계산하지 마라 장사든 공부든 계산하지 말고 그냥 해라 계산 잘하는 사람은 감정의 기폭이 심한 사람이다. 하다가도 싫어지고 안하다가도 다른 것에 홀딱 빠진다. 계산이 발목을 붙잡는다.
제 22 송
故此與依他 非異非不異
如無常等性 非不見此彼
故(고로) 此(원성실성) 與依他(원성실성은 의타기로 더불어) 非異非不異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다르다). 원성실은 의탁과 똑 같다. 또 다르다 하는 것은 원성실은 변계소집을 하면 원성실 없어지고 변계소집을 하면 원성실이 나오지 않는다. 원성실은 변계소집을 함으로 인하여 원성실이 되기도 하고 원성실이 되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如(저) 無常(사법인) 等性제법무아 일체개공 非不見보지 않는 것이 없다. 此원성실 彼변개소집 원성실과 변계소집은 보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원성실)을 하는 변계소집은 원성실을 나타나게 하지 않는 변계소집은 없다.(불교에서 견.시는 깨닫다)
위에 말은 중생이라고 해서 원성실을 깨닫지 못할 이유는 없다. 누구라도 원성실은 깨달을 수 있다. 원성실을 보지 않는 의탁기는 없다. 의타기에서 누구든지 원성실을 깨달을 수 있다. 변계소집만 안 하면 원성실이다. 의탁기에서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변계소집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안 일어나야 한다라는 말은 틀렸고 마음이 일어나되 변계소집을 말아라 그러면 원성실성만 남는다. 일어난 마음을 변계소집을하면 중생이다.
그러므로 이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의타기성(依他起性)으로 더불어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이 마치 저 사법인: 무상(無常 심무상)·고(苦 수고통)·공(空)·무아(無我 제법무아) 등의 성질(性質)과 같아서 이러한 원성실성(圓成實性)에 의타기성(依他起性)을 보지 않음이 없지 않다. 제법무아 일체개공
제1구의
고(故)는 21송을 이어 본 송을 시작하기 때문에 소이(所以)의 뜻이다. 또 차여의타(此與依他)라고 한 차(此)는 원성실성(圓成實性=법성.여래성.진여성 )을 지칭한 것이다.
제2구에서 제1구의 원성실(圓成實)과 의타기(依他起)로 더불어 라고 한 송을 계승하여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한 것은 원성실(圓成實)과 의타기(依他起)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말로서, 원성실(圓成實)과 의타기(依他起)가 같은 것은 원성실(圓成實)은 성(性)이 되고 의타기(依他起)는 상(相)이 되므로 상(相)은 성(性)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성(性)이 없으면 상(相)이 성립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만법은 원성실(圓成實)을 떠나서 따로 의타기(依他起)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의타기(依他起)의 법은 모두 원성실(圓成實)을 바탕으로 하여 나오기 때문에 같다고 한 것이다. 다르다고 한 것은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의타기성(依他起性)이 아니며 의타기성(依他起性)도 또한 원성실성(圓成實性)이 아니다.(비불) 원성실성은 영원하고 불변하고 불멸하여 항상 하지만 의타기성(依他起性)은 연생(緣生)이므로 무상(無常)하고 변멸(變滅)하여 원성실성과는 같을 수가 없다.
초심때는 세상을 주제 하는 것은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닌 마음이다. 마음에는 원성실의 마음 변계소집의 마음이 있다. 원성실의 마음은 어느 경계를 가도 동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경계를 보면 변하고 동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면 변계소집도 우주를 주제하느냐 변계소집의 마음은 아니다. 같은 마음이지만 이 마음이 없는 원성실의 마음이 나를 주제 하는 마음이다. 원성실이라고 한다. 진여성품(원성실)이 아니라면 의탁이 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의탁이가 나오는 것은 분별력이 나오는 것은 원성실의 마음이 있기에 거기에 바탕을 하여 만법을 분별한다. 원성실의 마음은 속에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의탁기를 먼저 썻다. 의탁기에 의하여 마음이 동하고 나면 계산안하면 원성실이 되고 성품에서 원성실이 나중에 쓴 것이다.
그러나 원성실성과 의타기성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한 것은 의타기법(依他起法) 중에 원성(圓性)의 진실성(眞實性)이 확실히 존재하고 원성실의 진공(眞空) 중에 역시 묘유(妙有)를 함유(含有)하여 만 법을 생(生)할 수 있으므로 같다 하였고, 한편 원성실은 연기법(緣起法)이 아니고 생멸무상(生滅無常)이 아니므로 연기법에 의해서 존재하고 연기법이기 때문에 생멸하여 무상한 의타기와는 같지가 않아서 다르다고 한 것이다.
제3구에서 무상등성(無常等性)이라 한 것은 (무상(無常 심무상)·고(苦 수고통)·공(空)·무아(無我제법무아 소승 4법인 )제법무아(諸法無我)·제행무상(諸行無常)·유루개고(有漏皆苦)·연기성공(緣起性空) 등 소승(小乘) 4법인(四法印)을 말한 것이다. 이러한 4법인을 수행하여 의타기에 의해 생기(生起)한 모든 법이 무아(無我)임을 깨닫고 무상(無常)임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수행자는 4법인(四法印) 등을 수행하여 원성실성(圓成實性)을 성취하고 원성실의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자리에서 저 의타기성의 무상(無常)을 깨닫지 않은 자가 없으므로 말구(末句)에서 원성실에서 의타기를 보지 않는 이가 없지 않다고 하였다.
무상을 깨달았다고 영원한 도리가 나오는가 안 늙는 도리도 없다. 영원한 것이 있는가 없는가 원성실(법성)인데 법성이라고 말해도 영원하지 않고 맞지 않다. 피리 속에 들어 있는 소리와 같다. 피리 안에 소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잘 불면 좋은 소리 못 불면 흉한 소리 비워있지 않으면 전부 영원하지 않다. 무상을 깨달으면 왜 영원할 수 있는가 비워있는 도리를 알기 때문에 영원해 질 수가 있다.
받아 드시는 것이 모두 고다 수(受) 칭찬은 오면 기뻐하고 비방은 기분나뻐 고통스러워 한다. 왜 칭찬도 괴로움으로 알아라. 왜 칭찬을 느끼는 마음에는 비방을 느끼는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놈이 비방 아니면 칭찬 둘을 나타나기 때문에 요사 체가 문제의 마음이다. 즐거움 아니며 괴로움이다. 괴로움만 없애고 즐거움만 얻으려하면 그런 법은 없다. 괴로움을 없앨러면 즐거움을 버려야 한다. 담연-담담한 자리 고도 악도 없는 자리. 사람은 고통을 싫어한다. 고통에서 벗어나려하지 말고 즐거움을 버려버려라 그러나 즐거움을 버리기 쉽지 않으니 고통을 인정해라. 졸릴 때 잠자지 않아 봐라 얼마나 고통인가. 자체적으로 식욕 수면 등등 즐거움을 버리는 것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니 즐거운 것을 버리기 아까우면 고통도 감수하라. 고락이 같은 자리다. 고락은 같은 자리다. 고따로 낙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비불견(非不見)의 견(見)은 증견(證見)의 뜻으로 관증소득(보며는 깨닫는다) 깨달음을 의미하고 원성실에서 의타기를 깨닫는다는 것은 곧 의타기를 멀리 여윈다는 뜻이다.
88쪽 설명
차 원성실과 변계소집
피 의타기
원성실과 변계소집을 보지 않는 의타기는 없다. 의타기는 경계를 보고 생각이 일어났다. 원성실은 의타기 없이 존재하지 않고 변계소집도 의타기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를 미워하는데 보지 않고 미워하는가 보고 듣지 않은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변계소집인데) 의탁기에서 나온다. 변계소집하지 않으면 원성실의 마음이다. 원성실과 변계소집의 마음을 증견치 않는 의타기는 없다. 원성실성은 차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의타기에 의해서 존재한다.
제 23 송
卽依此三性 立彼三無性
故佛密意說 一切法無性
곧 이 3성(三性 : 遍計所執性, 依他起性, 圓成實性)에 의지하여 상(相), 생(生), 승의(勝義)라고 하는 3무성(三無性)이 성립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밀의(密意 비밀한 뜻)로 설(說) 하시기를 일체 법이 무성(無性 성품이 없다.)이라 하신 것이다.
어떤 것이 일체법 무성이냐? 인연화합생 고로 무성이다. 자기 혼자 생겨나는 것이 없다. 순수하다고 하는 물에도 오행이 들어 있다. 금속에도 불 속에도 오행이 있다. 불에도 물이 없으면 타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물에도 지수화풍이 다 들어있다. 나는 하나만 지녀야 하겠다 하면 존재가 불가능하다.
사람에게 귀격을 가려내는 것은 얼굴에 각이 지면 각 둥굴레면 둥글고 삼각형이면 삼각형 순수하여야 한다. 이마는 둥글고 하관은 삼각형이고 이런 식으로 순수하지 않고 잡스럽게 섞여있으면 이럴까 저럴까 잡스럽다 가능한 순수해야 한다. 가장 귀격은 오행이 고로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몇 백 천년에 한번 날까 말까. 그 다음 귀격은 가능한 한 순수하게 네모면 네모 둥글면 둥글게 형상을 보고 어떻게 아는가? 악기를 보고 어떤 소리를 내는가 아는 것이다. 업이 좋으면 순수하고 업이 나쁘면 순수하지 않다. 타고 난 것을 어떻게 바꾸는가?
공부하는 것은 발심이다. 기도도 순수한 마음이 더 성취가 된다. 급하거나 믿지 않았던 사람은 기도를 하면 순수하게 다 이루어진다. 옆에 사람이 기도를 하여 성취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나도 해봐야지 하는 욕망으로 하면 옆에 사람도 잘 이루어진다. 이런 욕심은 좋은 욕심 발심이 순수해야 공부가 잘된다. 관세음 보살 1만념하라.
이 송(頌)은 본래 자성(自性)이 없음을 확고히 드러낸 송(頌)이다. 중생이 나[我]라고 여기는 심식(心識)이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인데 이 3성(三性)의 시작이 경계를 의지하여 생기(生起)하는 의타기성(依他起性)이기 때문에 마음이란 경계가 없으면 일어나지 않으므로 본송(本頌)에 3무성(三無性)이라 하여 본무자성(本無自性)임을 밝힌 것이다. 삼성은 실제로는 무성이다.
이는 마치 부싯돌이 부딪쳐야 불이 일어나듯 마음도 경계에 의해 일어나므로 3성(三性)의 마음이 본래 없다 한 것이다. 경계에 의해 마음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아 경계에 부동(不動)하고 계탁분별(計度分別)하지 않으면 원성실성(圓成實性)이 되어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이루거니와 본래 없는 마음이 경계에 의해 일어난 것을 집착하여 내 마음이라 하고 사량(思量)(思量)하고 헤아리면 이것이 곧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 되어 윤회(輪廻)의 씨가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3무성(三無性)이라면 마음은 왜 존재하는가. 그 근원을 규명해 보면 부싯돌이 부딪치지 않으면 불이 존재하지 않지만 부싯돌이 부딪치므로 불이 일어나듯 마음은 본래 나고 멸함이 없으나 인연에 의해 생(生)하고 인연에 의해 멸(滅)하므로 연생연멸(緣生緣滅)인 것이다. 자성(自性)에 생멸(生滅)이 없는 것을 본무자성(本無自性)이라 하고 연생연멸(緣生緣滅)하는 마음을 집착하고 계산하는 마음을 변계소집성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와 같이 3성(三性)의 소이연(所以然)이 연(緣)이요, 연(緣)은 실(實)이 아니므로 3무성임을 깨달음으로써 마음의 집착을 끊을 수 있고 경계에 부동할 수 있는 것이다.
3구(三句)의
밀의(密意)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으니 하나는 부처님의 설법이 의미가 깊어 참된 뜻이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밀의(密意)라 하고 둘째는 부처님의 뜻이 심히 깊어서 입지(入地)하지 못한 수행자가 헤아려 알 수 없기 때문에 밀의(密意)라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밀의로 설하셨다고 한 것은 경계에 의해 마음이 생기(生起)하고, 생기한 마음을 계산하여 집착하고, 생기한 마음을 계산하여 집착하지 않는 3성이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마음의 실(實)인 줄로 착각하여 집착하는 범부중생(凡夫衆生)을 위하여 3성이 모두 무자성(無自性)임을 설(說)하시어 일체만 법의 성상(性相)(性相)이 모두 공(空)임을 드러내 주셨기 때문이다.
이는 3성을 세워 마음의 생처(生處)를 설(說)하시고 3무성을 세워 3성에 대한 집착을 파(破)해 주신 것이니 이것이 곧 밀의(密意)에 해당된다 하겠다. 다시 말해 부처님께서 마음의 주처(住處)를 3성으로써 밝히시고 범부가 곡해(曲解)하여 제법의 자성이 실제로 있다고 집착할까 염려하셔서 3성의 자리가 본래 무성(無性)임을 설하시어 제법의 성상(性相)(性相)이 모두 공(空)임을 드러내 주신 것이다. 무성의 자리는 집착하려야 집착할 것이 없고 집착을 파(破)하려야 파할 것이 없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영원불멸(永遠不滅)의 자리인 것이다.
원성실성에 집착을 하게 된다. 원성 실에 집착해도 변계소집이 된다. 변계소집을 하지 않으면 원성실이 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원성실이 되려고 하는 것도 집착이다. 원성실을 성취하는 방법, 들어가는 방법(24송부터) 변계소집을 버리고 원성실을 성취하는 방법, 마음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가 있다. 어디서 생겨나는가 의탁에서 생겨난다. 여기서 생겨난 것을 계산하면 변계소집이고 계산을 하지 않으면 원성실이된다. 구할 것이 있고 얻은 것이 있는 이 마음이 집착이다.
구하는 마음이 끊어지고 얻고자 하는 마음이 끊어지며 변계소집을 하지 않는 것. 변계보다 빠르게 계산하는 이 마음을 지식이라고 하고 니가 나를 따라와 계산 잘하는 것은 절대 공부가 아니다. 상황파악을 잘하는 것도 공부 잘한 사람이 아니다. 버리면 공부가 된다. 그러면 대단한 힘이 생긴다. 힘으로 변하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힘이 없는 사람의 말은 믿지 않는다. 힘이 있는 사람은 말을 말이 없어도 믿지만 힘이 없으면 말을 믿어 주지 않는다.
비우는 것은 변계소집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 비우는 도리는 변계소집을 안 하는 것 경전에는 탐진치를 버리면 마음이 비우는 것 어느 것이 보살이냐 아상인상 중생상이 없으면 보살이요 남에게 베풀어주고도 베풀어 준 것이 없다고 하면 보살이다. 제도하고 제도했다는 생각이 없을 것 불국토를 장엄하고도 장엄했다는 생각이 없을 것. 바탕으로 탐진치가 없는 것이다. 변계소집성을 버리면 비워진 마음이다.
수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절대로 변계소집을 하지 마라. 누가 나를 이용하면 이용당해 줘라. 속아주면 몇 백배 복이 온다. 누가 나를 이용해 먹었다고 그 사람과 인연을 딱 끝으면 일 되지 않는다. " 나 같은 사람도 이용해 먹는구나 이용해 먹을 가치가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일 열린 사람이 된다.
제 24 송
初卽相無性 次無自然性
後由遠離前 所執我法性
20-22송 삼성에 대한 설명
23-24송 삼무성을 설명
삼성은 사람의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의탁기에서 나온다. 계산하면 중생(변계소집) 계산하지 않으면 부처님이다(원성실성)
부처님은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담담하다. 나쁜 일이 담당하니 해결점이 나오는 것이다. 계산을 하면 중생이고 계산을 하지 않으면 부처님이다.
계산을 왜 하는가? 계산을 안할 수가 없다. 좋은 일은 집착하고 싫은 일은 기피하기에 해결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보면 계산을 하고 일을 봐도 좋은 일 나쁜 일 계산을 하게 된다. 땅덩어리 생긴 것이 이 세상일이라고 보면 된다. 높은데 있으면 낮은데 있고 낮은데 있으면 높은 데가 있다. 높고 낮음이 똑같을 수가 없다. 학생교육을 평준화 하겠다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잘되는 것은 앞서가고 세상은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이다. 강한 것 있고 부드러운 것이 있다. 담담하면 높은데 올라가지만 처다만 보면 높은데 못 올라간다. 계산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일본사람은 80%가 운명이다. 20%가 노력이다. 우리는 20% 운명으로 보고 80%가 노력으로 보면 더 노력을 하지만 20%운명도 무시 못 한다. 20%는 부처님한테 충당한다. 신명을 다하여 노력하되 운명에 미처 지는 것은 20%라는 것이다. 일본사람 말로 80%는 계산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계산한다고 돈 버는 것 아니고 공부도 계산으로 하지 말고 그냥 하라. 하고 또 하고 계산하는 병을 버리자. 게으름 병은 자기 몸을 아끼는 사람이다. 몸을 많이 쓰는 사람이 오히려 건강하다. 계산은 모든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한다.
4천만 인구 중에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사람은 몇 명이겠는가. 1만 명을 추리라고 하면 자기는 해당되겠는가. 대표적인 인물을 천명 뽑는다고 하면 똑같은 밥을 먹고 나는 왜 해당되지 않는가 하여 분심을 내라. 변계소집은 중생이 하는 것이고 성현은 변계소집을 하지 않는다. 3가지 성품이 고정되었다고 하면 누구도 어떻게 하지 못하나. 수행만 하면
처음은 일체 모든 상(相)이 무성(無性)인 상무성(相無性)이요, 다음은 자연성(自然性)이 무성(無性)인 무자연성(無自然性)이요, 최후는 이전에 집착한 아(我)와 법(法)을 멀리 여읜 실성(實性) 곧 승의무성(勝義無性)이다. 무성: 박사가지고 온 사람이 없다. 비관적인 사람임 삼무성인데 하기는 뭘 해 라고 말한다. 라는 사람이 있으나. 의식이 깨어서 돈 벌면 돈이 벌리고
3성(三性)에 의해 3무성(三無性)임을 이미 전송(前頌)에서 설명했고 본송(本頌)에서는 3무성의 구체적인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의식이란 밖에서 주입되어 존재하게 되는 바 이를 계탁(計度)하면 변계소집(遍計所執)이 되고 계탁하지 않으면 원성실(圓成實)이 되는 것은 3성이 본래 무성이기 때문이다.
1구(一句)의 상무성(相無性)의 뜻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에 대하여 변계소집성 자체가 상무성(相無性)임을 드러낸 구(句)이다. 변계소집성이 왜 상무성인가?
변계소집이란 존재하지 않은 것을 존재한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가령 어두운 밤에 노끈을 보고 뱀이라고 잘못 여기는 것과 같이 생사(生死)가 본래 없는데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것을 존재한다고 집착하고 보리열반(菩提涅槃)이 법계(法界)에 충만하지만 그 실(實)을 보지 못하고 보리열반을 따로 찾는 것 등이 모두 변계소집이다. 그러므로 변계소집성을 상무성이라 한 것이다.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이 말은 빗나갔다. 땅은 둥글지 않다. 부처님은 색즉시공 모든 것은 공이다 ㅇ 이다. 우리는 죽지 않는다.90쪽설명
도깨비불 나는 확실히 봤다고 하는 사람 변계소집을 하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물질 실상이 없다. 물도 하나의 상이다. 물도 수백 가지의 합성이다.
같은 것이 아니면 부합이 되지 않는다. 땅에서 나는 것은 우리가 다 먹는다. 우리는 성질이 같지 않는 것은 먹지 않는다. 성질이 같으니까 우리가 먹는 것이다.
제2구(第二句)의 무자연성(無自然性)은 생무성(生無性)의 뜻으로 의타기(依他起)의 마음이란 무자연성(無自然性)이며 생무성임을 밝힌 구(句)이다. 의타기성(依他起性)의 뜻은 만법은 자생(自生)하지 못하고 다른 갖가지 반연을 의지해서 생기(生起)하므로 비로소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의타기(依他起)라 한다. 따라서 의타기의 성(性)은 인연에 의한 것이므로 인연생(因緣生)이 되는 것이다.
무자연성(無自然性)의 자연은 천연(天然)의 뜻으로 모든 법은 천연색(天然生)이 아니라 인연생(因緣生)이므로 연(緣)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생(生)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법이 연생(緣生)이기 때문에 의타기(依他起)가 되고 의타기에 자성이 없으므로 무자연성 또는 상무성이라 하는 것이다.
죽고 나면 윤회를 한다고 했는데 무자연성이면 어떻게 윤회가 되는가. 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연이 만날 때가지 기다린다. 사람이 죽고 나면 다음 생으로 연결되는 기간이 길다 그래서 중음신이 우주에 꽉차있다. 수행을 하면 어떤 점이 다른가. 수행을 한사람은 연을 만나면 좋은 인연을 만난다. 업이 나쁘면 괴로운 인연을 만난다. 그래서 선근을 심어야 한다. 인연이 마나지지 않으면 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생)
끝으로 3․4구(三․砂丘)에 이전에 집착한 바 어법(我法)을 멀리 여읜 성(性)이란 승의무성(勝義無性)을 말한 것으로 승의무성이란 원성실(圓成實)이 무성임을 밝힌 송(頌)이다. 원성실은 의타기로 생기한 마음을 계탁(計度)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므로 찰나생멸(刹那生滅)의 이치에서 불변부동(不變不動)하고 무생무멸(無生無滅)의 성(性)이기 때문에 제1의제(第一義諦)에 속하며 이를 승의제(勝義諦)라 한다. 승의제란 본래 공(空)하여 무소유이므로 유와 무를 초월하고 그러면서도 세속제(世俗諦)를 수순(隋順)하므로 승의(勝義)라 하는 것이고 굳이 말하자면 무자성(無自性)의 성(性)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진여법성은 있는데 중생심에 가려 나타나지 않는다. 돌에 보석이 박혀있는데 돌에서 보석을 캐내야 한다. 법성을 가지고(부처종자) 있는 사람, 그것을 써먹으면 부처가 된다.
무자연성(無自然性)은 천연성이 아니라 연생연멸입을 알았다. 인연법에 의해서 태어나고 인연법에 의하여 멸한다. 소집성이 강한사람은 잘안된사람과 친해져 자기는 의리파라 함께 간다고 하면 업이 물이 든다. 애완동물 기르는 사람은 동물을 보고도 동물의 감정에 옮는다. 보며는 옮는다. 동물도 인연이라 동물의 물이 든다. 직업으로 동물병원을 하면 직업이라 괜찮다. 조금씩 도와준 사람은 좋아하나 많이 도와준 사람은 부담스러 나중에는 보지 않는다. 옛날에 아랫사람 관리 하는 방법은 한꺼번에 많은 돈 주지 마라 볼 때 마다 조금씩 줘라 그러나 불교는 크게 주고 잊어버리면 된다. 근본적으로 그 사람을 구재한 사람이 된다.
3구(三句)의 후유원리전(後由遠離前)이라 한 이 구(句)에서 후(後)라고 한 자(字)는 원성실성을 말한다. 그것은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의 다음이라는 뜻이 되고 전(前) 자(字)는 다음 구(句)의 소집아법성(所執我法性)의 전(前)이라는 뜻이 된다.
이 구(句)의 뜻은 변계소집하여 아상(我相)과 법상(法相)에 집착하던 마음을 멀리 여읜 것이 원성실이며 원성실이 곧 제1의제(第一義諦)이며 승의(勝義)인 것을 이해해야 되는 구(句)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모름지기 연생무성(緣生無性)임을 깨달아 의타(依他)하여 생기(生起)한 제법(諸法)이 가(假)인 줄 알아서 망령되이 변계소집한 아(我)․법상(法相)을 멀리 여의고 진공묘유(眞空妙有)인 승의무성(勝義無性)의 실지(實地)를 인식하여 원성실의 진성(眞性)을 구명(究明)하는 것으로 본분(本分)을 삼아야 한다.
제 25 송
此諸法勝義 亦卽是眞如
常如其性故 卽唯誠實性
常如-원성실성 여일(똑같다)하다. 유실의 실성(원성실성) 유식의 실성이 아닌 가성은(의탁기 변계소집)은 가其性故 卽唯誠實性
이것을 모든 법의 승의(勝義이길승 기쁘다. 승의 최상의 뜻 )라 하며 또한 진여(眞如 원성실성 그 자체)라고도 한다. 항상 모든 법의 실성(圓性實性) 그대로이기 때문에 이것이 곧 유식(有識)의 실성(實性)인 것이다. 항상 그 성품(원성실성)과 연일 하기 때문에 삼무성 상 무자연성 변계소집성을 여인성은 원성실성이다.
이 송(頌)은 전 송에서 말한 상무성(相無性)․무자연성(無自然性)․아(我)․법(法)을 멀리 여읜 승의무성(勝義無性)을 이어서 유식의 실성(實性)을 밝힌 것이다. 유식의 실성(實性)을 승의(勝義)라 하는 것은 만법이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면할 수 없지만 오직 유식실성(唯識實性) 곧 진여법성(眞如法性)만이 영원하기 때문에 승의(勝義)라 하는 것이다. 승의란 세간세속(世間世俗)의 어떠한 이치보다 깊고 오묘한 이치를 말한다.
이러한 승의(勝義)는 네 가지의 뜻이 있다.
세간 법은 육신을 중요시 출세간은 의식을 세간 법은 윤리덕목
몸뚱이로 도둑질하나 정신적으로 도둑을 하는 것이 아니다.(일지매. 홍길동)
물질적으로는 도둑을 하지 않으나 정신적으로 도둑질하는 것. 겉으로는 점잖고 속으로는 내가 갖아야 한다고 빠글거리는 것. 우리는 출세간법을 의존하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 악(탐진치)이 있을 때 이것을 경계하라. 세상은 몸뚱이에 대한 규범은 가르치나 마음을 깨끗이 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승의(勝義)
1.세간승의(世間勝義) : 5온(五蘊:색수상행식)의 이치․6근(六根) 6경(六境)의 이치를 가르친 12처(十二處 6근 6식)․6근(六根) 6경(六境)과 6식(六識)의 이치를 가르친 18계(十八界) 등의 법(法)을 말한 것으로 초발심(初發心) 수행자가 반드시 닦아야 하는 요체(要諦)이지만 모두 세간법(世間法)에 속하므로 이를 세간승의(世間勝義)라 한다.
2 도리승의(道理勝義) : 고․집․멸․도(苦集滅道) 4성제(四聖諦)의 이치를 말한 것으로 도리(道理)를 수도(修道)하는 승의(勝義 최선의 마음)이므로 이를 도리승의(道理勝義)라 한다.
중생은 사성제에서도 발심을 못한다. 이유는 고통스럽게 살겠는가. 고통 없이 살겠는가. 그럼 누구나 고통 없는 것을 좋아한다. 고통이 없어지려면 집착 때문에 일어난다. 집착을 끊으면 극락이다. 지식으로 아는 것과 행동은 다르다.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은 옛날 공자보다 아는 것이 많으나 공자의 마음은 따라가지 못한다. 아는 것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한다. 도리승은 아는 것과 행동이 일치되어 가는 과정
3 증득승의(證得勝義) : 이는 이공진여(二空眞如)를 말한 것으로 수행자가 아․법(我․法) 이공관(二空觀)을 닦아 아․법(我․法)에서 벗어나는 진여(眞如)를 증득(證得)하게 되는데 그 의(義)가 수승하므로 증득승의(證得勝義)라 한다.
사성제를 닦으려하니 고통을 없애야 되겠다. 고통을 없애려 하니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하고 집착을 버리려 하니 8가지 길을 잘 닦아야 한다. 그 속에는 그래도 아가 들어 있다. 내가 있다. 아가 본래 엇다는 것을 깨달으면 경계가 없어진다. 경계에 동하지를 않는다. 중국에 수련하는 사람이 아공을 관한다, 태권도 하는 사람이 8단과 3단이 싸우면 아가 없는 사람이 이긴다. 붓을 들어도 아상이 생기면 붓끝이 떨린다. 잘 쓰는 사람이 붓끝이 떨리면 못쓰고 못 쓰는 사람이라도 붓끝이 떨리지 않으면 잘 쓴다. 3단짜리 저것 잘못 하면 내가 망신당하지 코를 납작하게 해야지 하면 벌써 아상이 생기면서 힘이 빠져나간다. 이래 싸우나 저래 싸우나 내가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죽을힘을 하여 해보자 기운사람이 능한 것이 아니고 아가 없는 사람이 이긴다. 작은 시험은 이기나 큰 시험에는 화장실만 가고 싶고 큰 시험은 되지 않는다. 이것도 아가 있어서 그렇다. 흔들리는 마음 없이 해주는 것이 공부 더 시키는 거
아공: 안 흔들리는 것, 이것을 안 하면 안 되는데, 틀리면 틀리는 데로 실수하면 실수한데로 이것은 아가 없어진 것. 법은 환경에 주하는 것 환경에 의식을 하지 마라. 머리도 유행 따라 옷도 유행 따라 이런 것은 밖같경계를 의식한 것이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마라. 내가 동하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밖같 상황을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밖같에서 생각했던 것의 좋은 점을 갔다 쓰면 되는데 그냥 끌려간다.
불교에서 법은 내 밖에 있는 것 아는 내안에
아공 내가 비워지는 공부
법공 밖같경계에 동하지 않는 것
목탁이 속이 꽉 찬 것 보았는가 속이 적절하게 잘 비워 있어야 멋진 소리가 난다. 종도 속이 꽉 차 있는 것 보았는가? 만 가지 물건이 속이 비워야 멋진 소리가 난다. 종은 종대로 목탁은 목탁 의 멋이 잇는데 속이 꽉 차 목탁. 속이 찬종은 그 물체로서 생명 끝 중생도속이 꽉 차여(탐진치) 있으면 중생으로서 끝 마음은 탐진치가 끊어지면 비워진 것이다. 아공법공의 이치를 깨달으면 증득 승이다.
승의승의(勝義勝義) : 이는 일진법계(一眞法界)의 이치를 말한 것으로 승의(勝義) 중의 승의라는 뜻이다. 말을 여의고 상(相)을 끊었으므로 성자(聖者)가 안으로 증득(證得)하는 경계이다. [93쪽 설명] 이언절상(離言絶相)말을 여의고 상이 껐어졌다. 깊은 이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형상으로 표현을 할 수 없다.
일진법계 나와 더불어 우주가 하나다. 부처님경전과 [도덕경 세상은 한 부대자루와 같다.] 배속에 있는 기생충이 머리로 가는 것이 우리가 미국 가는 것 보다 더 멀다고 한다. 내 몸에 기생물이 사람 수보다 많다고 함. 그래서 우리 몸을 소우주라고 한다.
세속에서 세간승의(世間勝義)만 얻어도 존경받을 만한 도인이지만 부처님은 승의승의에 이르러야 한고 했다. 우리는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지 말고 이루어진다. 승의승의가 진여다 다듬어 성취해야 진여지 다듬어 성취가 되지 않은 것이 진여는 아니다.
이 수행의 경지는 앞에서의 3종승의(三種勝義)보다 수승하므로 승의를 반복하여 승의승의(勝義勝義)라 한 것이다. 세 번째의 증득승의(證得勝義)는 아․법(我․法) 2공관(二空觀)을 닦아 진여(眞如)의 경지(境地)를 증득(證得)하므로 수승하기는 하지만 아직 닦고 증득해야 할 바가 남아 있기 때문에 승의승의와는 같지 않다.
승의승의의 참뜻은 더 이상 닦고 증득해야 할 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수행경지(修行境地) 가운데 최상이라 하겠다. 송(頌)에서 제법승의(諸法勝義)라 한 것은 바로 이 승의승의를 말한다.
제2구에 즉시진여(卽是眞如)라고 한 진여(眞如)에 진(眞)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뜻하고 여(如)는 여상(如常)의 뜻으로 바꿀 수 없는 불변(不變)을 말한다. 이러한 뜻을 합하면 진실여상(眞實如常)이 되고 진실여상이란 항상 모든 법의 본성(本性)과 같으므로 부증불감(不增不減)의 묘처(妙處)이다.
제3구에 상여기성(常如其性)이라 한 기성(其性)은 제법의 본성 또는 법성(法性)이다. 이는 곧 제법의 승의는 담연항적(湛然담담한다.恒寂항상 고요하다.)하여 법성(法性)과 상응(相應)한다는 것을 뜻한다.
승의가 이루어지면 안팎으로 동요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안으로 동요되지 않는 것이 어려우나 끊어지고 나면 밖같것 끈기가 어렵다. 감성은 밖같것인데 감성을 끈기 어렵다. 미운 것도 3대째 미워했던 것은 화해를 하려해도 잘되지 않으나 가벼운 미움은 화가 났다가고 그 다음날이면 웃을 수가 있다. 어렵다고 계속 갖고 있을 것인가. 사람은 미워하는 마음을 내면 뇌에 독기가 생긴다. 그 독기가 내 몸을 친다. 남을 미워하면 그 독기로 인하여 나를 몇 백배 친다. 보약도 필요가 없고 어디서 온지를 모른다. 여름에 땀은 독기를 빼주는 것인데 이것을 애어콘으로 못나오게 하면 병이 많다. 이런 것은 이유를 아는 병이고 풍하시습은 치는 자리를 알지만 남을 미워해서 오는 병은 간을 치고 어디고 칠 줄을 모른다. 미워하는 사람 있으면 나 좀 살자 내 건강을 지키려고 화를 참아라. 담담해서 항상 고요한 사람. 노래하고 즐겁게 노래하는 것 보다 정신을 마음을 깨끗이 하고 공부하는 것이 훨씬 좋다.
제4구의 유식의 실성(實性)이란 변계(遍計)와 의타(依他) 두 성(性)은 모두 실성(實性)이 아니며 오직 원성(圓性)만이 제법의 실성임을 말한 것이다. 본송(本頌)에서 승의(勝義)․진여(眞如)․유식실성(唯識實性)으로 표기한 것은 모두 한 가지 같은 뜻이다.
일체 이명(똑같은 이름이다. 하나이면서 이름만 다르다. 몸은 하나나 이름은 승의이든 법성이든 진여이든 이룰 놈은 바로 그놈이다. 의타기는 안할 수 없다 더불어 살기에 의타기는 하되 변계소집만 하지 마라.
진여에 이르는 공부를 해야겠다.
24송부터 다시 짚어 본다. 상무성 무자연성 원리전 소집 아법성 말로 하면 이 자리를 승이무성 상무성 무자연성 원리전소집아법성
初卽相無性 次無自然性
後由遠離前 所執我法性
삼성의 의미는 상이 무성이기 때문에 상에 국집할필요가 없고 집착할 필요가 없다. 상에 동요되지 않을 수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 연인이 만나 황홀 무쌍하여 결혼을 하나 지금까지 황홀 무쌍하냐? 그때 변계소집을 했구나. 상무성 형상보다는 그 사람의 언행 깊이를 중요시해라 형상보고 황홀경으로 가지 마라. 무자연성은 천연생이 아니고 인연생 인연멸을 알아라. 집착을 멀리여윈성품은 승의(변계소집을 버리면 이루어진다.) 허공. 달은 주인이 없다 보는 사람이 주인이다. 이것이 무성이다. 이런 도리를 배워 깨닫는 것이 우리 공부다.
此諸法勝義 亦卽是眞如
常如其性故 卽唯誠實性
25송 승의무성을 가지고 와서 모든 법에서 제일이다. 즉시 진여다. 항상 그 성품 여일하기 때문에 유식의 실성이니라. 유식의 실체라고 한다. 유식의 실체는 승의무성 진여법성 상무성 무자연성 승의무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상무성을 깨달으니 일체현상계에서 집착하지 않고 동요되지 않고 인도에서는 연상수행법을 시킨다. 연상수행이란 예쁜 여자를 놓고 마음이 흔들리며 해골을 관하라. 그러면 정이 떨어져 그 생각 없어진다. 연상수행법은 부처님 초기에 많이 나온다. 수관을 하면 방에 물이 찬다. 연상수행은 의식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화 된다. 어려운 관법이다. 일본에서 사명대사 죽이려고 구리로 방을 나서 다 타 죽었게구나. 했는데 들어가 보니 방에서 덜덜 떨고 있더라. 방에 물이 가득한데 물 수자를 꺼꾸르 성취될 때까지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전제를 가지고 가기에 깊은 관은 아니다. 물을 관한다. 사람을 놓고 해골을 관한다. 무엇을 놓고 관하는 것 보다는 조사선 주제를 가지고 가지 않는다. 참선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데 법문을 자꾸 듣다보면 내속에서 자꾸 의문이 생긴다. 의문이 생기지 않았는데 어떻게 참선을 하겠는가. 좌선은 의문이 생겼을 때 앉아서 버티는 훈련이다. 버티는 훈련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앉아서 하다 보니 법문 들어 의문생기는것보다 자체적으로 더 많이 생긴다. 그러나 의문은 생기지 않고 이 생각 저 생각만 일어나면 하등 인간이다. 야!~ 내가 이 나이 먹도록 하등인간인가 분발좀 하자라고 하면 분발이 되지 않겠는가.
이전의 24송까지는 유식의 상(相)을 밝혔고 본송(本頌)에서는 유식의 성(性)을 밝힌 것이다. 성(性)은 상(相)이 의지하는 내적 본체(內的本體)요 상(相)은 성(性)에 의해 현출(顯出)되는 외적 작용(外的作用)이다.
송문(頌文)의 제1송으로부터 24송까지는 유식의 상(相)을 밝혔고 본 25송에서는 유식의 성(性)을 밝히고 다음 26송으로부터 제30송까지는 유식의 위(位)를 밝혀 수증(修證)의 경계를 설명하여 수행자로 하여금 먼저 이치를 깨닫고 이치에 부합한 실천의 방법을 제시한 것이 이 유식30송이다.
제 26 송
乃至未起識 求住唯識性
於二取隨眠 猶未能伏滅
유식을 수행하는 방법에 들어갑니다.
주제자에 의하여 세상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이 주제자다 같은 마음도 55개 심소를 공부했는데 이 마음은 의타기에서 온다. 의타기는 다른 것에 의지하여 작용이 된다. 보여야, 들어야 마음이 일어난다. 계산을 하면 변계소집, 변계소집을 하지 않으면 원성실성이 된다. 의타기에서 생긴 마음을 가지고 몇겁동안 계산을 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중생은 계산이 빠르다. 계산을 하지 마라 하면 살지 말라는 소리와 같이 들린다. 전생전생을 계산했는데 하지 말라하며 잘 되지 않는다. 일반사람보다 양반되기 힘들다. 상놈이 양반도포 입고 대문들 어갈 때 머리를 숙이고 들어간다. 양반은 벗벗하게 들어는 것 습관 상놈은 숙이는 것이 습관 상놈은 아무대서난 자고 아무것이나 먹으나 양반은 아무거나 먹지 않고 아무거나 입지 않고 성공하면 불편하다. 황산성씨 국회에서 질문하니까 주머니에 손 넣고 답했다고 신문에서 떠들어 결국 장관직 물러났다. 그 전에 방송에 나올 때는 짜놓은 각본대로 하니까 좋은 것만 보인 것이다. 단순한 동작하나도 성공한 사람은 힘들다. 힘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삼성에는 삼무성이있는데 (상무상-상이 무성이고 무자연성-인연소생 승의성-아법을 멀리 여인 것 다듬어 성취된 것. 변계소집을 멀리 여윈 원성실성 사람은 마음도 다듬어야 한다.
乃至未起識식이 일어나지 않고 求住唯識性 유식성에 주하려고 한다면
於二取隨眠이치와수면에서 猶未能伏滅아직 다 복멸되지는 않았다.
미기식 식이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탐진치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법 능소 잠잘 적에 업이 없어지지 않는다. 잠잘 때도 기분 나쁜 꿈 싸우는 꿈 음행 꿈을 꾸는 것은 의식이 있을 때는 끊어졌는데 잠속에서 끊어지지 않았다. 오관에서 하는 것은 저질러도 되는데 잠잘 때 끊어지지 않은 것은 7식이 조복이 되지 않은 것이다. 식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잠재의식까지 조복되지 않은 것이다. 마음이 끈어진자리에서 유식성에 준한다면 능가 소에 부딪치면 능가소가 부딪치지 않으면 끊어졌는데 부딪치면 나온다.
또한 순결택식(順決擇識)을 일으키지 않고 유식의 실성(實性)에 주(住)하고자 한다면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인 2취(二取)의 수면(隨眠)에서 아직 능히 복멸(伏滅)되지 않는다.
전 송(頌)에서 이미 유식(唯識)의 실성(實性)을 알고 유식(唯識)을 닦아 유식의 진의성(眞義性)에 주(住)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2취수면(二取隨眠)을 극복해야 한다. 만약 2취수면(二取隨眠)을 극복하지 못하고 유식(唯識)의 실성(實性)에 주(住)하고자 한다면 마치 잠자면서 꿈을 마음대로 할 수 없듯이 유식(唯識)의 실성(實性)에 주(住)하는 것이 불가(不可)하다.
이 송(頌)의 요지는 유식의 실성(實性)에 주(住)하고자 하는 발심 수행자가 극복해야할 바를 가리킨 송구(頌句)로서 5위(五位)의 수행계차(修行階次) 중 자량위(資量位)에 해당된다.
제1구의 미기식(未起識)은 분별2집(分別二執)을 끊어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음을 뜻한 말로서 이미 유식(唯識)의 실성(實性)을 알고 분별망식(分別妄識)을 복단(伏斷)하는 계위(階位)가 되므로 수행할 수 있는 자량(資量)을 갖추었음을 뜻한다.
분별식이 일어나지 않는 것 이정도만 되도 공부가 성공한 공부 분별심(시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성공이다.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는 아무치도 않아 물어볼만한 사람이 물어보면 신이 나는데 불어보는 사람이 아닌데 물어보면 흥이 나지 않는다. 아지 끊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조금 젊었을 떼 이런 것을 끊어야지 나이 먹으면 노여움을 타서 더 끈기 힘들다 병든 사람 늙은 사람은 더욱 노여움이 많다.
제2구의 구주유식성(求住唯識性)의 뜻은 유식(唯識)의 실성(實性)에 주(住)하기를 희구(希求)한다는 뜻으로 유식(唯識)의 실성(實性)에 안주(安住)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경계에 부딪치지 않으면 이룬 것 같은데 잠잘 때도 나오고 경계에 부딪치면 나온다. 능소
유식(唯識)의 실성(實性)이란 원성실성(圓成實性)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변계(遍計)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계에 집착하여 변계(遍計)하지 않는 원성실성(圓成實性)에 안주(安住)하고자 하여 분별2집(分別二執)의 식(識)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곧 수행이다. 그러나 이렇게 발심한 수행자가 반드시 2취수면(二取隨眠)을 극복해야 하지만 아직 여기에서는 능히 복멸(伏滅)되지 않았음을 밝힘으로써 2취수면을 극복해야 함을 계시(啓示)한 것이다.
제3구의 2취수면은 아(我)와 법(法) 곧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인 2취수면이라는 뜻이다. 수면(隨眠)이란 번뇌의 다른 이름이니 번뇌가 늘 중생을 따라다니므로 수(隨)라 하고 그 작용이 아득하여 마치 잠자는 상태와 비슷하므로 면(眠)이라 한다. 또 이를 번뇌종자라고도 하는 바 온갖 번뇌의 종자는 항상 중생을 따라다니며 제8식 중에 면복(眠伏 잠들어서 숨어있다.)해 있으므로 수면(隨眠)이라 한다.
8식에 누구를 좋아 하고 누구를 싫어하는 것이 8식으로 들어가는데 자세히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미운 놈 좋은 놈 잠들어서 들어간다. 어떠해서 미운 놈이고 어떠해서 나쁜 놈이라고 자세히 들어가지는 않는다. 기신론에서 숙명통은 마장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잠자는 것도 면복이다. 잠들었을 때 자기를 억제하고 훈련하는 방법은 쉽다. 시간을 3시에 맞추어 놓으면 눈뜨면 시게가 울리지 시계소리를 듣고 일어나지는 않는다. 꼭일어날 사람은 일어나고 나서 울린다. 시계를 소리를 못 듣고 자는 사람 1시간마다 일어나는 사람. 이 사람은 못 듣고 자는 사람보다 나쁘다. 1시간마다 일어나는 사람은 큰일을 못한다. 안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깊은 마음속에 새겨졌기에 가능한 것이다.
제4구의 미능복멸(未能伏滅)에서 복(伏)은 복단(伏斷)이 뜻이고 멸(滅)은 단멸(斷滅)의 뜻이다. 수행자가 분별2집(分別二執)은 이미 복단(伏斷)하였으나 아직 번뇌종자를 단멸(斷滅)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이 수행위(修行位)를 수행 5위(五位) 중
첫 번째인 자량위(資量位)라 한 것은 자량이란 준비한다는 뜻으로 먼 길을 떠나려면 반드시 풍족한 자재(資財)와 양식(糧食)을 준비해야 하듯이 불도(佛道)를 닦아 구경열반지(究竟涅槃地)에 이르고자 한다면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착은 끊었는데 집착하는 종자는 단멸하지 못한 상태 자량위(資量位양식이 갖추어졌다.) 식이 일어나지 않았다. 시비분별이 끊어졌다. 장자가 자량위를 잘 설명했다. 준비한다는 뜻으로 아침 먹고 뒤뜰산택하려면 준비가 필요 없다. 하루 새끼 밥만먹으면된다. 신발을 신고 싶으면 신고 말고 싶으면 말고 백리 길을 가려하는 사람은 하룻밤 영식준비를 하라 천리길은 한달 1시비분별 안하는 것 2
이 송(頌)은 불과(佛果)를 이루고자 하는 자량(資糧)이 곧 분별심과 번뇌종자를 끊음에 있다는 것을 일러준 송(頌)이다.
乃至未起識식이 일어나지 않는 것(분별이 일어나지 않는 것) 求住唯識性원한다면
於二取隨眠말할수 없는 번뇌 기분이 맞는 것도 아니고 기분이 맞지 않는 것도 아닐 때 즐거울 때 흠뻑 즐거운 것을 방해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번뇌 수면 번뇌의 종자 猶未能伏滅
이것이 끊어지면 이것이면 이것저것이면 저것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고
제 27 송
現前立少物 謂是唯識性
以有所得故 非實住唯識
현전(現前 눈앞에 나타난 것 수행자의 마음속에 )의 경계에 어떤 소견[少物 ]을 세워 이것을 유식성(唯識性)이라고 여기면 이는 이미 소득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유식에 정주(定住)함이 아니다.
수행자가 마음속에 먹은 마음을 정해 놓았다. 관세음보살을 정하겠다. 소물을 정한 것이 되고 관세음보살과 하나가 되어 내가 없어질 때 소물이 없어진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은 관세음보살을 한숨에 여러 번 불러라. 지장보살은 108념을 한때 보통 한번 쉬면되고 한 호흡에 108번을 할 수가 있다. 관세음보살은 2번 쉰다. 겨울에도 추위가 없어지고 여름에는 더위가 없어지며 흡족해진다. 잡념을 끊어내고 한곳으로 들어가는데 는 이것 보다 좋은 것이 없다. 숨이 끊어질려하는데 다른 생각이 들 틈이 없다. 느리게 염불하거나 이뭐꼬 이뭐꼬 하며 의식에다 마음을 두고가면 소물이 된다. 이것을 진짜 유식성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다. 관세음보살님을 부를 때 희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며 구하는 것이 있으면 얻은바가 있기에 얻을 바가 있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관세음보살로 화하여야만 이루워진다.중생은 화하지 않고 구하는 마음만 있다. 중생은 거지근성이 들어있는가 보다. 구하는 마음으로 구해지는 것은 아니다. 관세음보살님 불러서 돈을 벌게 해달라하면 돈 되지 않는다. 열심히 연구하며 일을 하는 것이 더 빠르다.
전 송(頌)에서 이미 수행자가 발심하여 결택식(決擇識)을 일으켜 유식성(唯識性)에 주(住)하고자 희구함을 자량위(資糧位)라 했으며 이 송(頌)에서는 발심을 더욱 분발하여 증진수행(增進修行)할 것을 설명하여 이를 가행위(加行位)라 한다.
97쪽설명
現前이라함은 보살이 무엇을 어떻게 수행하여 가행정진(加行精進)할 것인가를 안다면 이미 수행의 바른 길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보살은 수행의 도상(途上)에서 4심사관(四尋思觀)이라는 관법(灌法)을 닦아 소취(所取)인 경계(境界)가 공(空)함을 깨닫고 거듭 4여실지(四如實智)를 닦아 능취(能取 : 마음경계)와 소취(所取)가 모두 공(空)함을 깨닫는다.
가행정진(加行精進) 이름 붙은 곳에 가서 다른 것 하지 않고 참선만 하는 것 용맹정진 집에서 하는가 보다 절에 가서 법당에서 하는 것이 낫고 법당보다는 이름붙어있는 참선도량에서 1시간을 해도 그것이 훨씬 낫다.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정진만 하기에 좋고 집에서는 온갖 것을 다하면서 정진하는 것이고 이름붙은곳에서는 그것만 하는 것이라 낫다.
현전 관법을 닦을 때 나타나는 경계 관법에는 네 가지 관법이 있는데 4심사관(四尋思觀)이 있다. 4심사관(四尋思觀)을 닦고 나면 4여실지(四如實智)를 얻는다. 4여실지(四如實智)를 닦아 사위 12개차가 나온다. 부처님이 참선방법 사염천관(심수심법) 유식에서는 사심사관법 네 가지 지혜가 생겨날 때까지 4가지 단계가 있더라.
이렇듯 4심사관(四尋思觀)을 닦아 4여실지(四如實智)를 증득(證得)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4선근(四善根)의 위(位)를 체험하게 되는데 4선근(四善根=4위)이란 난위(暖位)․정위(頂位)․인위(忍位)․세제일위(世第一位) 등이다. 여기에 이르면 여실지에 이른 것이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겼다. 급하지 않은 사람은 되지 않는다. 문제를 방바닥에 놓고 정좌하고 앉아 1시간을 관한다. 난위가 온다. 난위는 온몸이 철철 끓는다. 한 가지 일에 몰입을 하니까 뜨거워진다. 정위 다른생각하나도 없이 머리에 뜬다. 인위 지속적으로 그 생각을 한다. 세제일위 일이 해 결났다. 중생은 어떻게 하고 몸이 뜨거워지지 않으면 해결이 나지 않는다. 화두도 이런 방법으로 하면 된다. 참선자는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수행자는 문-들어야 한다. 사-생각을 해야 한다. 수-닦을 수 계속 반복하여 몰입해 들어간다.
견도-도를 봤다. 무루지를 이와 같이 수행자가 4심사관(四尋思觀)과 4여실지(四如實智)를 닦아 향상된 도[見道]로 취향(趣向)해 감으로써 4선근(四善根)을 체험하면서 점차 무루지(無漏智)를 증득(證得)하는 것이다.
먼저 4심사관(四尋思觀)을 말하자면 제법의 명(名-명예에대하여 관찰)․사(事-사리에 대하여)․자성(自性)․차별(差別)에 대하여 심사관찰(尋思觀察)함을 말한 것으로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명심사관(名尋思觀) :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모든 중생(衆生)․축생(畜生)․사물(事物)은 모두 명칭이 있으나 명칭은 본래 가립(假立)된 것일 뿐 사물의 본체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은 이미 지실(知悉)하는 바이다.
주객론에서 설명을 하면
주인과 객 이름은 객 주인은 나 객은 아무거나 부처도 된다. 주인은 밖을수 없다. 주인은 실제(실상) 객은 가짜 여기서도 이름은 다 가짜다. 이름은 바꾸면 그만이다.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장자에서 허유라는 사람이 임금 되어 달라고 하니 농담반 진담반으로 천하에 한구석이라도 임금할자리 하나라도 내어놓으면 임금을 기꺼이 하겠지만 지가 할 일을 다해놓고 임금 이름만 가지면 뭐하냐. 실재로 할 것이 없는데
주객론 주방장은 객 주인은 주인 주방장 음식 잘못한다고 주인이 들어가서 음식하랴? 이름명자는 주객론으로 객을 명이라고 한다. 여기서 명은 색을 말한다. 12연기 무명 행 식 명색 물질에 대하여 철두철비하게 물리학과 일치를 한다. 물리학은 물질에 대한 것을 기계를 가지고 하고 참선은 직접 하는 물리학이다. 수없는 물질을 관을 관찰할 필요가 없다. 내 몸에 잇는 것을 관찰하라.
가령 책을 책이라 하지 않고 다른 이름을 붙였으면 다른 이름이 되듯이 모든 명칭은 가립(假立)했을 뿐 실(實)이 아니다. 그러나 중생은 항상 명(名)으로 인하여 집착을 일으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생기고 서로 다투고 모함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오직 가명(假名)일 뿐 실(實)이 아닌 명(名)에 대해서 응당 심사관찰(尋思觀察)하여 필경 공(空)임을 깨달아 명상(名相)에 동하지 않고 실(實)에 주하는 것이 명(名)을 심사관찰(尋思觀察)하는 명심사관(名尋思觀)이다.
사심사관(事尋思觀) : 사(事)는 작사(作事)의 뜻으로 일체 사물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5온(五蘊)․12처(十二處)․산(山)․하천(河川)․사람․짐승․집 ․가구․결혼․상례(喪禮)․농업(農業)․공업(工業) 등이 모두가 사(事)에 해당된다. 사리에 어긋나게 사는 사람도 많다, 사리에 맞으려면 이치에 밝아야 한다. 일상생활이 사에 해당한다. 일상생활의 이치
그러나 이러한 사물이나 형식 등은 모두 인연에 의해 생(生)하고 유식에 의해서 발현(發現)되므로 인연과 식(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자성(自性)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찰나에 변멸(變滅)하므로 당체가 곧 공(空)이며, 존재하는 것 같으나 실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살이 허망하게 변현(變現)된 사(事)에 대하여 심사관찰(尋思觀察)하여 그 외형적 가상(假相)에 미혹되지 않음을 사심사관(事尋思觀)이라 한다.
자성심사관(自性尋思觀) : 자성(自性)이란 매1법(每一法)과 1신상(一身上)의 자체성(自體性)이며 독립성(獨立性)이다. 각각의 법(法)과 개체(個體)마다 그 독립성이 존재한다면 이 독립성은 다른 법[他法]의 자성과는 공통되지 않는다. 반면에 각각의 법에 모두 보편성이 존재한다면 이 보편성은 서로 같아서 타법(他法)의 자성(自性)과 공통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성은 본래로 무소유이며 필경공(畢竟空)이므로 오로지 허망한 분별만이 있을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제법의 자성이 허공과 같음을 심사관찰(尋思觀察)하여 허환의 집착을 여의는 것을 자성심사관(自性尋思觀)이라 한다.
有一物於此하니 絶名相호대 貫古今하고 處一塵호대 圍六合이로다 內含衆妙 外應群機하며 主於三才하고 王於萬法하니 蕩蕩乎其無比요 巍巍乎其無倫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명과 상을 끊었지만 예과 이제를 관통햇고 한 티끌위에 존재하지만 육함을 사고도 남는구나 함허스님이 지은 금강경 서문]
이 마음은 화가 나더라 어떤 때는 화가 나지 않더라. 등등 관찰함.
차별심사관(差別尋思觀) : 차별이란 명(名)과 사(事) 갖가지 차별상(差別相)을 말한다. 명(名)의 차별(差別)에는 음(音)과 의(義)가 있고, 사(事)의 차별(差別)에는 대소(大小)․방원(方圓)․고저(高低)․선악(善惡)․유루(有漏)․무루(無漏) 등이 있으며, 또한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부동(不同)함과 무량(無量)한 차별(差別)을 함유하고 있다.
길을 알아야 한다. 물고기는 물에 길이 있고 하늘 날라가는 놈을 물속에 넣으면 안 되듯 각기 자기 길이 있다. 물고기 대접해 준다고 방바닥에 이불 덮어 주면 다 웃는다. 그것 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하고 사는 것이 중생이다. 동물들한테 자비심은 자기 혼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비 사는 것에 방해를 하지 않는 것이 자비다.
사심사관 명사자성차별 명에 대하여 심사 관찰하니까 여실지 사리에 대하여 심사관철하면 여실지 자성심사관찰 여실지 차별의 이치를 확연이 알면 여실지 명사자성 차별에 대한 여실지가 나온다. 나오기 전까지가 4선근이다.
명심사관 12처(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이것을 버리면 평등성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보살이 수행할 때 제법(諸法)의 차별상(差別相)에 대하여 심사관찰(尋思觀察)하여 차별상(差別相)의 실상을 깨닫는 것을 차별심사관(差別尋思觀)이라 한다.
이상에서 4심사관(四尋思觀)을 닦아서 얻어지는 지혜를 4여실지(四如實智)라 하는 바 여실(如實)이란 실성(實性)과 같다는 뜻으로 제법(諸法)의 실성(實性), 곧 진여(眞如)를 말한다.
모든 법(法)을 심사관찰(尋思觀察)하여 지혜를 얻고 지혜가 생기면 모든 법의 명(名)․사(事)․자성(自性)․차별(差別)이 실로 진여실성(眞如實性)과 같아 공(空)이며 무소유임을 깨닫고 모든 분별을 여의므로 근(根)․진(塵)․의 경계가 아니요, 오직 유식실성(唯識實性)일 뿐이다.
4심사관(四尋思觀)을 닦음으로써 4여실지(四如實智)를 얻고 4여실지(四如實智)를 얻음으로써 유식실성(唯識實性)을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4관(四觀=사심사관)․4지(四智-4여실지)는 유식(唯識)을 수행하는 기본방편이다.
수행자가 열심히 심사(尋思)하지만 아직 결택(決擇)되지 않았을 때를 관(觀)이라 하며 이러한 과정을 인위(因位)라 하고 관(觀)에 의해 지(智)가 생(生)하고 일체법을 결정적으로 요해(了解)하여 성공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이것을 과위(果位)라 한다. [수행결과 위]
4심사관(四尋思觀)을 닦아 명(名)․사(事)․자성(自性)․차별(差別)이 모두 유식(唯識)에 의해 생긴 것이며 방편으로 이름 붙여졌기 때문에 식(識)을 떠나서는 일체법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지혜를 무상지(無上智)라 하며 무상지는 모든 법의 실성(實性)과 조금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여실지(如實智)라 한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4심사관(四尋思觀)을 닦아 4여실지(四如實智)를 얻어서 일체 허망분별심을 여의는 것으로 불도(佛道)의 본분(本分)을 삼는다.
4심사관(四尋思觀)과 4여실지(四如實智)를 수행함에 반드시 위차(位次)가 있으니 이를 4선근(四善根)이라 한다. 4선근은 난위(暖位)․정위(頂位)․인위(忍位)․세제일위(世第一位)이다. 이 4위(四位) 중에서 난위(暖位)와 정위(頂位)는 4심사관을 닦아 일체만법의 경계인 소취(所取)가 공(空)임을 관(觀)하고 인위(忍位)와 세제일위(世第一位)는 4여실지를 닦아 능취(能取)와 소취(所取)가 모두 공(空)임을 관(觀)하는 것이다. 4선근을 약설(略說)하면 다음과 같다.
난위(暖位) : 이 위(位)는 '성유식'에서 명득정(明得定-삼매)에 의해 하품(下品) 심사관을 닦아 소취(所取)가 없음을 난위(暖位)라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명(名)․사(事)․자성(自性)․차별(差別) 네 가지가 모두 분별식에 의해 잠시 있다가 없어지고 마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 위(位)는 광명난법(光明暖法)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난위(暖位)라 한다.
눈을 감고 엄마 얼굴을 떠 올려 봐라 절대로 사진같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대단한 정력이 있는 사람이다. 엄마 얼굴 또 올리듯 화두를 그렇게 하는 것이다. 화두 없이 정에 드는 것은 소용없다. 정에 의해서 관무소취 한 가지를 계속 관하니까 몸살을 하는 자리가 끊어 졌다.(난위) 끊어져서 오로지 한마음 난위를 거치며 여실지 팔팔 끊는 단계
정위(頂位) : 이 위(位)는 '성유식'에서 명득정(明增定-명이 더해지는 것 명득정보다 더 깊어지는 것 )에 의해 상품(上品) 심사관을 닦아 소취(所取)가 없음을 정위(頂位)라 한다고 했다. 관(觀)이 더욱 깊어져서 광명이 증장되고 지혜가 향상됨을 말한다. 이 위(位)는 명상(明相)의 광염(光炎)이 더욱 치성하기 때문에 정위(頂位)라 한다. 확실하게 선명하게 한상태
인위(忍位) : 이 위(位)는 '성유식'에서 인순정(印順定)에 의해 하품여실지(下品如實智)를 닦아 소취(所取)가 없는 곳에 정념(定念)을 이루고 능취(能取)가 없는 가운데 또한 정념(定念)을 즐기므로 인위(印位)라 한다 하였다. 이 위는 정념(定念)을 이루고 즐기므로 아직 인력(忍力)이 더 필요하므로 인위(忍位)라 한다. 수행자의 기본 반복하는 힘 한번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반복해야한다. 반복하는 것
세제일위(世第一位) : 이 위(位)는 '성유식'에서 무간정(無間定)에 의해 상품여실지(上品如實智)를 닦아 능취(能取)와 소취(所取)가 공(空)임을 깨달아 세제일위(世第一位)라 한다 하였다 . 틈새가 없는 것
이 위는 견도위(見道位)에 이르러 중간에 끊어짐이 없으므로 무간정(無間定)을 이루었고 이를 세제일위(世第一位)라 한다. 이미 상품여실지를 발하여 능취와 소취가 모두 공(空)임을 인지(印持)했으나 세간법을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세제일(世第一)위라 한다.
송(頌)에 입소물(立少物)이라 한 것은 소견(所見)을 말한다. 마음은 원래 언설․심연(心然)․형상(形相)을 여의었기 때문에 소물(少物)을 세워 유식성이라 여긴다면 유식실성(唯識實性)일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잘 난사람은 잘난대로앞가면 뒤에 따라 가는 사람이 좋다. 사명대사 눈 밭갈 때 잎가는 사람 잘 가라 뒤따라오는 사람 그거 보고 따라 간다.
27송 현전에 하나를 세우는데 사심사관을 닦아서 4여실지 여실한 지혜를 가지고 산다면 심사관찰을 해야 한다. 보고도 못 배우는 사람도 있으나 대부분 보고 듣고 심사관찰하면 깨닫는다. 보통사람은 보고도 듣고도 못 깨닫는 사람도 있다. 이런 부분은 축생 보다 못할 때도 있다. 체험하고도 못 깨닫는다. 4선근 이 이루어진다. 난이 정위 인위 세제일위 이제 부터는 심사관찰을 해야 한다. 깊은 선정에 들어가면 2선정은 각관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 경전도 배우지 마라 염불도 하지마라 하지만 모르고 참선하면 업속으로 들어간다. 자운스님이 율사로 까다로운 스님인데 태국을 갔다오. 시드니 계율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 돼 라고 갔다 오시더니 깨닫고 오셨다 태국은 육식하고 길에서도 담배피우고 그런다. 계율 이것도 허상이구나. 진짜 잘지 키는 것이 있다. 승려3년의무를 마치고 나면 계속 승려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 여자를 보지 않으려면 부채로 가려놓는다. 마음으로 끊어야지 부채로 가린다고 끊어지는가. 사람은 들어서도 안 된다 태국에 계율이 그렇다는 말씀을 드려도 믿지 않았는데 직접 가서 보니까 이해를 하셨다. 진관사 비구니 스님 절에 비구가 못 가는데 노후에는 가셨다고 함. 계율은 그 나라 습관에 따라 다르구나를 보고 안 것인데 듣은 것만으로는 어렵다. 심사 관찰 보고 깨달아 진다.
제 28 송
若時於所緣 智都無所得
爾時住唯識 離二取相故
若만약에 時어떤때에 혹시라도 於所緣반연을 부디첬을 때 보고드를때에 智지혜에 무불별지都모두 無所得 얻을 바가 없어졌다.
爾時住唯識 離二取相故 능취(자발적)와 소취(상대적)가 다 없다. 분별이 다 없어졌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수행을 한다.
만약에 소연경(所緣境바연바 보고들은봐 )을 대할 때 무분별지(無分別智-관렴에서 벗어난 지혜)로 (인식하여) 도무지 얻을 바가 없으면 그 때 비로소 진여(眞如)를 증득(證得)하여 유식의 진승의성(眞勝義性)에 주(住)하게 되리니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두 분별상(分別相)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지혜는 이익을 찾기 위하여 내 마음이 지혜가 생겼다. 지혜를 가지고 이혜를 추구하지 않으면 지혜가 있는 사람이 이긴다. 내 이익을 챙기지 않는다. 지혜가 가만히 있지 않다. 개교(계산)가 있으면 진짜 마음이 아니다.
이 송(頌)은 수행자가 발심하여 자량위(資量位)를 거쳐서 가행위(加行位)에서 더욱 증진되고 이 위(位)에서 통달(通達)의 경지에 이르게 됨을 밝혔기 때문에 이 위(位)를 통달위(通達位) 또는 견도위(見道位-도가 보이는 자리)라고 한다.
사- 사물 이-이치 실상 정신적인 것.
육바라밀도 사 이로 나누어진다.
보시시하며 복덕이 돌아오고 지계를 하면 상대방이 알아준다. 지게는 행동이다. 행동을 존경받게 하지 않으면 존경받지 못한다. 행동은 나무랄 때가 없는데 그것은 업때문이라 업이 같아지도록 하면 된다. 부부가 업이 다르면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다. 때를 기다리거나 업을 바꾸면 된다. 예를 들어 시댁이 도둑이다 그러면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시댁에서는 니가 뭐가 잘났다고 화이분류(도둑이 같이 되어 주나 도둑질은 하지 마라) 공자의 가르침중 아주 중요한 것임 군자 있는데 군자의 도를 가고, 그러나 화하면 자기가 더할 수도 있다. 물들지 않게 할 것. 인욕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친다.
정진 -사
선정-삼매 몰입 지혜-이
모든 사물에서 번뇌장(경계에 따라 분별 보고 들으면 망염을 일으킨다)이 있고 모든 이치에 소지장(이치에 대한 장애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번뇌 혼자서 부글부글)이 있으면 유식장을 요달할 수가 없다. 진여경계를 증득할 수가 없다. 두 가지가 끌어져야 비로소 사람은 근심걱정이 없어진다.
통달위(通達位)는 자량위(資量位)를 거쳐 가행위(加行位)에 이르러서도 일체이치(一切理致)에 대한 소지장(所知障)이 있어서 유식성(唯識性)을 요달하지 못하고 진여경계(眞如境界)를 증득하지 못하지만 가행위(加行位)의 마지막 경지인 세제일위(世第一位)에 이르러 망념의 구름이 걷혀 본래 존재하는 달을 볼 수 있으므로 통달위(通達位)라 한다.
통달(通達)이란 소지장(所知障)이 없어지고 2공(二空)에 의해 현현(顯現)된 진여(眞如) 즉 보리실성(菩提實性)을 요해(了解)한다는 뜻이다. 이 위(位)를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하는 것은 요해(了解)가 곧 견(見)이며 실성(實性)이 곧 도(道)이기 때문이다.
제2구의 지도무소득(智세간의 지혜 분별하는 것 출세간의 지혜는 분별이 없는 것 차별이 없는 것 좋은 사람은 옆에 있고 싶고 싫은 사람은 저쪽에서 나타나도 기분 나쁘다. 분별이 끊어지면 좋고 나쁨이 끊어져 좋은 사람와도 나쁜사람와도 큰 차별이 없다. 이래야 올바를 지혜가 나오고 올바로 본다.都無所得)은 지(智)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말한 것이니 능(能=내안에 있는 것 오늘은 이것을 좋아하다. 내일은 어제 싫어했던 것을 오늘은 좋아하고 그것 아니면 죽을 것 같아도 잘 산다. 약속을 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면 잊어 버렸나보다 하면 된다. 갚을 보가 잊어 버려야 한다.)․소(所-상대방)․2취(二取)가 공(空)임을 관해서 2공진여를 실증(實證)하여 심(心)과 경(境)을 모두 여의면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으니 이것이 곧 무분별지(無分別智)요, 또는 근본지(根本智)라고도 한다. 근본지를 성취하면 모든 경계(所緣境)에 무소득(無所得)일뿐 아니라 능관(能觀)의 지(智)도 무소득이므로 지도무소득(智都無所得)이라 한다.
너무 하찮은데서 사람은 벌어진다. 집안에 갈등이 많은 사람은 미세한 일을 놓치지 마라. 큰일은 잘 챙기고 작은 일은 안 챙겨도 한다고 함. 밥을 잘 사주는데 보면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러면 밥 사주는 것보다 보고 인사를 잘한 것이 더 정스럽다 작은 것에 감화를 한다.
2공진여(二空眞如 몇 번 눈물을 흘리고 몇 번 거처야 터득이 된다.) 능소가 끊어지지 않으면 번뇌가 계속 간다. 자타가 끌어 져야 한다.
네가 글러수가 있느냐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맘이 편안하면 상대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 악심을 풀고 인사하면 인사가 더 괴롭다. 그것도 전달이 된다. 내행동거지 내 처신을 잘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내 마음에 평정이 되도록 하라. 마음에 안맞는일이 눈에 귀에 거슬리지 않게 노력하라.
제4구의 이2취상고(離二取相故)는 마음[心]과 경계[境]가 모두 공하면 지(智)는 오직 직관적 작용일 뿐이다. 이러한 무분별지(無分別智)는 만류(萬類) 중에 차별(差別)을 여의므로 이를 진리(眞理)라 하고 이 경지에서 유식성(唯識性)에 주(住)하게 된다. 능(能)․소(所) 2취(二取)의 상(相)을 여의면 만법은 모두 진여(眞如)이고 평등(平等)이며 이 평등진여가 곧 유식의 실성(實性)이다.
수행자가 도(道)를 닦는 과정에서 자량위(資量位)․가행위(加行位)․통달위(通達位)를 경과하게 되는데 이 위(位)가 곧 3현위(三賢位)이다. 이 위(位)는 유식의 실성(實性) 곧 진여법성(眞如法性)이기 때문에 능과 소의 2취 분별상(分別相)을 여읜 그 자리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 기도를 한 사람은 무슨 일이 생기겠구나. 안다. 그러면 염불을 하여 가라 앉힌다. 아무리 가라안지 않을 때는 절에 가서 절하고 기도하라 절에갈 형편 되지 않을 때는 108배를 해라 자기 스스로 안정을 찾아야 한다. 밖에 안 좋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과 경계를 다 여윈다.
밖에서 나쁜 경계가 온다 해도 물들지 않는다. 어떤 법에도 가히 얻을 것이 없는 것은 완전히 통달이 한 가지도 집착함이 없어야 한다. 일은 집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집착은 일을 꼬이게 한다. 집착함과 동시에 고통이 따른다. 한 가지 법에도 집착을 없앤다. 지는 해를 보고 울지 않는다. 해가 지고 나면 내일 뜬다는 것을 아니까 해가 뜨지 않는다고 하면 울 것이듯 사람이 죽으면 다시 오는 것을 알면 슬퍼하고 울 것이 없다. 무지하여 다시 오는 것을 모른다. 해가 지면 뜨듯이 사람이 죽으면 다시 온다. 곡식도 겉고 나면 그다움에 또 자라서 온다. 중요한 것은 윤회의 실상에서 인자가 계속이어 진다는 것은 과학으로 입증을 했으나 조상과 같은 인자가 식이 연결되는 것은 과학으로 입증이 되지 않았다. 이것은 불교로 입증을 해야 하는데 삼매에 들면 알아진다. 이는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깨달음으로 알아진다. 무분별지(근본지) 는 동요가 없는 지혜 소연(경계)위 무소득 수행을 하는 이유가 근본지를 성취하는 것
유교에는 수심 불교는 수행 유교의 수심법 격물(格物-다스릴격자 만물을 다스릴줄 알아야 한다. 사물의 이치를 규명해야 한다. 유교에는 군자가 되기 위하여 공부하는 것이고 불교는 보살이 되기 위하여 공부한다.) 治智(다스릴 치자와 지혜지자 지식도 다스려야함) 성의(성심을 다하라. 유교식으로는 방법이 어렵다) 정심(마음을 바르게 써라 이것도 유교에서는 방법이 불분명) 수신(몸을 다스린다. 불교에서 지계와 같다) 제가(자기 집 못 다스리면 안 된다. 우리나라도 70년데 장군 부인이 절격사유가 있으면 감등됨). 치국(나라를 다스리는데 에 일조를 한다. 불교신도는 사회성이 빠져있다. 나라를 위하여 내가 어떤 이익을 줄 것인가. 대부분사람이 나라를 위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하겠지 하고 하지 않는다.) 평천하(천하를 편안하게 중국에서 치국은-지방자치단체 지방을 맡으면 왕 또는 제후 전체를 다스리면 황제 지방을 다스리는 제후가 20개라면 20개를 다 합치면 천하
유위법 법은 있으나 실천하는 사람이 적고 무위법은 법이 없으나 실천은 다 한다. 격물 사물을 판달할줄 알아라. 아무리 말로서 사물 판단이 되겠는가. 불교의 참선을 해야 한다. 불교는 무위법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세심한 항목은 구애받지 않는다. 유위법은 물건으로 보시를 한다. 무위법은 능취와 소취가 되어 움직였다하면 다 보시다. 유위법의 보시는 하고나면 아까운 것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은 이광수씨 육바라밀 무엇이든 주고 싶은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를 베웠노라. 같은 보시를 놓고 이광수씨는 멋지게 표현을 했다. 경전에 없는 멋진 말로 보시를 표현했다. 이광수씨도 망가트리고 쭉쨍이들이 큰 인물을 망가트리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二取相故 두 가지 상을 여위였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짠하고 나오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지혜냐? 마음과 경계가 다 텅 비었다. 경계에 동요가 되지 않는다. 안 끌려가는 것은 자기가 더 깊어져야 한다. 자신감이 있으면 떨리지 않고 자기 노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없다. 강심장이 아닌 사람이라도 실력(참선으로 깊어진 실력 염불로 깊어진 마음)이 있으면 떨리지 않는다. 실력은 유위법이나 참선을 많이 하여 실력이 얻어지면 지식에 의한 실력보다 훨씬 깊어 잘한다. 차별을 하지 않는 것은 청정심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많이 유식에 주하게 된다.
자량위(資量位-26송 양식을 준비한다.)․가행위(加行位-27송)․통달위(通達位-견도위 28송에서 설명)를 경과하게 되는데 이 위(位)가 곧 3현위(三賢位)이다. 이 위(位)는 유식의 실성(實性) 곧 진여법성(眞如法性)이기 때문에 능과 소의 2취 분별상(分別相)을 여읜 그 자리이다.
자량위는 뜰앞에 산책하는 사람은 세끼 밥만 먹어도 만족 옷 입어도 그만 안 입어도 괜찮다. 100리 하루 먹을 것. 천리를 떠날 사람은 한 달을 방아를 찌어 양식을 준비해 떠나라
사심사관 사선근 사여실지 가행위를 얻어 통달위 26-28송 삼현위 설명중 다 알아야 하지만 가행위에서 법수 사심사관 사선근 사여실지 잊어버리면 안 된다. 통달위에 오니까 智都無所得 지혜를 얻고 얻을 바가 끊어졌다. 지혜 없는 사람과 지혜 있는 사람이 같이 있으면 지혜 있는 사람한테 다 빼앗기는데 빼앗지 않는 것이 智都無所得이 된다. 이때에 이르면 진짜 유식에 실성에 이르게 된다. 무엇 때문에 공부하는가. 유식실성에 주하려고 한다.
기신론에는 삼매에 들면 어떤 이득이 있느냐 10가지 이득이 있다. 진여실상에이르면 삼매에 드는 이득과 똑같다. 1 불보살에 가피를 입는다. 삼매에 들지 않으면 가피를 받지 못한다.
부처님 세계에 들어가야 부처님의 가피를 받는 것이다.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부처님의 세계는 아주 깊은 세계이다. 깊은 경계에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은 참선이다. 그러면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가 있다. 2천마(천재지변) 외도(수많은 사람이 정도와는 거리가 멀다. 외도는 정도를 방해 한다. 위대한 사람은 오히려 죽고 난 다음에 유명해진다. 그 당시 이해를 못하여 배척을 당하고 눈 밝은 사람이 나와 밝혀진다)의 장난을 받지 않는다. 미국사람들이 한 것은 다 본 받고 우리나라사람이 하면 존경받지 못한다. 사자의서가 영문으로 되어있기에 유명한 것이지 우리나라 시달림 제문이 훨씬 깊고 좋다. 영문으로 되어있지 않으면 알지를 못한다. 영문으로 하여 미국부터 우리나라로 오면 더 유명해 진다. 이 심소는 뭔 심소인지 모르겠다. 공부의 분발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백번을 말해도 원력이다. 삼매를 닦으면 불보살님의 가피를 받고 천마외도의 장애를 받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수행해서 삼매를 성취해 봐라.
삼매를 닦는 방법 기신론에서는 10가지가 있다는 것만 나왔고 수행을 하는 방법은 나오지 않았는데 제일 공부하기 좋은 것은 초기경전인 사염처관(四念處觀) 두 번째는 유식30송의 4심사관(四尋思觀)을 열심히 반복해서 수행하면 된다.
28송 다시 설명 마음에서 능소 이치상을 버린다는 것은 어렵다. 성유식은 번역만 해 놓으면 3,400페이지 나온다. 사람 마음은 능소(안의 마음, 내마음과는 상관없이 밖같 경계에 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 둘이다. 상황에 따라 마음이 작동한다.
밖같의 마음을 먼저 설명하면 기분 좋은 사람 만나면 기분 좋고 기분 나쁜 사람만나면 기분 나쁘다. 안의 마음을 설명하며 자기소견이 나오면 바둑을 두거나 장기를 둘 때 옆 사람이 훈수를 두면 훈수 두는 데로 하면 이길 텐데 자기 고집으로 하여 지는 사람이 있다. 길을 가다 그 길이 아니니 저기로 가시오. 하면 기분 나빠서 그대로 간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심소가 있다. 이것은 아상이다. 아상이 없는 사람은 바꾸어서 가니 좋다. 능취상 자기주장대로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능취소취가 없어야 무분별지가 된다.
유식을 공부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이상(능취.소취상)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능가 소를 벗어나면 그때부터 고통이 없어진다. 그러면 무분별지가 된다. 밖같 어떤 바람에도 동하지 않는다.
서울 가본사람이 안가본 사람한테 진다 사람이 완전히 객관과 주관에 빠지면 지혜는 나오지 않는다. 도무지 얻은바가 없다. (도무지도) 구하고 싶은 것이 없어지고 취하고 싶은 것이 없어졌다.
정주영씨네 집에 20년된 TV를 본다. 이것은 좋은 점이 아니다. 더 이상 부자 되기 싫다는 뜻 향상이 되지 않는다. 아껴야 될 사람이 있지 부자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구하는 마음이 끊어진 것은 집착이 끊어진 것이다. 구할 마음이 끌어지면 무엇 갖고 먹고 사냐? 걱정하지 마라. 거지도 굶어죽지 않는다. 참새 세 마리가 굶어 죽는 흉년이라도 거지는 긂어죽지 않는다.
분별이 끊어진 지혜는 얻을 바가 없어졌다. 그때가 바로 유식이다. 홀로설줄 알면 성공이다. 세상에도 저 사람은 사귀면 내가 얼마나 이득을 볼까 라는 계산을 하게 한다. 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비굴함 이 생긴다. 구하는 마음이 끊어 져야 비굴한 마음이 없어진다. 의탁하는 마음이 끈어저야 이취상을 능취 소취를 여위게 된다.
제 29 송
無得不思議 是出世間智
捨二粗重故 便證得轉依
무분별지(無分別智)는 무득(無得)이며 부사의(不思議)이며 출세간(出世間)의 지(智)이다.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라는 두 가지의 조중(粗重)한 종자를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보리(菩提)․열반(涅槃)이라는 두 가지 전의과(轉依果)를 증득할 수 있다.
사람 바뀌어지는 것을 가르친다. 轉依(어제의 아무게가 오늘은 달라져야 한다.) 달라지지 않았으면 밥 먹지 말고 대상통곡을 해야 한다. 어제는 이만큼 오늘은 이만큼 이렇게 달라지는 맛이 있어야 사는 맛이 있는 것이다. 전위(바꿔져야 한다)을 이루어야 한다. 명예 있는 이는 있는데도 불만족 없으면 없는데도 불만족 중생이 부처로 변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 안에 부처가 들어 있는데 부처는 잠을 자고 중생이 설치고 있다. 중생심을 내버리고 부처로 변하자
無得: 구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구부득고 인위적으로는 구해지지 않는다. 무심하면 구해진다. (금강경 야부님송에 이루는 유심실이요<유심으로하면 잃어버리고> 망상은(?) 무심 득이라
옛날에 황제는 지금의 황제와 의미가 틀리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조상 대대로 대쪽 같은 조상이 계셨다는 말을 들은 사람과 듣지 않은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 10대조 할아버지는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세상에서 이런 존경을 받았다는 말을 해주면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자녀들 성공하기는 바라며 방법을 제시해 주지 않고 성공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방법을 제시해주고 성공하기를 바라라.
옛날 황제는 일반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을 했다. 황제는 출천지인이라하여 하늘이 보낸 사람이고 생각한다. 이 인식이 앞으로는 생겨나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하늘이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에 아무게처럼 부자가 되려 해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내린 부자인 것이다. 하늘에서 보내준 사람이라는 것이 인식이 되면 행동거지가 다르다. 이것이 인식된 사람과 되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많다. 인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돈 있겠다. 뭔짓이든 하고 사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미국식 사고방식이 와서 다 흐려놓았다. 옛날에 정치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며 하늘에서 보내서 온 사람이 라고 인식 했다. 부처님은 황제뿐 아닌 일체중생은 성불할 수 있다.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사람으로 부처종자가 있다고 인식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냥 나온 사람이 아니라. 부처 종자가 있다. 부처 종자가 있다고 해도 믿지를 않는다.
누구나 부처 종자는 있는데 중생심으로 부처종자가 숨어 있을 뿐이다. 황제가 내가 발탁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 중에 된 것이기에 하늘이 추천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너만 부처냐 나도 이속에 부처가 있다. 내가 성불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확신이 있으면 이 사람 만큼 위대한 사람은 없다.
사람에게 마음이 여의주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여의주가 없다. 황제가 연목에다 여의주를 빠트렸다는 말은 황제가 정치하다 마음을 상실했다. 라는 말을 상징한 것이다. 황제가 연못에 여의주를 빠트렸는데 찾아와라 했는데 첫 번째 지식이 제일 많은 신하 못 찾아 왔다. 두 번째 말을 제일 잘하는 신하 그래도 못 찾아와 세 번째 눈이 제일 밝은 신하 백리 밖도 볼 줄 알고 개미 기어가는 것도 보이는 신하도 못 찾아 왔다. 먼 곳에서 찾으니 앞에 잇는 것을 못 찾는다. 네 번째. 망산이라는 신하는 눈도 코도 없는 백치에 해당하는 신하가 들어가자마자 찾아온다. 백치인 망산은 계산하지 않고 무심으로 찾았기 때문에 찾은 것이다. 이두는 눈이 너무 밝아 계산했고 먼데것만 보았기에 발등에 있는 것이 보이지 않고 등잔 밑이 어두운 이치와 같다. 유심으로 살펴보면 보배도 놓치고 무심으로 살면 찾는다. 힘 안들이고 살고 싶으면 무심으로, 힘들게 살고 싶으면 계속 힘써라 그러나 일은 되지 않는다. 쉽게 살려면 무심으로 해라.
不思議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젓가락으로 수운을 잡으려 하면 잡겠는가. 무심으로는 잡아 진다. 부자도 적은 부자 적은 것은 유심으로 얻어진다. 계산으로 할 수 있는 것은
出世間智 지혜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세간지, 출세간지가 있는데 세간지는 계산으로 출세간지는 계산으로 할 수 없는 혜
과학은 믿을 것이 못된다. 정일구 선생이 주역정혜를 만들었다. 복희 문왕(주나라최초의 임금) 공자(문왕과 공자의 시대적 차이가 500년이다) 순으로 삼인이 주역을 완성했다. 연 임금(지금부터 5천 년 전) 이전의 이야기 주역을 우리나라사람은 신처럼 모시고 따르는데 정역을 정일구 선생님이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의 주역을 만들었다. 선천 괘는 천지가 생기기 이전 하늘과 땅이 떨어지고 후천은 천지가 만들어져 사람의 사는 이치 남녀가 같이 있으며 아버지 옆에는 딸 엄마 옆에는 아들이 있다. 이 세상에는 각자 앉을 자리가 있다. 주인의 자리 아버지 자리 엄마자리 안방마님자리가 있다. 주역은 점이 아니다. 선천의 시대가 가고 후천의 시대도 갔다. 인천의 세계가 왔다. 이것은 신의 시대가 갔다는 것이다. 정일구 선생은 서해안이 중국을 밀고 올라간다. 서해안 계발하여 넓혀 가면 가능할 것이다. 밀고 올라가는 시기가 앞당겨 진다. 안산시 시화호 세만금호 등 환경운동가들이 반대해도 밀고 올라간다. 가보고 아는 것은 도가 아니다. 가보지도 않고 아는 것이다. 해빙기에 오면 얼음산이 녹아 한순간에 무너진다. 고드름의 꼭지만 떨어지면 잠기고 역립된다. 김일구 선생님의 정해에 나옴. 온난화 현상이 제촉하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정역을 읽어 본사람은 살아난다. 이 책을 일고 놀라지 않은 사람은 놀라지 않아 죽지 않는다.
세간의 지헤는 세간 사람에게 복되게 하는 지혜 출세간지혜는 몇 천 년 지난 뒤에도 사람에게 이익을 준수 있는 지혜 부처님의 지혜
교통사고 비행기 사고는 천재지변 병드는 것 등은 장애 때문이다. 장애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을 업을 없애는 것은 업장소멸이다. “열심히 살겠으니 장애만 없게 해 달라.” 하는 것 큰 욕심이다. 성불을 하겠다는 큰 욕심을 내라. 부자인 시아버지가 12대문 집을 사준다고 하니 며느리가 집 관리하기 힘들다고 50평짜리 사달라고 했는데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게을러 부잣집 며느리 노릇을 못한다. 마음의 그릇이다. 욕심이 적으면 문제나 움막집도 사줄 형편도지 않는데 큰 집 사달라는것도 문제나 큰 집을 사서 많은 사람들보고 살라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고마워서 집 청소하며 살 수 있다.
어디 가던 사람은 발탁되어야 한다. 조그만데서 발탁되고 그러면 더 큰 곳에서 발탁이 된다. 발탁이 되어 일하는 것도 복짓는 것이다. 열심히 하면 어디가나 발탁이 되나 열심히 하지 않으면 되려고 해도 발탁이 되지 않는다.
미국에 여자 세 명 가수가 10년전부터 슈퍼마케등 작은 곳에서 노래해주고 했는데 10년전에 알던 사람들이 펜이 되었던 것이다. 10년전 베푼 공덕으로 유명해 졌다고 본다. 세상은 복은 지은만큼 업이 없어져 복 지은만큼 받는다. 능력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라도 발심을 시켜라. 업장이 소멸된다.
두가지 무겁고 거친 것을 없에야 하는데 번뇌장 소지장을 버려야 한다. 능취 소취와 같은 것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고집 부리면 능취에 빠져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 능취에 빠져있다 “거울을 보면서 챙겨만 입으면 어디가나 빠지지 않치 한다“ 조금 잘하면 얼마나 뻑이겠는가 소취 나무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것
옛날 임금이 저 사람 못서여 하면 해임하고 다른 사람이 와서 그 사람 좋은데 왜 그래요 하면 그래 하고 또 취용하고 이런 임금은 못쓴다. 보살님들도 미워하는 사람인데 누가 와서 저 사람이 너 칭찬 많이 하더라 하면 그래 하고 눈 녹듯이 마음이 풀린다. 사람 마음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이것이 장애가 된다. 이 두 가지 장애를 버리면 문득 전의과(轉依果)를 받게 된다. 전의과(轉依果)는 106쪽 참조
4구(四句) 맨 끝에 전의(轉依)라는 뜻은 전(轉)은 굴린다는 글자인데 여기에 굴려서 버린다는 뜻과 굴려서 얻는다는 두 가지 뜻이 있어 이를 전사(轉捨-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린다. 굴려서 버린다. 수행을 하여 버린다. 애써서 버린다.)․전득(轉得-얻는 것 굴려서 얻는다.)이라 하고 의(依)는 소의(所依)의 뜻으로 곧 제8식의 소의처(所依處)를 말한다. 종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제8식은 그 안에 번뇌와 소지 2종의 종자를 저장하고 있으며 또한 보리와 열반의 종자도 저장하고 있다.
여기서는 제8식을 의지하여 번뇌와 소지 2장(二障)의 종자를 버리고[轉捨] 열반과 보리의 종자를 얻으므로[轉得] 두 가지 조중(粗重)을 버리고 보리 열반의 두 가지 전의과(轉依果)를 증득함을 말한다. 이상 2조중(二粗重)을 버리고 2전의(二轉依)를 증득하여 불과(佛果)를 이루기 위하여는 10바라밀을 닦아 10지(十地)에 이르러야 한다.
번뇌 소지 두 개를 버리니까 열반과 보리의 종자를 얻는다. 그러면 불과를 얻는다. 아와 법 두 가지 집착을 끈기위하여 10바라밀을 닦아 10지를 이룬다. 화엄경에서 나오는 것과 똑같은데 유식에서는 번뇌 소지를 버리고 보리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10바라밀을 택했다. 화엄경에서는 중생(번뇌 소지가 있으면)을 버리고 10바라밀을 닦아 부처가 되라.
화엄경에 십바라밀(十波羅蜜, daa-pramit )과 유식의 십바라밀과 일관되게 일치된다. 보살이 수행하는 핵심사상이다. 이것을 닦으므로 성불의 도에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바라밀에 들어가기 전 이것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번뇌와 소지에 대한 개념이 파악되어야 한다. 누구를 사랑할 때는 아!~ 내가 번뇌를 일으키는구나 하고 무릎을 치고 깨달았을 때 번뇌라는 개념이 이해가 된 것이고 번뇌인줄도 모르고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만 벌떡거리면 번뇌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람보고 싶은 것만 생각한다. 번뇌의 개념을 모르면 10바라밀을 닦을 수가 없다. 이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수행을 한들 수행이 되겠는가. 마음속에 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순수한 것이냐 아니면 내 욕심인가를 아는 사람 아!~ 내가 아직도 원이 아니라 내 소견은 욕심만 차 있구나 하는 사람은 10바라밀을 닦을 수 있는 그릇이 된 사람이다. 이렇지 않은 사람은 말로는 잘 닦아요. 하지만 닦는다고 할 수가 없다.
이 자리가 공부를 해서 얻은 수 있는 것은 유위법 얻을 것이 있는 것이고 무위법은 얻은 것이 없는 것이다. 양파 껍질을 벗기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 일을 마친 것 이것이 모득이다. 세상 사람들의 전도는 대부분 보인다. 그런데 깊은 마음자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봐도 보이지를 않는다. 사람의 능력이 한계가 있는데 한계가 벗어난 능력은 보이지를 않는다. 그래서 불가사의(부사의)라 하고 출세간지라 했다. 세간의 지혜는 수학적인 지혜, 출세간의 지혜는 수학적으로 계산이 되지 않는 것 지금까지 말한 경지는 특별한 사람이나 되지 우리가 되겠는가. 라고 생각하지 말 것 금강경에서 수보리가 이것을 듣고 신심을 내겠습니까. 안내겠습니까? 하고 부처님께 묻는다. 사람이라면 법문을 들으면 신심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 출세간지를 한번 성취해야 되겠다. 하는 사람은 신심이 나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해당사항 없음 하면 신심이 나지 않는 사람이다. 출세간지를 얻으려면 두 가지 무거운 번뇌장과 소지장이 없어져야 하는데 밖같에서 상황을 보고 움직이는 것, 안에 속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있다. 이것이 없어지면 변즉전의(전의과 전득106쪽 설명)
번뇌 망상을 버리려면(전사를 하려면) 10바라밀을 닦아야 하는데 10바라밀이 되기 전 수행은 관법을 했다. 선정삼매에 들면서 보리를 증득했는데 왜 끝가지 관법을 하지 않고 10바라밀을 하는가? 망념을 버리는데 가장 좋은 것은 관법수행인데 선정삼매를 성취해야 망을 버리는데 버린 자리가 보리기 때문에 얻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버린다. 그러나 중생은 반대다. 버리것은 생각하지 않고 얻을 것(보리)을 얻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망이 또 생겼다. 망을 버리면 보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요즘 선원에 가면 일주일에 증득을 한다고 하는데 거울에 자기 마음을 비추어봐라. 망이 일주일에 없어지겠는가. 공부는 백가지 말을 해도 망이 버러지지 않으면 안 된다. 망이 버려진 것이 아니고 일주일 동안에 공상이 하나 늘어난 것이다. 가닥을 알면 일주일도 공부를 많이 하는데 견성을 인가한다고 하는 말은 틀리다. 그것은 체면이다. 실제공부는 망을 버리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하려해도 순간순간 업식이 꿈틀거린다. 이것이 남아있는한 보리와는 거리가 멀다. 관하면서 버릴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정말 망이 구나를 알아진다. 자식에 대한 집착 남편의 집착 남편이 다른 여자 봐도 싸우고 이것이 다 망이고 진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여기서 공부 실컷 하고 이문 밖을 나가면 미운 사람이 생겨 네가 나하테 하며 또 망이 나온다.
관을 하면 이런 마음이 날때 아!~ 이거 망이 또 나오는구나 하며 망을 안다. 보글보글한 마음은 나두고 보리를 구한다고 하면 보리를 구할 수가 없다. 그럼 왜 관법을 하지 않고 현실적인 10바라밀로 수행(현실수행방법)을 하는가. 일반 사람이 아는 보시와 부처님법의 보시는 차이가 크다.
① 보시(布施:檀那)바라밀: 자신의 선근(善根)을 중생에게 베푼다. 신명을 다하는 보시. 보시하는 것과 망을 버리는 것은 다르다. 망이 버려지지 않으면 보시를 할 수 없다. 우리가 하는 물질보시는 100년을 가도 망이 버려지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보시가 아닌 부처님 당시 눈을 달라하면 눈을 빼주고 몸의 살을 달라하면 살을 주는 보시. 탐욕이 있으면 이놈 줄까 저놈 줄까 다주면 우리는 뭘먹고 살라고 그러니까 크게 먹고 사는 도리를 모른다. 똑같은 세상에 나왔는데 세상을 크게 살 생각을 하라. 적은 것은 탐착을 하지 않는다. 보시를 하면 기쁨의 경지가 나온다. 가리 왕에게 한 다리를 잘라주고도 화가 나지 않았다. 신명을 바치고도 기쁘다. 그보다 더 기쁨이 가득한 경지는 없다.
② 지계(持戒: 尸羅)바라밀: 계율을 지킴에 의해 번뇌를 멸한다.
③ 인욕(忍辱:提)바라밀: 자비를 우선하여 중생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④ 정진(精進:昆梨耶)바라밀: 싫어함이 없이 훌륭한 가르침을 수행한다.
⑤ 선정(禪定 또는 정려(靜慮:禪那))바라밀: 일체지(一切智)의 길을 관망하여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힌다.
⑥ 지혜(智慧:般若)바라밀: 제법이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믿고 실천한다.
이와 같은 육바라밀에 다음을 더하여 십바라밀이라 한다.
⑦ 방편(方便)바라밀: 방편에 의해 무량한 지혜를 닦고 중생구제에 진력한다.
⑧ 원(願)바라밀: 서원에 의하여 최상의 지혜를 구하며, 중생을 구제한다.
⑨ 력(力)바라밀: 일체의 그릇된 논의를 파하여 중생을 제도한다.
⑩ 지(智)바라밀: 일체법을 여실히 안다.
보살의 수행 단계에 따라 구분하는 10지(地)를 흔히 10주(住)라고도 한다.
제1 환희지(歡喜地=보시)에서는 보살이 처음으로 불법의 이치를 깨달아 기쁨을 느끼는 제1 단계를 여덟 가지로 나누어 해석한다. 즉 서분(序分), 삼매분(三昧分), 가분(加分), 기분(起分), 본분(本分), 청분(請分), 설분(說分), 교량승분(校量勝分) 등이다. 보살이 환희지에서 느끼는 기쁨이란 곧 부처님을 믿고 공경할 때 생겨나는 마음이며, 모든 번뇌를 떨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제2 이구지(離垢地=지계)에서는 더러운 때와 같은 번뇌를 떨치고 깨끗하게 되는 제2 단계를 발기정(發起淨)과 자체정(自體淨),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보살은 계율을 지키고 10선행(善行)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마음속에 번뇌를 버리지 않으면 소용없다. 요즘 튀고 싶다 뜨고 싶다. 하는데 저 혼자 튀려고 하면 저 미치겡이가 어디 있어 하게 된다. 존경받고 튀려면 이구지가 돼야 한다. 옆에서 인정해줘야 튀는 것이다. 계율이 지켜져야 한다. 계율을 지키려면 먹는 것을 지켜줘야 한다. 육식을 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계율을 안 지치게 한다. 새벽에 예불하는 것도 젊은 스님들의 끓는 피를 누워서 자면 여자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없기에 그 생각 못하게 하기 위하여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게 한 것이다. 이구지를 이루게 하기 위하여다. 산중이나 팃뱃에서 석 달만 잘하고 나면 향기가 난다. 육식을 하게 되면 몸에서 누린내가 난다. 법당에 같이 앉아 있던 사람은 모르나 사람이 빠지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냄새가 대단히 난다. 그러나 거기 있었던 사람은 잘 모른다. 니 냄새 내 냄새 섞여있기에
제3 발광지(인욕) : 수행중 인욕이 제일 어렵다. 자제력을 실천하는 방법 밥 한숫갈 덜 먹기 자제력을 잃은 사람은 한숫갈 더먹는다. 진묵대사 시에 하늘은 이불삼고 땅은 자리 삼고 산을 평풍 달은 촛불을 삼고 바닷불은 술독을 삼아 실컷 취하고 나니 한바탕 춤을 추고 싶은데 장삼자락이 곤륜산에 걸려 까봐 그것만은 하지 않겠다. 발산을 하고 하는데 최후에 하나는 하지 않겠다. 자제력을 말함 말도 화가 난다고하여 속이 시원하고 오해가 풀려 말하고 싶지만 말을 참고 참아라. 거기서 얽힌 기운이 광명으로 지혜로 발산된다.
제4 염혜지(焰地=정진)에서는 모든 번뇌를 불길로 태워 버리는 제4 단계를 넷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즉 청정대치수행증장인분(淸淨對治修行增長因分), 청정분(淸淨分), 대치수행증장분(對治修行增長分), 피과분(彼果分) 등이다.
정진에서 염혜지가 일어난다. 정진바라밀 나이 머리 삼가지 말고 경전을 많이 외어라.
린다김이라는 여자가 TV에 나와 세계의 로비스트가 된 경위를 이야기 했다. 로비스트 모이는 자리에 아르바이트를 3년 했는데 아르바이트 받는 돈이 많아 이것이 보물이라 생각하여 그 사무실에 앉아 공부를 3년하니 세계 동향이 다 보여 아르바이트가 아닌 내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함. 우리나라 빼고 비밀리 무기 팔아 본적이 없다고 함. 무기 사는데 양명하여 자기네를 만나야 가장 싸고 좋은 것을 산다고 함. 우리나라는 그런 것도 비밀리에 한다고 함. 그 이유는 그것을 등에 업고 지가 챙기기 위하여 만나기에 비밀이란다. 전 세계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기에 전 세계 사람이 만나려 한다. 아르바이트 수백 명은 아르바이트로 끝나나 열심히 하여 머리를 써 자기가 했다. 이런 것이 머리다 머리를 써라. 머리 나쁘면 답답하다.
공부하기 싫고 잘 외어지지 않으면 참선 2시간씩 하라 그러면 터진다. 참선해서 터지면 더 잘 안다. 그러나 산란심이 많은 사람은 바람기가 많은 사람은 참선이 되지 않는다. 앉으면 머리가 보글보글 끓으면 복잡하다. 이럴 때는 되지도 않는데 이모고 하지 말고 관세음 보살님 한데 매달려라. 얼른 염불해라. 되지도 않는 것 하고 있지 말고 선생은 야멸차게 망신을 주면 더 잘한다. 참선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내가 여기서 죽도라도 해봐야겠다. 선생이 오기가 나게 가르쳐 주면 선생님이 가르쳐 주지 않으셔서 감사했습니다. 자기가 찾아서 하게 된다. 하는 방법을 처음부터 가르처 주는 사람은 하지 않는다. 올바른 정진 몇 달만 노력하면 답이 나온다.
남이 하는 것 보고 따라 가는 것은 안 되나 그렇게 하여 성공한 사람은 간혹 있는데 예전에 했던 사람이며 가고자 끓고 있었다가 힌트를 얻어 더 빨리 이룬 것이다. 마음속에 끓는 것이 없는 사람은 너나 잘 해라고 그친다. 그러니 방법 논하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
미국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 얼마 남지 않았다. 중국의 시대가 온다. 미국은 고호가 되어야 침체가 되지 않는데 국가 운은 국민한테 달렸다. 우리나라 IMF 우리 국민이 만든 것이다. 클린턴은 남봉꾼이라도 합리적이다. 강성도 아니고 물러 터진 것도 아니고 설득력도 있고 부시는 너무도 강하여 전 세계가 다 반란이다. 앞으로 문화가 동양권으로 오니까 자기가 잘 찾아라.
제5 난승지(難勝地=선정바라밀)에서는 어려운 고비를 이겨 내는 경지, 즉 제5 단계를 셋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보살의 교만을 없애는 것, 둘째 끊임없이 불도를 닦는 것, 셋째 불도를 닦아서 얻는 결과에 대한 것 등이다.
극복하기 힘든 경지 선정 선정에는 안주 정려 변사 정려 능력이 없어 보이는데 편안하게 복을 받고 사는 사람이 있다. 참선은 배우지 않았는데 안주하는 힘이 있다. 허덕이지 않는 것이 귀격이다. 마음이 부글부글하는 사람인데 능력은 있다. 똑똑한데 일이 잘 되지 않은 사람 안주가 되지 않은 사람이다.
인발 정려(인위적으로 선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뭐꼬 하려고 한다. 이런 것을 인발이라고 하는데 인발은 하고 정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변사정려 일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문무제신들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는데 늦게 와서 뭘 그렇게 하느냐 이렇게 하면 된다고 가르마를 타주는 사람이 있다. 이것도 훈련이다. 가릴변자 일을 가린다. 마음이 깊어져가지고 오는 경우 훈련되서오는 사람도 있는데 마음이 깊어지는 사람이 더 좋다. 공부하는 것 10바라밀 화엄경 10지품은 무궁무진하다.
제6 현전지(現前地=나타나는 지혜 )에서는 지혜가 드러나는 경지인 제6 단계에 대해서 논한다. 보살은 세상의 모든 사물이 공하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번뇌를 없애는 것이 곧 부처의 지혜를 얻는 길이라 한다. 딱 눈앞에 들어나는 지혜 반야바라밀을 닦아서 얻는다.
환희지-보시 이구지 -지계바라밀 발광지-인욕, 보시를 하면서 환희지를 얻고 지계바라밀로서 이구지에 이르고 인욕을 하면서 발광지에 이룬다. 정진-염혜지에 이른다. 불꽃염 발광의 빛광자 염혜지의 염자는 지혜를 상징하는 글자 광명이 이 세상을 다 비춘다. 광명은 지혜다. 선정바라밀-난승지 이런 것을 닦아서 현전지.
지혜바라밀을 닦아서 얻어지는 것이 현전지다. 지혜가 들어나야 쓰는 사람이지 지혜가 들어나지 않으면 지혜가 숨어 지혜덩어리가 다 숨어 있는데 이 덩어리가 밖으로 나오면 되는데 나오지 않고 숨어 살기에 중생이라고 한다. 생공반야 법공반야 이공반야 생공은 중생이 공이다. 법공은 법이 공 이공은 중생과 법공이 다 공이다. 아공 법공 구공을 삼공이라고 한다. 생공은 아공 나라는 의미 내 밖에가 다 법 반야바라밀을 닦으려면 아공 법공 구공을 아가 없는 것임. 반야바라밀이다. 아가 없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금강경에 공이라는 말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는데 공이다. 반야바라밀이 공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구나. 아공의 의미는 내가 없다는 금강경에 아상 인상 중생상이 없으면 아공이다. 아상 인상 중생상이 있으면 비공(중생)이다. 아상 인상 중생상이 없으며 탐진치가 끊어진 것이다. 몸뚱아리를 지운다고 지워지는가. 아상이 없기에 탐진치가 끈어졋다. 자기를 착각하고 산다. 자기는 탐욕이 없다고 생각한다. 옆에 사람이 탐욕이 있다. 삼일만 굶어봐라 탐욕이 없는가? 다 있다.
금강경에는 육바라밀 중에서 제일 바라밀(보시바라밀), 인욕바라밀, 반야바라밀 금강경이 나올 때만 해도 육바라밀이 완성되지 않아 삼바라밀이였다. 화엄경은 10바라밀 사상서는 제일 나중에 나온 것이 가장 잘된 경전이다. 지나간 것을 보고 보안하여 나왔음으로 그러나 사람은 초기로 돌아가서 보려한다. 거기가면 엉망진창이다. 동해 바다를 이룬 물줄기를 찾아가 보면 태백산에 있는데 이것이 시발점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제일 늦게 나온 책들이 중국사상을 대표한다. 시경 후대 사람들이 살을 부치고 하여 만들어 났으니까 그렇지 말이 되지 않는 것이 많다. 제일 먼저 나왔으니까 화엄경은 제일 늦게 나온 것이니까
제7 원행지(遠行地=방편바라밀)에서는 인간 세상을 멀리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는 제 7단계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육바라밀까지는 육바라밀로 이루어진다. 방편바라밀을 닦아 이루어진다. 중생은 방편이 없습니다. 중생은 방편을 쓰면 전부 거짓말이 된다. 부처님은 방편을 쓰면 거짓이 아니고 그 사람을 살려낸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놀고 있는데 불났다고 나오라고 해도 나오지 않을 때 그 시대에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수레인데 수레가 있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다 나왔다. 수레가 있다고 나오라 했으니 49년간 대승 소승을 불리하여 설하셨다. 방편에 아이들이 다 살아났다. 법화경에서는 수레로 비유를 들었고 금강경에서는 뗏목, 사람을 태우고 가는거 고통의 바다 고해를 바다기 때문에 못 건넌다. 뗏목이 고마우니까 짊어지고 간면 얼마나 우수은 일인가. 뗏목은 강을 건넜으면 버려라 수레는 사바세계 중생들이 편안하게 가는 도구, 갔으면 수레가 필요 없다. 이런 뜻에서 팔만대장경 곧 문자가 필요 없는 것이다. 염불하면 필요 없어 경전을 왜 봐 다 필요 없어 참선을 해 라고 말하면 틀린 말이다. 편안하게 가려면 수레가 필요하고 가고나면 수레를 버리고(경전. 염불) 참선을 수행하라. 공부가 완성되기 전에는 공부해야 한다. 안배우고 안는 도리가 하나 있다. 그러나 안배우 알려면 배운 사람보다 몇 배 노력을 해야 한다. 신통을 얻어야 한다. 배워서 금방 할 것이 있고 안 배워서 알려고 하면 참선해서 통한다고 하면 글자 하나도 모르고 영어가 터저가지고 와봐. 안배우고 뭘 통한단 말인가. 강을 건널러면 뗏목(경전. 염불)으로 건너야 하고 수레를 타지 않고 건너면 발이 다 부르트고
세상사는 것이 그냥 걸어가는 것 보다 더 고통이다. 고통 받는 세상을 좋다고 간다. 팔만대장경에 수레를 타면 고통이 없어지고 회향방편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 마무리를 하는 방법이 나와 줘야 한다. 노인네들도 돈이 있어야 자식한테 대우를 받는다. 부모가 소견이 고약한사람이 있다. 예쁜 사람한테 다주고 미운 자식한테는 주지 않고 많이 준 사람은 다 팔아서 호주로 이민 갔다. 다 주면 부모 모시겠다고 했다. 회향을 그렇게 할 줄을 모른다.
내가 공부를 잘 하려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공부하는 사람을 만들어라 몇 사람의 지혜가 다 내 것과 같다. 나보다 더 잘할 수도 있다. 중국오대산 절 주련에 세 사람이 지혜를 모으면 문수 지혜니라고 적혀 있다.
제8 부동지(不動地-원바라밀)에서는 마음의 동요가 없는 제8 단계를 일곱 가지로 분석한다. 원바라밀을 세우니까 부동지가 되었다. 공부에는 원력이 첫 번째인데 10지에는 8번째에 와 있다. 1 구보리원- 보리를 구하고자 하는원 상구보리. 2 도중생원 중생을 제도하자 하는 원 하화중생 보살의 사상은 원이다 보살은 첫 번째 상구보리(자기를 구한다) 하화중생(중생을 구한다) 진정한 보살의 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8식 부동지에 와서 원바라밀을 세워야 보살의 사상이 성립이 되는 구나 이 보살 사상을 진짜로 보리를 구하고자 하니까 원이 가득 차니까 동요가 생기지 않는다. 멍청하면 동하기를 잘한다. 한순간도 쉼함이 없이 바글바글한다. 원이 세워지면 바글바글 끓을 틈이 없다.
제9 선혜지(善慧地=역바라밀)에서는 부처의 지혜와 거의 같은 경지의 지혜를 얻는 제9 단계를 넷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역바라밀(力波羅密)에는 2종이 있다. ① 사택력(思擇力-열심히 하면 나타나고) ② 수습력(修習力-반복하면 나온다.) 득력(得力)을 얻어야 한다. 노래하는 사람은 득음 글 쓰는 사람은 필력(筆力) 힘을 얻어야 한다. 역바라밀(力波羅密)에 이르려 하면 참선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공부는 쌍수를 해야 한다. 겹쳐서 수행을 해야 한다. 절대 한가지로 가라하면 정신병자를 만든다. 하루도 낮과 밤이 있듯이 공부는 하나로 가면 안 된다. 참선 수행을 하되 반드시 겸해야 한다. 경전 수학과 참선을 같이 하여야 한다.
조그만 일에도 고생하고 끄적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일도 수월하게 가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다 선정삼매 수습(반복)하면 된다.
제10 법운지(法雲地=지혜)에서는 부처님의 법은 마치 만물을 소생시키는 비의 원천인 구름과도 같다는 제10 단계를 여덟 가지로 나누어 분석한다.
10바라밀에는 지혜바라밀이 2번나오는데 6번째 나오는 것은 지바라밀이라 하지 않고 반야바라밀 나를 성취시키는 바라밀 10번째 바라밀은 중생을 제도하는 바라밀. 나를 먼저 성취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에서 10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다.
수용법락지(受用法樂地-내가 받아드리는 것 법락을 수용한다. 잘못 가지 않을 때처럼 즐거운 것이 없다. 법법자와 즐거울락 세상의 즐거움에는 법법자가 빠지고 탐락이 되는 것이다.)
성숙유정지(成熟有情智-유정을 성숙시키는 지혜) 유정은 중생을 말함으로 중생을 성숙시켜 보살로 만드는 것. 10바라밀중 하나만 성취하여도 나는 뭐라고 하나를 성취하여 공부하라. 이 이상의 공부는 없다.
회향방편에서 우리가 절에 오면 축원할 때 회향 삼처 실원만 세 곳에다 회향을 한다. 1.보리-道 2. 실제 현실적으로 임종 시 마무리를 못하고 가니까 재산상속을 재대로 못하니까 큰 재산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이민가고 가난한 아들집에 가서 살더라. 현실적으로 상속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막상 자기일은 민정거리다 그냥 간다. 3. 중생에게 회향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량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사회에 회향하겠다. 의전도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우리는 잘 모른다. 중생에게 환원한다.
동아일보 부인 이야기 아시죠? 지도자급의 가족의 재훈련이 필요하다. 사회에 아무개 소리 듣는 사람들 50%이상 정신이상자다. 남편의 지위가 올라 갈수로 부인은 제약을 받는 일이 많다. 남편은 그 대신 술집에 가서 마담 부탁은 잘 들어준다.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다 풀린다. 여자는 올라갈수록 오그라진다. 지도자급 가족들이 어떤 방향이 제시가 되어야 한다. 나가는 진로를 만들어 가야한다. 남편과는 대화 할 시간이 없다. 재벌 집들은 정신적으로 불구자들이 많다. 이것은 보통문제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왜 그런데 끄달리는가 염불이나 하자하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내 업장이니 공부나 하자. 공부는 하지 않고 절에 가서 절 몇 번하고 오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 이렇게 앉아서 공부하는 사람들만큼 순수한 사람은 없다. 여기서 스트레스는 잠 못 잘 스트레스는 아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10지의 각 단계는 보살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방편적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누구든지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불법을 믿고 따라야 하며 흔들림 없이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 이 점은 본 경전 곳곳에서 강조하는 것으로서 모든 단계에 필수적이며 보살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점이다.
공부하는 방법이 얼마나 중요하냐. 평소에 절을 많이 하여 연골을 다쳐서 걸을 수가 없다. 어떻하면 좋겠는가? 절을 많이 하여 업장을 소멸한다고 하여 삼천배가 나쁜 것이 아니라 삼천배를 20-30이 넘으면 하지마라. 스님들이 수행할 때 몸을 극복하여야 한다. 여자를 보기만 하면 미인으로 보이니까 그것을 잡아 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계받을때는 일주일간 3천배를 한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절한 값이 아까워 허튼짓 하지 않는다. 업장이 20-30대에 다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몸을 조복 받으려고 하는 것이지 40-50되어서 108배를 3번 정도 하는 것은 좋은데 108이상을 한꺼번에는 하지 마라. 마음을 낮춰야지 몸을 낮춰서는 되는 것이 아니다.
양반이 가뭄에 큰 비가 와 머슴을 데리고 논둑을 갔는데 자기가 시범을 보인다고 아래로 물이 흘러 아래 논에 구멍을 막으니 조금 지나면 떠지고 했는데 머슴이 기가 막혀 한 삽을 떠서 윗논에서 내려오는 것을 막으니 그쳤다 머슴이 양반에게 이것을 문자로 일러 보세요. 했더니 천재기원이니라 했다. 문장으로는 할 줄 아는데 실제는 잘 하지 못함. 수행을 하려면 마음을 수행해야지 몸뚱이를 해서는 안 된다. 마음 다스리면 그만인데 몸뚱이를 못살게 굴지 마라. 경상도 신도님들은 신심이 많은 것도 문제 금강경을 다 외우라 했는데 외우기는 다 외웠는데 머리가 그렇게 아프다. 산에 오를 때, 걸음을 빨리 걸을 때 다 그렇다고 하니 스님은 호흡기 계통의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글 읽다 병을 발견했고 이치로 돌아가라. 글 읽다 살아난 사람이다.
아무 공부 하지 않고 참선으로 도통 한다고 앉아 있으면 통달은 되는데 앞서간 사람이 다 하고 간 소식을 깨닫는 것이다. 먼저 간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아는 것이 빠르다. 공부하지 않고 앉아 참선하는 것은 옳치 않다. 참선은 더 이상 사람한테 배울 것이 없을 경지가 되었을 때 이 세상에 스승이 없어 졌을 때 참선 하는 것이다. 다 배우고 앉아서 깨우치는 것 배울 것을 배우지 않고 앉아서 깨는 것은 배우는 경지밖에 미치지 못하나 다 공부하고 물을 스승이 없을 경지에 앉아 깨지면 누구도 알수 없는 제일을 자리를 깨닫는다.
배우고 하는 것과 안배우고 하는 것을 붓글씨를 보고 알았다. 가는데 마다 명필이라고 하여 글 쓸 일이 있으면 내가 쓴다고 신나게 춤추듯 썼다. 쓰면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다. 배우지 않고 자가 방탕에 빠져 제일 잘하는 줄 알았는데 병풍을 쓰고 보니 병풍을 만들 수 가 없을 정도로 비뜰뻬뚤 했는데 큰 글씨 몇 자는 스님이 봐도 잘 써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은 글자 많은 것을 쓰니 맘에 들지 않아 붓글씨를 배우고 나서 깨달았다고 함.
글씨는 자기 마음껏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가다가 멈추고 내려오다 멈추고 기분 내키는 대로 가면 자리가 좁아 적게 쓰고 하니 글씨는 자기 권역을 벗어나면 안 된다. 절제의 도, 자재의 도라고 본다. 가다가 멈춘다. 가다가 힘이 없어서 쉬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을 아껴 멈추고 쓴 것이 그냥 보면 글씨를 마음대로 쓴 것보다 못하나 작품을 걸어 놓고 멀리서 보면 배워서 쓴 글씨가 훨씬 낫다. 마음 가는 데로 시원하게 쓴 것은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다. 배워서 쓴 글씨는 걸어서 나오는 것 같다. 붓은 까불까불 마음 가는 데로 쓴는것은 시원해 보이나 혼자서 기분 가는데도 쓴 것은 죽을 때 가지 혼자 하면 이 도리를 모른다. 배워야 그 도리를 깨닫는다. 혼자서 잘 쓰던 분들이 명필을 만나 “여보게 이리 오게 하여 한수를 배우면 명필이 된다. 붓은 직각으로 내려와야 한다.” 글씨 속에 하얀게 보이며 여백이 보인다. 편 필을 써다 중봉(직각)으로 가면 여백이 없다. 배우지 않으면 이것을 모른다. 글씨에 여백이 있으면 붓을 잘 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 공부를 하시고 나면 총정리를 할 것이다. 한 땀씩 배워온 것을 묶었다 풀었다 하면 유식에 대한 개념이 생긴다.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이다. 살았을 때 쓰는 마음 죽었을 때 쓰는 마음 등을 깨닫는 다. 마음속으로 마음자리를 배우고 나면 중심이 선다. 중심이 서지 않으며 뭐를 하면 좋데 뭐를 하면 효험이 좋데 등등 따라 다닌다. 생지장 도량이레 등등 말 되지 않는 말을 하는 것도 업덩어리요. 그것을 듣고 따라 다니는 것도 업이다. 사형이 시비를 걸고 가르치려 하며 허물을 켜려고 한다. 그런데 가르칠 만 한 분이다. 티베트에서 쓰러져서 왔다더라는 소문은 들었다. 공부하러 태백산을 가자고 한단다. 그냥 스님이나 가시라고 했는데 가르쳐 주려고 하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 “가르치긴 뭘 가르쳐줘요 뚜껑을 그냥 열어 주지” 태백산 공기를 먹으면 생기가 돈다고 기도하러 가자고 하는 사형 중심을 잡고 많이 하라고 하세요. 그 공기를 먹고 오면 얼마나 가겠는가? 평생을 간다면 먹고 오겠지만 그 기운이 얼마나 가겠는가 말이다.
관세음 보살을 부르는데 처소가 없다. 용광로 펄펄 끓는데서 관세음보살 부른 힘과 선들선들 한곳에서 관세음보살 부르는 힘과 어는 힘이 더 강하겠는가. 용광로 속에 서 부르는 힘이 더 강하다. 수맥 이야기도 믿지 마라. 사람의 혈관과 같아서 우리 땅속에 수맥이 없는 곳은 없다. 단 산 쪽에 머리 두고 자면 된다. 물은 높은데서 아래로 흐르기에 산 쪽에 머리를 두라는 말이다. 동서남북이 따로 없다. 산 있는 쪽에 머리를 두면 수맥을 거스리는 것이 아니다. 물구덩이 속에 발에서 머리로 역류를 시키며 안 되니 안쪽으로 머리만 두면 된다.
얼음 속에서 염불을 하여 화기(따뜻한 기운)를 내면 좋고 더운 곳에서 염불하여 시원한 기운을 악조건에서 기도하는 힘이 중요하지 좋은 조건에서 기도하는 힘보다 훨씬 좋다. 나쁜 조건을 극복하는 것이 기도다. 사업이 잘못되어 곤궁해졌다. 한탄만 하면 죽는 사람이지만 어려운 일이 오니까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관세음 보살님께 매달려 기도하며 길어 열려 어려움에서 극복을 하는데 얼 만큼 간절하게 했는가가 문제다. 기도하면서 영험이 없다며 기도 못한 것이며 한 번도 체험하지 않았다면 기도를 억지로 한 것이다. 악조건에서 기도를 하는 것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라. 하나로 모으면 두 가지 일이 생긴다. 힘과 지혜가 생긴다. 이것이 기도의 가피다. 마음을 하나로 모은 힘 지혜 때문에 기도를 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 보다 더 빨리 하나로 모으는 것은 참선이다. 아무리 권장을 해도 발심을 하여 어떻게 참선을 하면 되는것이가. 라고 믿는 사람이 없다. 어떻게 하면 하나로 모아지는 가. 원력이 생기지 않으면 하나로 모아지지를 않는다. 원이크면 소소한 장애물에 걸리지 않는다. 원이 큰 사람은 물이 있다고 안가겠는가 불이 있다고 가지 않겠는가. 원이 없는 사람은 비가와도 가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어렵다고 하지 말고 같은 사람이 나는 왜 원이 없는가. 참회를 해야지 어려워하지 마라.
82세 된 송대관 어머니가 여자 속옷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장사를 한다. 내가 벌어서 좋은 일을 한다고 함. 아들은 엄마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할까봐 엄마 하는 것을 말리지만 엄마는 내가 벌어서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함. 좋은 일을 해야 하는데 아들 돈으로 하는 것은 자기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벌어서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하여 장사를 한다고 함. 송대관이라는 가수를 만드는 엄마도 그러한 마음씀씀이를 쓰니 큰 인물 만드는 사람들은 어머니가 다르다. 자기 길이 80넘어서도 있는 사람이다. 인간의 길 땅을 떠나서 있을 수 없고 별일을 해도 송대관이 어머니처럼 하는 이것이 도다. 살아가는 이치가 정립이 되어있는 사람이다. 유식30송 외어야 공부가 남는다.
제 30 송
此卽無漏界 不思議善常
安樂解脫身 大牟尼名法
此卽無漏界
이것(유식) 무분별지(無分別智)는 무득(無得-지혜)이며 부사의(不思議)이며 출세간(出世間)의 지(智)이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데 제일 큰 도구는 지혜다 지혜가 있으면 잘살 것이고 지혜가 없으면 못산다. 지혜가 있으면 부모로부터 받지 않아도 잘살고 지혜가 없으면 부모가 물려줘도 못산다.
신문 사태를 보고 부자라도 지식을 가진 부자가 자식한테 탈세를 가르친 것이다. 지금 현재 시민운동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 교과서 외곡은 시민운동에서 하지 않으면서 조선일보를 가지고 그러는가. 나라에서 이미 하고 있는데 이러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안 된다. 조그만 땅덩어리에 형제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 정력 가지면 일본 천왕 집이나 수상집 앞에서 하라. 자기 나라 사람끼리 그러지 마라. 신사참배 하는 것은 한국2만 몇 천 명이 봉안되었는데 한국 사람이 끌려간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일본전쟁에 간 것으로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은 하지 않고 한일 청산한다고 조병욱. 신익희. 이광수등 유명한 사람들을 다 매국노로 만든다. 이런 것이 무슨 시민운동 하는 사람인가? 우리가 위패가지고 온 다음에 참배하는 것이 맞다. 이런 것은 강 건너 불이고 나라에서 조사하고 있는 같은 나라 형제끼리는 왜 그러는가. 심하게 말하면 조선일보 폭파하자는 것은 김정일이다. 시민권 이상하다는 말까지 있다.
세상은 지혜로 산다. 무루지(물들지 않은 지혜 이 지혜를 얻어야 무루의 세계다 누수가 되지 않는 지혜 누수가 없는 세계. 1)시간 누수 시간낭비 장에 갈려고 준비하고 앉았다가 이야기 하다 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장이 끝나 버린다. 사람들이 사는 의식이 이러하다. 시간을 정해 놓고 하루에 1시간 참선하고 1시간 경전 읽고 나머지 시간은 늘 염불하고 이런 정도 되어야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급하지도 말고 하루에 3-4시간씩 읽다 며칠은 잊어버리고 바쁠수록 공부가 잘된다. 바쁘지 않은 사람이 공부를 못한다. 시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누수를 하고 산다. 그러면 시간의 누수를 안하려면 지혜 있는 사람이 시간에 누수를 안하고 산다. 2) 경제적 손실 경제적 누수 쓸데없는 물건 사다 쓰지 않고 버리는 것 내 몸에 필요한 것도 눈에 보이면 산다. 천지 사방이 구멍이나 깨진 바가지 같이 경제가 줄줄 센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누수가 적다 물이 덜 세나간다. 지혜를 닦은 사람은 무루 계를 이룬 사람이다. 3) 쓸데없는 일에 낭비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그 사람이 나한테 그랬어. 하며 미워하는데 며칠 시간이 가고 가슴이 벌렁거리며 며칠 아무 일도 못한다. 일생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누수를 하는가. 실제로 자기가 이 밥을 먹고 이 옷을 입고 이만큼 살내가 일을 하고 먹고 사는가를 정검해봐라 내가 한 것이 무엇인가 너무 많이 세월을 낭비한 것이다. 빚진 것이 아닌가.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가. 내가 한 것을 생각하라
不思議善常 백번을 해도 똑같아야 하는 것도 있고 말할 때 마다 상황에 따라 달라야 하는 것이 있는데 지혜가 없는 사람은 반대로 절대로 변하지 말을 때 가서는 변하고 변하여야 한때는 변하지 않는다. 무지한 사람은 그렇게 한다. 절대적인 것은 뜻을 세우는 것, 뜻이 자주 바뀌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 이룬다. 나이가 먹었는데도 저것을 하면 잘했을 텐데 하나 정해진 것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하나 정해진 것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참선 하루에 1시간해야 겠다. 모르면 참선에 대하여 알도록 하라. 경은 1시간 읽어야 겠다. 24시간중 나를 닦는데 2시간 써야 겠다. 잠자는 시간 8시간 자고 16시간 중 밥하고 밥 먹는 시간 6시간 그러면 10시간 남는다. 8시간 놀고 2시간은 나를 닦는데 써라. 나는 나를 맨날 닦아야 한다. 논어에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다. 가시가 돋는다는 것은 험한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듬어 지니까 (유리 문체?) 문체가 나는 군자 사람한테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라. 냄새가 나는 사람은 저사람 또 왔어 소리 듣지 않으려 며 매일 닦아야 한다. 그러면 이렇게 자기를 닦아서 지혜를 얻고 나면 부사의가 되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깊이를 모른다. 이렇게 보면 미련한 것 같고 이렇게 보면 날카로운 것 같기도 하고 깊이를 알수가 없다. 열심히 자기를 닦는 사람은 어떤 위기나 난관에 부딪치면 이렇까 저럴까 하지 않고 해답이 먼저 나온다. 자기 스스로 생각할 때도 나한테 이런한 신통이 있네. 할 정도의 판단이 나온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데 선 이반 악이반 실제로 막연하게 말하니까 선 이반 악이 반이라고 하지만 선이 20 악이 80%다. 이것을 거꾸로 선이 80% 악이 20% 수행자 악이 다 없으면 보살이라고 한다. 화가 나거든 화를 내지 말고 긍정적으로 바꾸어 봐라. 나를 업신여기거나 내가 이런 일을 당할 만큼 문제가 있었구나. 한바탕 물러서면 악이 줄어든다. 세상이 고통스러운 것은 부정적인 시각이 있을 때 그렇다. 잘해주면 또 한 여기서 선은 절대의 선을 말하기에 보살의 경지를 말하는 것 무루지를 얻고나면 악이 없어지고 선만 남는다.
상(常) 사람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안 죽기를 죽기 전에 영원하지도 않다. 오래 살고 싶은 것만 영원하고 싶다. 부부간도 영원하고 싶지는 않다. 티벳에서 부처님 행사 때는 40만 인파가 모인다. 남방 사람들 지금 가난하다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 천리를 오체투지로 간다. 우리나라 사람은 그 사람들과 같이 밥 못 먹는다. 기간은 1년이 된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아이들은 티벳에서 데려온 사람인데 팔뚝 얼굴 다 새까맣다. 그 사람들 불쌍해 보일 줄 몰라도 얼굴에 근심걱정이 없다. 우리가 진정코 영원한 것은 부처님이다. 2000년이 넘어도 살아계신 것 보다 더 존경받는다. 죽었는데 죽지 않은 것을 사의불사초?라고 말한다.) 노자는 도덕경만 지었는데 노자가 지었다고 하여야 많이 팔리기에 노자가 지었다고 하는 책이 있는데 황경정 이몸뚱아리를 수행을 잘하여 연마만 잘하면 800년 천년을 사는 것은 일도 아니다 800년 1000년 살려고 수행하는 사람 많다. 여호와의 증인도 몸뚱이가 죽지 않는다고 함. 죽었는데 아무게가 유명하다 말하기 쉽지 않다. 스님들은 오래간다. 스님은 조직이 없는데 경허스님 하남스님 성철스님 등 지금까지 명성이 있다. 단순하게 살아서는 영원하지 않다. 자기가 이몸뚱아리를 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태어나라라고 축원하면 내생에서 보고 있는 본인은 얼마나 경쾌하겠는가.
安樂 안락-세상 사람들은 고통 때문에 종교를 갖는다고 함. 그 고통이 언제 해결되는가. 어린아기가 험한 길을 갈 때 누구를 붙잡지 않으면 안된다.한 엄마가 딸 셋을 데리고 대모산을 올라가는데 큰아이 둘째아이는 초등학교 다니는데 막네는 4-5살이였는데 길이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길이 있는데 4살 짜리가 엄마손 놓고 스님 손을 잡고 가다 다 올라오니 스님 손 놓고 엄마 한테 갔단다. 어린이가 험한길을 만나면 누구엔가 의지를 해야 한다. 고통에서 벗어 날수 잇다. 안락은 아니다. 자기 스르로 자기일을 갈수 있는 것을 안락이라고한다. 남한테 의지해가지고는 편안하지 않다. 자기길을 갈때만 안락을 얻는다. 해탈심解脫身
해탈은 육체적인 속박을 말하는 것이 안고 정신적인 속박을 벗어나는 것 정신적 속박은 남이 하는 것이 아니다. 남이 나를 속박하는 것은 얼마든지 뿌리칠수가 있는데 자기가 자기를 속박하는 것은 길이 없다. 탐진치를 끊치 않으면 어렵다. 부부가 반대하는 결혼 나중에 승낙받으면 옛날에 반대 했다고 어른들 한테 보복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해탈은 반대는 속박이다.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탐진치를 하지 않으면 된다. 탐진치를 어떻게 버릴 것인가. 내가 깊어지고 공부가 깊어지는 수밖에 없다. 물이 앝으면 구정물이 쉽게 되고 물이 깊으면 구정물이 쉽게 되지 않는다. 사람이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 싶은데 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가를 가지고 불만을 하면 그 사람은 인정받기 틀렸다. 그러나 인정을 하거나 말거나 자기 공부를 하면 된다. 그러면 점점 깊어져 공부하면 인정하지 않던 사람도 다 반가워한다. 소견이 맞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소견이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과 맞지 않는다. 소견이 높은 사람은 소견이 낮은 사람을 대할 수가 없다. 소견이 깊어지는 공부를 해라 집착을 하는 사람은 내가 갖지를 못하니까 그렇다. 내가 가질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으면 집착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힘이 있으면 힘이 없는 아이가 와서 쌈을 걸면 싸우지 않고 웃고 달랜다. 해탈은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집착을 버리려면 깊어져라 깊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속박에서 못 벗어나고 속박에서 못 벗어나면 해탈은 얻을 수가 없다. 자기가 자기를 속박
大牟尼名法: 적묵(寂黙-고요할적 침묵할 묵 고요한 침묵 말이 없는 것 하늘이 말이 없다. 춘하추동은 만들어 낸다. 봄시작하고 오는 것이 아니고 말은 없으나 주역에서도 잘 밝힌다. 중이상재하고(바람은 불어서 흩틀어 내고) 우이은 자하고(비는 와서 만물을 자라나게 해주고) 하늘이 이렇게 해주었다고 대가를 내놓으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뭐 주었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곧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의 경계이며 부사의(不思議)이며 선(善)이며 영원(常)함이며 안락(安樂)이며 해탈신(解脫身)이며 대모니(大牟尼)이며 법신(法身)이라 한다.
이 송(頌)은 유식 30송의 마지막 송(頌)으로서 구경위(究竟位)에 해당되는 송(頌)이다. 구경(究竟)은 최종의 자리를 말한 것으로 지극(至極)이라는 뜻이며 수행자가 지극(至極)에 이르면 이것을 성불이라 한다. 그러므로 구경위(究竟位)는 수행자의 최고경지 곧 불위(佛位)를 의미한다.
첫 구의 차(此)의 뜻은 29송에서 언급한 2전의과(二轉依果)로서 번뇌(煩惱)와 소지(所知) 2장(二障)의 종자를 끊어 버리고 보리(菩提)와 열반(涅槃)의 종자를 전득(轉得)한다는 뜻을 이어서 차자(此字)를 써서 이것이 곧 무루계 등등이라 하였다.
무루계(無漏界)는 누(漏)의 뜻이 번뇌(煩惱)이므로 무루(無漏)는 무번뇌(無煩惱)이다. 또 누(漏)는 누수(漏水) 누락(漏落)의 뜻이며 무루(無漏)는 누수(漏水) 없는 마음이 삼계육진(三界六塵)에 누락(漏落)되지 않음을 뜻한다. 어떠한 마음이 그러냐 하면 번뇌(煩惱)와 소지(所知)의 두 장애(障碍)를 멀리 여의고 보리(菩提)와 열반(涅槃)을 증득(證得)한 이 사람이 그러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보리․열반을 성취한 이 사람의 세계는 누(漏) 없는 무루(無漏)의 세계이며, 헤아릴 수 없어서 부사의(不思議)하며,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선(善)이며, 영원불멸(永遠不滅)하는 상(常)이며, 오로지 고통이 없어서 안락(安樂)이라 하며 탐진치(貪嗔痴)에 얽매임이 없어서 해탈신(解脫身)이라 하며 어떠한 경지에서도 부동(不動)하므로 대모니(大牟尼)라 하며, 심지어는 항구불멸(恒久不滅)의 뜻으로 법(法)이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곧 수행자가 이르러야 할 목적지이며 모든 불보살의 한결같은 경지이다.
무루계(無漏界)라고 한 계(界)는 장(藏)의 뜻으로 그 안에 무변하고 희유한 대공덕이 존재(存在)하기 때문이며 또한 인(因)의 뜻이 있어서 세간법과 출세간의 모든 법(法)이 이로부터 나오고 잘못된 것을 버리고 선(善)을 행할 수 있는 묘(妙)가 이 속에 있으므로 계(界)를 법계(法界)라고도 하는 것이다.
2구(二句)의 부사의선상(不思議善常)은 역시 보리․열반을 전득(轉得)한 사람의 세계를 무루계(無漏界)라 하므로 무루계(無漏界)를 성취한 사람의 궁량이 무궁하여 부사의(不思議)하고 선(善)하고 영원(常)함을 말한 것이다.
부사의(不思議)란 심연상(心緣相)을 여읜 것을 불가의(不可議)라 하므로 심연(心緣)의 상(相)과 언설(言說)의 상(相)을 모두 여읜 것을 뜻한다. 선(善)이란 순수하여 때묻지 않은 법성(法性)이 모든 과오(過惡)를 여읜 것을 말하고 상(相)이란 영원한 법성(法性)이 변하지 않고 멸하지 않음을 말한다. 따라서 이 구(句)의 뜻은 보리․열반을 성취하고 무루계(無漏界)를 성취한 사람의 마음이 부사의(不思議)하고 선(善)하고 영원(常)함을 말한 것이다.
3구(三句)에서 말한 안락해탈신(安樂解脫身)이란 청정법계(淸淨法界)는 고통을 초래하는 번뇌가 없으므로 안락(安樂)이라 하고 모든 장애(障碍)와 속박을 멀리 여의었으므로 해탈신(解脫身)이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