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10여 나라 경계를 넘어 신명을 돌보지 않고 찾아온 뜻은 오로지 왕생극락의 길을 물어 듣고자 함일 것이다
(『歎異鈔』 2 章)
해설 - 「여러분이 먼 간토(關東)에서 목숨을 걸고 親鸞을 찾아온 것은 왕생극락의 길 단지 하나를 물어 밝히려고 함일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탄이초(歎異鈔) 2장의 서두의 말이다.
20년간 간토(關東)에서 포교활동을 한 聖人은 환갑이 지나서 고향의 교토(京都)로 돌아왔다. 그 후 간토에서는 聖人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의 신앙을 혼란시키는 여러 사건과 문제가 일어났다.
「이 외에 구제의 지름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속고있는 것은 아닐까. 진짜의 것을 확인하고 싶다」
이리하여 간토의 동지들은 聖人 한 사람을 목숨 삼아 10여 나라의 경계를 넘었던 것이다. 당시 간토와 교토의 왕복은 60일이나 걸렸다고 하며, 도중에 하코네(箱根)의 산과 오이(大井)강 등 여행자의 험난한 곳이 몇 군데나 있었다. 도적과 산적들도 어정버정 돌아다닌다. 참으로「신명을 돌보지 않은」 여로였음이 틀림없다.
그러한 그들과 대면하자마자 이렇게 거침없이 말한다.
「오로지 왕생극락의 길을 물어 듣고자 함일 것이다」 (『歎異鈔』)
해설 - 듣고 싶은 것은 왕생극락의 길 오직 하나일 것이다」
親鸞聖人이 가르쳤던 것은 「왕생극락의 길」 이외에는 없었던 것으로 알게 된다.
「왕생극락의 길」이란 무엇인가. 미타의 서원(誓願)을 말함이다.
「무명의 어둠을 깨고 인생의 목적을 달성 시킨다」는 것이 미타의 서약이라는 것을 누차 진술하여 왔다. 이를 더 알기 쉽게 풀어서 말한다면「사후가 분명하지 않은 무명의 어둠을 깨버리고 “극락정토에 반드시 가게 될” 대안심․대만족의 몸으로 해 보이겠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聖人은「왕생극락의 길」이라든가「난도해를 건네주는 대선」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 미타의 서약에 의심이 생긴 간토의 동지들이「“반드시 정토에 가게 될” 대만족의 몸이 되고 싶어 하는」하나에다 목숨을 걸고 교토까지 찾아온 심정도 십분 이해가 된다.
미타(彌陀)의 본원(本願) 진실이었기에 석존(釋尊)의 설교(說敎) 허언(虛言)일 수 없다
불설(佛說) 진실이었기에 선도(善導)의 해석 허언(虛言)할 리 없다
선도(善導)의 해석 진실이라면 호넨(法然)의 말씀 거짓이 있겠는가
호넨(法然)의 말씀 진실이라면 신란(親鸞)이 말하는 취지 또한 헛되지 않다고나 할까
(『歎異鈔』 2장)
해설 - 「미타의 본원(서원) 진실이기 때문에 그것 하나를 설하신 석존, 그리고 善導, 法然의 가르침에 틀림이 있을 리가 없다. 이분들의 가르침이 진실이라면 그것을 그대로 전하는 親鸞에게 어떻게 거짓이 있다고 하겠는가」
이렇다면 이야기가 거꾸로가 아닌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냐면「미타의 본원」에 의심이 생겨, 말씀대로「본원」이 “진실인지 어떤지”를 확인하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미타의 본원」은「진실이기 때문에」라는 대전제하에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담한 역설적인 단언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떠한 체험에서 한 일일까.
번뇌 구족(煩惱具足)의 범부(凡夫) ∙ 화택무상(火宅無常)의 세계(世界)는, 만사 모두가 거짓, 부질없는 짓, 진실(眞實)이 없음에도 다만 염불(念佛)만이 진실임이다
(『歎異鈔』)
해설 - 언제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화택(불안) 무상의 세계에 사는, 번뇌 투성이로 된 인간의 모든 것은 거짓말이요 허튼 말이요 진실은 하나도 없다. 오로지 염불만이 진실인 것이다」
聖人에게는 미타의 본원밖에는 진실이 없었다.
「염불만이 진실이다」라는 것은「본원만이 진실이다」를 바꿔 말한 것뿐이다.
미타의 본원 이외에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뚜렷한 부동의 「법(法)의 심신(深信)」에 서게 된 聖人에게는「미타의 본원 진실이었기에 …」라고 아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미타의 본원 진실」이 항시 聖人의 원점이었던 것이다.
「미타(彌陀)의 서원(誓願) 불가사의(不可思議)에 구제되어 왕생(往生)은 이룬다」고 믿(信)고 「염불(念佛)하려는」마음이 심중에 일어났을 때 그 즉시 섭취불사(攝取不捨)의 이익(利益)을 받는다. 미타(彌陀)의 본원(本願)에는 노소(老少)・선악(善惡)의 사람을 가리지 않는 다. 다만 신심(信心)을 요(要)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歎異鈔』1장)
해설 - 미타의 서원은 모든 사람을 섭취불사의 이익(절대의 행복)으로 하지 않고는 그냥 둘 수 없다는 맹세이다. 그 미타의 서원 진실 이었다고 알게되어 염불하려는 마음이 심중에 일어났을 때 섭취불사의 이익을 받아 “절대의 행복”으로 된다. 거기에는 노소남녀, 자선가, 살인범,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차별이란 전혀 없다. 다만 타력의 신심(信心) 하나가 중요하다」
『탄이초』를 읽는 동기는 여러 가지 일 것이다. 명문이기 때문에, 유명하기 때문에, 親鸞聖人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등등이 있겠지만 역시 여기에 설하는 「섭취불사의 이익」에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섭취불사(攝取不捨)」라 함은 문자와 같이 “잡아 거두어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익」이란 “행복”을 말한다. “찰칵 잡아 거두어 버리지 않는 행복”을 「섭취불사의 이익」라 일컫는다.
우리들은 건강으로부터 자식으로부터 애인으로부터 친구로부터 회사로부터 돈과 재물로부터 명예와 지위로부터 버려지지 않을까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행복으로부터 내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박빙을 밟듯이 언제나 불안에 떨고 있다. 얻었다고 생각한 즐거움도 하룻밤의 꿈, 잡았다고 믿었던 행복도 하루 아침의 환상으로서 지노의 불꽃과 같이 허무한 것으로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설사 한동안 유지 되어도 급기야는 모두로부터 버림받는 때가 온다.
그 까닭은 죄악심중(罪惡深重)・번뇌치성(煩惱熾盛)의 중생(衆生)을 구제하기 위한 원(願)이시다. 그러므로 본원(本願)을 믿(信)는 데에는 타(他)의 선(善)을 요(要)하지 않는다. 염불(念佛)에 더할 선(善)은 없기 때문에 악(惡)에도 두려울 것이 없다. 미타(彌陀)의 본원(本願)을 방해할만한 악(惡)은 없기 때문에, 하고 운운 (『歎異鈔』 1장)
해설 - 악인이 어떻게 무상의 행복자가 되는가 하면 가장 죄가 무거운 사람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기 위한 본원이기 때문이다. 그로 미루어 보아 미타의 본원에 구제가 되면 일체의 선(善)에 볼일이 없으며 어떠한 악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미타에 구제된 그 이상의 기쁨은 없으며 그 행복을 무너뜨릴 악도 없기 때문이다」
“악인이 정객(正客:상대․상객)인 것 같으니 선(善)에는 볼일이 없다. 나쁜 짓을 많이 하면 된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그런 기분이 되는 사람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도 이종심신(二種深信)을 모르면 크게 다치게 될 부분임을 지적해 두지 않을 수 없다.
「타(他)의 선(善)을 요(要)하지 않는다. 염불(念佛)에 더할 선(善)은 없기 때문에」란 예를 든다면, 이제까지 고생해왔던 난치병이 특효약으로 완치된 사람에게 달리 약을 찾는 일이 있을 것인가. 다른 약을 요망하는 것은 완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구제된 염불자에게 구제되기 위해서 힘쓰는 선(善) 등이 있을 리 없다. 선(善)이 요망되는 것은 구제되지 않은 증거이다.
섭취불사(攝取不捨)의 행복에 소생되어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면 한숨한숨에 생명의 존엄성을 알게 되어 보은감사에 전력(善)을 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만 “인생의 목적 성취를 위해서” “선”을 행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는 확언이다.
「악(惡)에도 두려울 것이 없다. 미타(彌陀)의 본원(本願)을 방해할만한 악(惡)은 없기 때문에」
라는 것은 비길 데 없는 극악인이었음이 비춰져(기의 심신) 그것이 미타의 정객(正客)이었다고 놀란(법의 심신) 염불자에게 두려울 악이란 있을 리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나는 구제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고 악을 두려워 하는 것은 “절대 구제될 수 없는 극악인”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죄악(罪惡)이 심중(深重)하고 번뇌(煩惱)가 치성(熾盛)한 극악인으로 뚜렷이 비춰져 구제된 염불자라면 선(善)도 요망될 것이 없고 악도 두려울 것이 없는, 선악을 초월한 세계에서 대만족하고 있지요. 하고 親鸞聖人은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염불자(念佛者)는 무애(無碍)의 일도(一道)이다. 그 까닭 여하(如何)인가 하면, 신심(信心)의 행자(行者)에는 천신(天神)・지기(地祇)도 경복(敬伏)하고, 마계(魔界)・외도(外道)도 장애(障碍)됨이 없다. 죄악(罪惡)도 업보(業報)를 느끼지 않으며 제선(諸善)도 미치지 못하므로 무애(無碍)의 일도(一道)이다. 하고 운운 (『歎異鈔』 7장)
해설 - 쉽게 말해서 이러하다.
「섭취불사의 이익을 얻은 염불자는 일체의 장애가 장애로 되지 않는 멋진 세계에 소생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타력(他力)의 신심(信心)을 얻은 행자(行者)에는 천지의 신(神)들도 공경하여 머리 숙이고 마계(魔界) 외도(外道)도 놀라 압도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악의 응보도 고통으로 되지 않으며 아무리 훌륭한 사람의 노력(모든 선)의 결과도 미치지 못하는 완전 해방된 자유인으로 되기 때문이다」
첫째로 놀라운 것은 「염불자는 무애의 일도」의 단언일 것이다.
염불자(念佛者)라고 들으면 “나무아미타불” 하고 부르는 모든 사람을 생각하겠지만 부르는 마음은 구구하다.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똑같은 눈물이라도 “기쁜 눈물”과 “슬픈 눈물” “억울한 눈물” 등 마음은 여러 가지듯이 입으로는 똑같이 나무아미타불 하고 부르고는 있어도, “염불도 선(善)의 하나” 정도 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뛰어난 선(善)”으로 믿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애의 일도에 소생된 “기쁨에서” 부르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염불자도 있음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실로 그 염불자로서 전장에서 말한 섭취불사의 지복의 몸이 된, 타력의 신심을 획득한 사람을 말한다. 바로 다음에「신심의 행자」로 바꿔 말한 것으로도 명백할 것이다.
「천신지기(天神地祇)도 경복(敬伏)하고」
란 천지의 신(神)들까지도 경복(엎드려 존경함)하므로 염불자를 모든 사람이 존경한다는 것은 아니다. 염불자인 親鸞聖人이 일생을 비난 중상의 와중이었다는 것을 안다면 자명한 일이다.
그러면 어째서 모든 신(神)들이 경복한다고 했는가. 고뇌의 근원(무명의 어둠)을 깨없애는 미타의 서원 불가사의함과 그 서원의 진실을 열어 나타내는 염불자의 신념에 “천신․ 지기도 경복한다”고 일컫고 있는 것이다.
「마계외도(魔界外道)도 장애(障碍)됨이 없다」
고 하지만 불행이나 재난이 일어나지 않거나 외도(外道)와 사교도로부터의 비난 공격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좋았다”는 대생명의 환희를 얻으면 아무리 비웃음을 받고 공격을 당한다 해도 서원 불가사의를 끝까지 전하는 염불자의 전진을 어떤 자도 방해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함이다.
「오직 불은(佛恩)의 깊음을 염(念)하고 인륜(人倫)의 비웃음(嘲)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敎行信証』)
사면 초가의 90년, 홀로 돌진한 聖人의 세차고 엄하고 늠름한 비밀을 알것만도 같다.
「죄악(罪惡)도 업보(業報)를 느끼지 않는다」
함은, 나쁜 결과가 나타나 고통스러울 때는 “뿌리지 않은 종자는 나지 않는다” 모두가 나 자신이 뿌린 종자, 어떤 과보를 받아도 불평할 수 없는 극악인이 섭취불사의 행복자라니 불가사의 중에 불가사의,
「미타의 서원을 곰곰이 생각하면 오로지 親鸞 한 사람을 위함」
이라고 참회와 환희로 바뀌어 변하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거지도 하는「지옥일정(地獄一定)」의 자기와, 그 상태에서「극락일정(極樂一定)」으로 하는 미타의 서원을 동시에 알게 된 聖人이었기에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불안도 안심도, 재난도 행복도 일체가 목숨 다할 때까지 살아가는 데에 순전히 빛나는 일생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인간의 노력이 낳는 어떤 결과도 미치지 못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제선(諸善)도 미치지 못하는 무애(無碍)의 일도(一道)」
로 일컫는다.
부자유 속에 자유자재를 만끽하는「무애의 일도(세계)」야 말로 모든 사람이 어디까지나 구해야만 하는 궁극의 목적이라 하겠다.
이제는 염불을 받아들이어 믿든지 버리든지 각자의 알아서 할 일이다
(『歎異鈔』)
해설 - 이래도 모른다면 염불을 버리든지 신봉하든지는 저마다 마음대로 하라며 모질게 거절한다. 살기까지도 느낀다.
聖人의 순수한 진실로 향하는 비정함은 임종까지도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