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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성결교회 강대일목사, 최태술장로, 안양 마애종사랑, 마애종사랑, 성결대학교, 시흥성문교회, 좋은집 정어진원장, 안양문화원, 인덕원, 안양 제일교회,

작성자머슴이|작성시간14.05.03|조회수547 목록 댓글 0

 

                   ▶  남전도회야유회에서

                    최태술장로님과 이내천장로님

                    1984.6

 

 

 

 

                  ▣   안양 문화원 발간 책자

                        편집위원 :  안양성결교회 최태술장로님.  방극인님  (기독교)

 

 

 

 

 

         ※~ 황소 최태술장로님: 약력소개 (차후기재)

                안양성결교회에서의 역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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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에 새로 쓴 ‘안양의 역사’

[2008-11-22 오후 3:21:00]
 
 
 

▲ 안양시사 제1권 표지


 

 

 

지난 92년 '안양시지(安養市誌)' 발간 후 16년 만에 발간되는 안양시사 편찬 작업이 3년 8개월 만에 드디어 끝을 맺었다.

 

안양시사편찬위원회는 안양의 변화된 모습과 역사를 새롭게 정리한 '안양시사' 편찬 작업을 마무리 짓고 25일 오후 5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고 밝혔다.


시사편찬위원회는 2005년 3월 제1차 회의를 시작으로 2005년 6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기초자료 조사를 마쳤으며,  2차 회의(2006년 6월)에서 안양시사 구성과 목차를 확정짓고 원고 집필에 들어갔다.

 

전 8권으로 구성된 안양시사는 ▷제1권 : 역사와 전통의 안양 ▷제2권 : 이야기와 인물로 보는 안양 ▷제3권 : 성장 발전하는 안양 ▷제4권 : 살기좋은 환경도시 안양 ▷제5권 :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안양 ▷제6권 : 시민과 함께하는 안양 ▷제7권 : 자료로 보는 안양 ▷제8권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안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7년 12월 원고 집필을 마친 후 원고 교정과 편집에 이어 초고 공람(2008. 6. 16~6. 30)과 2차 공람(2008. 7. 14~7. 18)을 거쳐 지난 18일 발간했다. 공람 시 안양시민단체가 일부 내용에 대한 이의를 제기해 일부 수정, 보완(2008년 8월~10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안양시의 역사를 기록한 사료로는 1950년에 발행된 시흥군의 군지 금천지(衿川誌)와 1992년에 편찬한 안양시지(安養市誌)가 있지만, 본격적인 시사는 안양시지부터라 할 수 있다. 금천지는 시흥군의 일부로서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안양읍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에 안양시사라 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이번 시사 재편찬은 시지 편찬 이후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서 안양시에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고, 평촌 신도시 개발 이후 달라진 시의 모습도 기록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9억원의 예산과 3년 8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편찬한 안양시사가 안양시민들에게는 지역에 대한 정체성 확립과 자부심을 주고 타 지역에는 안양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간된 모두 1500질로 각급 기관단체와 도서관, 학교에 배포될 예정이다. 시사편찬위원회 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이필운, 부위원장 김대규, 위원 장석재, 최태술, 정어진, 장석범, 강진갑, 문원식, 사공명옥, 송복순, 이성섭, 최경태, 전만기.

안양광역신문사(aknews@korne


 

 

 

 

해관보육원 통일을 노래하는 탈북 연예인 김영옥 성도 초청

<신앙간증 및 통일·안보교육실시>

 

사회복지기관, 소외계층, 학교, 일반시민 등을
대상으로 한 통일교육 운동 확산의 계기가 되길

 


은혜 넘치는 김영옥 성도님의 신앙간증 모습해관보육원(원장 정어진)에서는 안양시문화유산해설사회 최태술 회장(前 하나원교수)의 주선 및 알선으로 탈북자 연예인이며, 평양음악무용단 단장(외부담당)이신 김영옥(귀순가수)을 초청하여, 원생들에게 신앙간증과 북한의 실상을 접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하였다.

지난 11월23일(水) 저녁7시 해관보육원에서는 유아·초·중·고원생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요예배시간에, <신앙간증 및 통일·안보교육>이 성황리에 펼쳐졌다.

안양성결교회 이내천 장로기도와

최태술 장로의 “나라를 망친 훈수”라는 제목의 5분 설교(성경열왕기상 제12장)에 이어 통일을 노래하는 탈북 예술인, 가수 김영옥의 신앙간증과 전에 살던 북한의 생활모습 이모저모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북한의 참상과 굶주리는 청소년들의 모습등을 들으면서 북한의 실상을 인지하고, 자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가를 몸소 느끼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며, 호기심에 가득 찬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리가 끝날 때까지 경청하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본 탈북예술인 초청 <신앙간증 및 통일·안보교육>은 우리미래의 주역인 자라나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조국의 남과 북 50여년의 분단으로 인한 문화적 이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여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차원에서 마련되었다고 한다.

2001년 3월 귀국 이래 국가안보·통일교육 강사로 맹활약 중인 김영옥은 “반드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한다”고 전제하면서 “남한무대에서 북한의 예술을 알리는 것이(관련 홈페이지 http://www.bhp.or.kr/) 남과 북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화합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사명감을 갖고 남과 북의 이질감 해소를 위한 사업을 지속전개 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 행사를 마친 후 보육원에서는 어려운 시간을 쪼개어 방문해 주신 김영옥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시민은 “평상시 조국의 분단에 대하여 무감각 하였으나, 조국의 분단과 통일을 생각해 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고, 일대일 질문시간에 상호 대화가 통하지 않고,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었을 때, 남·북한의 언어적·문화적 이질감을 심각히 느낄 수 있었으며, 북한의 실상과 남·북한의 경제적, 문화적 차이를 느껴봄으로서, 통일기반 조성운동 확산의 계기가 될 수 있는 <통일·안보 교육세미나>가 지역에서 많이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조성현기자(aknews@kornet.net)




 

나라를 망친 잘못된 훈수"설교하시는 최태술장로


 


※~소천하신 최태술 장로님이

    지난 토요일에 제게 보내온 마지막 편지입니다

글쓴이 : 시흥성문교회 (고건측 장로회)
mokdong[mokdong]
등록일
2009.11.17
조회
1392

감동 호르몬과 악마 호르몬


우리가 흔히 즐겁게 웃거나 신나할 때 우리의 몸에서는

`엔돌핀`이 나온다고 한다.

‘엔돌핀’이 면역성을 가지고 있고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 그런데 그 보다 무려 5,000배나 강력한

호르몬이 있다고 한다.

그 이름은 `다이도르핀`.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동을 받았을 때 우리 몸에 생성되는

`감동 호르몬`이다.

이와 반대로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은 불쾌하거나

미움 같은 감정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생성된다.

몸속의 산소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일명 `악마의 호르몬`이라고도 한다.

       - 최윤희의《당신의 인생을 역전시켜라》중에서 -


* 감동, 미움, 불쾌감과 같은 감정들도

  우리가 선택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곧 선택이겠지요.

  작은 것에 감사하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오늘도 나에게 살아 있는 하루가 있다는 것에

  행복 할 수만 있다면, 만들어진 것보다 주어진 것에

  감동할 수 있다면, 보석보다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

  감동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늘 `감동 호르몬`이 흘러넘치기 때문입니다.

皇素 崔泰述
011-9842-7513
   




※  안양성결교회 

     故 최태술장로님 

         이내천장로님





 
任   職
 
교회 큰 잔치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 
큰 짐 지신 임직자님 그 짐 감당 할 수 있는 백배
천배의 힘을 하나님께서 주실줄 믿습니다.
 
특히 세분 장로님.
흔히 장로를 교회 기둥 이라고 합니다.
내가 장립할 때 고향 선배누님 권사님께 다음과 같은 권면을 받았습니다.  
 
3가지 기둥이있다.
 
첫째는 돌기둥이요,
둘째는 쇠기둥이요,
셋째는 나무기둥이다.
 
쇠기둥도 나무기둥도 되지말고 돌기둥 되어라.
쇠는 녹쓸고, 나무는 좀먹는다.
그러나 돌기둥은 천년만년 가도 변하지 않는다.
 
나도 세분 장로님께 이 부탁 드리겠습니다.
 
 
               안양성결교회 장로 최태술  





[기억-최태술]안양과 設農湯(설농탕)


이야기보따리/기억

안양과 설렁탕
 
안양에는 유명한 설렁탕집이 있었다. 이름하여 경민식당이다. 70~80세 정도의 어르신 좀더 내려온다면 60대의 안양토박이들은 거의 안다. 안양역 구 도로변에 있는 식당에서 가마솥을 걸고 24시간 끓여 진하고 뒷맛까지 깔끔한 그 맛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지금도 경민식당 설렁탕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유래는 이러하다.
안양 동안구 평촌에는 귀인동이 있다. 이 동 이름이 글자 그대로 귀인(貴人)들이 살던 곳이어서 귀인동이다. 이곳에 살던 귀인이란 宮中에서 宮人으로 생활하다 퇴역하신 분들이다. 또 지금의 수촌 뒤 내씨들이 살았다. 두 곳 다 퇴역한 궁인들이 생활하면서 궁중에서 하던 설렁탕을 끓여 당시 한양으로 오가는 길손에게 팔기 시작한 것이 안양 설렁탕이 유명해진 발단이라 한다.
궁인들의 솜씨를 물려받은 분이 옛 경민식당 주인 할머니였다. 한창 경민식당 설렁탕이 이름 날릴 때는 안양에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당시 공무원이나 사업 하시는 분이나 경민식당 설렁탕을 대접하는 것이 최고의 대접 이었다고 한다.
안양에서 출생하고 한 평생 안양에서 소방공무원으로 퇴역한 김종수씨가 바로 이웃에 살았고 어머니와 경민식당 주인 할머니와 친구사이라 자주 놀려가 먹기도 하고 끓이는 과정도 어릴 때 많이 보았다고 증언을 한다.

우선 소뼈를 24시간 고운다.(끓인다). 그리고 딱 200명분만 한정 하였다고 한다. 김종수씨의 말에 어린 생각에 끓인 국물에 물 좀 더 부우면 되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절대 그른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진실과 음식 맛의 진리를 터득한 달인이었다. 고 평가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후 식당은 안양8동 성결대학교 이전했으며, 며느리가 전수받아 했으나 할머니 때 맛이 나지 않자 차차 손님이 줄어들고 나중에는 문을 닫고 말았다.
이 경민식당 설렁탕이 옛 선농제 후에 끓여 먹든 그 설렁탕의 맥이란 것이다. 궁인(宮女)들이 선농제 행사에 따라가 제물과 그날 음식 설렁탕을 끓이던 기술이 궁 밖 안양귀인으로 나온 것 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設=베풀 설
農=농사 농
湯=끓일 탕
 
이 자료는 지난 2006년 안양시민축제 때 안양설렁탕을 소개하면서 만든 자료임.
 
우리들의 대중음식 중에 하나인 설농탕은 조선시대 先農壇과 籍田에서 거행된 親耕行事에서 유래한다. 동대문 용두 2동 138번지 위치한 선농단에서는 조선시대 국왕(선종)이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그 해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후 친히 소를 몰아 밭을 갈면 뒤를 따라서 신하들이 밭을 갈았다. 이러한 농경행사는 국가 행사이므로 국왕이 참여하였는데, 이는 농업을 국가 근본으로 삼으며 농업을 중시하는데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신라시대에는 한 해 세 차례 농업신인 곡신에 대한 제사를 지냈는데 즉, 입춘이 지난 뒤 첫 해일(돼지날)에 선농제(先農祭)를 지내고 입하가 지난 뒤 첫 해일에 중농제(中農祭), 그리고 입추가 지난 뒤 첫 해일에 후농제(後農祭)를 지냈다고 하며, 이러한 풍속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져 왔으나, 점차 간소화하여 경칩일이 지난 뒤 첫 해일에 동대문 밖 선농단과 적전에서 제사와 밭갈이 행사를 했으며 여름, 가을행사는 생략되었다.
선농제의 제신은 농업을 관장하는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이며 신위의 위치는 신농씨가 북쪽에, 후직씨가 남쪽에 모셔졌다고 한다. 농업신에 대한 제사 의식과 친경 행사의 제수를 관장했던 관청은 전농사, 봉상사, 전생서가 있었는데, 전농사는 전적 운영과 제수용 곡식관리를 맡았고, 전생서는 제수용 가축(牛)을 기르는 곳이다.
오늘 날 전농동이란 지명은 선농제에 바칠 곡식과 친경행사롤 거행한 왕실 농토가 있던 곳을 의미하며 제기동은 선농제를 지내는 제사터가 있었던 곳을 의미하고 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제사에 바친 쇠고기를 음식으로 만들어 참석한 백관, 인근지역 농민,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제사를 지낸 후 제사 참가자들이 술을 나눠 마시는 음복 풍습과 유사하다. 많은 사람에게 제사고기를 골고루 나누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쇠고기국에 밥을 말아 많은 사람이 먹도록 한 것이다.
선농제가 없어진 후에는 음식점에서 소머리, 내장 무릎도가니, 그리고 족을 삶고, 쌀을 넣어 끓여 먹었는데, 이것이 후에 설렁탕이라는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선농단에서 농사의 신께 제를 올리면 세종대왕이 밭을 경작하는 본을 보일 때였다. 갑자기 심한 비바람이 몰아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임금의 배고픔을 달래느라 백성들이 농사짓던 소를 잡아 맹물을 넣고 끓였는데 이것이 설농탕(設農湯)이 됐다고 하는 설도 있다.
 
설농탕과 곰탕의 차이
 
설렁탕은 뼈를 넣고 고지만, 곰탕에는 뼈를 넣지 않는다는 점이다. 곰탕 국물 맛과 설렁탕 국물 맛은 전혀 다르고, 곰탕 국물이 진하고 무거운 반면에 설렁탕 국물은 담백하고 가볍다. 설렁탕은 뼈 우려낸 국물이 주(主)가 되고, 곰탕은 고깃국물이 주가 된다. 따라서 설렁탕 국물은 뿌연 빛깔을 내지만 곰탕은 노르스름한 빛깔을 띤다 .
설렁탕은 사골, 도가니, 쇠머리, 우족 등의 뼈와 양지머리, 사태 등의 정육, 우설, 지라, 허파 등 내장을 넣고 하루 정도 푹 고아 끓인 것으로 곰탕보다 국물이 뽀얗고 맛이 담백하다.
반면 곰탕은 뼈는 넣지 않고 양지머리, 사태 등과 양, 곱창 등 내장을 넣고 끓이며 무, 다시마, 대파 등을 넣는 경우도 있는데 설렁탕에 비하여 기름진 맛이다.
곰탕에도 뼈가 들어간다는 문제 제기가 많은 편인데 일부에서 뼈를 넣고 곰탕을 고아내는 경우에도 먼저 뼈를 우려낸 후, 뼈를 건져내고 다시 고기를 넣고 끓이면 뽀얗던 국물이 다시 맑아진다.
이같은 원칙은 변함이 없으며, 다만 집에서 사골을 푹 고아먹는 사골곰국(사골곰탕)을 줄여서 곰탕이라 부른다.
 
참고:
1.선농제 후 또는 왕이 親耕행사 후 내린 것이라 하여 선농에서 선렁으로 되었다는 말
2.雪農 이라 하여 눈 철음 뽀얗다. 라는 말도 있다.
3.설렁설렁 끓였다. 라는 말도 있다.
설렁탕과 설농탕의 어원의 차이
설렁의 어원은 先農에서 선농은 神農씨에서 발음을 선농으로 자연스럽게 변하였다고 함.
先農과 設農은 고려시대 고기 삶은 물을 슈루라 했는데 이 한자음의 영향이 設農이라 하기도 한다고 함
** 현재의 표준말은 설렁탕임
 
先農祭 의식방법
先農祭 조선시대 역대 국왕이 한양(漢陽)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지내고 아울러 친경권농(親耕勸農)하던 행사.
해마다 경칩 뒤의 첫 해일(亥日)을 택하여 그해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왕이 친히 나와 제향하고 적전(籍田)을 갈았는데, 때로는 견관봉행(遣官奉行)하기도 하였다.
제향은 10변10두의 중사(中祀)로 지내며 친림제향 때 아헌관(亞獻官)은 왕세자, 종헌관은 영의정이었다.
동적전(東籍田)은 서울 동쪽 교외 전농동(典農洞)에 있었고 서적전(西籍田)은 개성부(開城府) 동쪽 교외 전농동에 있었는데, 태조 때 적경공제지법(籍耕供祭之法)을 제정하였고 태종 때에는 적전단(籍田壇)을 수축(修築)하였다.
제사용 곡식을 저장한 선농단에는 필분각(苾芬閣)과 창고 등이 있었고 성종 때 지은 관경대(觀耕臺), 세종 때 지은 희우정(喜雨亭) 등이 있었다.
東적전에서 생산된 곡물은 종묘제사와 또 다른 제수로 썼으며, 西적전에서 생산된 곡물은 조정에서 봉행하는 제사와 그 밖의 국휼(國恤)·예장(禮葬) 등에 사용되었다.
《한경식략(漢京識略)》에는 1476년(성종 7)에 선농단을 축조하여 왕이 친히 제를 지내고 적전을 갈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선농단 친경(親耕)은 1909년까지 행해지다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폐지되었다.
 
한경지략 (漢京識略) 이란
 
조선시대 수도 한성(漢城)의 역사와 모습을 서술한 부지(府誌).
저자는 수헌거사(俊軒居士)로 되어 있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이병기(李秉岐)의 설에 따르면 유득공(柳得恭)의 아들 본예(本藝)로 추정된다.
권1은 천문·연혁·형승·성곽·궁궐·단유·묘전궁(廟殿宮)·사묘(祠廟)·원유·궁실·궐내각사(闕內各司)·창경궁내각사·경희국내각사,
권2는 궐외각사·역원(驛院)·교량·고적·산천·명승·각동(各洞)·시전(市廛) 등이 실려 있다.
각 항목에 대해 실제로 답사·조사한 내용과 전설·미담·고증 등을 참고하여 서술하였으며 전거(典據)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 역사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2권 2책. 필사본



출처: http://anyangbank.tistory.com/2315 [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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