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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연구실

환도성(桓都城), 환도현(桓都縣), 환주(桓州)의 의미

작성자광화세계|작성시간16.04.14|조회수133 목록 댓글 0



환도성(桓都城), 환도현(桓都縣), 환주(桓州)의 의미



『신당서』지리지 하북도에 따르면, 압록강구(鴨淥江口)에서 100여 리 가서 작은 배로 동북방향으로 30리 거슬러 올라가면 박작구(泊汋口)에 도달하는데, 발해(渤海) 국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5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환도현성(丸都縣城)에 도달하는데 옛 고구려왕도(高麗王都)라고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등주(登州)로부터 동북방향으로 해(海)를 따라가면, 대사도(大謝島)․귀흠도(龜歆島)․말도(末島)․오호도(烏湖島)까지 300리이며, 북쪽으로 오호해(烏湖海)를 넘어가면 마석산(馬石山) 동쪽의 도리진(都里鎭)까지 200리이다.
(도리진에서) 동쪽으로 해안을 따라가면 청리포(靑泥浦)․도화포(桃花浦)․향화포(杏花浦)․석인왕(石人汪)․탁타만(橐駝灣)․오골강(烏骨江)까지 800리다.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가면, 패강구(貝江口)․초도(椒島)를 지나 신라 서북쪽의 장구진(長口鎭)에 도달한다. 또 진왕석교(秦王石橋)․마전도(麻田島)․고사도(古寺島)․득물도(得物島)를 지나면 1,000리 거리에 압록강(鴨淥江) 당은포구(唐恩浦口)가 있다. 또 동남쪽으로 육로를 700리를 가면 신라왕성(新羅王城)에 도달한다.
압록강구(鴨淥江口)에서 100여 리 가서 작은 배로 동북방향으로 30리 거슬러 올라가면 박작구(泊汋口)에 도달하는데, 발해(渤海) 국경이다. 또 5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환도현성(丸都縣城)에 도달하는데 옛 고구려왕도(高麗王都)이다.
『삼국지』 위서(魏書) 권28 관구검전(毌丘儉傳)과 권30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을 살펴보면, 모두 고구려수도(高句麗都)가 환도(丸都)라고 쓰여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도 환도(丸都)라고 썼다.
또 동북방향으로 200리 거슬러 올라가면 신주(神州)에 도달하고, 또 육행으로 400리를 가면 현주(顯州)에 도달하는데, 천보(天寶, 742~ 755년) 중에 (발해)왕(王)의 수도였다. 또 정북여동(正北如東)으로 600리를 가면 발해왕성(渤海王城)에 도달한다.”


즉, 상기 기록에 따라 지명들 간의 배치도를 그리면 [그림 1]와 같다.


[그림 1] 『신당서』 지리지 하북도


다시 말해서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리진 인근 지역에 압록수 입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압록수 입구로 추정할 수 있는 현재의 하북성 천진(天津)시 앞바다에서 서쪽으로 현재의 호타하를 거슬러서 500리~600리를 올라가면 환도현성(丸都縣城)에 도달함을 알 수 있다.
바로 환도현성(丸都縣城)이 옛 고구려왕도(高麗王都)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거기서 동북방향으로 200리를 가면 신주(神州)에 도달하고, 또 육행으로 400리를 가면 현주(顯州)에 도달하는데, 당(唐) 천보(天寶, 742~755년) 중에 (발해)왕(王)의 수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상기한 『신당서』지리지 하북도에 기록되어 있는 환도현성(丸都縣城), 압록강(鴨淥江) 등의 위치를 [그림 2]와 같이 추정할 수 있다.

또  환도(丸都)에서 동북쪽으로 신주(神州)와 현주(顯州)가 있었는데 현주가 (발해)왕(王)의 수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림 2] 환도현성, 압록수 등의 추정지역



그러나 일제가 상기한 『신당서』지리지 하북도의 기록을 풀이한 바에 따르면, [그림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등주(登州)'란 곳을 현재의 산동반도로 보고, 마석진(馬石鎭)을 현재의 요동반도에 표기해 놓고, 압록강(鴨淥江), 패수(浿水), 환도(丸都), 남한산(南韓山), 한성(漢城) 등을 우리나라 땅에 표기해 놓았다. 

또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도 일제가 해석해 놓은 내용과 거의 똑같은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다.


[그림 3] 일제 역사부도


즉,『신당서』지리지 하북도의 기록을 글자 한 자 고치지 않고 현재의 지리에 적용했으나, '등주(登州)'의 위치를 산동반도에 놓음으로써 '하북도'에 관한 지리내용이 현재의 요동반도와 우리나라 땅에 적용되어 버렸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것이 역사왜곡인 것이다. 즉, '등주(登州)'의 위치는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의 하북성 형태시 인근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현재의 산동반도로 변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사』지리지에 따르면, 녹주(신주), 환주, 풍주, 정주, 모주 등의 배치관계가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녹주(淥州)는 본래 옛 고구려였는데, 발해가 서경(西京) 압록부(鴨淥府)라 이름하였으며, 신주(神州)·환주(桓州)·풍주(豊州)·정주(正州) 등 4개 주가 속해 있었다.
그 중에서 환주(桓州)는 고구려의 중도성(中都城)으로서 환도현(桓都縣)·신향현(神鄕縣)·기수현(淇水縣) 등 3개 현(縣)이 있었으며, 5세손 고쇠(高釗)가 진(晉) 강제(康帝) 건원(建元) 초(343년)에 모용(慕容)에게 패배하여 궁실이 불타 버렸다.
풍주(豊州)는 발해가 반안군(盤安郡)을 설치하였었는데, 안풍현(安豊縣)·발각현(渤恪縣)·습양현(隰壤縣)·협석현(硤石縣) 등 4개 현이 있었다.
정주(正州)는 본래 비류왕(沸流王)의 옛 땅이었는데, 공손강(公孫康)에게 병합되었으며 발해(渤海)가 비류군(沸流郡)을 설치하였다. 비류수(沸流水)가 있으며, 동나현(東那縣)은 본래 한나라 동내현(東耐縣) 땅이었다.
모주(慕州)는 본래 발해 안원부(安遠府)의 땅이었으며 모화현(慕化縣)과 숭평현(崇平縣)이 있었다.”  


즉, 상기 기록에 나타나는 녹주(신주), 환주, 풍주, 정주, 모주 등의 배치도를 그리면, [그림 4]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림 4]『요사』지리지(녹주)


다시 말해서 『요사』지리지에 나타나는 환주(桓州)를 [그림 1]의 환도(丸都)에 적용하면, 환주에 환도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요(遼) 대의 녹주가 고구려의 신주로서 고구려 도읍지였음을 알 수 있으며, 발해가 그곳에 서경 압록부를 두었음을 알아챌 수 있다.

또 요(遼) 대의 정주가  비류군으로서 그 위치를 현재의 산서성 대동시 영구현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그곳에 흐르는 현재의 당하(唐河)가 비류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당서』지리지 하북도에 따르면,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환도현성(丸都縣城)이 현재의 하북성 석가장시 정정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삼국지』 위서(魏書)와 오환선비동이전에 환도(丸都)라고 써있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환도(丸都)라고 써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도대체 '환도현성(丸都縣城)'의 명칭에 어떤 사연이 있길래 '환도(丸都)'라는 명칭이 맞다고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요사』지리지에 따르면, 환주(桓州)와 환도현(桓都縣)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환주(桓州) 환도현(桓都縣)에 있었던 고구려의 왕성은 '환도성(桓都城)'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과연  '환도현성(丸都縣城)'인가, '환도성(桓都城)'인가?

만약 본래 '알 환(丸)'이 본래 명칭이었다면, 굳이 '알 환(丸)'이 맞네, 틀렸네하는 잡스러운 기록을 남기려고 했겠는가?

더우기 지명변이를 위해 역사책을 뜯어고친 상태에서 '진위(眞僞)'를 논하는 구절이 얼마나 설득력있게 보일 수 있겠는가?

하물며 『신당서』는 송(宋) 대 1044년에 초고를 완성했고 1060년에 책이 완성되어 17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약 100년이 지난 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인용하고 있으니, 뜯어 고쳤음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아무튼 1180년경에 편찬된 『삼국유사』기이제일(紀異第一)편 고조선에 관한 내용에 에 따르면, 『고기(古記)』를 인용하면서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국[桓國, 제석(帝釋)을 말한다.]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즉, '환국(桓國)'과 '환웅(桓雄)'은 우리 민족 태고 역사의 시초를 알려주는 기록으로서 우리 민족은 '굳셀 환(桓)'자와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굳셀 환(桓)'자의 의미를 '환하게 빛나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고, 혹자는 '하늘'의 의미를 찾아내기도 하며, 혹자는 '정신(精神)이 맑고 고귀한' 의미로 주장하기도 할 것이다.

비록 역사책을 뜯어고쳐서 '환(桓)'의 역사를 지워버리려고 갈망했겠지마는 역사책 한쪽 구퉁이에 남아있는 티끌같은 글자 몇 개가 근거가 되고 뿌리가 되어 '환(桓)'의 역사가 다시 환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런 것이 역사 연구의 보람이자, 수 천 년 역사의 맥락을 집어보며 느낄 수 있는 환희의 기쁨일 것이다. 

한편, 『삼국유사』왕력편 고구려 16대 국원왕에 따르면, 342년에 도읍을 안시성(安市城)으로 옮겼는데, 바로 환도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 안시성(安市城)이란 명칭은 환웅의 신시(神市)를 평안(平安)하게 지키고자 했던 마음에서 지어지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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