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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연구실

고인돌 문화와 석굴(石窟) 문화의 관련성 시론-1

작성자광화세계|작성시간16.04.20|조회수135 목록 댓글 0


고인돌 문화와 석굴(石窟) 문화의 관련성 시론-1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고인돌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정리되어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에 성행하여 초기철기시대(初期鐵器時代)까지 존속한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일종이며, 고대국가(古代國家) 발생 직전의 사회상을 표현하고 있다.

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호칭이 다른데, 한국과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구라파 등지에서는 돌멘(Dolmen) 등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도에는 강화의 부근리·삼거리·오상리의 약 120여 기(基)의 고인돌군, 고창 상갑리·죽림리 등 고창군 전역 205군집(群集) 총 1,665기의 고인돌, 화순 효산리·대신리의 고인돌 500여 기 등이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 속에 보존·관리되고 있다.

고인돌은 북유럽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유럽의 영국에서부터 프랑스·스위스와 이베리아반도를 거쳐 지중해의 북쪽 연안지방, 중동·인도·동남아시아 등지와 중국의 복건성(福建省)·절강성(浙江省)·산동(山東)반도·요동(遼東)반도·길림성(吉林省)남부, 한반도 전역(全域), 그리고 일본의 규슈(九州)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한반도에서는 함경북도의 일부 지방을 제외한 전 지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무덤의 구조로는 한반도의 고인돌이 가장 확실하고 수량도 가장 많다. 총 수량은 확실하지 않아 학자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대략 약 15,000∼20,000여 기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한반도를 ‘고인돌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하천유역의 대지와 낮은 구릉에 많이 축조되었고, 넓은 평야지대보다는 산과 구릉이 가까운 약간 높은 평지와 해안지대 등지에 많다. 하천 유역에서는 주로 하천의 유로(流路) 방향과 일치하게 배치하였다. 그것은 당시 인간의 생활주거지가 주로 그러한 지대에서 행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인돌의 분포 상태는, 수기 또는 수 십기 어떤 경우에는 수 백기의 무리를 이루고 분포되어 있는데, 이 현상은 당시 씨족공동체(氏族共同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면, 용강석천산고인돌군(龍江石泉山支石墓群)은 용강읍 후산리 추동에 소재하며 석천산 중턱과 기슭에 약 150여 기의 고인돌이 3∼4기씩 소군(小群)을 이루어 분포되어 있는데, 탁자식(卓子式)과 기반식(碁盤式: 바둑판식)이 함께 섞여 있다.

개천묵방리고인돌군(价川墨房里支石墓群)은 묘향산 남맥의 대동강 강변과 산기슭 낮은 구릉 상에 40여 기가 분포되어 있다.

침촌리고인돌군은 황주와 사리원 간의 정방산 서쪽 구릉지대에 수 백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고 기반식이 많다. 천진동·극성동·긴동·신대동 등지의 고인돌을 1958∼1959년도에 발굴 조사함으로써 북한에도 기반식 고인돌형이 다수 분포되어 있음을 알수 있게 되었다.

오덕리고인돌군(五德里支石墓群)은 황해북도 연탄군 오덕산 기슭인 성매리 석장골송신동 요골평촌 등지에 수 백기의 고인돌이 골짜기마다 수 십기씩 무리를 이루어 집중 분포되어 있다. 형식은 탁자식이 주이고, 송신동고인돌군 중에는 중심에 있는 고인돌의 주위에 돌을 돌린 구역(圍石區域)이 3곳에서 확인되었는데, 제단(祭壇)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송신동고인돌의 특징은 고인 돌이 다른 곳의 탁자식 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연탄두무리고인돌군은 황주천의 하천변 평지(길이 3km, 너비 300∼400m)에 10여 기씩 적은 무리를 지어 분포되어 있는데 모두 100여 기가 존재한다.

춘천 천전리(샘밭)에는 소양강 북안 모래사장에 탁자식 고인돌이 수 십기가 유로(流路)의 방향으로 분포되어 있고, 지석의 주변은 적석층(積石層)으로 형성된 묘역을 갖추었다. 파주 덕은리 옥석부락의 고인돌은 낮은 산의 능선상에 일렬을 이루고 있고, 강화군 부근리의 고인돌군은 고려산 북쪽의 대지 상에 거대 고인돌을 중심으로 부근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수 백기의 고인돌군이 대구역을 중심으로 4개 방향으로 열을 지어 분포되어 있었다. 북쪽 열은 달성 쪽으로, 남쪽 열은 대봉동 수성못 쪽으로, 서쪽 열은 월배화원 쪽으로 뻗어 있어 마치 방사상(放射狀)을 이룬 듯이 분포되어 있었다. 대봉동 신천변에 분포되어 있는 고인돌군은 중심에 상석을 두고 그 주위에 수기의 매장시설을 배치하였는데, 중심의 것은 매장시설이 없고, 주위의 것은 상석이 없는 형식으로, 중심의 상석은 묘표적 기능만 있는 이른바 묘표식 고인돌군이다. 매장시설은 석관과 석곽이 혼재되어 있고 적석층 묘역을 갖추었다.

고창 상갑리와 매산리의 고인돌군은 야산의 기슭에 대군집을 이루고 분포되어 있다. 상갑리의 경우 야산의 남사면 기슭에 약 2.5m 거리에 약 600여 기의 고인돌이 산줄기 방향으로 분포되어 있다. 혼재되어 있는 탁자식 고인돌은 가장 남쪽에 분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적석층 묘역을 갖춘 고인돌도 상당수 있으며, 이 형식은 황해도의 침촌리에서 집중적으로 분포되었는데 최근에는 진안·합천·마산 등지에서도 다수 발견되었다.

넓은 평야지대에 고인돌이 없는 이유는, 그곳이 대부분 습지여서 당시에는 아직 개발되기 이전으로 인간생활에 이용되기 전 단계였고, 당시 인간이 생활하기 편리한 약간 높은 대지상에 많이 축조하였기 때문이다. 대지 혹은 약간 높은 구릉지대는 양지 바른 산기슭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과 땔감 등을 구하기 편리하고, 사냥터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어서, 이러한 곳에 주거와 경작지 그리고 묘지를 조성하였을 개연성이 높다."


또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유네스코가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으로 등재한 고창, 화순, 강화 등 고인돌 군집 지역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정리되어 있다.


"고창읍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죽림리, 봉덕리, 상갑리 일대에 동서로 약 1,764m 범위에 447기가 분포해 있다.

죽림리 고인돌은 해발 15~65m의 등고선을 따라 일정한 높이에 442기가 자리잡고 있으며, 도산리 지동마을에도 고인돌 5기가 남아 있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1990년에 사적 제391호로 지정되었으며 행정구역에 따라 상갑리·봉덕리, 죽림리, 도산리 3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 내에 모여 있는 상태에 따라 상갑리,봉덕리는 4개 지구, 죽림리는 6개 지구로 구분된다.

고창 고인돌의 특징은 좁은 지역 안에서 440여기가 밀집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인돌의 형식은 탁자식·기반식·개석식과, 탁자식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지상석곽형 등 다양한 형식이 있으며 채석장 유적도 발견되었다. 무덤방 안에서 부장 유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의 계곡을 따라 약 10㎞에 걸쳐 596기(효산리 277기, 대신리 319기)의 고인돌이 분포해 있으며 고인돌에 쓰이는 돌을 캐기 위한 채석장도 발견되었다.

대신리에는 해발 65~125m, 효산리에는 해발 45~90m에 분포하고 있어 일반적인 고인돌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숲속에 자리 잡고 있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사적 제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좁은 지역 안에 고인돌이 밀집분포하고 있고, 100톤 이상의 대형 고인돌 수십 기가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발견되어 당시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과 축조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강화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고려산 기슭을 따라 120여 기의 고인돌들이 분포해 있다. 표고 280m의 높은 곳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며 탁자식 고인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화순·고창 고인돌과 달리 여러 지역에 흩어져 분포하고 있다."


아래 사진들은 고창, 화순, 강화 등 지역의 고인돌 모습이다. 앞으로 고인돌과 석굴의 관련성을 찾아보고자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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