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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연구실

고인돌 문화와 석굴(石窟) 문화의 관련성 시론-16(돈황석굴1)

작성자광화세계|작성시간16.05.07|조회수120 목록 댓글 0



고인돌 문화와 석굴(石窟) 문화의 관련성 시론-16(돈황석굴1)


지금으로부터 116년전, 1900년 5월 26일 돈황 막고굴(莫高窟)에 살던 왕원록이란 자가 살던 막고굴(제16굴) 북면 중앙 벽면 속에 작은 방(제17굴)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속에 엄청난 양의 고문서가  감추어져 있었다.

감숙성 돈황(敦煌)이 위치는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림 1] 실크로드와 주요 거점 도시들



돈황 막고굴에서 고문서들이 발견된 석굴을 '장경동(藏經洞)'이라고 부르는데, 1905년에 러시아의 오브루체프(Vladiir A. Obruchev)가 고사본 두 꾸러미를 반출한 이래,

아래와 같이 각 국의 고문서 반출이 있었다.


-1907년 3~5월에 영국의 스타인: 한문 경전 및 티베트 경전 등 305포,

-1908년 2~5월에 프랑스의 펠리오: 브라흐미 문서, 토하라 문서, 투르크 문서, 티베트 문서, 한문 문서, 연기(年記) 등 주요 불전 등 총 5,000점,

-1912년 2월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 돈황 문서 400여 축(軸)과 100여권, 

-1914년 8월 러시아의 올덴부르그: 경권(經卷) 62종 177권,

-1914년 3월 영국의 스타인(3차 탐험): 불교 경전 600권과 고문서 5상자.


1907년에 영국 런던에 돈황문서가 도착하자, 주 벨기에 청() 공사 등의 보고에 따라 청() 정부는 1910년에 막고굴에 남아있는 책 약 6,000권(총계 9871점, 99%는 불경)을 모두 북경 경사(京師)도서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고문서의 유출이 계속 이어지자, 청() 정부는 1919년에 막고굴을 정밀조사하여 94짝(460.9근)과 협판 11다스를 발견하였는데, 감숙성의 도서관과 권학소(勸學所)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돈황 막고굴의 모습은 [그림 2]와 같다.


[그림 2] 돈황 막고굴의 모습



사진출처:구글어스


그런데 그동안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현재 런던에 약 1만 점, 파리에 5,000~6000점, 레닌그라드에 약 1만점, 일본에 약 1,000점, 북경에 약 1만 점 등 총 약 4만 점이 보관되어 있다.

그중 약 80%는 한문 문서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티베트어 문서이며, 산스크리트어·소그드어·호탄어·쿠차어·투르크어 문서 등이 일부 있는데, 팔라비어(고대 이란어)·아라비아어·서하어·몽골어 문서 등도 극히 일부 있다고 한다.

이들 문서들은 대부분 불교 문헌으로서 북위(北魏)에서 오대(五代)에 이르는 시기의 각종 경전이라고 한다.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한문 문서 중에 『사기』,『한서』.『진기』,『상서』,『논어』,『노자』,『장자』,『왕오천축국전』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신라 혜초(慧超)의 『왕오천축국전』은 바로 돈황에서 발견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즉, 1908년 3월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Pelliot, P.)가 중국 돈황(敦煌)의 천불동(千佛洞)에서 발견하였는데, 1909년 중국학자 나진옥(羅振玉)에 의하여 『왕오천축국전』임이 확인되었고, 1915년 일본의 다카쿠스(高楠順次郎)에 의하여 그 저자가 신라 출신의 승려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 1928년 독일학자 푹스(Fuchs,W.)에 의하여 독일어 번역이 나왔고, 1943년 최남선(崔南善)이 이 원문과 해제를 붙임으로써 널리 국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본래 3권이었던 듯하나 현재  남아있는 필사본 1권은 약본(略本)으로서 앞뒤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따라서 사료적인 가치만 따지면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나 법현(法顯)의 불국기(佛國記)』 등에 비하여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전술한 여행기들는 6세기와 7세기의 인도 정세를 말해 주는 자료이지만,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의 사료로서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해서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이라고 한다.

그런데 돈황의 막고굴(제17호)은 1036년에 서하(西夏)가 돈황을 공격했을 때 황급하게 벽으로 봉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즉,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한문 문서 중에 『사기』,『한서』.『진기』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1900년 5월에 발견되었으므로, 이 문서들은 최소한 1036년 이전에 편찬되었거나 필사된 문서들로 볼 수 있다.

그간 고대 지명들의 본래 위치를 추적하면서 중국23사는 명(明, 1368~1644년) 대 초기 1421~1512년 기간 중에 고대 지명들을 동북쪽으로 변이시키기 위하여 위사(僞史)들이 듬뿍 삽입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었다.

따라서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사기』,『한서』.『진기』등의 사서들이  1036년 이후에 뜯어고쳐져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라면,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사기』,『한서』.『진기』등이 그 진위를 명백하게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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