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루브르박물관.『한서』지리지 원본이 있다.
1900년 5월 26일 감숙성 돈황에서 벽 속에 감추어진 비밀방에 보관되어 있던 약 4만 점의 불화와 고문헌들이 발견되었다.
돈황은 오아시스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현재는 '돈황 막고굴'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고문헌과 불화 등이 감추어져 있었던 곳은 막고굴에 있는 약 500개의 동굴 방 중에서 제 16호굴인데, 북쪽 벽 속에 감추어져 있던 비밀방에 작은 틈이 생김으로써 발견되었다고 한다.
돈황의 위치는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림 1] 감숙성 돈황과 닝샤후이족자치구 은천시의 위치
돈황 막고굴에서 쏟아져 나온 고문헌들은 한문 경전, 티베트 경전, 산스크리트 경전, 불화, 고지지, 경학, 도교 경전, 의학·약학 등에 관한 서책, 호적, 전적, 사원 조직 등 그 당시 사회경제 관련 고문서 등이었다고 한다.
또 한문 문서가 약 80%를 차지하며,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티베트어 문서인데, 브라흐미 문서, 토하라(쿠차어) 문서, 투르크 문서, 호탄어 문서, 소그드어 문서, 산스크리트 문서 등 다양한 언어의 문서들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은 식민지를 서로 많이 차지하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이 파렴치한 제국들의 학자들이 탐사단을 꾸려서 이곳 저곳 남의 나라들을 헤집고 다니면서 고대 유물과 유적들을 게걸스럽게 도굴해 가던 시기였다.
돈황에서 발굴된 고문서 중에서 가장 귀중하다고 볼 수 있는 고문서와 불화들을 걷워간 사람은 동양학자였던 프랑스의 폴 펠리오라고 한다.
그 당시 고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가장 먼저 돈황에 도착한 자는 영국의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인데, 한문 지식이 없어서 문서의 가치 정도를 직접 선별할 수 없어서 매우 비통해 했었다고 한다.
아무튼 1990년에 돈황 막고굴의 고문서들이 발견된 이후, 각 국이 무단 반출해간 고문서들은 현재 영국 런던에 약 1 만 점. 프랑스 파리에 5,000~6,000 점, 러시아 레닌그라드에 약 1 만 점, 일본에 약 1,000 점이 있ㅇ며, 중화인민국 북경에 약 1만 점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돈황에서 이 고문헌들을 감춘 시점은 1035년 현재의 닝샤후이족자치구 은천시에 도읍지를 두고 있었던 서하가 돈황 등 현재의 감숙성 지역의 여러 작은 나라들을 점령할 때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또 돈황에서 발굴된 고문서 중에 역사 지리 관련 문서로서 『사기』와『한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즉, 현재의 아시아 역사는 명 대(1368~1644년) 초기에 기존의 23사를 뜯어 고침으로써 발생되었으며, 고구려 평양, 백제 위례성, 가야 금관성, 신라 월성 등 고대 역사적인 지명들의 위치를 동북쪽으로 변이시키고 국가 간의 위상을 바꿔치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1035년경에 감춰진 『사기』와『한서』는 왜곡되기 전의 원본임에 틀림없으므로, 이 책들을 찾으면 아시아 역사의 본래 모습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런던이냐, 파리이냐, 『사기』와『한서』를 누가 가져갔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펠리오가 동양학자로서 현장에서 가장 많은 자료들을 직접 섭렵하면서 자료들을 챙겼으므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사기』와『한서』를 펠리오가 가져갔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파리 루블박물관에 돈황에서 발굴된 『사기』와『한서』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한 두 구절만 확인할 수 있어도 역사왜곡 이전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가자! 먼저 루브르박물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