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월성(?)의 모습
『신당서』 지리지 하북도에 따르면, 득물도에서 압록수 입구까지 1,000리이며, 득물도에서 남동쪽으로 700리 거리에 신라 왕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득물도의 위치는 대방으로서 현 산동성 연성시 주변 인근지역로 추정할 수 있는데, 현재의 황하와 동평호가 만나는 지역이다.
따라서 득물도에서 남동쪽 700리에 있는 지역을 찾으면, 현재의 산동성 임기시를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임기시에 신라 왕경인 월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임기시 안에서 왕성(월성)이 될만한 유적을 찾으면, 현재 왕희지고거(王羲之故居)
로 소개되고 있는 넓고 오래된 유적을 찾을 수 있다. 동 유적을 신라 월성의 유적지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왕희지(王羲之)는 동진(東晉, 317~420년) 시대 사람으로서 낭야(琅琊) 출신이며, 고금(古今)의 서성(書聖)으로 알려져 있다. 또 낭야(琅琊)는 현 하남성 지역에서 산동성으로 변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지명이다.
따라서 현 왕희지고거(王羲義之故居)가 실제 왕희지(王羲之)의 고택인지, 아니면 실제 신라 왕성 월성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구글이 제공하는 현 왕희지고거(王羲之故居)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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