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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연구실

1. 역사시대의 구분

작성자광화세계|작성시간17.01.02|조회수239 목록 댓글 0



1. 역사시대의 구분


역사시대(歷史時代, Recorded history)란 문자로 기록되어 문헌상으로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시대를 말한다.

그 반대로 문헌상으로는 알 수 없고, 고고학적인 방법으로 유물 등을 활용해서 알아낼 수 있는 시대를 선사시대(先史時代, prehistory)라고 한다.

그러나 인류가 살아온 모든 과거가 역사인데,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누는 것에 관하여 비판하는 소리도 있다.

즉, 문자의 발전 정도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에, 통일된 연대나 절대 연대로 시대 구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중부 아메리카 지역의 잉카제국에서 볼 수 있듯이, 문자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천문학이나 건축술 등 분야에서 고도로 지식과 기술이 발달한 예도 있기 때문이다.

또 문자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결줄과 같은 소통과 기록 방법도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문자의 유무로 시대를 단락지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의 유무에 근거하여 과거 시대를 선사시대(先史時代, prehistory)와 역사시대(歷史時代, Recorded history)로 구분하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시대 구분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선사시대(先史時代, prehistory)'라는 용어는 본래 폴 터널 (Paul Tournal)이 프랑스 남부에서 발굴된 동굴을 설명하기 위해 "Pré-historique" 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만들어진 용어라고 한다. 1830년대에 들어와서 프랑스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영어권에서는 1851년에 대니얼 윌슨(Daniel Wilson)이 『The archaeology and prehistoric annals of Scotland』(in English)에서 소개하였다.


한편, 인류의 '선사시대(先史時代, prehistory)'를 주로 사용하는 도구를 기준으로 세 개의 시대로 분류하고 있는데, 세 시대 체계(three-age system)라고 부른다.

즉, 주로 사용하는 도구를 기준으로 석기시대(石器時代, Stone Age),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Bronze Age), 철기시대(鐵器時代,  Iron Age) 등 세 개의 시대로 분류하였다.

세 시대 체계(three-age system)는 덴마크 고고학자 크리스티안 위르겐센 톰센(Christian Juergensen Thomsen, 1788~1865년)이 1820년대에 덴마크 국립박물관의 수집 유물들을 분류하기 위하여 제안되었다고 한다.

이 개념은 선사시대 고고학이 정립되지 못한 그 당시의 무질서한 체계와 비교할 때 엄청난 개선이었으며, 그간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석기 시대(石器時代, Stone Age)는 1865년에 유라시아의 석기 시대에 관한 존 러벅(John Lubbock, 영국 고고학자)의 저서 선사 시대(Prehistoric Times)에서 처음으로 구석기시대(Palaeolithic)와 신석기시대(Neolithic)로 분류되었다.

또한 보다 더 세분화된 구분법이 소개되어 모든 시대를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누게 되었는데, 아프리카 고고학자들은 '고석기시대(Old Stone Age)', '중석기시대(Middle Stone Age)', 그리고 '후석기시대(Late Stone Age)'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였다고 한다.

어떤 문화의 고고학적 증거에서는 '구리 시대(Chalcolithic)'를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사이에 삽입할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또 '거석문화 시대(Megalithic)'는 단순히 어떤 특정한 시기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라 특정 시대의 고대인들이 거대한 돌을 사용한 시기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청동기 시대(靑銅器時代, Bronze Age)는 돌을 이용한 석기 대신에 청동기가 주요한 도구로 사용되는 시대를 말하는데, 그 이후에는 철기를 사용한 철기시대(鐵器時代,  Iron Age)로 연결된다.

청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리와 주석이 필요한데, 광물 자원의 확보와 더불어 불을 이용한 야금법이 주요한 제작 수단이 된다.

청동기의 획득으로 인류는 석기 시대와 비해 농업 생산의 효율을 향상되었으며, 군사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고, 직업의 분화와 문화 수준의 향상 등 사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 시대 체계(three-age system)는 유럽사를 중심으로 제창되었는데, 중동, 인도, 중국 등에도 적용시키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시대 구분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은 신석기시대에서 곧바로 철기시대로 로 이동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러한 시대 구분의 적용에 애매한 점이 많아 청동기시대를 도기를 중심으로 하여 민무늬토기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 일본과 같이 석기를 사용하는 지역에 이미 철기의 이용이 보급되어 있는 이웃 지역으로부터 청동기와 철기 모두가 전해지는 경우도 있어 청동기시대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늘날 남아있는 청동시시대 유물들은 대부분 농경목축 도구 또는 무기류이지만, 가끔 종교적인 예식에 쓰이던 물건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청동기 기원은 근대 고고학 논쟁의 분분한 문제 중의 하나인데, 세 가지 설이 공존하고 있다.

즉, 청동기가 한 곳에서 발생한 후 여러 곳으로 전파되었다는 유일기원론, 지역별로 서로 다른 곳에서 다발적으로 출현하였다는 다원설, 앞의 두 설을 절충하여 한 중심지에서 발생한 후 각지에 2차 중심지를 형성하여 발달하다가 다시 파급되어 제3의 중심지를 만들어왔다는 설이다.

유일기원설의 대상지는 황금과 동 등 광물이 풍부한 시베리아 예니세니 강 상류의 알타이 산 일대와 소아시아나 메소포타미아 일원, 즉, 오리엔트 일대라는 두 설이 있다. 오리엔트설에서는 청동기가 두 길로 전래되었는데, 한 길은 도나우 강을 따라 유럽으로 북상하였고, 다른 한 길은 남러시아를 거쳐 시베리아와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설명한다.

다원설은 지역별로 서로 다른 곳에서 다발적으로 출현하였다는 주장으로서 알타이 기원설과  우랄 기원설, 안양 은허 기원설, 그리고 대표적인 오리엔트 기원설이 있다.

중심지설은 이 두 가지 설을 절충한 것으로서 현재까지 동야금술의 유적이 발견된 아르메니아와 코카서스 및 이란 고원을 연결하는 산악 지역이 원시적인 청동기의 발생지인데, 메소포타미아에 제1차 중심지를 형성하고, 거기에서 소아시아, 유럽(우랄), 시베리아(알타이), 그리고 중국으로 각각 제2, 제3 중심지를 만들고, 그곳을 거점으로 하여 주변에 파급되었다는 설이다.


철기시대(鐵器時代, 기원전 1200~586년경)는 철을 주로 사용하여 도구나 무기를 만들던 시대를 말하는데, 고고학에서 선사시대를 분류하는 세 시대 체계(three-age system) 중 마지막 단계이다.

일반적으로 철기시대의 연대와 물품들은 분포된 나라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기원전 12세기 그리스와 고대 중동지역(메소포타미아 지역), 기원전 11세기 인도, 기원전 8세기(중앙유럽)와 6세기(남유럽)에 걸친 유럽지역으로부터 철기시대가 시작되었고 로마제국과 헬레니즘 혹은 북유럽 초기 중세기 즈음에 막을 내린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라고 한다.

철기 시대는 또한 철제품을 만들 때 최고로 정교한 금속가공법이 개발되었던 시대라고도 칭할 수 있는데, 쇠의 단단함, 높은 용해온도, 그리고 풍요한 철광자원 (구리보다 저렴한 생산비용)을 바탕으로 철은 청동기를 몰아내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금속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럽인들에 의하여 개척되고 식민지화 된 지역 중에서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등에는 철기시대가 존재하지 않는 예외적 경우도 존재한다.


역사시대(歷史時代, Recorded history)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해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의 시대를 말한다.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는 이유는 각 시대가 가지는 특징을 분류하고 지나간 시대에 대한 특성을 명확히 함으로서 역사 연구의 편의를 도모하며 여러 가지 학문적 이점을 얻기 위한 것이다.

유럽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주의자들이 자신의 시대를 앞 시대와 구분하기 위해 앞시대를 '중세(中世)'라고 부르고 중세(中世)와 단절을 선언하면서, 고대(古代) 문화의 부흥을 사명으로 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강조하면서 고대(古代), 중세(中世), 근대(近代) 등으로 역사시대를 삼분하는 방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들은  로마제국의 멸망까지를 고대(古代)로, 이후 신대륙 발견까지를 중세(中世)로, 르네상스 이후를 근대(近代)로 설정하였다.

처음에는 이러한 역사시대의 삼분법이 대체로 문예 분야에만 한정되었었지만, 17세기부터 역사학에서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랑케 사학에 바탕을 둔 근대적 사학이 정착하면서 역사시대의 삼분법은 기본적인 역사 서술의 체계로 자리잡았고, 이후 현대라는 시기를 설정하면서 사분법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덧붙여 고대(古代) 이전에 원시시대 또는 선사시대를 설정하기도 하며, 중세와 근대 사이에 근세를 설정하기도 한다. 또는 근대를 근대와 현대로 양분하기도 한다.

각 시대가 가지는 특징이 우리나라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역사시대의 사분법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대(古代)는 대체로 고조선의 건국 이후부터 고려가 건국되기 이전의 남북국시대까지를 지칭한다. 이 시기를 두고 1900년대 중반까지는 태고(太古)나 상고(上古)로 구분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고대로 용어가 통일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를 두고 사회의 발전 단계에 따라 원시사회, 부족사회, 부족연맹사회(고조선~원삼국시대), 고대(삼국시대), 고대 통일국가(남북국시대)와 같이 세분화하는 학자도 있다.

또 고대(古代)를 두고 상고(上古)라고 표현하는 학자도 있다. 즉, 고조선사 연구를 상고사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으며, 최근의 연구에서 상고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삼국시대 이전을 의미하고 있다.

중세(中世)는 대체적으로 고려를 전후하는 시기라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나 근대의 시기 설정에 비하여 의견이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설정의 기준이나 해당 시대 구분 자체에 대해 상당한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유럽의 중세(中世)는 봉건제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를 유지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나, 한국사에서는 봉건제와 유사한 제도는 없었다.

그러나 한국사를 세계사적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학자들은 비교사학의 입장에서 서구와 비교할 때,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봉건제와 동일한 요소를 바탕으로 하여 중세 사회를 설정하기도 한다.

또한 남북국시대 말기의 신라 사회의 혼란과 후삼국시대와 같은 호족의 발흥 및 고려의 건국까지의 여러 가지 요소는 사회적 전환기로서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서양의 봉건제 사회를 연상케하는 지방분권적 측면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한다.

이러한 견해에서 나말여초(羅末麗初, 신라 말기 고려 초기)를 중세 사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중세(中世) 봉건제 사회는 서양의 역사 구분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중세의 보편성이 한국사를 비롯해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즉, 봉건적 사회라는 기준을 지나치게 확장하여 접근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근세(近世)의 시작은 대개 조선이 건국된 1392년으로 설정되고 있는데, 근세의 시작점에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하지만, 그 종료점에 대해서는 학자간의 견해의 차이가 크다.

근세(近世)의 개념은 서양의 근대(近代)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중세라고도 하기 어려운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시기를 편의상 지칭하는 개념으로 등장하였는데, 대체적으로 중화인민국에서 명와 청를 지칭한다.

근세(近世)의 종점이자 근대(近代)의 시작점은 1863년 흥선대원군의 집권이 주요한 기점으로 지적되고 있다(고종의 즉위).

1876년의 개항을 근대의 기점으로 드는 설도 있는데(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의 체결), 이 경우는 내적으로 근대화가 시작되고, 외적으로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었다는 근거를 들고 있다.

또는 1860년대에 민란과 병인양요로 인해 반침략 반봉건의 시대적 과제가 제기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사회·제도적으로 큰 변화가 가해진 갑오개혁과 을미개혁 또는  동학농민운동 전후를 제기하기도 한다.

현대(現代)는 근대(近代)의 연장선상에서 당대의 역사(contemporary history)라는 의미로 설정한 개념이므로, 그 기점에 대해서나 정확한 개념에 대한 확실한 정설은 없다.

다만, 세계사에서는 대체적으로 제1차세계대전으로 잡고 있으며, 중화인민국에서는 5.4운동을 기점으로 삼는다.

우리나라는 대게 1919년의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나 1945년의 독립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선이 현대적인 국가 체제를 갖춘 대한제국으로 발전한 1897년이나 전제군주정이 막을 내린 1910년을 드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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