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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연구실

이란(페르시아)의 역사

작성자광화세계|작성시간18.08.13|조회수654 목록 댓글 0



이란(페르시아)의 역사



이란인의 직접적인 조상은 인도 유럽어족의 한 갈래인 아리아인이다. 이들이 이란 고원에 들어온 것은 서기전 2,500년쯤으로 추정된다.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던 아리아인들은 서기전 4,000~3,000년 무렵에 이동해서 일부는 유럽에 들어가 게르만, 슬라브. 라틴의 원조가 되었고, 일부는 남쪽의 이란 고원에 정착해 이란인이 되었다. 더 밑으로, 더 남쪽으로 내려간 사람들은 인도에 진출해 원주민이던 드라비다인은 남쪽으로 내려가고, 현재 인도의 다수를 차지하는 인도 이란어파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조상이 됐다.

지금의 이란 땅에 처음으로 페르시아인들이 등장한 시기는 서기전 9세기경이다. 흑해 북부지방인 러시아 남부지역으로부터 아리아 족들이 부족별로 지금의 이란지역으로 남하해왔다. 그 중 대표적인 민족이 파르사족메디아족이었다. 

메디아족이 먼저 강대국으로서 국가를 형성하였고 파르사족은 메디아족의 지배를 당하는 민족이 되었다.


[그림 1] 이란(페르시아)의 위치



그러나 기원전 6세기 초에 메디아족에 이어 파르사족이 중동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모계는 메대의 왕손이었고 파르사족의 피를 이어받은 키루스 2세가 기원전 533년에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때 조로아스터교가 이란인들의 종교로 유입되었다. 키루스 2세는 구약 성경 고레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 묘사되고 있을 정도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은 인물로 매우 유명하다.

아케메네스조는 전제군주제로서 다리우스 1세는 자신을 ‘왕 중의 왕’이라 부르며, 높은 보좌에 군림하였다. 사방의 모든 민족이 매년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제국에 조공을 바칠 정도로 페르시아 제국은 강성해졌다. 

서기전 4세기에 그리이스와 그리이스 페르시아 전쟁을 치러야 했고, 서기전 330년에 결국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지배하에서 그리스 문물이 이란 지역에까지 흘러들어왔고 후세에 헬레니즘문화라고 불리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리스인들의 지배 후에 이란은 뒤늦게 남하해온 한 유목민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들의 제국은 파르티아라고 불렸다.

서기전 250년 경에 세워진  파르티아 제국은 전통적인 페르시아 제국의 전제 왕정과는 다른 정치체제로 세워졌다. 유목생활을 하던 지배층 민족은 거대한 제국을 통솔할 만한 정치지도력이 없어서 기존의 지방세력들을 그대로 정치세력으로 이용하였다.  

따라서 파르티아 제국은 수많은 소공국들로 구성된 연방국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파르티아 제국 안에는 페르시아족을 비롯하여 쿠르드족, 아프간족 등이 나름대로 소공국을 형성하여 포함되어 있었다.

파르티아 제국은 서쪽의 로마 제국과 대치하였으며 강력한 로마제국과 벌인 많은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은 강대국으로 오랫동안 지금의 중동지역에서 세력균형을 이루었다.

파르티아 제국의 뒤를 이어 이란 땅에는 또 다시 전제군주체제의 전통적인 이란 국가인 사산조 페르시라 제국이 226년에 건국되었다.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은 국교로 조로아스터교를 선포하였고 강력한 군주체제를 부활시켰다.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때까지 이란인들의 생활 모습은 오늘날 이란인들의 생활 모습과는 다른 면이 많다.

그들은 2년 중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인 3월 21일을 가장 중요한 명절로 지켰으며, 조로아스터교의 상징과도 같은 불을 숭상했다.

사산조는 7세기경 아라비아 반도에서 출현한 아랍 이슬람 국가의 침공을 받아 서서히 조로아스터교 대신 이슬람교를 그들의 종교로 따르게 되었다.

이란인들은 공식적으로 1258년까지 아랍인의 지배를 받았으며(물론 10세기에 페르시아 국가를 지향하는 사만조라는 페르시아 왕국이 세워진 적은 있지만), 1256년부터는 몽골의 침입을 받아 몽골인이 지배하는 일 한국에 편입되었으며, 또 다시 16세기초까지 몽골계 출신인 티무르가 세운 티무르 왕조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1502년 이란에서는 다시 모든 외세를 물리치고, 이스마일 1세에 의해 사파비 왕조가 건국되어 1736년까지 국가가 지속되었다.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내세우면서 시작된 사파비조는 압바스 1세의 통치기(1588~1629년)에 정치적, 문화적으로 최대 절정기를 누렸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제정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침략(1724년), 아프간 왕국의 침공(1731년) 등을 당하는 등 쇠퇴의 길을 걷다가 1736년에 멸망하였다. 하지만 

사파비조 이후에 1794년에 카자르 왕조가 세워져 1925년까지 이어짐으로써 근대 이란의 모체가 되었다.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이란은 러시아 제국과 영국사이의 전쟁터였다. 외세의 개입에 반대하는 신진 지식인들이 단체를 결성하여 외세에 대항하였으며 이들 세력에 의해 이란의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1906년 입헌 혁명이 성공함으로써 입헌 군주제가 이란의 새로운 정치제도가 되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인 이란은 1907년 러시아와 영국의 보호지대로 분할되었으며, 1914~1918년 사이에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중립을 선포하였으나 이란의 석유로 인해 양 세력들의 목표물이 되어 전쟁터로 변했다.

1919년 이란은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21년 리자 칸이 쿠데타를 성공시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였으며, 1925년 카자르 왕조를 팔레비 왕조로 바꿈에 따라 샤로 등극되어 팔레비 1세가 되었다.

리자 샤는 터키의 서구화를 모방하여 서구화를 추진하였다(이미 이란의 서구화는 카자르 왕조 때에도 이뤄지고 있었다.). 1935년에 와서는 국호를 페르시아에서 지금의 이란으로 변경하였으며 1936년부터 부터 궁정의 여성들부터 베일을 벗기 시작하여 서서히 이란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같은 해에 리자 샤가 죽고 황태자인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팔레비 2세)가 샤에 올랐다. 

이 개혁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서구문물의 유입으로 인한 이슬람 사회의 변질을 우려하던 여러 종교 지도자들의 반정부 운동을 부추기게 되었다(특히 호메이니의 경우이다). 팔라비 왕조는 1979년에 혁명으로 폐지되어 지금의 공화국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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