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 강인해지렴, 사랑해, 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가 함께할게’
아시아프렌즈 이사 정연희 님과 한국싱잉볼학교는 지난 5월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평화의 사운드힐링
페스티벌’을 영광 국제 마음 훈련원에서 1박2일간 열었습니다. 이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온 유학생이자
평화활동가인 살레 알란티스 씨가 오셔서 팔레스타인 상황을 말씀해주시고 증언해주셨습니다.
이날 50여 명이 모여서 함께 한 행사에서 모인 후원금액 150만원 전액을 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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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살레 알란티시입니다.
저는 팔라스타인 가자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가족은 원래 야브나에 살았는데 이스라엘이 그 곳을 강제 점령하며
쫓겨나 칸유니스라는 곳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런데 그곳에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와 땅을 빼앗고 집을 지어
우리 가족들은 난민 캠프를 떠돌며 살아야했었죠. 저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고향을 빼앗긴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전쟁의 공포를 느낀 건 네 살 때였어요. 제 나이가 올해 29살이니 벌써 25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날의 정오가 생각이 납니다. 그날 저는 어머니를 졸라 시장에서 작은 병아리를 샀어요. 털이 보송하고 노란
새끼 병아리를 품에 안고 오면서 반려동물이 생겼다는 기쁨에 영혼까지 설렜지요. 병아리가 살 집을 지어주고
모이와 물을 주면서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 질 무렵 하늘에서 무서운 굉음이 들리고 마을에 미사일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집이 마구 흔들렸어요. 어머니가 방으로 달려와 저를 안고 아래층에 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온몸이 공포에 휘감겼는데, 그 와중에도 미처 데려오지 못한 병아리가 걱정됐어요.
그게 제 인생서 겪은 첫 번 째 사랑하는 것을 잃는 상실의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일생에 한 번만 겪으면 좋겠지만 불행하게 이 일은 저의 성장기 속에서 계속 되었습니다.
두 번 째 겪은 전쟁의 공포는 2008년 이었습니다. 중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치르고 있었어요.
저는 영어시험을 잘 치르고 싶어 긴장하며 교실에 앉아있었는데 학교 운동장 너머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쟁 공습이 시작된 날이었어요.
그때 전 제가 사람이 아니라 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는 벽을 넘어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니까요.
새와 달리 저는 사방이 장벽과 가시철조망, 군인에게 둘러싸인 거대한 새장과 같은 감옥에 갇혀 있었으니까요.
공습이 시작되고 이스라엘 군의 봉쇄가 시작된 뒤로는 하루에 열여섯 시간 넘게 전기가 끊겼습니다.
작은 손전등에 의지하다가 배터리가 다 되면 촛불을 켰는데, 그 촛불 때문에 동네에서 불이 나기도 했어요. 물이
나오지 않아 그 집이 모두 다 타는 걸 지켜만 봐야했어요.
나무와 종이로 불을 지펴 밥을 지을 물을 구하기 위해 공포를 무릅쓰고 물을 구하러 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매일이 두려웠습니다.
가자 전쟁으로 4만4천여 명 사망, 10만 4천여 명 부상
저는 그 참혹한 봉쇄와 전쟁을 피해, 더 안전하고 나은 삶을 찾으려고 2022년 12월 한국으로 왔어요.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그래서 운 좋게 살아남았어요. 그런데 한국에 온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가자에서 다시 잔혹한 전쟁이 터졌습니다.
1년이 넘게 전쟁이 이어지면서 약 4만 4천여 명이 죽고 10만 4천여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중 어린이만
1만 7천 명이 넘어요.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을 고의적으로 죽이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성폭행을
저지릅니다. 더 이상 팔레스타인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게 인구가 점점 줄어들게 증오범죄를 무수히 저지릅니다.
어쩌면 전쟁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그런 제노사이드적 혐오와 증오인지도 모릅니다.
그 수많은 죽음 속에 제 가족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삼촌 식구들, 사촌, 그리고 제가 사랑했던 친구들이 죽임을 당했어요. 사랑했던 사람, 집, 가족, 고향,
친척, 일, 학교, 친구 그 모든 소중했던 것들이 수년에 걸쳐 천천히 빛을 잃고 사라져갔습니다. 제겐 상실은 이제
일상이 되었죠.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할아버지의 집은 완전히 무너져 사라지고 동생의 집에 포탄이 떨어져 부셔졌고 아버지의
차에도 폭탄이 떨어졌지먄 다행히 아직 부모님과 형제자매는 살아있다는 사실에 저는 견디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 겪은 가장 가슴아픈 상실은 친구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했던 친구 암자드에게는 딸이 셋 있었습니다.
작년에 마을에 폭탄이 떨어졌고 그날 친구의 딸이 사망했어요. 하지만 암자드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자지구에서는 약 11.5%가 죽거나 다쳤으니까요.
암자드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자녀에게 먹일 음식을 구하고, 남는 시간엔 무너진 건물에서 사람을
꺼내 병원으로 나르는 일을 했어요.
몇 달 전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너무 오래도록 답이 없었습니다. 자주 연락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몇 주에 한 번 전기가 들어올 때 간단한 메시지를 주고 받았는데 수개월 째 친구가 제 메시지를 읽었다는
신호가 없는 거에요. 불안한 마음으로 수소문하며 찾았고, 수 개월 뒤에 병원 주차장에서 피범벅이 된 친구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공식 사망자 명단에서 발견했어요. 암자드의 아내는 그때 새 생명을 임신중이었습니다.
가자에선 사는 것 자체가 투쟁입니다.
아이들이 영양실조와 탈수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고,사람들은 숫자로 종종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4만 4천 명이 숨지고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쳤다고요. 그중 70퍼센트에 가까운 이들이 어린이와
여성들이라고요.
여전히 아이들이 탈수와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폭격으로 무너진 집에 깔린
사람들의 수가 1만 명이라고요.
하지만 숫자가 아니라, 죽은 이들의 가족과 친구들, 그들과 마음을 나눴던 이웃들을 생각해 주세요.
저와 함께 할아버지네 집에서 놀던 제 사촌은 일곱 달이 지나도록 실종상태입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그가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 아직 시신을 찾지 못했으니 살아 있다고 믿는 거예요.
사망자 4만4천 명..이것은 4만 4천 개의 아름답고 독특하며 단 하나뿐인 우주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일이고
4만4천 명의 온 가족이 우주가 부셔지고 평생을 고통받는 일입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전쟁이 아니라 '점령’
휴전으로 살육은 잠시 멈추겠지만, 점령이 남아 있는 한 우리를 땅에서 쫓아내려는 시도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가자에서 온 난민인 저는,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제 땅으로, 제 조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1948년 유엔 결의안은 난민이 자기 땅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분명히 적어두었지만, 제가 지금 그곳에 가면
저는 죽임을 당할 겁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에도 팔레스타인을 향한 연대가 멈추거나 줄어들지 않기를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면 암자드의 가족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제가 그의 아이들의 얼굴에서 따뜻하고
강인했던 그의 표정을 만난다면 친구가 기뻐할텐데 하고 가끔 생각합니다.
고통이 없는 인생이 있을까요. 저는 아픔과 슬픔이 없는 세상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때때로 그 고통은 더
본질적인 것들을 돌아보게 하고, 사람을 강인하게 만들지요. 제 슬픔에 매몰되어 트라우마에 빠져 있기에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너무나 참혹합니다. 서방 중심의 시각이 팽배한 이곳에서 진실을 알리는 일이 저에게는
더 중요하고 급박해요.
현재 가자는 휴전중이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시설을 파괴하고 전기를 끊고 깨끗한 물이 오가는 식수 펌프와
수도관을 파괴해서 지금은 오로지 구호품에만 식량을 의존하는데 이스라엘은 낙하산에서 떨어지는 구호품을
가지러 가는 사람들에게까지 드론으로 공격합니다. 두 손을 들고 쏘지 말라고 하는 이들의 손을 그저 재미삼아
조준해서 쏩니다. 아버지들은 피 묻은 손으로 밀가루 한 포대를 구하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하고 그들의 아이들은
정말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마시는 물 한 잔, 난민캠프 천막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귀한 것인지요.
평범한 일상을 간절히 원하는 가자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
한국에서의 삶은 너무나 평화롭습니다. 이 평범한 일상을, 이 평범한 물 한 잔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이 당연한 하루를, 가자에 있는 200만 명의 사람들이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떠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디 기억해 주세요. 제 민족의 고통이 끝나기를, 전쟁이 끝나기를, 제 나라가 해방되어 모두가 평화와 안전 속에
살아가기를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 내가 알지 못하는 먼 나라 타인의 고통을 위해 신념도 정치적 입장도 다른 수많은 분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가며 이곳에 모여 평화의 사운드 힐링을 열어주시고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관심과 응원이 팔레스타인을 가자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 연대가 그들이 삶을 버티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돼요. 여러분의 그 작은 관심과 지지 하나하나가, 우리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이 됩니다.
오늘 이곳에 오셔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금 이 순간 친구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살레, 강인해지렴. 사랑해. 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가 함께 할 거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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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모인 50 명의 사람들이 증언을 마친 살레를 중앙으로 모셔 다함께 말해주었습니다.
“살레, 강인해지렴. 사랑해. 다 괜찮아질거야. 우리가 함께 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