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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인류

[스크랩] 중국어는 인공어다.(2)

작성자마인드워시|작성시간05.11.18|조회수99 목록 댓글 0
제2장 중국인의 언어생활
여기서는 중국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중국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통하여 그 특징과 자기들 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생각하는 글로 말하는 중국인의 불행
중국 사람들은 자기들 말이 [프랑스어] 나 [스페인어]와 더불어 세 가지 아름다운 말에 속한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중국어를 배우면서 그들의 언어생활이 불쌍하게까지 느껴졌다.
특히 요즘 같이 컴퓨터가 주도하는 시대에 이 얼마나 불편한 말인가?
컴퓨터가 주요한 수단이 되면서 중국인 스스로 해결해야할 가장 큰 과제는 漢文에 기초한 언어의 표기문제이다

중국에서는 자기들의 말소리를 표기하는 방법으로 中華民國 때에 [注音符號]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대만에서는 이를 사용하고 있고, 中華人民共和國에서는 [漢語倂音]이라고 하여 영문 알파벳을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注音符號]나 [漢語倂音]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발음기호라면 그만일 것을 [注音]이니 [倂音]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漢文이 없으면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한문으로 표기된 상황에서 그 음을 나타내는 기호를 [灌注]의 형태로든지 [倂記]의 형태로 덧붙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漢字로 기록되고 그 발음을 倂記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 전적으로 소리 값만 표시해서는 제대로 의사소통이 될 수가 없으므로 漢語倂音을 입력하고 그 발음에 해당하는 漢字를 일일이 선택하여 바꾸어 주어야 하니 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와 관련하여 중국어에는 우리말의 終聲에 해당하는 入聲(받침)이 없을 뿐 아니라 모음마저 단순하여 그 음가를 늘리기 위해 단음절의 한자를 이중모음으로 만들고 혀 꼬는 음(捲舌音, 권설음)을 만들어 혀를 꼬기도 하고 그 것으로는 부족하여 성조를 붙이고 해서 온갖 재주를 부려서 아름다운 말이라는 소리는 들을 수 있게 까지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래봐야 기록가능한 소리가 1200개정도로 성조를 없애버리고 표시 가능한 소리의 조합은 실재 사용하지 않는 것까지 다 포함해도 411개 밖에 안 되어 5萬 자가 넘는 漢字를 구분하여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교착어인 우리말의 토씨와 같은 것도 없는 단음절의 고립어가 아닌가?
따라서 최근 중국어에는 복합단어가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며, 이는 漢字의 굴레에서 벗어나 말로 발전해가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入聲이 있으면 분별가능한 소리의 조합이 몇 배로 늘어나게 되는데도, 원래 존재하던 입성이 차츰 여린 소리로 변하여 가다가 1600년경 《字淮》에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은 소리의 단절을 피하고 부드러운 連音을 위한 희생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漢語倂音]을 만들기 전에 우리 한글을 借用해서 사용하려다가 대국이란 자존심 때문에 영문 알파벳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명지대학 국문과의 진태하 교수는 수 천 년 전의 기록을 지금도 읽을 수 있는 時空을 초월하는 漢文이라는 기록에 적합한 表意文字(象形文字)와 실생활에 편리한 表音文字를 함께 만들어 사용하는 우리의 언어생활이야말로 이상적인 것이라 하였다.

말이 문자에 얽매임(문자를 말로 바꾸어 씀)으로 인하여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은 컴퓨터 문서 작성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중국인이다]를 입력할 경우
1) 중국어 자판을 설정하고
2) 간체자나 번체자를 선택한다
3) 한어 입력방법
선택:덧말- 한어병음 - 我, 我(wǒ),wǒ(我), 我 (wǒ) , 我 (wǒ) ,
덧말: 주음 - 我,我(ㄨㄛˇ),ㄨㄛˇ(我), 我 (ㄨㄛˇ) , 我 (ㄨㄛˇ)
덧말: 성조 - 我 (ˇ) , 我 (ˇ)
여기서는 덧말 한어병음, 한자(병음)을 선택
4) 한어병음 입력 후 Space Bar를 눌러 해당 漢字 선택 후 Enter Key
wo 입력 후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我,握,硪,등의 한자가 나타나며 해당글자가
나왔을 때 엔터키를 반복하여 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입력할 수 있다.
我(wǒ)是(shì)中(zhōng)國(guó)人(rén)。
이때 한어병음을 모르면 입력할 수 없다.
상기와 같은 입력 방법은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말에서 [아]라는 음을 입력하고 한자
변환을 통해 해당한자를 선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기와 같이 단어마다 입력할 수도 있으나 다음과 같이 문장 단위로 입력할 수도 있다.
woshizhongguoren 입력후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我是中國人이 화면에 나타나며 이때
Enter Key를 누르면 我是中國人。(wǒshìzhōngguórén) 이 입력된다.
我愛你(wǒꐃinǐ)도 문장단위의 입력이 가능하고 今天天氣很好(jīntiꐀntiꐀnqìhěnhꐂo)도
문장으로 바로 입력이 가능하며 일상회화에 자주 쓰이는 말은 소리 말로 한자의 입력이
가능하므로 제법 말 같아 보인다.
그런데 한어병음으로 된 문장에 대해 한자의 입력이가능하다는 것은 한자 없이 소리만
으로그 뜻을 전할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왜 한어병음만[woshizhongguoren]으로 적으면
되는 것을 구태여 [我是中國人]이라고 한자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
예를 들면, 나는 한국인이다를 입력하고자 할 때,
我是韓國人。(wǒshìhꐁnguórén)으로는 가능하지만 我是漢人(wǒshìhꐃnrén)에서는
나는 漢人이 아니고 韓人이라고 말하고자한 필자의 의도와는 다른 문장이 입력된다.
이때에는 문장 단위가 아닌 我是(wǒshì)韓(hꐁn)人(rén)으로 단어 별로 입력할 수밖에
없다
다른 예를 보자.
woshiaini의 경우,
내가 너를 사랑한다 "我愛你"
나는 너를 애도한다 “我(wǒ)哀(ꐀi)你(nǐ)。
나는 너를 따른다 또는 너에게 가까이 간다 “我(wǒ)挨(ꐀi)你(nǐ)。
나는 너를 방해한다 “我(wǒ)碍(ꐃi)你(nǐ)。
나는 비구니를 사랑한다 “我(wǒ)愛(ꐃi)尼(ní)。등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愛人(ꐃirén)은 “挨(ꐀi)人(rén)” 굶주린 사람, “哀(ꐀi)人(rén)” 추도
하는 사람, “挨(ꐀi)人(rén)” 따르는 사람, “矮(ꐂi)人(rén)” 키가 작은 사람, 등과 같이
조합하는 글자 수가 적어질수록 오히려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품사가 고정되지 않고 어순에 따라 명사, 형용사, 동사를 넘나드는 한어의 특성상
무수한 단어의 결합이 가능하고, 나· 너· 國人 등 앞뒤에 한정하는 말이 많아지면 많아
질수록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관용적이고 상황을 예측 가능하게 된
일상의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것도 2000년이란 처절한 노력으로 성취한 것이지만 아직 한문으로부터의 독립은
요원하여 한자를 쓰지 않고는 성립하기조차 어려운 말이고,
컴퓨터를 사용하여 글을 입력할 경우, 스페이스 바를 수 십 번 심지어 백 번 이상
눌러야 원하는 글자를 찾아 입력할 수 있다.

아직까지 “한어는 원래부터 있던 소리 말이 아니고 한문의 독음을 변화시켜 말로까지
발전시켰다”는 필자의 주장에 대해 독자에 따라서는 근거가 희박한 주장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金文의 해석과 더불어 보다 소상히
입증하고자 하는 바이며, 金文을 공부하다보면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어 필자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되리라는 점을 밝혀 두는 바이다.

중국인의 언어생활에 있어 또 하나의 큰 특징은 文=言이다.
표준어의 정의에서 普通話(pǔtōnghuꐃ)를 “현대 중국어의 표준어[북경 어음을
표준음으로 하고, 북방 방언을 기초 어휘로 하여 전형적인 현대 백화(白話)에 의한
著作을 문법적 규범으로 하는 漢民族의 공통어”라고 하여 著作과 그 문법적 규범이
말의 규범에 우선하는 것으로 [論語]의 기록과 같은 것이 古文이면서 말로서는
文言文(古語)이고 소리 말 같이 만든 글이 白話文(口語)으로서 원래의 문장다운 문장
(古語)과 말하는 투의 문장(口語)으로서의 文만 있는 것이지 言語란 개념자체가 없는
것으로 실제 [文]字를 떼어내 버린 [文言]이나 [白話]라는 용어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文言文=古語]과 [白話文=口語]으로 혼용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런 점은 우리가 “책을
읽는다(讀書)”라고 말하는 것을 중국인은 “念書(niꐃnshū)"라고 하여 말로써 읽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표의문자인 한자의 뜻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며, 讀書(dúshū)라는 말은 ‘책을 읽다’라는 의미로는 사용하지 않으며
그야말로 ”牛耳讀經“과 같이 말로서 읽으며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글자의 의미를
생각하며 염불하는 讀經(dújīng)과 같은 경우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은 훈민정음 서문의 “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로 서로 맞지 않아”하는 대목으로 이 말에서 필자는 중국어에서 한문이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내왔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말은 글과 그 음이 맞는가?
세종대왕께서는 表意文字인 漢文과 말의 國音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
무런 문제될 것이 없는 대신 表意文字의 音과 소리 말의 語音이 서로 일 대 일로 정확히
대응한다는 사실이 이상한 일이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낌새를 채야 했다.
세종대왕께서는 필자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실을 상상도 못할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 의심하거나 이상한 무엇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하셨거나, 그런 점을 아셨다
하더라도 그 당시 文字와 서로 맞아떨어지는 漢語의 현상을 그대로 인정하신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던 훈민정음 서문의 이 말은 어린 백성들로 하여금 漢語의 말로서의
기능이나 발음에 대해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 결과 최근
몇 해 동안 KBS와 EBS를 통해 방영된 도올 선생의 도덕경과 논어 강좌와 최재희 박사
의 논어강좌 등에서 선생들은 혼자서 유창한 한어 발음으로 강의하신 구절을 읽어 들려
주는 것으로 한 절의 강독을 마무리하곤 했다. 마치 나는 原語를 이렇게 유창하게 구사
할 수 있고 本土의 정확한 발음은 이렇다는 듯이 감정을 넣어 읽으시는데, 그렇게 감정
을 넣을 수 있도록 까지 변질된 것이 漢文이 漢語로 둔갑한 비결이고 그 사실이 우리가
漢文의 실체를 파악하거나 漢文의 원래 발음을 파악하는데 가장 큰 障碍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신다면 한 마리의 구관조나 원숭이와 크게 다른 것이 없을 것이다.
소위 漢族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學而時習之,不亦說呼. 하~아악 이~시~스~읍 지~
(하니), 부~우울 여어억 여~어얼 호~오 아”하고 우리 선비들이 글을 읽을 때와 같이
음을 늘이고 懸吐를 붙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기들의 말을 지켰어야 했는데, 여러
민족이 한 왕조에 포함되어 있는 서로 말이 다른 민족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과 맞물려 왕족이나 귀족들이 쓰는 말(글)을 탐하고 이에 빠져 이
글을 만든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했는가 하고 돌아 볼 여유 없이 자신들의 말을 버리고
도올 선생이나 최재희 박사 같이 貴族 흉내 내는 원숭이 놀음에 빠져 지금과 같은 궁한
처지에 다다른 것이다.
훈민정음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최만리 등이 훈민정음의
창제를 반대한 것을 마치 한문이라는 중국의 훌륭한 글이 있는데 왜 우리글을 만들려고
하느냐하고 훈민정음을 아녀자나 쓸 암글로 비하하였다는 이야기는 앞서 위의 두 분
선생 같이 후대의 석학이라고 자처하는 분들이 남의 흉내나 낼 줄 아는 자신들의 사대
에 찌든 정신으로 생각해낸 반대의 이유일 뿐이다. 물론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 것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그 반대 이유는 그 당시 문자의 소용을 기록을 위
한 것으로 만 생각한 탓에 한문이라는 글이 있는데 구태여 말소리를 기록할 문자를
따로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그야말로 言文(諺文)의 창제에 반대한 것으로 식견이 모자
라기는 했으나 후대의 석학이라고 자처하는 분들이 썩어빠진 정신으로 유추한 그런 이
유에서는 아니었음을 알고 마치 한글과 우리말을 아끼는 것과 한문사용이 배치된다고
생각하는 사대에 흠뻑 빠져 자신의 생각이 바로 사대적이라는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에
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2. 동굴벽화로 말하는 중국인
호떡집에 불이 나도 애틋한 마음은 전할 길 없어
중국인이 아무리 아름다운 말이라고 자부하더라도 그 말로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에는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우스갯말로 여자 셋이 모이면 사발이 깨지고 중국사람 셋이 모이면 호떡집에 불이 난다
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전술한 바와 같이 혀를 꼬아 구르는 소리를 내고 콧소리로 온갖 교태를
지으며 숨이 턱에 찬 것 같이 목쉰 소리를 내고 말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그야말로
호떡집에 불이 난 것 같이 시끄럽게 떠들어도 한어는 洞窟壁畵나 化石과 같은 말에 지
나지 않는다. 필자가 좀 심하게 漢語를 비하하는 것 같이 표현한 것은 그 것이 사실이
기도 할 뿐 아니라 편리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우습게보고 漢族이 범한 과오를 되풀이
하고 싶어 하는 듯한 선생들 때문이다.

원숭이 말 같은 한어의 모습을 살펴보자.
1) 어법이 없다.
소리만으로 의미의 분별이 힘들다는 측면과 함께 어순이나 어법자체가 없다고 할만큼
다른 어떤 언어와도 다르다. 이 역시 漢文을 만들면서 漢語 단어에서 일부의 음을 따서
漢字의 음을 붙였으리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부정하고 있다.
우선 어순을 보면,
흔히 漢語는 英語와 어순이 비슷해서 한족이 영어를 쉽게 습득한다고 들 한다.
漢語와 英語는 語順에 의해 각 단어들 사이의 관계가 결정되는 것으로,
영어의 경우
1) The hunters killed the tiger.
2) The tiger killed the hunters.
3) *The killed hunters the tiger.
4) *The tiger killed hunters the.
5) *the tiger the killed hunters.에서
3),4),5)는 영어의 일정한 어순을 따르지 않음으로 비문법적(ungrammatical)인 문장에
불과한 것이고, 정상적인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 1)과 2)의 경우 동일한 단어들의 집합
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어순이 다름으로 인하여 문법적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
다.1)
그러나 어순에 의해 문법적 관계가 결정 된다는 영어에서 [the]는 관형사이고, [killed]
는 과거나 과거완료 시제의 동사이며 단지 [the hunters]와 [the tiger]와 같이 관형사가
붙고 중성의 단수·복수의 性과 數가 어순과 관계없이 결정되어 있는 명사들이 주격이냐
목적격이냐 하는 격의 변화만이 어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 뿐이고 漢語에서 어순이 가
지는 절대적인 기능에는 비교도할 수 없는 것이다.
漢語에서는 그 어떤 단어도 명사의 경우 性·數·格이 표시되지 않으며, 동사의 경우에도
단어자체에 시제가 표시되지도 못하며 명사와 동사 형용사 등 품사자체도 어순에 의해
서 결정되는 것으로 위의 영어에서 단어자체에 이미 품사와 성·수·격과 시제가 나타나
있는 단어로서 어순이 맞지 않아 비문법적 문장이 되는 경우마저 한어에서는 전후관계
의 의미만 통하면 훌륭한 문법적 문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漢語의 語順은 근본적으로 상형이나 표의문자에 기초하여 동굴벽화와 비슷한
어순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방에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
시는 분이 아버지다.”와 같은 표현은 꿈도 꾸지 못하고, 어순이 바뀌면 “아버지 가방
에---”, “가방에 아버지가 ---”식으로 의미가 달라지거나 선후의 의미가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의미 없는 소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언제-어디서-누가-했다-무엇을]하는 것이 중국어 어순의 본질이며, 이것은 객관적이
고 간단명료해야 하는 기사 작성의 “六何原則”과 비슷한 것으로 본질적으로 단음절이고
단어 자체에 아무런 격변화가 없을 뿐 아니라 변화의 여지가 아예 없는 고립어인 상형문
자에 기초한 漢語의 한계인 것이다.
[주어-술어-보어]의 어순도 어순에 따라 격이 결정되는 단음절의 고립어란 한계에 의해
명사(주어)와 명사(보어) 사이에 술어가 들어가 갈라놓지 않으면 안 되는 한문의 본질적
한계가 한어에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한어의 특징에 대해 胡奇光은 “한어는 형태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어순과 허사를
단어와 단어를 조성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는다. ---즉 어순의 선후와 사물을 관찰하는
순서가 서로 일치한다고 여긴 것이다.”2)라고 설명하고 있다.
의문문은 마치 겨우 걸음마를 시작하는 어린애 말과 같이 우습기까지 하다.
[ 你 (nǐ) 是 (shì) 不 (bù) 是 (shì) 學 (xué) 生 (shēng) 。( 老 (lꐂo) 師 (shī) , 韓 (hꐁn) 國 (guó) 人 (rén) ---)
너이다 아니다 학생(선생, 한국인), 너 학생이냐?]와 같이 긍정과 부정을 반복하면 의문
문이 되며, 정도를 물을 때에도 [멀다 가깝다 거리- 거리가 얼마이냐?]하고, 물건값을
묻는 말도 [많다 적다 돈- 얼마입니까?]로 표현된다.
형용사의 경우 [노르스름하다]와 같은표현은 꿈도 못 꾸는 것으로 기껏해야 옥과 같은 黃色과 같이 다른 사물의 속성을 빌려
서 표현하는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말의 [얼마, 어느] 등 정도를 표시하는 단어를 만들지 못하였을까?
필자는 요즘도 중국에 갔을 때 서점이나 시골 길가 노점에서 [많다 적다 돈? 多少錢(duōshꐂoqiꐁn)?]하고 돌아다닌 자신을 생각하고 실소를 금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어 의문문의 특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한문에서는 의문문을 어떻게 표현하였는가?
대부분의 한문 교재에서는 의문형의 유형을 네 가지 정도로 설명하고 있다
①의문사 「何」,「安」,「孰」,「誰」,「惡」,「焉」,「胡」등을 사용하는 경우와,
②의문 語氣詞인 「乎」,「與」,「哉」,「耶」,「邪야」를 사용하는 경우,
③「何以」,「何爲」,「胡爲」,「何由」등 의문사와 접속사 등 他詞가 결합한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와,
④의문사와 어기사가 결합하는 경우 등이다.
이들 중 ③의 경우는 현대 한어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지만 나머지의 경우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전술한 바와 같은 [긍정과 부정의 반복(이다 아니다 무엇, 멀다 가깝다~,
많다 적다~, 크다 작다~, 높다 낮다~)]의 형태이거나 의문사 [嗎(mꐄ):你是中國人(nǐ
shìzhōngguórén)嗎(mꐄ)? 너는 중국인이다 嗎(mꐄ)?-(이다 마?)와 (입니까?)는 차원이
다른 말이다]를 의미에 붙이는 형태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현대 중국어의 의문문 형태는 한문이 그 말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원래 소리
말에서부터 사용해 온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왜냐
하면 그 소리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①②④와 같은 점잖고 세련된 표현 방법을
말에서 그대로 쓰는데 아무런 문제도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런 형태의 의문
의 표현이 원래 말에서 나온 것인 만큼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인데, 구태여
다른 형태의 의문문을 만들어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③의 경우도 현대한어에서 그대로 사용된다고는 하지만 한문에서나 한어에서 엄밀
한 의미에서 의문문이라고 하기보다는 접속사이거나 어구나 어절을 연결(주로 역접으로
가정이나 의문의 뜻을 나타냄)하는 관용구에 속하는 것이고 주로 문장체에 사용되고 있
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한문이라는 단음절로 된 단어를 통하여 말과 같은 직접적인 의
문문을 만들기 힘들기 때문에 문맥과 의문의 뜻을 가진 조사나 허사를 이용해 의문의 의
미를 표시하고 있는 기록된 글(表意文字)로서 씌어져 있음으로, 전체를 반복해서 보면서
그 行間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장의 의미, 특히 의문의 의미를 허
공에 사라지고 마는 말의 기능에 맞게 바꾼다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일상생활에서 當場 사용해야만 하는 의문의 표현을 위해 다듬을 사이도 없이 사물의
개념과 함께 언어를 습득하는 어린아이의 이분법적 사고에 걸 맞는 말을 습득하고
훈련하게 되어 오늘날까지 그대로 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더
하여 한국인에게는 필자가 실수 한 것 같이「多少(duōshꐂo)錢(qiꐁn)?」하면 충분하다
고 생각되는 말이 엄밀히 말하면 「多少(duōshꐂo)塊錢(kuꐃiqiꐁn)?」이라고 하여 「얼마
입니까?」하고 아예 생략하여도 문제없는「錢(qiꐁn)」만으로도 부족하여「塊(kuꐃi)」를
덧붙여야 온전한 말이 되는 것이다.
이는 「銀塊」나「金塊」를 사용한 습관에서 나온 것일까?
그러면 「紙錢」이란 말은 왜 사용하지 않는가? 이 또한 소리 값을 불릴 필요에서 나온
표현방법이며 소리 말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하기 위해 음절을 늘리기 위해 첨가시킨 음
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3. 중국어의 언어학적 계통과 특징
오직 없는 것만이 특징인 언어
앞에서 한어의 특징에 대해 단편적으로 살펴보았으나, 언어학 서적을 통해 정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형태소의 결합유형에 따라 언어를 굴절어(inflectional language)와 교착어
(agglutinative language), 고립어(isolating language)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굴절어는 라틴어에서 단수·주격에서의[amicus(친구가)]의 어간 amic-에 붙은 그 자체가
어간과 분리되어 독립할 수 없는 곡용어미 -us가 -o로 바뀜에 따라 단수·여격형태의
[amico(친구에게)]로 변하는 유형의 언어로 영어, 불어 등이 이 유형에 속하며, 교착어
는 굴절어에서의 곡용어미와 같은 것이 독립하여 새로운 단어의 결합을 만들 수 있는,
즉 문법적 요소들이 각기 분리될 수 있는 한국어와 터키어 같은 유형의 언어를 말하며,
마지막으로 단어 어형변화가 없는 언어를 고립어라 하며 고립어의 대표적인 유형이 중
국어라고 하고 있다.3)
그러나 고립어의 대표적인 유형이 중국어라고 하면서 일체의 다른 예를 들지 못하는 것
은 중국어가 그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하기보다는 중국어 외에는 그런 언어유형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 할 것이다.
더군다나 단음절의 고립어란 언어학적으로 성립가능성 마저 상상하기 힘든 상황에서
중국어라고 하는 그러한 유형의 엄연한 실존으로 말미암아 고립어에 대해 그 언어적 특
성을 (어형변화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고립어란 언어 유형을 대
표하는 용어가 탄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중국어의 실존 때문에 語族의 분류상 어쩔 수 없이 어딘가 에는 포함시켜야할
필요에 의해 漢藏語族(Sino-Tibetan)으로 분류되고 있으리라고 필자는 확신하는 바이
며 아래의 내용을 검토하시고 독자 나름의 판단을 하시기 바랄 뿐이다.

중국어를 일반적으로 漢藏語族(Sino-Tibetan)으로 분류하면서 이를 다시 중국어와 티벳
어 미얀마어로 대별하고 있다. 그리고 漢藏語族(Sino-Tibetan) 전체를 한데 묶어 줄 수
있는 공통적 특성은 음조의 체계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4) 어휘(語彙 vocabulary)와 어
형(語形 morphology), 구문(句文 syntax)과 심지어 漢藏語族 공통의 특성으로 유일하게
내세우는 음운(音韻 phonology)체계마저 성조(聲調)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유사성을 찾
아보기가 힘들다.5)고 설명하며, 따라서 많은 학자들이 중국어계(Sinitic language)를
Tibetan-Karen계와 구분되는 어파(語派 Subfamily)로 나누고 어떤 학자는 중국어를 아예
특수언어라고 하여 언어계통에서 관련성을 찾을 수 없는 독립된 말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어를 한장어족(漢藏語族)으로 분류한 자체가 어떤 언어학적 특성과
유사성의 검토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고 지리적이거나 역사적 관련성에 의해 억지로 연
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유사성을 찾았으나 언어적인 유사성을 아직 찾지 못한
체 억지로 분류한 것에 불과하며, 이는 중국어를 한·장어족으로 구분한 《브리태니커》
에서도 “이러한 연관성은 非遺傳的인 현상으로 보는 것이 보다 상식적인 생각이며, 닮은
어휘의 대부분은 역사적이거나 문화적 접촉에 의한 것이지 고대로부터 물러온 말 자체에
서 연유한 것이 아니다.”6)라고 지적하면서 정작 그 유사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닮은
어휘라고 애매한 표현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실은 한문을 사용하는 나라들에서는
어족이나 어군에 관계없이 복합단어의 앞뒤가 바뀌거나 발음상의 차이 외에는 닮은 정도
가 아니라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 이다.
그리고 발음에 있어서도 말이 아예 다른 민족들 예로 한국과 일본과의 차이보다도 중국
과 한국, 중국과 일본의 차이가 더 큰 것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겠는가?
이 점이 한어는 한문을 말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 만 큼 독음을 변화 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으로 필자의 주장을 강력히 지지해 주는 현상인 것이다.
현재 중국본토 인구 12억(15억 까지 추산하기도 함)에 대만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일상생활에 중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화교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동남아와 세
계 각 국에 흩어져 있는 화교를 합치면 세계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지금도 중화인민공화국이란 울타리 안에서 한족을 제외하고도 55
개 소수민족이 보통화를 공용어로 사용하면서 한편으로는 각 민족 언어를 유지하면서
같이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과 90년 전 까지 만주족의 지 하에 있었던
것과 같이 한족(漢族)이란 민족 자체가 무수한 민족이 융합되어 형성되었으며 역사·문화
적 융화가 이루어졌는데, 어찌하여 언어에 이러한 문화접촉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인가? 淸朝는 총독을 파견하여 식민통치를 한 것이 아니고 그 군대를이끌고 쳐들어와
서 민족의 대 이동을 통하여 중국 땅을 자기의 영토로 편입하여 통치한 왕조였는데, 그
민족과 그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말 자체가 어찌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
린 것일까? 문화인류학이나 언어학의 견지에서 이런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실린 아래의 서양학자들의 설명을 분석하여 보면 이러한 경이
로운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서양학
자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해한 원인을 밝히면 진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단
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The New Enncyclopedia Britannica 》Vol.22 p.721~731
Sino-Tibetan Languages
Classification: Sino-Tibetan Languages는 다시 Chinese, Tibetan, Burmese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Chinese: 언어의 명칭으로 Chinese는 잘못된 것이고 Sinitic이 정확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기원전 2세기 중반부터 수많은 방언(파생언어)과 어조와 언어가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을 모두
수용하고 Sino-Tibetan 언어 그룹에서 Tibetan-Karen 그룹과 구분되는 언어그룹의 명칭으로는 Sinitic이라
고 하는 것이 적당하다. 漢語는 중국 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非 중국어에 대하는 순수한 중국어를 일컫는 말
이다. 현대 표준 중국어를 "국가의 말“로서는 國語(guóyǔ)라고 하며 ”일상언어“로서는 普通話
(pǔtōnghuꐃ)라고 한다. 중국어의 역사적 변천과정에서 기원전 8~3세기의 원시 중국계언어(Proto-Sinitic)
를 고어라고 하며, 唐 王朝(618~907)를 포함하는 시기까지를 중세 중국어라고 하고, 그 후대의 중국어를
고대와 중세, 현대 Mandalin을 포괄하여 Mandalin이라고 일컫는데 이는 행정 서비스의 뜻을 가진 官話
(guꐀnhuꐃ)를 번역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국계언어(Sinitic language)는 그 사용 지역이 ”중세 왕조“
시대부터 황하 동쪽 지역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규모로 계속 확장되어 왔다. 그러나 일반화한 비 음성적
표기체계를 끈질기게 고수한 점이 현대 회화체에 基本語 보다도 방언이 폭넓게 적용된 이유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의 소리 말(방언)은 서로 알아들을 수조차 없을 만큼 격차(어떤 방언은 포르투칼어와 이태리
어의 차이보다 더 크다)가 벌어져 방언은 각각이 중국어의 subdivision이 되고 있다.

위에서 우선 기원전 2세기 중반부터 수많은 방언들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설명한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서양의 학자들이 중국의 역사와 사회 및 문화에 대하
여 얼마나 무지하며 오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Sinoloy(중국학)란 용어에서 나타나듯 秦에 의한 통일로부터 중국의 역사가 시작
된 것 같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여 지기도 한다. 마치 유럽이 경제적 단일 체제
가 되면서부터 유럽이라는 국가가 탄생한다고 하는 생각과 같은 것이다. 중국은 秦이라
는 중앙집권적 군현제를 채택한 왕조가 출현하기 천년 이전에 이미 夏와 商과 周라는 비
록 현재의 중국 영토보다는 적다고 할지라도 전 중국을 정치적으로 통합한 봉건 군주제
왕조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모르고 현재까지 제 각각 정치적으로 독립된 국가를 유지하
고 있는 서구의 상황과 같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로 통합된 정치
체계 속에서 제 각각 민족과 언어가 다른 제후국이 유지되어온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秦의 중앙집권적 군현제도의 시행으로부터 언어와 제반 법령과 제도 심
지어 마차의 규격으로부터 시작하여 문자의 정비 등 본격적인 통합이 시작된 사실을 모르
고 완전히 거꾸로 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양학자들의 시각에 따라 필자는 15쪽에서 전술한 호기광의 “많은 외국학자들
이 중국의 언어생활을 이해하지 못하여 대개의 경우 漢語의 각 方言을 독립된 언어로 간
주한다. 이것은 오해이다. 漢語 방언의 분기는 매우 크지만, 그러나 방언을 구분하는 것
은 언어 자체의 차이에 의거할 수 없고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이 동일한 민족에 속하는가
하는 점과, 각 方言上에 또한 각 지역 사람들의 교제도구인 하나의 公同語가 있는가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 만다린(관화)의 방언을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
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교과서에서 중국어의 방언을 ①北方官話(標準語) ②西
南官話 ③江南官話 ④吳語 ⑤客家語 ⑥竷語 ⑦閩語 ⑧오語 ⑨湘語로 분류하면서 외국어
로는 생각조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필자와 같은 오해를 할 수 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저변에는 무지한 서양언어학자의 오해에 편승하여 한어라는 말이 원래부
터 있었고 각 지역에 따라 갈래가 큰 방언으로 분화되어 왔음을 주장하고자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호남성에 갔을 때 북경에서 동행한 여행가이드가 湖南省 즉 湘 지역에서는 호
남성의 가이드가 현지인의 말을 통역해 주는 것을 듣고서야 우리에게 설명을 해줄 정
도로 사투리가 심한 것이 사실이지만 모두 한어의 방언인 것은 틀림없고 문자로서 기
록된 것은 조금도 틀린 점이 없고 단지 발음상의 차이가 그렇게 클 뿐이다. 표기된 기록
으로서는 틀린 점이 전혀 없는 말을 서양학자는 방언에 따라서 아태리어와 스페인어 사
이보다 차이가 크다고 무식한 소리를 하고 있고, 이런 무지한 주장을 반박하는 체하며
호기광은 한어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표기된 문장은 같으며 단지 발음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므로 방언이라고 하면 정확하고
직접적인 설명이 되는데 어찌하여 민족이 같고 공용어를 사용하면 방언이라고 어렵게
둘러서 설명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이러한 지역의 민족과 말들이 서로 달랐는데 한
문을 통하여 말이 통합되고 민족이 융화 통합되면서도 아직도 발음상에서는 엄청난 차
이를 보이고 있는 실상을 거꾸로 호도하고 있는 것이며 표기된 기록이 같다는 것을 감
추어야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는 끝없는 통합에 의해 이루어진 역사이지 거꾸로 분화된 적이 없다.중국과
접한 이민족, 흉노, 요, 원, 금 등 이민족과의 접촉에서 일시적으로는 남·북조로 나뉘어
분열된 것 같이 보이는 현상들까지도 결과적으로는 모두 통합의 과정이었으며, 한족이
라는 민족 자체가 이러한 민족들이 하나씩 통합되며 점차 큰 덩어리를 형성해 가면서 중
력을 키움으로 가속적으로 무수한 민족이 통합·융화된 민족을 이루게 된 것이며 淸朝가
무너지면서 만주족 자체가 통합되어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를 영국의 방송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2000년을 이어온 왕조가 문을 닫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 역시 秦
王朝 이전 異民族의 봉건제후국 언어가 소위 그들이 말하는 官話(Mandalin)로 통합되어
온 것이지 방언이 서로 알아듣지도 못할 만큼 분화되어 Mandalin의 亞系를 이루게 된 것이
아니다.
위의 글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기원전 8~3세기 말하자면 先秦時期인 周 代의 말을
古語라고 하고 그 이후 唐 末까지를 원시중국계 고어라고 하고 그 이후부터 고대·중대
현대 漢語(Mandarin)라고 하고 있는 점입니다. 이 말은 중국인들이 唐·宋시기의 백화를
조기 백화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의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좀더 자세히
분석해보면 先秦時期의 말이 어떤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古語라고 하여 제쳐두
고, 그 이후 唐 末까지 현재의 漢語(Mandalin)의 원형이 된 원시한어, 즉 古漢語로 발전
하고 이후 고대·중세·현대의 漢語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우리말의 경우 단순히 고어와 현대어로만 분류하는
것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세분하여야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말의 경우 옛
말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가 없어 제대로 연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중국의 경우는
그와 대비되는 이유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진시기의 한어를 古語라고 하고
秦으로부터 唐 末 까지를 中世 漢語 그 이후를 現代 漢語 정도로만 구분하여도 충분할
것이며 唐 末 이후 907년부터 현대까지 약 1000년 동안을 3기로 나누어 구분하는 것은
지나친감이 있다. 말이라는 것이 300년을 터울로 확연한 차이가 생겨서 시기 구분이
필요할 만큼 변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 의미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되는 漢字라는 글자로 표기하고 있는 말일 바에야 전혀 쓸데
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위의 글이나 중국인 학자들이 전혀 관심을 가지지도 언급하지도 않는 중요한
변수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한 차례에 이 삼 백년이란 기간동안 지속되며 전체 중국역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민족의 지배에 의한 언어 변화에 대한 가능성이다.
우리가 일본의 침략기 36년 그 중에서도 절반이 안 되는 짧은 기간의 한국어 말살 정책
으로 인해 우리말이 어떤 위기에 쳐했었던가 하는 점과 아직도 우리말에 기생하여 있는
일본말을 생각한다면 그 오랜 이민족의 지배가 漢語의 변화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
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인 반면 불과 千年에 불과한 기간동안 그렇게 큰 변화를 일으킨
漢語 내부의 변화 요인이 무엇인가?
이 비밀의 열쇠 역시 漢文이란 文字가 쥐고 있는 것이다. 민족과 언어 지역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고정되어 동일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문법이 완비된 단계의
漢文은 異民族의 지배 하에서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그 異民族과
의 의사소통을 도와줌으로 통합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글 특히 表意文字(象形文字)는 그 자체가 말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짧은 기간동안 동일한 글자를 이용하여 표기하고 있으면
서도 말로서의 기능을 충분하다고 할 만큼 발휘하고 있는 현대의 보통화에 이르기까지
는 발음의 변화를 중심으로 漢文 文章에 쓰지 않던 조어를 붙이고 복합어를 만들고 하
는 등 엄청난 변화가 있어야 했고 그런 필요에 의한 변화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하여 에스페란토어가 실패한 것을 중국에서는 이미 二 千年 이전에 시작하여 훌륭
하게 성공시킨 것이며, 이에서 에스페란토어의 실패는 思考와 言語의 관계를 무시한 컴
퓨터 언어와 같은 기계어가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 일이며, 漢文으로부터 漢語
化의 성공은 漢文의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가치와 소통에 필요한 문법체계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중국사회와 역사 그 문화의 본질에 대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고, 한편으로 세계
인구의 5분의 1에 이르는 사람이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말이 문자에서 파생한 人造語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서양의 언어학자들에 의해 한어는 신비스러운
말로 더욱 그 실체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결과적으로 한문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걸림돌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漢語의 발전 자체에 지장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런 점은 중국학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조셉·니담(Joseph Needham)의 글에서도 발견
된다. 그는 그의 저서《中國의 科學과 文明》중 〈中國語에 대한 노트〉에서 “文語가
중국문화의 통일 확립을 조장하는 데에 얼마나 강력한 인자로서 작용하였는가를
실증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며 중국어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여 언어학자 칼그렌
(Karlgren)의 저술들 중 〈중국어의 음과 기호 Sound and Symbol in Chinese〉를 중요
참고 문헌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중국어만이 3000년 이상이나, 表音과는 대조적인 表意 방법으로 쓰는데 충실했던 언어이다. 중국어가
일관성 있게 표의 문자에 충실했던 것은, 첫째로 그 언어가 처음부터 엄밀히 단음절로 되어 있었던 것(원저
주: 일부 학자는, 중국의 고대어는 1음절 이상이었으나, 표의문자를 쓰는 어려움에서 중국어를 단일 음절로 만들어
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구도 고대음의 음절 모두가 기록되었는지 아닌지를 확언할 수 없다.), 둘째로 고립적
이며 非膠着的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이집트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象形
文字에서 神聖文字(hieratic)를 거쳐 뒤에 음절 자모를 낳는 民用文字(demotic)로 이행해 가는 과정은 일
어나지 않았다7).


“文語가 중국문화의 통일 확립을 조장하는 데에 얼마나 강력한 인자로서 작용 하였는
가”하는 말에서 조셉·니담의 혜안을 엿볼 수 있으며, 위의 글에서도 그가 표음문자로 쓰
인 언어에 대해 이상한 느낌은 가졌던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엄청난 인구가 사용하고 있는 한어의 실존이라는 견고한 성벽에 부딪쳐서 왜
그런가 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의심조차 해 보지 못하고, 이상한 현상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에만 급급하여 말 자체가 처음부터 단음절로 되어 있었고 고립적이며
非膠着的이었기 때문이라고 더 이상한 이유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런데 이것은 얼
마나 우스운 이야기인가!
필자는 단음절이면서 더구나 격변화도 없으며 고립적이면서 교착어와 같은 단어를 연
결시켜줄 아무런 수단도 가지지 못한 말이 말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소리로 의사전달이
가능한 말일 수가 없다는 데에서 漢語가 선조 대대로 물러온 소리 말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인데, 그는 더욱 더 말의 기능이나 개념상 성립되지 않는 형태의 말에
서 나왔기 때문에 단음절에 충실하였다는 쪽으로 이상하게 느낀 점을 더 이상한 논리로
해석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漢語 그 자체가 문자로서는 본 모습을 유지하면서 그가 이
야기한 이집트어가 象形文字에서 神性文字를 거쳐 民用文字로 이행해간 것보다 완벽한
변신을 통해 소리 말로까지 발전한 것이란 사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注한 바와 같은 일부학자의 주장이 한자가 말에서 나왔다고 할 경우보다는 더 상
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되며 이제까지 문자에서 말이 파생되어 만들어진 것이
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모든 학자들 나름대로의 합리적 해석이라는 것을 看過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도 일리가 있는 것은 앞서 우리말에 적응시켜 본 바와 같이 말
이 원래 다음절이었다면 다음절의 단어에서 한 음절씩을 따온 단음절로 바꾸고도 그대로
말일 수가 없다는 점에서 이 또한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조셉·니담은 계속된 글에서 한자의 象形·指事·會意·轉注·假借·形聲의 六書의 製字原理와
반절법등 표음방법에 대해 설명한 후(p.34~41) 한어 발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 있는
지적을 하고 있다.


중국어로써 과학 용어를 형성하는 것이 곤란하였던 것은, 아마도 발전된 언어였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빈
약한 그 음성에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용할 수 있는 음성이 얼마나 적었는가는, 웨이드-자일즈 방식(
북방 관화) 때문에 창안된 제 3표에 나타나 있다. 공백 부분은, 가능한 많은 음성 결합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사실상, 적어도 58.8%나 또는 반 이상의 가능한 음성 결합이 없어져 버렸다
. 이와 같은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康熙字典〉의 49,000자를 나타내기 위한 음성의 수가 412개밖에 없
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실제로는, 이 번잡함은 4성에 의해 완화됐고, 이용할 수 있는 음성
수는 1,280개까지 되고 있지만, 그래도 음성 하나에 대해서 평균 약 40개의 의미가 붙어있다는 계산이 된다
.(p.41)


앞에서 필자도 표현가능한 소리가 411개로(현재의 한어병음으로는 411개 임) 4성을
붙여도 1200개 밖에 안 되기 때문에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서는 그 의미의 전달이 불가
능하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으며, 이러한 411개의 소리도 중국어에서는 韻母를 韻頭
(혹은 介母)와 韻腹 韻尾로 나누어 이 모두를 합쳐 하나의 韻母로 취급하여 이중모음과
같이 실재로 여러 음절로 나눌 수 있는 것을 하나의 모음이라고 하여 모두 단음절로 취
급하여 얻은 결과이며, 이것이 단음절의 漢字음의 음절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빈약한 음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단음절의단어에서 복합단
어로 변해가고 있음을 아울러 지적하였는데, 조셉·니담은 단순히 과학용어의 표기가 어
려웠다는 등 나타난 현상에만 관심을 가져 음절을 늘리거나 복합단어를 만들거나 원 한
문에는 없던 조사들을 사용한다든지 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셉·니담도 뒤에서 지적하였듯
이 발음의 연결을 위해 보다 많은 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입성을 없애버리는 희생을 감
수하면서 까지 말의 기능을 할 만큼 발전시켰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한자
표기에 더하여 灌注의 형태로 음을 표기하는 漢語竝音 전 단계의 웨이드-자일즈 방식에
대해 北方官話라는 토를 달아 그 자체가 말인 것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설명 한 바와 같이 신문 소설 시 수필의 장르와 초등학교 교과서로부터 박사학위 논문
까지 지식수준에 관계없이 순수한 표음방법(웨이즈-바일즈, 혹 한어병음)만으로 된 기
록 자체가 없으며, 따라서 한자표기가 없는 웨이즈-자일즈방식의 표기는 말이 될 수 없
는 것이다. 물론 문자를 아직 터득 못한 어린이나 문맹자도 漢語로 말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것은 음성의 미묘한 변화와 함께 눈으로 보는 등 짐작
가능한 상황이 설정 된 상태에서 그야말로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말의 형태
로 발전해 온 것일 뿐 아직도 순수한 음성의 표기만으로는 그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음성표기만으로 된 기록이 아예 없고 음성표기만으로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단계의 말을 참된 말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이 것이 바로
중국어가 발전해 가기 위해 극복해야만 하는 지표인 것이다. 이에 반하여 일본어는 [가
타가나]를 만들어 사용함으로 그 말의 표현가능한 소리가 불과 50여개 밖에 남지 않고
다 없어져 버렸지만 [가타가나]에 의한 표기만으로 훌륭하게 말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
은 일본어는 원래의 소리 말 이므로 음성이 50개라는 비슷한 소리로 변하여 버린 그 음
가만으로 원래 말의 기능을 하기에 충분한 반면, 한어는 일본어에 비해서는 8배가 넘는
소리 값을 기지고도 부족하여 성조로 구분하여 일본어에 비해 25배가 넘는 구분가능한
소리를 가지고도 소리만으로 표기가 안 되는 것은 漢語의 뿌리가 말이 아니라 글에 있
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어의 문법에 대해서 조셉·니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문어로서의 한자는 극단적으로 복잡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어의 문법은 또한 극단적으로 단순하다.
그것에는 정식 語類가 없고 품사의 구별도 없다. 명사와 동사는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다. [樹]는 명사로 쓰
여 지지만, 동사로서 ‘樹人’-재배하고, 번식시키고, ‘나무에 오르는 사람’- 과 같은 표현으로 쓰기도 하고, [
樹林]- (樹木의)숲- 으로 되면 형용사이다. 활용과 격변화 또는 어형변화는 없으며 행위의 時制는 각종 시
제(때매김)를 나타내는 다른 말을 부가하여 쓰인다. 인칭 대명사는 필요 없으며 性도 없다. 가장 중요한 문
법기능은 語順에 의하여 다 이루어진다. [手背]는 손등을 의미하지만 [背手]는 손을 뒤로 돌리는 것을 의미
한다. 우리들에게 친밀한 말보다 중국어가 복잡한 유일한 점은, 집합 물체에 약 40개나 되는 ‘분류단위 量
詞’가 있는 것이며, 3인은 [三個人]이라고 쓰지만, 3권의 책은 [三本書], 세 개의 건물은 [三座樓]라고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비교적 많은 수의 [虛字]가 있어서 문자의 멋을 잘 살리기 위하여 삽입된다. 고대
중국어에는 구두점이 없으며, 이 때문에 문장의 독해에 가끔 중대한 지장이 있다.
앞에서, 중국어는 엄밀한 단음절어라고 논하였지만, 이것에는 조건을 붙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말할
때에는 同音字性의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복합어나 連語의 형태로 同議의 한자를 결부시키는 경향이 생겼
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본다는 [看見], 고맙다는 [感謝]가 그것이다.----중국어로 말해보면 單性音(單音
節性)에서 오는 혼란을 피하는 노력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가끔, 불(火)이라는 말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火車(즉 기관차)의 火]라는 설명 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위의 설명을 보면 필자가 중국어가 말로서 성립하지 못한다거나 문자에서 말로 이행
된 증거로 내세운 점들 모두에 대해 그 또한 이상하다거나 특이하다는 느낌을 가졌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만약 필자와 같이 뒤집어서 생각만 해 보았더라면 모든 의아
하거나 신비한 점들의 연유가 명약관화하게 드러나 보였을 것인데, 선입관이 사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중국어에 대한 인상을 말하며 마무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낡은 언어는, 그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응축성과 간결함 및 碑銘의 성질을 띠고 있으며, 엄숙한
우아함, 웅혼함의 인상을 주는 점에 있어서, 지금까지 발명된 어느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비길 데 없을 만큼
우수한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Karlgren의 말을 인용함으로 마무리한 것으로 칼·그렌 역시 중국어에서 무의식
중에 碑銘이나 발명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漢字의 화석화한 고립되
고 상징적이며 간결한 분위기가 중국어에 이어져 온 것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때까지 조셉·니담의 글에 대해 장황하게 인용하였는데, 태어나면서부터 漢語를 모
국어로 사용해온 중국인보다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무의식중에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
하면서 한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비교해 봄으로 정작 漢語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보다도 한어의 특성을 더 새로운 사실로 인식하거나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언어학자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잘 정리가 되어
있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한어에 대해 잘 이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이다.
좀더 솔직히 말한다면 필자가 이 글을 대하고 자신의 주장에 대해 더 강한 확신을 가
지 되었다. 필자가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본격적으로 金文에 대해 공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중에 金文을 통하여 혼자서 느끼고 있는 漢語에 대한 의구
심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였으며, 이러한 단상을 서너 쪽 메모
해 두겠다고 시작한 것이 이것저것 두서없는 데로 잊지 않고 검토해볼 항목들을 정리한
다는 것이 30쪽에 달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읽어본 左契 선생으로부터 이것만으로 굵직
한 주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한 것이며 남들이 생각 못한 대단한 착상을 한 것이라고
추켜세우며 학회에서 발표할 때 인용할 수 있도록 초록을 정리하여 줄 것을 요구하여
그에 응하여 논거도 붙이고 본격적인 논문으로 정리해볼 용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중국어의 언어학적 계통과 특징이라는 주제에 대하여는 다른 학자의 견해를
정리하는 외에 자신의 주장을 펼 소견을 갖추지 못한 필자로서 처음 어떤 책에서 중국
어를 특수어로 분류해 둔 것을 본 기억만으로 쓴 처음 글의 논거를 찾지 못하여 논거
없이 자신의 새로운 학설을 주장을 할 수 있는 학식을 가지지 못한 필자로서 할 수 없이
지워버리고 다시 쓰던 중 조셉·니담의 〈중국어에 대한 노트〉를 찾아 볼 수 있게 되
어 필자의 대변인으로 내세우게 된 것이다.
<중국어에 대한 노트〉에서 중국어의 중요한 특성으로 다룬 내용들에 대해서는 이 글
을 읽기 전에 쓴 필자의 글에서 精緻하지는 못할망정 거의 빠짐없이 언급을 하였었다는
점에서 그런 사실들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향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필자가 중국어의
큰 줄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였다는 자긍심을 가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이런
특성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하기만 하면 필자의 주장에 수긍할 수 있는 점이 많으리
라 확신하는 바이다.
“말은 까마득한 옛날의 선조로부터 사용하여온 것이고 글은 시간 적으로는 기나긴
선사시대에 비해 지극히 가까운 과거인 역사시대가 시작할 때 만들어 졌다.”라는 누구
나 진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제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글이 먼저 있었고 그 글에
서 말이 파생하였다”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생각이며, 따라서 필자는 미친놈 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밖에 없
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나 하고 시각을 바꾸어 생각하기 시작하면 중국어에서 이상
하다고 생각되고 이해할 수 없는 측면들이 자연스러운 인과 관계에 의해 스스로를 설
명하며 그 참 모습을 나타내 보여 줄 것이다.


이 글은 박성현 님의 글이고, 저자의 허락없이 본인이 약간 손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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