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미국 발레 교사 '잭슨 헤인즈'가 스케이트로 왈츠를 춘 것이 효시라고 하는데,
1894년 경복궁 연못에서 고종과 명성황후가 참석한 가운데 주한 외국인들의 스케이트 모임이 열렸다. 당시 조선을 방문했던 영국 기행가 비숍 여사는 이날 풍경을 "조선과 이웃나라"에서 전하고 있다. 명성황후는 내외의 법도 때문에 향원정에 발을 드리워 밖에서는 안 보이게하고 안에서 관람했다고 한다. 황후는 난생 처음 보는 놀이에 흥겨워하면서도 남녀가 사당패들 처럼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모양을 보고는 망측해했다.
당시는 스케이팅을 "발로 얼음을 지치는 놀이"라는 뜻에서 빙족희(氷足戱)라 했고,
우리보다 30년쯤 먼저 스케이트가 전해진 일본에서는 "얼음 놀이( 遊)"라고 했다.
1924년 '피규어 스케잇 구락부(FSC)'가 서울에 생기면서 한국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창립회원은 8명이나 여성은 없었다.
피겨 안무(按舞)가 '니콜라이 모르조프'는 "피겨는 시(詩)와 같다"고 했다.
활자의 나열이 시가 아니듯, 회전-점프의 기교만을 피겨라 할 수는 없다. 선수가 음악에 몰입하고 그 혼신의 몰입이 표정과 몸짓으로 나타나 관중의 마음을 움직일 때 완성된다.
2009.10/19 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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