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해우소

일제강점기 종묘배치도(국가기록원)

작성자김대규|작성시간10.06.28|조회수450 목록 댓글 0

학교 수업용 근현대사 자료를 찾던 중 국가기록원에서 종묘배치도를 만닜습니다.

그려진 형태는(가장자리의 외곽선) 일제 강점기로 보이나, 분류는 해방 직후로 되어 있습니다.

종묘의궤-종묘의궤속록-춘관통고, 그리고 현재의 종묘배치도와 비교하여 볼수 있는 자료로 생각됩니다.

관심을 갖고 계시는 여러 선생님들께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확대하여 보실 수 있습니다)

http://theme.archives.go.kr/next/plan/searchDetail.do(일제시기 건축도면 아카이브)

연결이 안되시면

 http://www.archives.go.kr/    (국가기록원)에서 좌측 중단 배너 국가기록원 컬렉션모음에서 09번

일제시기건축도면으로 연결하신 후, 통합검색에서 '종묘'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국가기록원 건축도면 아카이브의 분류입니다)

 

그리고 도면입니다.

 

 

제 나름데로 한번 표시하여 보았습니다.

1번 : 윤방언선생의 '조선왕조 종묘와 제례(문화재청, 2002. 12.28) p63~64쪽에 "동쪽의 연지는 1985년 3월 20~6월 15일까지 

       종묘 조경공사 사업의 일환으로 매립되어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라고 한 내용과 관련하여 당시의 지당의 형태와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2번 : 망묘루는 사무실로 되어 있고 2번에서 향대청연결부분은 목욕실, 그 앞은 변소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목욕소로 표기된 부분

        을 공민왕신당 자리로 보기 어렵다면 역시 이때도 신당은 없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아니면 변소로 표기된

       부분을 신당자리로 보아야 하는지 검토하여 보아야 할 듯 합니다.

3번 : 전사청앞 성생대로 보입니다. 어로부분과 연결 길 표시가 있습니다.

4번 : 영녕전 동문 쪽입니다. 동문과 수복방 사이의 건물지가 표시되어 있습니다.(영녕전 전사청이라고 보아도 될까요?)

5번 : 현재 지킴이실 앞의 하지의 모습이며 그 앞은 역시 수위실과 변소(현재 지킴이방 위치)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6번 : 칠사당이 도면에는 창고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 외 전사청 서편과 정전 악공청은 수복방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뒤는 표기가 변소이고 정전 서쪽 문에서 영녕전으로

        가는 쪽에도 길 표시가 있습니다.  

 

조금 시간을 두고 살펴 볼 가치가 있는 도면으로 생각됩니다. 아울러 2004년 11월 5일(조선일보 기사)종묘관리소 신축공사중 느티나무 옮기는 작업중에 포크레인에 의해 어도박석이 훼손되었으며 이어서 11월 6일자 조선일보에 당시 유홍준청장의 사과문이 게재 되었으며, 이어서 동년 11월9일 조선일보A31면에 "궁궐 박석의 미학"이라는 글을 기고하였는 바, 당시 1972년 공사때 박석을 부실시공하였음을 말하고 있으며 앞으로 종묘의궤속록에 따라 복원하여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말하고 있습니다.

 

 

                                                           2004년 11월 5일자 조산일보 박석훼손 사진.

 

이런 저런 내용을 살펴보면서 1972년, 그리고 1985년 등의 공사가 어떤 근거에서 이루어졌는지 등을 살피면 앞으로 종묘를 공부하는 데 좋은 근거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