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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탐구

[스크랩] 여러 모양과 말씀(2)-거듭난 자의 모습

작성자빛뿌리개|작성시간17.05.12|조회수91 목록 댓글 0

 

이 세상에서 답답한 것이 아마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 그 중에서 가장 답답한 것은 중에 하나가 말이 안 통할 때입니다. 말이 안 통하면 정말 답답합니다. 뭔가 전달을 해 주어야 하는데, 동문서답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하나도 안 답답합니다.

 

신앙생활도 말이 안 통하면 '그 신앙생활이 이렇습니다'라고 설명하기 시작하면 아주 나를 가르치려고 하냐는 싸움거리를 만들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니고데모는 잘 아는 사람입니다. 주님 하고 말을 하고 있는데 주님하고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란스럽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오셨을 때 난리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니고데모는 아무 표정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어떤 일을 겪는가를 오늘 본문에 보여주는데, 내 마음에 뭔가가 뜨끔하고 뜨거운 것이 없습니다. 으악, 하는 뭔가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안 나타난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뒤에 결론을 보고 임재하심을 압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러면 옆에서 가만히 본 겁니다. 니고데모는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기는 아주 높은 신분이다. 그런데 예수님께 대한 궁금증은 있어 많은 사람들 앞에는 설수 없어서 밤에 옵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우리가 겉모습으로 볼 때 비겁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런데 비겁한 사람이 아닙니다. 밤에라도 올 수 있다는 용기는 대단한 겁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 4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지금 니고데모가 남의 다리를 긁는 소리만 하고 앉아있는 겁니다. 물어도 엉터리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의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묻는 것을 계속하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 희망이 있는 겁니다. 희망이 없다면 안 물어봅니다.

 

그런데 주님의 엉터리 같은 대답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니고데모가 '할렐루야, 내가 주님을 구세주로 모시겠나이다.'라는 이런 말도 없습니다. 그냥 듣고 가버렸습니다. 무슨 다른 표현이 없습니다. 아무 표현이 없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다음에 하는 일이 있는 겁니다. 그 순간, 바람이 지나가는 동안에 나뭇잎을 흔들었습니다. 말씀이 지나가는 동안에 크게 내 속에 표현이 없었습니다. 말씀이 지나간 증상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오심을 어떻게 알 수 있냐 하면 이 니고데모를 보는 겁니다.

 

요한복음 7 45 ~ 52

45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니고데모는 바리새인, 공회원이니깐 가장 높은 자리에 대제사장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주 받은 자라고 하니까 어떻게 말을 함부로 하냐는 겁니다. 분명히 그의 말이 성경에 있는가 증인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52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너도 빠졌냐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편을 든 겁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편을 든다는 것은 지나가는 말로 '그래' 로 편들어 준 것이 아닙니다. 이 때 편들어준다는 것은 한 순간에 관원자리를 다 내놓아야 하고, 이스라엘 나라에서 축출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예수님께 물은 날 밤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흔들렸던 겁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믿음이 잘못되었던 겁니다. 잘못된 믿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이 흔들린 겁니다.

 

무조건 믿으면 구원이라는 말이 말씀대로 믿어야 되는 것이라는 것을 듣고 나니깐 이 니고데모의 마음이 흔들린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쫓겨날 줄 알면서도 바리새인 대제사장 앞에서 예수의 편을 든 겁니다. 그러면 그날 예수 믿음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난 자라는 것을 주님이 지금 말하고 계십니다. 거듭났다고 해서 거듭난 순간에 교회의 꼴찌로 있던 사람이 일등으로 올라와서 안 하던 짓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격으로 안 하던 사람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이 얌전했던 사람이 주일날 '할렐루야 합시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듭났다는 말은 그 행위로 그 표현이 안 되어도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그가 예수의 편에 사는 겁니다. 하나님의 편에 그가 살고 있다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거듭난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그 다음날이 점점 주를 향해서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겁니다. 예수를 점점 마음에 넣는 겁니다. 진리를 점점 사랑하는 겁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확실하게 턴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도 거듭난 상태를 성경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 19, 20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예수님이 세상에 와서 하시는 일이 말씀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게 됩니다. 악을 행하는 자 즉, 죄를 즐기는 자는 지금도 절대로 빛으로 안 옵니다. 왜냐 자기의 악이 자꾸만 드러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짓을 해도 한번 구원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모여 있고, 빛으로 오지 않습니다. 빛으로 오면 자꾸만 자기를 괴롭히는 겁니다. 그런데 말씀이 나를 괴롭힌다는 것을 죄가 있다는 겁니다. 죄를 버리기만 하면 끝나는 것인데 그 죄가 아까워서 못 버리는 겁니다.

 

진리를 좇는 자는 말씀대로 사는 자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자는 빛으로 옵니다.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경찰이 앞에 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은 경찰이 있는 것이 원래 편안한 겁니다. 그런데 벌써 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불편하기 시작합니다. 죄를 짓지 않으면 진리가 있는 자는 빛으로 오는데, 진리가 없는 사람은 빛으로 오기를 스스로가 거절합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예수께 왔습니다. 온 것은 어둠이었습니다. 죄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지나가니깐 그가 흔들렸습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자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 흔들린 것이 다른 사람처럼 큰 입처럼 살지는 못했어도 예수의 편을 들기 시작하고 그 죽음의 자리에 끝까지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와 있다는 것은 그가 거듭났다는 겁니다.

 

오늘 빛으로 옴으로 어둠을 가지고 있으면 자꾸만 숨지 말고 그 어두움을 예수 앞에 와야 되는 겁니다. 예수의 말씀이 지나가는 순간에 잠깐은 괴로울 수 있어도 그것이 흔들리면, 죄가 흔들리면 의가 세워지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원문보기 : http://cafe.daum.net/djrainbow153/Jo8z/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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