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7절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말씀을 들을 때 두 종류가 나옵니다. 하나는 지식으로 갖습니다. ‘아~ 말씀이 그러네?’ 또 하나는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순종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들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삶에 체득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체험이 돼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식의 말씀이 순종의 믿음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장래에 있는 그 일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장래를 믿을 수 없다.’는 믿음이 무엇이냐면 이 체험은 앞에 믿음이 안 되고 있다는 겁니다.
앞에 믿음이 안 되는 사람은 장래에 되어지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를 하고 살 수밖에 없고, 장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겁니다. 장래에 대한 믿음은 그냥 내가 ‘믿습니다.’ 이런다고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장래에 대한 믿음은 순서대로 되고 있다는 겁니다.
로마서 1장 17절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그러면 믿음이 한 가지는 아니라는 겁니다. 뭔가는 믿음은 한 가지가 아니고 이 믿음이 뭔가는 지금 다른 믿음으로 이른다는 겁니다. 다시 바꿔 얘기하면 이 앞의 믿음이 없으면 뒤의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앞의 믿음이 생겼을 때 순종이 생겨지면 뒤의 믿음이 생겨지기 시작합니다. 순종을 하기 시작하면 어떤 것을 믿는 믿음이 생기느냐면 장래를 믿는 믿음이 저절로 생겨집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순종이 없으면 절대로 장래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아무리 다녀도 믿음에, 말씀에 순종을 하고 살지 않으면 장래를 믿는 믿음이 오지를 않기 때문에 그들은 삶에 부딪칠 때마다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삶에 부딪칠 때마다 자기의 것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장래의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으로 순종을 할 때 생겨지는 겁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주요” 그러니까 믿음의 주라는 것은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절대로 그의 주권을 행사하지 않으신다는 뜻 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믿음의 주’ 라는 겁니다. 믿음의 주인으로 계신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만은 주입니다. 내가 아무리 급해서 ‘주여~’ 불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무엇의 주이시기 때문에? “믿음의 주요” 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믿음을 갖지 않고는 주님을 아무리 불러도 소용이 없다는 뜻 입니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러면 믿음의 주가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주께서 역사하시는 겁니다. 그의 주권을, 그의 주인 됨을 역사해 주실 것이고, 그 주인 됨을 역사해 주실 때 그 사람의 삶은 온전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회사의 온전함, 가정의 온전함, 자기의 삶의 온전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을 때 입니까? 그 믿음이 실제가 될 때라는 겁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가 그 분이 주인이신 것이지, 믿음을 갖지 아니한 자에게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2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그래서 이 차이가 있는 겁니다. 믿음하고 온전함. 그러니까 믿음을 갖게 되면 하나님이 주권 역할을 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온전하게 변하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 사이에 무엇이 있습니까? 이 사이에 무엇이 들어있느냐면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지금 있는 십자가를 이겼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이에 무엇이 생겼다는 겁니다. 십자가가 들어 있다는 겁니다. 무엇인가는 내가 이루지 아니하는, 내가 자기를 부인하고 박아야 되는, 내려놔야 되는 그 십자가가 그 사이에 들어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는 믿음, 이 믿음은 예수를 믿었습니다. 첫 번째 믿음은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십자가를 통과하는 믿음인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부인되고 있는 겁니다. 자기가 부인이 되어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장래 일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없는데? 나는 지금 이 적을 이길 힘과 지혜가 없는데?” 주께서 이긴다는 겁니다. 그 장래에 되어 질 일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자기가 부인되는 믿음, 이 믿음이 그 삶에서 순종이 되어야 장래의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안 믿어진다는 뜻은 뭐냐면 순종하는 믿음이 없습니다. 절대로 그의 삶에 들어가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안 합니다. 할 것은 할 수도 있겠지만 안 하는 것이 더 많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장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이렇게 바라보고, 다니엘이 죽음을 각오하고도 매일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대단한 겁니다. 잡히면 죽습니다. 잡히면 죽는 줄 알면서도, 어인이 찍힌 줄 알면서도 지금 하나님께 이 기도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때 하나님이 다니엘의 믿음을 보고 하나님이 ‘아~ 됐다. 네 믿음이 됐다.’ 그래서 거기에서 총리를 시킬 수도 있습니다. 잘 보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총리를 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 믿음도 지금 진짜입니다. 총리 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사자 굴에 왜 집어넣었겠습니까? 다니엘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서 온전해지는 하나님의 그 완전한 자리에 가기까지 이 자리에 십자가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는 시간을 통과해야 됩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다면 끝에 가서 반드시 다 하나님의 뜻을 뒤집어엎어 버립니다. 자기의 뜻을 관철 시키는 겁니다. 자기의 이성이 맞다는 겁니다. 진리에 기록되었든지 말든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는 겁니다. 이것을 우기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는 일들이 벌어져야 온전한 자리까지 가는데 다니엘은 그 당시에 하나님을 향해서 갖고 있는 믿음도 참입니다. 그 때 그것을 인해서 총리를 시켰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어느 때쯤 가서 이런 말을 할 겁니다. “내가 왕년에, 나는 그 당시에 죽을 줄 알면서도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은 문 닫아놓고 해도 나는 계속 문 열어놓고 하나님께 찬양을 했어.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고 나를 총리로 만들어 주셨어.” 이렇게 자랑할 거리가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니엘을 고생시키려고 사자 굴속에 두신 게 아닙니다. 사자 굴은 내가 기도해도. 다른 것을 아무리 해도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자 굴은 내 힘으로 빠져 나올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누가 하셔야 됩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내가 기도한다고 총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기도한다고 무엇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으로 된다.’는 것을 다니엘은 사자 굴속에서 배웠다는 겁니다. 자기를 내려놨다. 이 소리입니다. 안 그랬으면 자기가 무엇인가를 해서 됐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십자가는 무엇을 하는 자리입니까? 자기를 내려놓는 자리인 줄로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환난의 시간이 잠시는 우리들에게 힘든 것도 있겠지만 자기를 내려놓는, 하나님하고 연합하는 기가 막힌 축복의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환난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의해서 우리는 즐거워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 믿음이 그렇다는 겁니다.
해당 말씀은 "장래의 믿음" 말씀의 요약본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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