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 26, 27절
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일반 사람들이 그냥 소소하게 느끼는 행복을 예수를 잘 믿고 있는데도 못 누리는 경우가 믿는 자의 삶에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편안하게 그냥 누리고 있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들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불평, 불만입니다.
성경의 한 여인은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이 여인이 아이를 못 낳은 것만도 속상한데, 옆에 붙어 있던 또 한 명의 여자가 계속 화를 돋우는 겁니다. 옆 사람이 그 사건을 가지고 괴롭히게 될 때 ‘한나’라는 여자는 굉장히 괴로워합니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삼상1:4~5)
그런데 성경이 지금 말하기를 하나님이 잉태치를 못하게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검사를 해도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좋은 약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자기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어리석은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 나를 울게 하는 목적, 나를 모든 일의 삶에서 제한하고 있는 목적을 빨리 못 깨달으면 그 인생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인생이 됩니다.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그 일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목적을 그 사람에게 주고 싶으신 겁니다.
내 인생이 살다가 그냥 가는 인생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그 사람을 조정하고 싶으신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고 싶으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벌써 그 사람의 일을 참견하기 시작하고 제한하기 시작합니다. 이 여인은 지금 괴로운 겁니다. 지금 하나님이 하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면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믿는 자의 삶이 이것을 잊고 산다면 그는 거짓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 개입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될 것은 하나님을 찾아봐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한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기쁨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사무엘을 낳기를 원하시는데, 한나는 자기의 자녀 낳고 싶어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정말로 변치 않는 이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꿈꾸는 인생은 안 되는 겁니다. 내 생각에 잠시는 슬픔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슬픔이 올 때 인생은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아! 하나님께 돌아가자. 하나님이 나를 부르고 있구나. 아, 하나님이 내게 무엇인가는 축복을 주실 일이 있구나. 그런데 그 축복을 받기까지 이것이 내 고통이구나’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즉, 우리는 사람을 찾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이것을 위해서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요15:2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하나님의 것을 주실 때에 때론 우리의 눈물을 동반할 수도 있습니다.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을 내 것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건강합니다. 그런데 건강을 내 것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 건강하고 싶어서 운동을 하는데, 하나님께는 한 시간도 안 쓰는 겁니다.
건강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겁니다. 그럼 나에게 주신 시간들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시간들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을 돌려 드리면 인생에게 더 많이 주시는데 이것들이 내게 있을 때 하나님께 안 드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내 놓으실 수가 없는 겁니다. 내 놓자마자 다 자기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먹을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엄마가 한입 달라고 하면 주는 아이가 있고 안 주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는 먹을 것을 주는 아이나 안 주는 아이나 똑같이 사 주지만 엄마에게 먹을 것을 준 아이에게 더 사주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똑같지만 더하여 지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아’ 하시니까 안 주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교회 다니는 하나님의 자녀를 안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하십니다. 그런데 더하여 지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인생하고 똑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생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를 증거하게 하십니다. 예수가 세상의 들어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사람에게는 두 가지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면 절대적으로 두 가지의 복을 저절로 가집니다.
첫 번째 복이 죄 사함, 구원의 복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던 자가 하나님의 전체의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영역 안에, 권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렸다는 겁니다.
두 번째, 예수를 믿어서 찾아오는 복은 성령님이 사람 안에 내주할 수 있는 복입니다. 성령님이 사람 안에 들어오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두 가지의 복을 주신 겁니다.
첫 번째 구원의 복과 두 번째 성령의 내주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럼 성령님이 우리를 이끈 다고 합니다. 성령님이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이 예수를 이끄셨을 때는 내 안에 있는 예수를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일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없이는 내 안에 살아있는 예수가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성령님은 내 안에 계신 예수를 밖으로 끄집어 증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생명, 창조의 영을 끄집어 낼 수 있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성령님이 없으면 예수를 믿고 교회는 다니는데, 깨지고 넘어지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힘이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럼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예수를 세상에, 내 삶에 꺼낼 수 있는 겁니다. 오늘 내 문제에 예수를 꺼내야 내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겁니다. 오늘도 말씀이 내 속에서 꺼내져야 내 눈을 뜨게 되는 겁니다. 오늘도 내 속에서 예수를 꺼내야 내 원수를 이길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을 꺼내게 하는 이가 성령님 한 분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지킵니다. 거처에 들어옵니다. 거처 속에 지금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겁니다. 내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과 예수님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님이신 겁니다. 그러니까 믿는 자의 최우선은 내가 성령의 사람, 성령의 충만함에 돌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이 되게 될 때 하나님의 힘을 사용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으면 내 안에 계신, 내가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지하자원들이 발견되는 겁니다. 세상에서도 거지로 살다가 내 안에 있는 석유라는 지하자원이 발견 되면 부자가 됩니다.
우리는 내 안에 예수라는 지하자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여기에는 행복도 있고 능력도 있습니다. 오늘 이것을 사용함으로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오늘 여러분들의 삶에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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