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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탐구

현대 기독교에서 가장 많이 공격받는 진리 - 구원의 확신에 대해

작성자명철|작성시간12.12.18|조회수369 목록 댓글 4

이 주제를 선택한 것은 참으로 고심끝에 한 것입니다. 이 주제는 복음주의자나 근본주의자나 은사주의자들 사이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주제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단 교회들이 각기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복음을 전한다고 말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무어 대단히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믿었던 사람이면 수긍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하나님께서 초청하시는 초청에 인간이 "예스"라고 하는 것만큼 쉬운 것입니다. 이 결단이라고 하든지 나아옴이라고 부르든 간에 이것은 하나님의 divine calling에 인간이 "예스"라고 하는 그것을 말합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99% 완성해 놓으신 구속사역에 인간이 1%를 더해서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100% 완성하신 사역에 인간이 "예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동참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말할 때 처음 복음을 말할 때는 다 비슷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가 자기가 갖고 있는 교리들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구원의 확신에 관한 한 어떤 교단 교리도 성경을 가리우고 세워질 수 없으며 구원의 확신을 방해하기 위한 방해물로만 간주해야 할 그런 교리들이 현대 기독교에는 너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간략히만 언급합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거듭남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인 이상에는 누구도 패스하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고 누가 어떤 체험을 통해서 거듭난다고 주장한다고 그 체험이 정석이 될 수도 없으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지 않았는데도 체험이 임한다고 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구원의 확신의 근거는 철저히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구원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보통 모순되는 여러 개의 성경을 참조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한 거룩한 성경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상충되는 몇가지 성경들을 놓고 그것을 해석하는 교사들의 권위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요일 5:13)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그 증거가 있고(요일 5:10)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현재 시제],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 (요 5:24).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 1:14).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위에 언급한 구절들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 의지하는 구절들 중 단지 일부만을 제시한 것이지만 이 구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의심하고 잃어버릴 것을 염려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설령 어떤 마귀가 와서 구원의 확신을 흔들려 한다 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구원을 의심하는 이유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에 또한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의심할수도 있게 하는 구절들이 있음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성경 해석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런 구절들을 보고 성령님께서 모순을 범하셨다거나 아니면 성령님의 실수를 인간의 도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엉뚱한 발상으로 구원의 보장에 대한 구절을 영적으로 해석한다거나, 아니면 야고보서나 히브리서의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말씀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보통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은 제가 애초에 언급한 저 구절들은 원래 그뜻이 아니며 그것은 결코 구원의 보장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께서 정말 저렇게 확고히 말씀해 놓으시고도 가변적으로 자신의 약속을 믿는 자에게서 걷어 치우실 수 있다는 것, 즉 하나님의 불성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차마 하나님께서 변심하신다고 말하지는 못하고, 왜냐하면 그것이 명백히 불경이라는 것은 아는 만큼,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지옥으로 다시 돌이킬 수 있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래 구절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누가 혐의를 씌우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누가 정죄하리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은 그리스도시라. 그분은 또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롬 8:33,34)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삳즐이나 정사들이나 구너세들이나 현재의 일들이나 다가올 일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실로 신구약 어느 구절을 통틀어 이처럼 신약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확신과 보장에 대해 자신있고 단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 구절을 순순히 시인한 사람이라면 "당신이 만일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가 실수나 고의로 주를 불쾌하게 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몸 밖으로 즉각 쫓겨날 것이다"라는 말에 동의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사로운 확신이 아니라 영감받은 성경을 기록하는 그의 영감받은 생각으로서의 확신을 말했습니다. 즉 그것은 나나 당신이 내 구원은 영원하다고 스스로 단정짓는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증거삼으신 확신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내가 추측하노니"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상상하기로는...내 의견으로는 구원은 영원해...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앞서의 8:34에는 더 중요한 언급이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 밤낮 중보하신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피로 구속해 놓으시고 이제 다 되었다고 내버려두고 방목하시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하다가 넘어져 다치고 마귀에게 넘어가든 방치하시는게 아니란 얘깁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십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한 시간이라도 당신을 위해 중보하시지 않는다면 중보자 없는 당신은 구약의 성도 욥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마귀는 그리스도인을 언제든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중보가 없다면... 이것이 구원받은 당신이 다시 지옥으로 던져질 수 없는 중요한 까닭입니다. 그리스도가 중보하십니다.

 

구원의 이 보장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의 분들은 물론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갖고 있습니다. 진짜로 그 구절들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어버릴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잘못된 해석으로 인한 해프닝이지만 "정말 어떤 사람들(그리스도인이 아님)이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언급하는 성경 구절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읽다가 신경질과 짜증을 냈습니다. 마틴 루터는 구원의 보장에 대해서 깨닫고 가르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만 그도 제가 언급한 그런 걸려 넘어지게 하는 구절들을 해석하지 못하고 짜증을 내고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서"라고 부르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마틴 루터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납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틴 루터가 걸려 넘어진 구절들에서 똑같이 걸려넘어져서 그 구절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피해 가거나 아니면 행위구원을 정당화시키는 구절로 오용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잃어버림..에 대해서는 여러 구절들이 있으나 한가지만 가지고 말하겠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야고보서와 히브리서를 놓고 그 얘기를 합니다. 먼저 야고보서는 어떠한 책인지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1:1에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널리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약 1:1)

 

이 구절은 즉 야고보서의 연대가 AD40년 이전의 매우 빠른 연대임을 보여줍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인데 그는 사도행전 12:2에서 목베임당했습니다. 야고보서에는 바울 서신서에 나오는 은혜의 교리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한다는 언급으로 시작합니다. 이 열두 지파는 이방인 교회가 형성되기 전의 초기 유대교회를 말하는 것이며 이방인들이 회심하며 바울의 은혜의 교리가 예루살렘 회의에서 인정되기 전의 상황에서 기록된 책이 야고보서임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서에서는 주목할 몇몇 특징이 있는데 이는 특이하게도 모든 "부유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모든 "가난한 사람"들은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약 1:9-11; 2:5-7; 5:1-6). 이 사실은 야고보서가 대환란 때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대환란 때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는 돈을 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대환란 때 "가난한 사람"은 곧 의인으로 간주되는데 이는 그가 "표"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야고보서는 1:1에서 말한대로 교리적으로는(대환란 때의) "열두 지파" 출신의 문자적이며 물리적 유대인들을 향해 쓰여진 서신입니다.

 

이것이 놀라우며 생소한 사실이라고 생각들 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야고보서를 읽게 된다면 신약 구원교리와 상충되는 행위구원이 계속해서 언급되기 때문에 야고보서가 대환란 교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즉시 야고보서의 그 교리들을 은혜교리로 중탕시키려 노력하고 더 나쁜 경우에는 야고보서의 교리를 신약 구원의 모델로 삼고 로마서는 던져 버리는 경우입니다. 후자는 믿음을 상실하고 행위구원을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야고보서를 서신서들 사이에 집어넣어 놓으셔서 혼동되게 하셨는가? 대환란 교리라면 계시록에 포함시키면 되는게 아닌가? 왜 헥갈리게 거기 넣어놓으셔서 구원을 의심하게 만드시는가? 하나님께서 구원을 의심하라고 거기 두신 게 아닙니다. 야고보서 자체가 환란교리가 주된 교리라고는 하지만 야고보서에도 우리 신약 그리스도인이 은혜받을 수 있고 영적으로 지침 삼을 수 있는 말씀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 두신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를 통해 은혜로 확고해 진 사람은 야고보서를 보고 구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책은 다른 경륜의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셨다는 느낌을 받고 살펴볼 것입니다. 섣불리 은혜와 중탕시키거나 행위로 치닫거나 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한 의심은 결국 믿음 생활의 지속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이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시며, 자신의 구원교리와 다르다 하여 섣불리 정죄하거나 배척하시지는 않으시는 여러분 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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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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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구주와맺은언약 | 작성시간 12.12.18 어려운 말씀을 해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구원을 잃어버릴수 있다는 설교가 이 카페에 많이올라오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 중세 어둠으로 다시 들어가는 듯한 캄캄함이 마지막때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음을 느낍니다. 성령으로 거듭난자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서 떨어질수 없습니다. 아멘입니다.
  • 작성자강강수월래 | 작성시간 12.12.18 구원은 절대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구원만이 잃어버릴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진정 거듭나지 못한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자는 그 안에 참 생명의 씨앗(성령)이 이미 뿌려졌기에
    그 씨앗이 발아하고 싹을 틔우며 줄기가 나오고 자라나 열매를 맺습니다.
    즉 거듭난 자로서의 열매와 결과들이 분명 보인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자신이 구원 받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 구원 받았다면, 즉 거듭났다면, 그 사람에게는 거듭남의 증거가 나타납니다.
    거듭난 자는 죄를 이기며, 자신을 위한 기도를 내려놓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명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2.18 네 거듭난 자는 거듭난 자의 행동과 말이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은 자기가 구원받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증거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누가 "당신은 죽어서 어디로 가겠습니까?"라 물을 때 5초 안에 "하늘나라요. 나는 거듭났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단 것입니다.

    "죽을때까지 신실해야지요" "I hope so" 이건 성경적 구원의 확신이 아니란 것이죠. 천주교인들은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지만... 선하게 살아야지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교인들은 "천국에 가고 싶지만...선하게 살아야지..."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이 차이점입니다
  • 작성자성경을알면세상이보인다 | 작성시간 12.12.18 제가 말씀을 나누어서 공부하지 않을 때 야고보서의 이 말씀들을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은혜의 복음과 매치 시키기가 정말로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나누어서 공부하면서부터 눈이 뜨이고 오해가 풀리면서 참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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