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내용을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짓말이거나 꾸며만든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착각 중 하나는 고대인들이 현대인들보다 더 무지하여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현대인들이 더 사실에 집착하고 있고,
고대인들은 의미와 메시지를 전달하고 읽어내는 데 더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 같은 묵시문학입니다.
성경은 과학적,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수의 출생은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가장 일찍 기록된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출생과 어린 시절 기록이 없고, 늦게 기록된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출생 기록을 대신하고 있습니다(요1:13-14).
기독교 초기 문헌에는 예수의 부모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고, 그들이 중요한 인물로 간주되었다는 기록도 볼 수 없습니다.
복음서보다 먼저 쓰여진 바울 서신에는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4:4) 라는 말씀과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1:3) 두 말씀이 있습니다.
처녀 잉태 소식을 전한 사람은 마태와 누가입니다.
마태는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의 임신을 알렸다고 기록했고(마1:18),
누가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임신을 알렸다고 했습니다(눅1:26-38).
신약성경을 통틀어 처녀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는 기록은 이것뿐입니다.
처녀가 결혼 전에 아이를 임신했는데, 당사자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알려 줬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예수가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마태와 누가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입니까?
그들은 예수의 삶을 보았고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나서 이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을 경험한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하였습니다.
예수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보지도 듣지도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십자가로 가실 때는 아무도 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을 이렇게밖에는 전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마태가 인용한 이사야서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사7:14) 라는 말씀에서,
'처녀'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원래 '젊은 여자'였는데,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처녀'로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나온 배경은 아하스 왕 시대에 시리아가 에브라임과 동맹을 맺고 침략해 온 상황이었습니다.
왕과 백성의 마음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숲과 같았습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가 왕에게 "두려워 말고 여호와께 표적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을 맞은 아하스 왕은 표적 구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 때 이사야는 주께서 친히 징조를 주실 것이라며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말씀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급한 상황에 누가 어떻게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나라를 구한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처한 상황은 어떤 표적으로도 해결될 수 없고 하나님이 오셔도 안 될 것이라는 그런 절망적 상황이었습니다.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절망적 인간사에 개입하신 사건이며,
구제불능의 상황, 가장 비천한 자리에 뻗쳐진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남자를 모르는 여자가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 시대에 이보다 더 비천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눅1:48).
복음은 인간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입니다.
예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의 상황이 이사야서의 유다 상황과 같이 그만큼 절망적이라는 것과,
예수 사건이 인간사에 없었던 일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일은 처녀가 아이를 낳는 것처럼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의 아들이 나오는 것은
언제나 젊은 여자가 해산의 수고를 통해 아이를 낳는 일처럼 힘든 일이었습니다.
구원의 사건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3) 한 것처럼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사건이라는 것은
인간의 절망적 상황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총체적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