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적 방언 연구를 통한 현대 방언 비판
고린도전서 14장을 중심으로한 방언
고찰
광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과
석사학위논문 (2012년 2월)
출처 : 포항주사랑교회
홈페이지
방언 은사의 목적
하나님께서 방언 은사를 사도시대에 주셨던 목적은
첫째, 요엘서의 성취이며,
둘째로는 이방인 구원역사 시작의 공표(公表),
셋째로는 성령
시대의 도래(到來)와 회복의
선포(바벨탑 사건)이며,
넷째로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며,
다섯째,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난 방언 은사는
허위(虛位)
방언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바울도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그것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방언의 목적은 아직도 미완료된 것인가?
아니다.
방언의 목적은 모두
이루어졌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사도행전 2장의 방언 은사는 요엘서 2장
28-32절의 성취 사건이다.
또한 요엘서의 예언 성취를 통해 하나님께 서 전하시는 메시지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 없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나타내시는 표적이다.
또한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흩어진 인간들의
언어,
곧 영벌을 용서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표적이다.
또
1세기 당시 아직 정경화 과정이 완료 되지 않은 신약성경을
보조하여
복음을 전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당시로서는 태동한지 얼마 되지 않은 미약(微弱)하던 초대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역할과 사명을 다하였다.
이와 같이 방언 은사의 목적 혹은 사명은 충분히
다하였고,
모두 다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방언이 표적으로
가리키던 선교 사역을 성령께서 주도해 가고 계신다.
방언 중지론의 근거
그렇다면 허위(虛位)방언이 아닌 참 방언은사가
현재 존재하는지 혹은 사라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지 않을 수 없다.
가. 성경의
증언
고린도전서 13장 8절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바울은
‘폐하리라(καταργ.ω)’를 ‘미래 수동태 직설법 단수형’으로
썼다.
예언과 지식이 타력(他力)에 의하여 폐함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치고 (πα.σωνται)’는
자동사인데, ‘미래 중간태 직설법 복수형’으로 썼다.
헬라어 중간태 동사는 자동사적이며 재귀적인 의미의 동사이다.
즉,
스스로에게 무엇을 하는 것 혹은 자신의 행동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서술하는
용법이다.
방언들은 자동사적으로 스스로 정지한다는
것이다.
“예언과 지식은
완전히 폐함을 당하게 될 것이고,
방언들이
스스로 정지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예언과 지식은 타력에 의하여 폐하여짐을 당하고,
방언은 자력에 의하여 멈추게 된다는 것은 각기 소유한 의미가 다르다는
것과
폐하여짐(예언, 지식)과 중지됨
(방언)의
시점(時點)이 다름을 말하는 것이다.
‘폐함’을 당하는 것은 온전한 것이
올 때이다(10절)
그러나 ‘스스로
정지함’은 폐함을 당하는 것과는 다른 시점일 수 밖에
없다.
동일한 시점이
아니다.
물론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작성할 당시로서는 ‘미래’에 있게 될 일이지만
예언과 지식이 폐함을 당하고,
방언들이 스스로 정지하 게 되는 둘의 시점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폐함을 당하는 것은 온전한 것이 올 그
때이다(10절)
온전한 것이 올 때는 주님을 온전히 보고 완전히 알게 되는 종말의
때이다.(12절)
종말의 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므로
이전의 모든
불완전한 것들은 완전히 폐함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폐함을 당하는 시점과 정지하는 시점은
다르며,
중지되는 시점은
폐하여지는 시점보다 이전이다.
종말의 때임에도
중지된다는 것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중지했다는 것은 종말의 때 이전에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시간적 순서로 보자면 스스로 정지
하는 것이 먼저이고,
폐하여짐을 당하는 것이
나중이다.
이 둘 시점의 시간차이는 얼마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폐하여짐을 당하는
종말의 때가 오기 이전 어느 시기에
방언이 중지되는 시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 중지되었던 방언도 분명히 종말의 때에는 다 폐하여지게
될 것이다.
새 창조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언이 스스로 정지하는 그 시점은 언제인가?
현재를 기점(基点)으로 할 때 이미
정지했는가?
아니면 미래에
정지될 것인가?
본 논문은
방언이 이미 스스로 정지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이에 대해서는 세 가지 근거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신약성경에서는
비교적 초기서신인 고린도전서와 사도행전 이후에
더 이상 방언에 대한 가르침이나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초대교회 교부들의 증언과
셋째는 2천년 교회 역사 중에
방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서를 제외한 신약성경을 저작 시기를 기준으로
나열해보자면
데살로니가 전.후서(A.D.
50-52년경)
고린도전서(A.D.
55년경)
로마서, 고린도후서, 갈라디
아서(A.D. 56년경)
사도행전,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A.D.61-62년경)
빌레몬서,
야고보서(A.D. 62년경)
디모데전.후서(A.D.
63년경)
베드로전서 (A.D.
65년경)
디도서,
베드로후서(A.D. 66년경)
히브리서(A.D. 65-69년경)
유다서(A.D.
70-80년경)
요한1.2.3서(A.D.
90년경)
요한계시록 (A.D.81-96년경)의
순서이다.”
신약성경에는 A.D.
61-62년경에 작성된 사도행전을 끝으로
방언에 대한 언급이나 가르침이
없다.
그것은 방언은사가 어느 시점에선가
중지되었다는 것을 의미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나. 교부들의
증언
교부 크리스소스톰(Chrysostom)과 어거스틴(Augustine)은 방언이 중지되었음을 말하였다.
크리스소스톰은 방언 시도나 추종을 애매모호한 관행이라고 하였으며
다음과 같이 그것에
대해 말했다.
“그러한 애매모호함이 생겨나는 까닭은 성경에 언급된 사실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방언의 중단 때문이다.
즉 방언은 과거에는 발생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어거스틴은 방언은사가 초대교회 시대에 맞춰진 표적이며,
사라진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초의 교회 시대에는 ”성령이 믿는 자들에게 임했고,
그들은 방언으로 말했다.
“
그것은 그들이 배운 적이 없는 말이었다.
”성령이 그들에게 할 말을 주셨기 때 이다.
“ 이 은사는 그 시대에 맞춰진
표적이었다.
하나님의 복음이 장차 모든 언어를
통해 온 땅에 퍼질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모든 언어로 성령의 전조가 나타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상은
하나의 전조로 성취된 이후 사라졌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도록 그들에게 안수할 때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기를 기대하는가?
오늘날 성령의 임재에 대한 증거가 이런 기적들을 통해 주 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 증거는 무엇을 통해 주어지며 사람은 무엇을 통해 자신 이 성령을
받았음을 알게 되는가?
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보게 하라.
만일 그가 형제를
사랑하면 성령이 그의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다. 종교개혁자들과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의 증언
제네바 교리문답서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그 탁월함과 권위가 익히 알려져 있으며,
장로교단에서는 헌법에서 표준 신조로 채택을 할 정도로 공신력(公信 力)이 있는
것이다.
(1) 존 칼빈의 제네바 교리문답
제네바 교리문답 247문에서 칼빈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
즉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유희(遊戱)와 같은 것에 불과하며,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위선(僞善)적 행위임을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문 :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말로 기도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답 : 방언은 하나님과의
놀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방언으로 위 선(僞善)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종교적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에서는
기도를 할 때는 잘
알려진(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하며,
방언으로 기도하는 일을 다음과 같이 금지하고 있다.
“감사와 함께 드리는 기도는 종교적 예배의 한 특별 부분이므로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하신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기도는 성자의 이름으로 그의 성령의 도우심에 의해
그의 뜻에 따라서 이해와 존경과 겸손과 열심과 사랑과 견인으로 할 것이며,
소리 내어 할 때는 잘 알려진 언어로 해야
한다.”
라. 교회사(敎會史)의 증언
기독교 역사에서 방언은 지극히 간헐적으로 존재했을
뿐이며,
방언을 한다고 주장
하던 무리들은 이단과 극단적 신비주의자들뿐이었다.
존 맥아더에 의하면 “초대 교회
이후 첫 5백년 동안 방언을 한다고 주장한 그룹은
이단이었던 몬타누스의 추종자들이었다.
이후 방언에 대한 종적이 없다가 기독교 내에서 방언 운동의
발생은
약 1천년이 지난 17세기에 있었다.
‘세베놀의 예언자’로 불려진
이들이었는데 환상을 체험하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그들은 영적인 부분이 아닌 정치적,
군사적 활동으로 더 잘 알려졌다.
또한 그들이 했던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고,
로마 카톨릭에 맞서서 사용하는 무력을 옹호했다.
그 이후 18세기에 얀센주의자들(Jansenists)이 방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 카톨릭을
지지하며, 이신칭의 교리를 반대하는 이단이었다.
또 다른 무리는 18세기 중엽
미국에서 번성한 퀘이커교(Quaker)의 분파인
쉐이커교도들(Shakers)이었다.
이 쉐이커교파의 창시자인 마더 앤 리(Mother Ann Lee)는 자신을
여자 예수 그리스도 라고
했다.
그녀는 72가지 언어로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쉐이커교의 교리는 결혼한 사이일지라도 성관계는 죄악이라고 가르쳤으며,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방언을
했다.
이후 19세기 초에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방언과 예언을
했다.
어빙파 (Irvingite)들은 서로 상반되는 예언을 자주 했고 예언이 성취되지도
않았다.
그들의 집회는 극단적인 난폭행위가
특징이었다.
어빙파의 예언자들 가운데 일부가 가 짜 예언을 했던 사실을 시인하고,
다른 일부는 악한 영에게서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결국 어빙파는 가톨릭 사도
교회(Catholic Apostolic Church)가 되어서
로마 카톨릭 교리들을 수용하고, 열두 사도
직분을 만들어 내며 많은 거짓된 교리를 가르쳤다.”
로머트 G.
그로마키에 의하면 “17세기에 영국에서 조직
폭스(George Fox)에 의하여 시작된
퀘이커파(Quakers)가 방언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성경보다 ‘내면의 빛’ 이라고 불리우는 사적
계시(직통 계시)를 더 귄위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19
세기에 조셉 스미스(Joseph Smith)에 의해
창설된
몰몬교도들(Mormons)도 방언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삼위일체와 성경의 권위, 지옥의 실재를 부인하는 이단이다.
그리고 19세기 스웨덴에서 성경 읽는 자들이라는 집단,
아일랜드의 부흥운동 기간,
초기 감리교인들 가운데 방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의 건전성과 방언의 진정성 또한 확인하기가
어렵다.
단순히 일부에서의 주장이 교회 역사
중에 사라졌던 방언이 다시 부활했다고
주장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방언은 정통 교회 역사에
없었다.
지극히 간헐적으로
이단과 극단적 신비주의자들,
광신자들 중에만 있었을 뿐이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우리가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교회 역사 2000년 동안 방언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대 방언의 발생(發生)
오늘날 현대 기독교의 방언은 오순절 운동이 그
기원이다.
“현대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찰스 팔함(Charles F. Parham,
1873-1929)이 설립한
벧엘 신유의 집(Bethel Healing Home, 1898년)과
벧엘 성경대학(Bethel Bible College, 1900년)의 학생 중에
애그니스 오즈맨(Agnes Ozman)이라는 사람이 1901년 1월
1일 방언을 하였다.
그리고 찰스 팔함이 1905년에 휴스턴에 설립한 성경학교(Houston
Bible School)에
재학하던 학생 중 세이무어(W.J. Seymour)라는 성결교 설교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극단적인 성결을 강조하는 설교로 인하여 쫓겨나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가정 집회를 열었는데,
1906년 4월 9일 그 집회에 참석 중이던
일곱 명이 성령의 세례를 받고 방언을 하였다.
그 집회는 3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계속되어 아주사
스트리스
선교회(Azusa Street Mission)로
발전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오순절 운동은 세계 각처로 퍼져나가 영향을 끼치며
오늘날의 현대 기독교 방언 의식을 형성하게
하였다.”
그러나 오순절 운동에서 시작된 방언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참 방언인지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다.
또 그들의 방언이 성경의 기 준에 합당한지도 검증된 적이 없다.
다만 1900년 교회 역사 중에 정통 교회에서는 방언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순절 운동가들은 기독교 역사에 재하지 않던 방언이
왜 그들에
의하여 부활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합당한 근거로 증명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순절 운동으로부터 비롯된 현대 기독교 방언이
성경이 가르치는 그 방언은사라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기독교 방언의 발생 원인
가.
학습된 결과
김우현의 책
「하늘의 언어」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갓피플 닷컴의 조한상
사장은 내가 하는 방언을 그냥 따라하는 순간, 방언을
받았다.
그때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냥 그렇게
한 것이다. ……
예수원
출신의 한 형제는 ‘아버지’
라는 말을 간절히 반복하며 구했는데 방언이 터졌다고 한다.”
이는 극히 일부분의 예일 뿐이다.
이와 같은 경우 방언 현상을 학습한 결과 이루어진
것이다.
현대 기독교 방언 현상은 제
3위이신 성령님의 주권을 배제한 인위적 작용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방언 현상은 이와 같은 학습된 현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나.
사탄이 일으키는 현상
그로마키는 현대 방언
현상의 원천에 대한 유효한 선택 가능의 평가로서
사단의 권세가 간주될 수 있다고 하였다.
레이몬드 프레임(Raymond Frame)이라는 중국 선교사는
현대 방언의 유입이
사단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경험들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악한 영들은 신자의 정서생활에 영향을 줄 기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신자가 모든 지성적
활동을 중지하고 그의 의지를 어떤 불가시적인 지성적인 존재
(물론 그 그리스도인은 그를 성령 자신이라고 생각하도록 꾀임받고 있다.)에게
내어 맡기도록 설득되었을 때 그러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은사들 중 가장 작은 것인 방언에 몰두한
하나님의 자녀는
마귀의 억압이나 강박 관념이나 실제적인 사로잡힘의
관계에서 매우
상처 받기 쉬운 위치에 있다.”
다. 심리적인 현상
크리스천
정신병 학자인 베르그스마(Bergsma)는
현대
방언의 현상을 기억의 저장과 회상을 다루는
인공두뇌학(Cybernetics)과 관련시켜 심리적인 현상의 원인으로 방언 발생을
설명하였다.
라.
인위(人爲)의 산물(産物)
본 연구자의 지인(知人)에 의하면
2011년 11월 김우현(「하늘의
언어」저자)씨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여 하였는데, 그 집회 말미에는
방언하기를 원하는 지원자들을
앞으로 불러내어 자신의 방언을 일부러 따라하도록 시켰다고 했다.
김우현 씨 는 지인에게 “방언은 잘 할 수 있다.”는
격려를 하면서
자신의 방언을 따라하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위적인 시도들이 있다.
마. 기타 다양한 원인
마스터스 신학교(The
Master's Seminary)의 전 학장이었던
찰스 스미스(Charles Smith)는 그의 저서에서 현대 방언
현상이
‘운동 근육 자동증’, ‘무아지경’,
‘최면’, ‘정신적인 카타르시스’, ‘집단적 심리 구조’,
‘기억 자극’ 등을 통하여 생겨날
수 있다고 그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현대 기독교 방언과 유사한 이교(異敎)의 방언
“오순절 운동에서 시작된 현대 기독교 방언은 고대뿐만 아니라
현대의
이방 종교 에서도 나타나는 현상과 유사하다.
회교도들,
에스키모인들, 티벳트와 중국의 이교도들 가운데서
발생하고 있다.”
이방
종교에서도 방언이 시행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그렇다면 현대 기독교의 방언은
그것이 이방 종교의 그것과의
차이를 무엇으로 입증 할 수 있을까?
이방
종교에도 현대 기독교의 방언과 유사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임 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방 종교에도 현대 기독교의 것과 유사한 방언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방종교의 우상문화와 세상의 가치관이
그대로 유입(流入)되어 방언 오용 문제로
홍역(紅疫)을 치르던 고린도교회의 모습과
오늘날 현대 기독교의 방언 오용의
문제가 동일한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
III. 결 론
고린도전서가 교정서신이라는
점,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방언 문제를 지적하는
장이라는 점,
그리고 고린도전서에서 도출된 방언 은사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고린도전서 14장의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의 참 방언과
허위 방언의 구별을 방언 표기 형태(단수와 복수)를 통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고린도전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에서 방언은 기도하는 은사가 아닌
말하는 은사임을 확인하였다.
그것과 함께 방언 은사 목적이 모두 성취 되어
완료되었다는 논증과
교부들과 교회사의 증거는 고린도전서 13장 8절의 방언 은사가 그치는
시점이
미래가 아닌 과거의 어느 시점이었음을 충분히 확인 할 수 있다.
반면에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에 의해 주장되며 사용되는
방언 은사, 방언 기도 (체계와 규칙을 갖춘
언어가 아닌 음절이나
어절의 단순 반복 혹은 불규칙적이고 복잡한 소리)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이해 할 수
없고, 통역을 할 수도 없고,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소리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그 방언과 동일(同一)한
동종(同種)
은사라는 증명이나 논증도 이루어진 일도 없다.
반면에 본 논문의 소고(小考)를 통하여 볼 때
오늘날 기독교 일각(一角)에서 행해지는 방언 기도는 그 사용이 중지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뿐만 아니라 현대 기독교 방언이 사도행전
2장의 방언과 동일(同一)한
동종(同種) 은사임을 확실히 증명한 후에
그것을 사용함이 오직 성경을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기독교인의 신앙에 합당할 것이다.
혹자는 보편타당성을
주장하며 현대 기독교에 이미 널리 퍼진 방언 기도를
참 방 언으로 주장하지만 고린도교회 안에는 말로 할 수 없는
문제들이 보편적으로 퍼져있었다.
그러므로
보편성이 진리의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현대에는 이토록 보편적인 방언 기도는
불과 수십년 전의 장로교회(혹은 보수적인
교회)에는 없었으며,
110여년 전에는 기독교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극히 지엽적인 극단적 신비주의자들과
이단들에게만 나타났던 현상이었다.
기독교 안에는
없던, 그리고 장로교 안에는 없던 방언이
이제는
매우 널리 퍼져있으며 인정되는 과정에서
어떤 근거를 통하여 방언이 확산되었는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방언 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등장한다는 것과
방언 기도가 단지 교회
안에서 통용 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무비판적으로 방언 기도를 수용해 왔던 것은 아닌가
냉정하게 스스로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방언 은사는 고린도전서 13장 8절에서의 가르침대로
그쳤다.
그러므로 오늘날 현대 기독교
방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의 고린도교회의
허위(虛位)방언 문제와 동일한 문제라는 것이 본 논문의 결론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뿐만 아 니라
앞으로도 방언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은
고린도전서 14장의 가르침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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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관찰자 작성시간 19.12.26 관찰자 유대인으로서 하나님 말씀 잘안다고 자랑삼아 너도나도 동시에 히브리어로 말하면 교인들이 하나도 못알아 듣잖아요
불신자가 있을경우는 미쳤다고 할것이구요
그러니까 반드시 통역을 하되 한사람씩 순서대로 말하고 다른 한사람이 통역을 하고 그래야 히브리말을 모르는 불신자나 고린도인들이 알아들을것 아닙니까
알아들어야 아멘 할것 아닙니까 -
답댓글 작성자🚮세상의빛2 작성시간 19.12.26 관찰자 21:05분에
아야 소리나게 찌르십니다. 원래 찌를 때는 그리 해야죠. -
답댓글 작성자🌻사랑🌻 작성시간 19.12.26 관찰자 방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할 말 없으니 문맹 같은소리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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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거룩한순찰자(다니엘서) 작성시간 19.12.26 좋은 글에 추천 1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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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세상의빛2 작성시간 19.12.26 좋은 글인 줄 알았습니다만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듯 해보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