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님께서는 칠십 이레의 시작 시점을 아닥사스다 왕 재위 20년인 B.C. 445년으로 잡았으며 아닥삭스다 20년이 기원전 445년이라면 아닥삭스다의 아버지 크세르크세스가 기원전 465년에 사망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통치가 시작된 해와 관련하여 역사가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등대지기님처럼 아닥사스다의 즉위년을 기원전 465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닥사스다의 아버지 크세르크세스가 기원전 486년에 통치를 시작해서 통치 제21년에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닥사스다가 기원전 475년에 왕좌에 올라 그의 첫 재위년이 기원전 474년에 시작되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에서 발굴된 비문들과 조각물들은 크세르크세스와 그의 아버지 다리우스 1세가 공동으로 통치하였음을 알려 줍니다. 이 공동 통치 기간이 10년이고, 다리우스가 기원전 486년에 사망한 후 크세르크세스 혼자 통치한 기간이 11년이라면, 아닥사스다 통치 제일 년은 기원전 474년이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증거는 아테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기원전 480년에 크세르크세스의 군대를 격퇴시켰다. 그는 나중에 그리스 국민의 인기를 잃어 반역죄로 고발당했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도망하여 페르시아 궁정에 보호를 요청했고, 거기서 정중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닥사스다가 “왕좌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때”였습니다.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테미스토클레스가 기원전 471년에 사망했다고 말합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닥사스다 왕을 알현하기 전에 페르시아어를 배울 수 있도록 일 년간의 여유를 달라고 요청하였으므로, 그는 늦어도 기원전 473년에는 틀림없이 소아시아에 도착하였을 것입니다.
제롬의 「유세비우스 연대기」(Chronicle of Eusebius)도 그 해를 지지합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기원전 473년에 아시아에 도착했을 때는 아닥사스다가 “왕좌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때”였으므로, 독일의 학자 에른스트 헹슈텐베르크는 「구약의 그리스도론」(Christology of the Old Testament)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른 자료들과 마찬가지로, 아닥사스다의 통치가 기원전 474년에 시작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제이십 년은 그리스도 전 455년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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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갈렙 작성시간 13.04.03 맨 밑의 인용구는 무슨 뜻인가요? 예루살렘 성 중건령이 내려진 해가 그렇다는 건가요? 그럼, 단9:25절 해석에 엄청난 착오가 생기게 되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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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성령의충만 작성시간 13.04.03
suiter님은 소속이 어디 이신지요?
등대지기님을 지칭하셔서 문제제기 하시는게 의문스럽습니다
그리고 연대기를 논하실려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이스라엘의 귀환령을 말씀하시면서
그에 대한 근거로 문제를 제기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1, 2, 3차 귀환령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잘 모르는 부분을 마치 새로운 발견처럼 정통교회가 지지하지 않는
학설을 제시하는 그 의도가 궁금합니다
등대지기님은
세대주의 전천년을 지지하는 BC 445년 3차 귀환령입니다
역사기 전천년은 BC 457년 2차 귀환령입니다
무천년은 BC 536년 1차 귀환령을 대부분 지지합니다
게시글의 출처를 밝히면 감사하겠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