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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탐구

[스크랩] 바른글의 단순한 내용과 바른 결론

작성자Dean|작성시간13.05.14|조회수148 목록 댓글 3

 

          대학 시절 모시던 박사 과정 선배님께서 구소련의 전설적인 천재 물리학자 “란다우”에 대해 이야기가 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란다우가 이론을 감정하시는 방법이 제가 어떤 이론을 감정하는 철학적 기초가 되었고, 이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 없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철학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

 

          물리학에는 고체 물리, 핵물리, 광학 물리, 소립자 물리, 음향 물리, 등 여러가지 분야가 있는데, 란다우가 19살 때 당시 물리학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그 이후로는 단 한권의 물리학 서적도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 서적들을 저술했었는데, 각 분야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다보니 그가 저술한 책들로 수십권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 서적들이 다들 어려워서 대학원 과정의 교제로 채택 되고 있는 실정 입니다. 그러한 천재성이 있었기 때문에 구 소련의 공산당에게 발탁되어 유래 없는 자유를 누리면서 물리학의 모든 분야를 관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가 그 모든 분야들을 지도 및 감독하면서 읽고 감정한 논문들도 수천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감정한 그 수많은 논문들 중에서 단 한건도 잘못 감정한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 논문이라도 그가 지나가듯이 휙 읽고 “틀렸다”고 하면 반듯이 틀린 것이 밝혀 졌고, 아무리 많은 학자들이 잘못되었다고 낙제시킨 논문도 그가 그렇게 읽고 “맞다”고 하면 결국은 그가 맞았다는 것이 밝혀 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단 한건의 실수도 없었던 란다우의 논문 감정 방법( 중에 제 기억에 남는 것)은 (1) “아무리 훌륭한 문체와 논리로 설명 한 들 결론이 틀리면 그 논문은 잘못된 것이다”는 것과; (2) “바른 말을 하면 논문이 단순해 지기 때문에 논문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길면 잘못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른말을 하면 그 내용이 단순해지고 맞는 결론이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 전설적인 천재 물리학자 “란다우”의 논문 감정 방법 뒤에 있는 철학이었습니다.

 

          그런데, 란다우의 그 논문 감정 철학이 성경적이라고 봅니다. 누가 “바알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다”는 논문을 쓴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빤한(?) 거짓말을 합리화 시키자면 이리저리 말을 둘르고 붙이고 꾸미고 등등 그러므로 그 논문이 결코 단순해 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야훼님께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다”는 논문을 쓴다고 하면 그냥 “성경 어디어디에 그분께서 하나님이시라고 한다”고 쓰면 그만입니다—논문까지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두세줄이면 끝납니다. 그렇게 바른 말을 하면 내용이 단순해 지고 맞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사람들이 기고한 “동성애, 낙태, 동거 등을 성경적으로 합리화 하는 기사들”을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한 기사들에게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그 내용이 복잡하고 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읽으시다가 중도에 포기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죄라고 한 것들을 죄가 아니라고 하자니 복잡해지고 길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사들이 아무리 훌륭한 문체와 논리로 설명 한 들 결론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에 그러한 기사들을 대하게 되시면 괜히 분간 하시느라 복잡하고 긴 글 읽어 가시면서 조목조목 따지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실 필요 없이 그냥 결론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 공들인 “복잡하고 긴” 기사들이 잘못된 것임을 단번에 분간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죄라고 한 동성애, 낙태, 동거 등을 죄가 아니라고 하니까요! 이와 같이 틀린 말을 하면 (1) 그 내용이 복잡해지고 길어 지며; (2) 아무리 훌륭한 문체와 논리로 설명 한 들 잘못된 결론나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바른말을 하면 그 내용이 단순해지고 맞는 결론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란다우가 수천편의 논문들을 감정 하면서도 단 한건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무신론자였어도) 그의 감정 방법 뒤에 있는 철학이 성경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모 유명 교회 근처에 하숙하고 있던 후배와 같이 하숙을 하게 되어 그 교회 대학부에 나가게 되었는데, 당시에 유명하셨던 OOO 목사님께서 그 대학부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께서 곧 떠나게 되시면서 마침 미국서 12년을 공부하셨다는 목사님께서 귀국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 대학부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임 목사님께서 오시자 마자 여름 수련회가 있었는데……. 그분의 설교는 완전히 해방 신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혁명가이셨고 혁명을 위해 사셨고 결국은 혁명에 실패해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저희들은 예수님의 혁명 정신에 따라 그분이 못다이루신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설교를 멋있게 잘 하시는지 ……. 완벽한 논리와 예화 ……. 그래도 영적으로 깨어 있는 학생들은 “이게 아닌데……” 하며 영적인 거부 반응을 느꼈지만, 어떻게 그 설교에 대해 반박할 재간이 없어서 묵묵 부답이고 ……설교에 열받아(?) 독이 오늘 학생들은 데모가를 목청이 터지라고 불러대기 시작하는데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고 참회와 찬양으로 뜨거워야 할 수련회가 한순간에 악에 받치고 독이 오른 대학생들의 데모 집회로 탈바꿈 했었습니다. 저도 당시의 성경 지식과 분석 능력으로는 어떻게 그분의 설교를 반박할 길이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강한 거부 반응만 없었더라면 저도 그 설교를 그냥 인정하고 성경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접근 방법으로 받아 들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중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닭았습니다, 그 때 그분의 설교를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머리가 아니라 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질문이 생겼었습니다. 그 질문은 그 설교의 결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혁명에 실패해서 돌아가셨단 말인가? “그 설교 (해방 신학) 대로 한다면 예수님께서 결국은 실패자시라는 말인데, 성경 어디에 예수님을 실패자라고 하는가?” 그렇게 질문을 남기고 그 자리를 조용히 떴었습니다. 요지가 이해 되십니까? 아무리 훌륭한 문체와 논리로 설명하고 설교한 들 결론은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결론이 잘못 되면 그 설교(기사, 논문 등)는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훌륭한 문체와 논리로 설명 한들 틀린 말을 하면 (1) 그 내용이 복잡하고 길어지며; (2)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이 복잡하고 길면 틀린 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결론이 틀리면 그 설교(기사, 논문 등)는 잘못된 것입니다. 반대로, 바른말을 하면 그 내용이 단순해지고 맞는 결론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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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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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가디언 | 작성시간 13.05.14 맞는 말씀.. 모든 일이 옳은 일은 간단하거든요..^^
  • 답댓글 작성자가디언 | 작성시간 13.05.14 꼭 변명하는 자들이 주구장창 말이 많죠.. 근데 억울한 자들은 설명이 길기 때문에 패스!~
  • 작성자멍멍조아 | 작성시간 13.05.15 예수님도 비유를 드실때 간단하게 두가지를 비교하시곤 했는데 너무 해석이 깊이 들어가서 산으로 가는수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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