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모시던 박사 과정 선배님께서 구소련의 전설적인 천재 물리학자 “란다우”에 대해 이야기가 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란다우가 이론을 감정하시는 방법이 제가 어떤 이론을 감정하는 철학적 기초가 되었고, 이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 없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철학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물리학에는 고체 물리, 핵물리, 광학 물리, 소립자 물리, 음향 물리, 등 여러가지 분야가 있는데, 란다우가 19살 때 당시 물리학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그 이후로는 단 한권의 물리학 서적도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 서적들을 저술했었는데, 각 분야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다보니 그가 저술한 책들로 수십권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 서적들이 다들 어려워서 대학원 과정의 교제로 채택 되고 있는 실정 입니다. 그러한 천재성이 있었기 때문에 구 소련의 공산당에게 발탁되어 유래 없는 자유를 누리면서 물리학의 모든 분야를 관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가 그 모든 분야들을 지도 및 감독하면서 읽고 감정한 논문들도 수천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감정한 그 수많은 논문들 중에서 단 한건도 잘못 감정한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 논문이라도 그가 지나가듯이 휙 읽고 “틀렸다”고 하면 반듯이 틀린 것이 밝혀 졌고, 아무리 많은 학자들이 잘못되었다고 낙제시킨 논문도 그가 그렇게 읽고 “맞다”고 하면 결국은 그가 맞았다는 것이 밝혀 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란다우의 그 논문 감정 철학이 성경적이라고 봅니다. 누가 “바알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다”는 논문을 쓴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빤한(?) 거짓말을 합리화 시키자면 이리저리 말을 둘르고 붙이고 꾸미고 등등 그러므로 그 논문이 결코 단순해 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야훼님께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다”는 논문을 쓴다고 하면 그냥 “성경 어디어디에 그분께서 하나님이시라고 한다”고 쓰면 그만입니다—논문까지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두세줄이면 끝납니다. 그렇게 바른 말을 하면 내용이 단순해 지고 맞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사람들이 기고한 “동성애, 낙태, 동거 등을 성경적으로 합리화 하는 기사들”을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한 기사들에게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그 내용이 복잡하고 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읽으시다가 중도에 포기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죄라고 한 것들을 죄가 아니라고 하자니 복잡해지고 길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사들이 아무리 훌륭한 문체와 논리로 설명 한 들 결론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에 그러한 기사들을 대하게 되시면 괜히 분간 하시느라 복잡하고 긴 글 읽어 가시면서 조목조목 따지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실 필요 없이 그냥 결론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 공들인 “복잡하고 긴” 기사들이 잘못된 것임을 단번에 분간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죄라고 한 동성애, 낙태, 동거 등을 죄가 아니라고 하니까요! 이와 같이 틀린 말을 하면 (1) 그 내용이 복잡해지고 길어 지며; (2) 아무리 훌륭한 문체와 논리로 설명 한 들 잘못된 결론나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바른말을 하면 그 내용이 단순해지고 맞는 결론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란다우가 수천편의 논문들을 감정 하면서도 단 한건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무신론자였어도) 그의 감정 방법 뒤에 있는 철학이 성경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훌륭한 문체와 논리로 설명 한들 틀린 말을 하면 (1) 그 내용이 복잡하고 길어지며; (2)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이 복잡하고 길면 틀린 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결론이 틀리면 그 설교(기사, 논문 등)는 잘못된 것입니다. 반대로, 바른말을 하면 그 내용이 단순해지고 맞는 결론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