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4: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마14: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마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베레쉬트(태초에, 시작 안에, 머리 안에), 쉐모트(출애굽기/이름들), 와이이크라(레위기/그리고 그가 불러주셨습니다), 베미데바르(민수기/ 광야 안에서/ 광야의 집). 데바리임(신명기/말씀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것을 토라(다섯 개의 떡, 다섯개의 빵, 오병, 모세오경)라고 하는 겁니다.
이걸 그대로 표현하면 (태초에 이름들을 그가 불러주셨습니다 광야에서 말씀들로)가 됩니다. 즉, 베레쉬트(태초에), 쉐모트(이름들을), 와이이크라(그가 불러주셨다), 베미데바르(광야 안에서), 데바리임(말씀들로)가 되는 겁니다. 즉, "오병" (모세오경이라는 다섯 개의 떡)의 결론은 신명기(요한복음, 아가페, 우리들이 말씀들이 되는 것)로 완성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에서 "오병"(다섯 개의 떡,모세오경) 을 "이어"(두 마리의 물고기)로 강의를 하십니다. 그 두 마리의 물고기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첫 강의라고 할 수 있는 산상수훈(이른 비, 알파)과 그의 마지막 강의로 일컬어지는 다락방 강화(늦은 비,사랑비,오메가)입니다. 이것을 "이어" 두 마리의 물고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두 마리의 물고기는 한 어린 아이(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한 끼 할당량의 도시락입니다. 시청각 교재로 볼 때에는 한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빼앗아서 오천을 먹이시고, 12 바구니(그릇)를 차원이 다르게 남긴 겁니다. 오병(다섯 개의 떡,모세오경)의 열매는 신명기(이들이 말씀들)에 있는데, 신명기의 내용은 전부 말씀들이며 결론은 "너희가 바로 말씀들이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오병" (다섯 개의 떡,모세오경)을 알파(첫 강의)와 오메가(마지막 강의)로 즉, "이어" (두 마리의 물고기)로 설명을 하고 있는 계시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두 강의 모두가 단 하나의 아가페(사랑)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너희가 알고 있니! 바로 사랑을 가져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다락방 강화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야! 그 사랑비 내릴 때 그 사랑 가져서 그걸로 서로 사랑하라를 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은 로마서 13장 8절에서 말하는 "사랑의 빚만 질래!"라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근데 그 "사랑의 빚"만 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를 또 마17:27 물고기 의 입을 벌리면 나오는 (한 세겔)를 가지고 설명을 하는 겁니다.
"오병"(다섯 개의 떡,모세오경)와 "이어"물고기 두 마리(이른비,산상수훈),(늦은비,다락방강화)를 가지고 사랑 하나로 다 배불리 먹이셔(그리스도+나 = 한 세겔,나들, 아들, 12)로 완성 하겠다는 말이고 토라는 (일천,알레프,하나님) 에 대한 내용이고, 모세오경이 다섯권이니 (오천이 되는 것입니다)...아가페 하나를 배불리 먹이셔서 12 바구니 (그 아들)를 거두시는 겁니다.
마 17: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마 17: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출 30: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 전세를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출 30: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 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의 입을 열어 보면 한 세겔을 을 얻을 거야...성전세는 반 세겔이니 나와 너를 (예수님+베드로=한 세겔) 위하여 가져다가 주라 하시니라. 내가 입을 열어 말했던 "오병"(모세오경)을 "이어" (산상수훈과 다락방 강화)로 했던 그 가르침이 (한 세겔,한 달란트,그리스도,기름,사랑)이야 !
내가 죽으면 반 세겔인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영(말씀)으로서의 그리스도만 남는데 그게 내 가르침이거든! 내 가르침을 다른 거 없어! 너희가 나의 죽음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함께 장사되어 나의 죽음과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나의 부활을 본받아 (그리스도+나=한 세겔)로 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너희도 또한 나와함께 부활하여 새 생명이 되게 하실거야!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서 하나는 더 이상 쪼갤 수도 쪼개 지지도 않는 개념으로 나타납니다. 절대를 상징하고 있으며 온전함의 수이죠. 예수님은 "이어"(산상수훈,다락방강화)의 가르침에서 십계명→두계명→한계명(사랑, 하나)으로 아버지의 그 온전함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태초 이전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맹세하시고 성취하시는 것은 오직 모노네게스 (그 아들, 사랑) 하나입니다.
그리고 모노게네스(그 아들,사랑) 하나만 요구하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프토코스(절대적 가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빚은 하나님 자신의 마음(사랑,하나)을 우리 안에 넘겨주겠다는 빚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신의 마음으로 하나로 넘겨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의 마음을 우리가 받고 가지게 되면 우리는 전부 그 마음 하나만 가진 모노게네스(아들,사랑,하나)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하나로 받았으니, 다른 이들에게도 이 사랑의 씨 하나로 넘겨주시면 됩니다. 이것이 한 달란트 받은 자, 물고기 입을 벌려 얻은 한 세겔(사랑,하나) 이며 그 아들, 그 씨, 그리스도, 아가페...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이렇게 넘겨주는 것이며 네가 사랑하는 것을 보니 네가 내 아들이구나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두 돌비(십계명)를 두 계명(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그중에서도 이웃사랑(살인하지 마, 간음하지 마, 거짓증거 하지 마...)을 알고 깨닫고 그것에 대해 일계명 사랑 하나로 줄 수 있으면 이것을 온전(아버지 품속의 그 하나인 그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로 가져야, 헌물인 예수님이 기둥에 달려 죽는 것입니다. 이게 십일조이기도 한 것이고요.
유월절 저녁식사, 떡(몸)과 포도주(새 언약의 피) 그건 그냥 새 계명, 아가페 하나인 것입니다. 한 세겔, 한 달란트인 것입니다. 우리의 혼인잔치의 예비 옷은 바로 하나님이 그 하나의 빚, 그 아가페의 빚만 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그 하나를 진리의 말씀으로 의에 흰옷을 입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거 하나만 빚졌다는 사실을 알고 그 하나만 요구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그가 그 아가페의 빚만 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걸 아는 상태가 되시면 이 아가페의 빚을 그 아가페가 갚으실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프토코스 한다라는 말은 그로서도 이 하나의 빚만 졌다는 얘기이고, 우리 역시 이 하나의 빚만 그가 넘겨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만을 간절히 원하는 우리의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진리의 말씀(그리스도)이라는 생명의 씨로 우리라는 성전, 우리라는 보좌에 그 아가페(그 씨, 한 세겔, 한 달란트)로 오시는 겁니다. 우리에게 그 베레쉬트 넘어의 그 절대 아버지(뜻, 생각, 마음, 그 아가페)가 자기 자신을 우리라는 성전에, 보좌에 그리스도(진리의 말씀)로 오시는 겁니다.
그 진리의 말씀이 머무실 곳은 바로 우리의 물들이 있는 (하늘,배의 보좌) 입니다. 눈에 보이는 무슨 창공의 하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성전에 그토록 그 베레쉬트 넘어의 그 아가페는 머리 둘 곳을 그토록 찾으셨습니다. 우리라는 집에 머물고 싶으신 것입니다. "집으로 가자!" 하나님이 머리 둘 그 집이 어디인데요? 저 푸른 창공 넘어의 그 하늘입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그 베레쉬트 넘어의 그 아가페가 그토록 저리도록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은 우리들이죠. 그게 하늘들의 나라인 것이고, 천국인 것이지요... 얼마나 그 베레쉬트 넘어의 그 아가페가 우리를 사랑하는지, 우리에게로 생명의 씨로 오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머리 둘 곳을 찾으시는지, 내가 그 절대 창조주이지만 너희들에게 내가 죽음으로서 생명을 넘겨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모든 율법 싸 가지고 죽음) 죽으시고 그리스도(에브라임=열매)만 남았잖아요. 그 반세겔(자칼)인 그리스도와 내가 한 멍에 메여서 반세겔(네케 바)인 내가 (반세겔+반세겔=한 세겔)한 짝으로 되었잖아요. 이게 바로 위대한 사랑인 겁니다.그 죽음이 진리의 완성이니까요. "무트(죽음) 타 무트(너는 죽으리라)!" "말씀 완성, 네가 말씀 완성이다!" "사랑 완성, 네가 사랑 완성이다!"
두 번째 성전인 예수님이 헐려야 에브라임(풍성한 열매, 그리스도, 성령의 전, 다른 남자, 다른 이)이 오는 것입니다. 마 17:24-27절의 성전세(쉐케르, 분석하는 성전을 헐고 세운 것으로 가르친다)에 대한 얘기는 먼저 예수라는 고기의 입을 열면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그 진리의 내용인 한 세겔(아가페 하나, 한 달란트)이 내 안에 넘겨진다는 말입니다.
물고기의 입을 벌려서 나온 한 세겔= 반세겔+반세겔 (그리스도+나=아가페 하나, 한 달란트)로 먹으셔야 합니다. 모세오경인 토라를 물고기 두 마리(산상수훈과 다락방 강화, 이른 비와 늦은 비, 알파와 오메가)로 먹는 것이죠. 우리가 성경 66권을 십계명으로 다시 이계명에서 일계명 사랑 하나로 취하면 한 세겔을 가지고 길이 넓이 높이 깊이에로의 여행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나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요나 2:10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를 물고기가 토해낸 것 (한 세겔=그리스도+요나)은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서 니느웨에 그 진리의 말씀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죽음 "무트(죽음) 타 무트(너는 죽으리라)!"을 죽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말을 통해서 아는 겁니다. 그래서 요나의 표적이라는 것은 그 죽음(삼일삼야, 돌무덤,바벨론 성)으로부터 돌려받은 그 진리의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모노게네스(그 아들)를 그 아가페의 빚 하나로 가지면 더 이상 빼 하기 더하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즉, 성경을 가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가 나오면 절대 완전 수입니다.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켜서(삼일삼야,돌무덤,바벨론 성)을 그 물고기 배(자궁, 배, 태중, 성전) 안에 있었다가 물고기의 입을 벌려(돌무덤을 열고) 한세겔(아가페 하나)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그리스도+나=한 세겔)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존재들은 출 3:14절의 유일하게 “나”라 하실 수 있는 그분 이름인(나+나=나들)로 더 이상 대적 관계인 “너”가 아닌 “나”라는 이름으로 부활 한자가 되어 이전 하늘과 이전 땅이 아닌 새 하늘과새 땅(천국)으로 이 땅에서 아들로 살아가는 것이며 배의 보좌에 좌정하고 계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아가페라는 사랑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내리사랑입니다. 우리는 그저 듣고 깨달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흘러들어온 물이 넘치면 또 내리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향해 흘러가게 될 것임이지요. 산상수훈(첫 강의)과 다락방 강화(마지막 강의)라는 두 마리의 물고기의 입에서 나온 그 진리 한 세겔(아가페 하나, 한 달한트)로 말입니다.
둘째(이웃사랑)도 그것(첫째 꺼, 하나님 사랑) 안에서 똑같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그래서 똑같은 것이지요. 즉,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는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또는 산상수훈과 고별 강화/서로 사랑하라)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두 강화 모두 "아가페 하라!"(그 진리 취해서 그 진리 손을 펴서 주라)입니다. 그리고 두 강화 모두 "하나님 사랑이 이웃사랑"임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이웃사랑은 먼저는 우리 스스로에게 그 진리의 말씀 들려주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용서이기도 한 것이고요. 이런 용서가 있어야 남도 용서하고, 남도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모노게네스(그 아들, 생명의 씨) 하나를 알고 내 안에 간직하는 것이 사랑(믿음)입니다. "사랑하라"는 믿음의 행위이며 예수님이 증거가 됩니다. "사랑하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모노게네스(그 아들, 그리스도)가 하시는 것이죠. 내 안에 엔 성령(그리스도,진리의 말씀)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린 여전히 죄와 사망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겁니다.
죽어서 부활하고 천국 가는 것은 없습니다? 계시록의 종말은 요나가 물고기 입안에 들어갔다가(삼일,돌무덤,바벨론 성) 입을 열고 나온 것처럼 우리가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는 사건입니다. 지금 있는 곳이 시작과 마침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입니다. 지금 아들(아가페)의 존재가 되셔서 사랑하라(아가파오)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