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의 지중해 연안에위치한 알렉산드리아...
이항구 도시는 성경에서 함의 땅으로 알려졌다 (시105: 23) 주전 알렉산더 대왕이 설립한 도시이다..
전세계 문학 과학 중심지이고 대학들은 철학과 사상계를 지배하고 수학. 천문학. 시. 의학 등 세계속의 중심지였음..
개방했음으로 인해 온 세상의 종교와 철학 사상이 이곳에서 집대성되었었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제가 영토를 확장하고 죽은 뒤에 그의 왕국은 시리아의 셀류시드 왕국과 이집트의 프롤레미 왕국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그결과 이집트와 시리아 시이에 끼어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외세의 각축장이 되었고 특히 시리아의 안티쿠오스 대왕 통치 때에는 유대교 탄압 등으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내려갔다. 거기서 이들은 곧바로 유대교와 그리스의 인본주의를 결합하여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영적으로 신비적으로 해석하며 자기 생각대로 성경을 뜯어 고치는 이른바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만들어 냈다. 이런일을 한 사람들 중에서 구체적으로 " 필로" 라는 유대인을 들수 있는데 그는 유대주의와 플라톤주의를 혼합하여 구약성경을 모두 비유로 해석하는 학문 체계를 설립하여
비유 해석의 아버지가 되었다..
필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사상이나 철학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이 기초를 세운 영적 비유해석 을 이용하여 구약성을 왜곡시켰다. 숨겨진 의미 혹은 영적 비유적 의미가 실제의 문자적 의미보다 훨씬 가치있고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런 영적 성경 해석 방법은 주후 2-3 세기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알렉산드리아 신학교는 주후 2세기에 판테누스라는 사람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 설립되었으며 그 뒤에 알렉산드라아의 클레멘트로 이어졌다.. 이학파는 그리스 철학과 성경의 비유 해석을 으뜸으로 여겼고 그것만을 강조했다..
이학파에서 학문과 철학과 업적 등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오리겐이었다
브리테니카 백과사전 같은 세속 문헌도 다음과 같이 알렉 산드리아 학파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고도의 학문 연구를 위해 2세기 중엽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최초의 그리스도교학파 최초의 유명한 지도자들. 판테누스.클레멘트. 오리게네스. 아래서 이학파는 알레고리적 성서해석 방법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리스 문화와 그르스도교 신앙을 절충하는 사상을 따랐으며 교리의 변화가 심한 시기에 이단적인 주장들에 맞서 정통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확립하려고 애썼다 알렉산드라아 학파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한 학파는 안디옥 학파로서 이 학파는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주장했다""""
오리겐 당시에 알렉산드라아에서 형성된 그리스어 본문을 알렉산드리아 본문이라고 하는데 현존하는 두 개의 사본이 이 본문을 지지하고 있다.
하나는 1844년 시내 산 수도원 쓰레기더미에서 티센도르프가 발견한 시내 사본(알레프) 과 1481년 로마 바티칸의 도서관에서 발견된 바티칸 사본이 여기에 속한다..
이두 사본이 1611년 이후에 나온 현대 역본들에서 삭제된 부분들을 정당화 시켜 주는 기초가 되었다. 오리겐이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구성한 독본을 지지했으므로 현대 학자들은 현대 역본들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부패된 본문의 증인으로 주저 없이 그를 들고 있다. 오리겐이 죽은 뒤에도 알렉산드라는 신약성경 본문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왔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알렉산드리아 본문은 학자들에 의해 원본에 가까운 것으로 존경을 받고 있지만 한심한 작태인것이다...
자세한 자료는 후에 올려 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