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추수반석교회에서 열린 내적 치유 세미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강의가 비성경적인 믿음(ungodly belief)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상처와 연관해서 우리는 많은 비성경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서 들은 부정적인 말들로 인해 우리 안에는 많은 상처가 쌓여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자아상이 형성이 됩니다.
부모가 너는 문제가 많다는 말들로 상처를 줄 때 이에 대해 분노하고 거부하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부모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을 그렇게 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친구들이나 선생님이나 이웃들로부터 부정적인 말을 들을 때 동일한 과정을 밟아 나가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인정할 수 없게 되고 자신 안에는 너무도 문제가 많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을 거부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이 우리 안에 이루어 놓은 견고한 진의 핵심에 해당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을 장악하고 있는 한 우리 삶에는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에 대한 왜곡된 상입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자신의 평가는 경험적인 사실에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성경적인 믿음입니다. 이것은 경험적으로 옳은 것 같아도 실은 사단의 거짓말들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비성경적인 믿음이 깨어지는 경험입니다. 어떻게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상이 바뀌어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자신은 문제투성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주는 상처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인생에 새로운 시작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새로운 시작은 여러분은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심에서 시작합니다.
너는 형편없고 너는 문제투성이라는 말에 익숙해 있고 또 그런 말을 싫어하면서도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서 또 그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새로운 정체성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는 형편없는 문제투성이가 아니다. 너에 대해서 형편없는 문제투성이라는 말은 참된 말이 아니다. 너는 귀하고 가치있고 존귀한 자라고 하십니다. 이 주님의 말씀이 놀라운 것입니다. 이제까지 여러분 안에 깊이 침투하여 마치 여러분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과 같은 그런 부정적인 자아상들이 이제 주님의 말씀에 의해서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났지 비난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비난하고 여러분에 대해서 무시하고 여러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쌓이고 자신 안에 자신을 인정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단이 걸려 놓은 덫에 여러분이 걸려 들어 있었던 것이고 이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이 오셔서 여러분에게 새로운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까지 옭아매던 사단의 거짓말을 일순간에 깨뜨리고 새롭게 만드시는 주님의 엄청난 일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단이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여러분을 왜곡된 자아상에 묶어 두고 있었다면 이제 주님은 여러분을 그의 사랑의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에 대해 새롭게 일러주시는 것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제까지 여러분을 묶고 있던 사단의 덫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벗어나지 못한 자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여러분의 인생 전체에 빛을 줄 것입니다.
마태의 친구들은 죄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당시의 기준에서 볼 때 그들은 죄인이었고 죄인이라 함은 사회적으로나 영적으로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고 이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공공연히 죄인이라 불렀고 그들은 그렇게 불리는 것을 싫어하였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들 중에 오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상황에서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죄인이었고 그들은 당연히 정상적인 사회의 집단에서 분리되어야 했습니다.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부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정상적인 집단에 속한 분으로 그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함께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에 의인들인 바리새인들에게 준 이미지는 정말 경악스럽고 분노를 자아내기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예수님에 의해 식사자리에 함께 하는 은혜를 입게 된 그 친구들에게는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정상적인 집단에 속할 수 없었고 자신에 대해 싫지만 그런 사실을 당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죄인이라 구별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그들을 의인의 자리로 올리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보는 시각은 정말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사회 안에 존재하는 한은 이것은 옮겨질 수 없는 운명적인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 가운데로 들어오셨고 옮겨질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죄인이 아니다. 아니 죄인이지만 내가 용서한 죄인이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너희 안에 이제 새로운 사실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전에 너희를 규정하던 그런 시각으로 너희를 바라보지 말아라. 너희는 이제 새로운 존재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뿐 아니라 그렇게 그들에게 대우하셨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삶을 묶고 있던 죄인이라는 레텔을 벗어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늘 따라다니는 죄인이란 명칭이 이제는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이제 그들에게는 주의 용서와 은혜 그리고 주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은 자라는 새로운 명칭이 주어진 것입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들 안에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이런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여러분을 결박하던 쇠사슬이 깨뜨려지고 이제 자유가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 의해서 불려진 이름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새롭게 불러 주시는 이름으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죄인이지만 용서받은 죄인이고 주 안에서 용납 받은 죄인입니다. 이제 사단의 거짓말을 반대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거짓말에 대해서 주님의 말씀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사실상 사람들에게서 들어왔고 자신이 그것을 내면화하여 붙들고 있는 비성경적인 믿음은 쉽게 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올무라는 사실을 인정해도 쉽게 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깨어지는 것은 주님을 만나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께 나아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그 동안 묶여 있던 것에서 자유롭게 하실 것입니다.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이로 인한 여러분 안에 강하게 있는 비성경적인 믿음을 깨어주실 것입니다.
사실상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다 용서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 깊숙이 박혀 있고 이것이 사람들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바라볼 때 그렇게 큰 기대를 갖지 못하게 하고 자신에 대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고 또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신뢰를 갖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오래된 사슬을 푸시고 새로운 믿음을 주십니다. 주 안에서 사랑 받고 용서 받고 인정 받는 자신을 알게 하십니다. 주님 앞에 나아오면 됩니다. 자신을 붙들고 살 일이 아니고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을 만나면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자신을 부정하고 싫어하는 이제까지의 습성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들을 통해서 여러분 안에 사단은 계속 이전의 비성경적인 믿음에 머물게 하려고 합니다. 여전히 비난을 받게 하고 비판을 받게 하고 그래서 그런 경우에 분노하고 싫어하면서도 그 부정적인 영향력 안에 놓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공격이 사단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 영향력의 통로가 부모일 수 있습니다. 시어머니일 수 있습니다. 남편일 수 있습니다. 목사님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지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새 일을 행하셨고 여러분은 주님이 행하신 것을 통해서 더 이상 이런 부정적인 영향력 안에 머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보는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단이 속이고 있고 또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비난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보시고 이제 주님 안에서 여러분이 보아야 할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인생은 새로운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놀라운 일을 가져옵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볼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말을 들을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에 대해 이해하는 방식으로 주님이 여러분을 보는 방식으로 여러분을 보는 것입니다.
비성경적인 믿음은 이제 여러분의 삶에 더 이상 거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이제 주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새로운 정체성으로 여러분을 이해하십시오. 주의 사랑 안에 여러분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너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단의 거짓말은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 주 안에서 감사하십시오. 주님이 새롭게 주신 이름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그 이름 안에 들어 있는 축복에 대해 깊이 묵상하십시오. 사단이 여러분을 공격하려 할 때마다 주께서 새롭게 주신 이름으로 방어하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부정적으로 말하여 상처를 줄 때 나는 주 안에서 이미 용서 받고 용납 받고 사랑 받는 사람이라고 강하게 말하십시오.
사단의 속임수를 주의 말씀으로 끊으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에게 놀라운 삶을 예비하시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놀라운 축복을 향유하시기 바랍니다.
"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아낮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9-13] 아멘.
서창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