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1) 생명 공급으로 사는 길
망고라는 과일을 잘 설명해 놓은 책을 읽었다고 해도 망고를 먹어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망고에 관하여 아는 것으로 망고 먹는 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과일 하나도 맛보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하기 어려운데 하나님을 아는 길은 더욱 그러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아는 길을 독특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먹고 맛보는 길입니다.
시편에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34:8)."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맛보고 경험해야 알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내 경험과 상관없이 계시는 분이지만, 경험한 사람에게서 증거되고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을 지으셔서 그 지으신 사람을 동산에 두시고
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어 그 열매를 먹게 하셨습니다.
생명나무는 산 혼으로 지어진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아가며 생명을 공급받는 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맛보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길을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 생활로 보여줍니다.
2) 생명, 생명나무
'생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생명을 정확히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생명을 정의하는 것조차도 과학의 난제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생명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많은 이견이 있지만 생명의 본질은 더욱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관점에서 생명을 정의합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시36:9),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연결되어 관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요15:5).
반대로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떠난 상태를 죽음이라 말합니다(렘2:13, 엡2:1, 4:18).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며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의 공급이 되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지어졌습니다.
이 관계가 곧 사람의 생명이었습니다.
육체의 여러 장기(臟器)들이 서로 간에 긴밀한 관계 속에 생존하듯,
영적인 생명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로 존재하고 나타납니다.
생명은 어떤 생명이든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관계가 끊어지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길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관계의 축복
좋은 관계에서 좋은 것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의로움과 영원한 생명과 축복이 있고,
성령 안에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짐으로써 사랑과 기쁨과 평화 같은 성령의 열매들이 발생합니다.
삶의 질은 그 사람이 가지는 관계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생명나무는 좋은 관계를 가짐으로 소중한 축복을 흐르게 하는 연결의 통로와도 같습니다.
엄마는 자신이 먹은 것을 자기 생명을 통해 젖으로 만들어서 아기에게 공급합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도 만유 앞에 하나님의 표현이 되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려면
하나님과 연결되어 생명의 공급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15: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목숨은 '혼(soul, psyche)'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관계(친구)를 위해 자기 생각,
즉 자기 옳음이나 주관이나 판단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옳고 그름보다 살고 죽는 문제가 더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삶의 진수와도 같은 소중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위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옆으로 사람과의 복된 관계를 가지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 사람을 원래 위치로 돌려주고,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 혼의 목숨을 내려놓게 합니다.
그러므로 의미에 있어서 에덴의 생명나무는 예수의 십자가와 같습니다.
십자가는 누구와도 복된 관계를 가지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4)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 말씀의 독특한 점은 "나를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훌륭한 가르침이 많지만 자신을 먹으라고 말하는 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먹으면 소화되어 내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은 그분 자신이 우리 생명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우리 생명"이라고 고백합니다(골3:4).
요한은 에덴의 생명나무가 예수 자신이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어야 했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어야 했듯이,
거듭나 예수의 생명으로 살려면 예수를 먹고 마셔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었고,
그의 사역의 방법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양식이 되도록 "자신을 주시어 먹게 하는 것"이었습니다(요6:53-58,10:10).
그러면 어떻게 예수를 먹는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거꾸로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어떻게 선악과를 먹었는지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선악과가 "먹기에 좋고 보기에 좋고 지헤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 실제로는 곧 먹는 것입니다.
생명나무 열매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웠다면 생명나무를 먹었을 것입니다.
예수를 먹으려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모든 것을 팔아서 살 만큼 값진 보화로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분, 질고를 겪고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예수(사53:1-3 참조),
이분에게서 사람들은 자신이 소원하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내 이름을 빛내는 삶을 위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버린 이유는 아담이 동산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한 이유와 같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십자가로 가는 예수를 바라보았을 때 그 느낌은
아담이 생명나무를 보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이 우리가 먹어야 할 양식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에게 나타난 생명나무입니다.
예수의 생명은 자신의 뜻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의 생애에 하나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생명이었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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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하니발 작성시간 19.12.11 날개 오늘 교회도 말씀대로 지킨다고 하여 하나님의 법대로 산다고 하지만 결국 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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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하니발 작성시간 19.12.11 날개 성경말씀 그대로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책이나 문서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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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하니발 작성시간 19.12.11 날개 예수님은 구약의 내용을 벗어나신 적이 없습니다. 구약을 설명하러 오신것이고 십자가에 구약의 내용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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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연합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12.12 그래도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점에서 하나이며,
전 이걸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
작성자초애 작성시간 19.12.12 날개님의 견해에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