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늑대는 없었다. 양을 해치려는 늑대를 잡으려고 각종 도구들을 들고 뛰쳐나온 동네 사람들은 또 다시 한 어린 소년에게 속은 것이다.」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 “양치기 소년”에 나오는 주인공은 자신의 거짓말에 놀아나는 사람들을 보고 점점 더 재미를 느껴 동네사람들 속이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로 늑대가 나타나 양떼를 습격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소년은 크게 당황하여 전보다 더 크고 다급한 목소리로 도움을 구했다. 그러나 정작 도우러 나와야 할 그때는 그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불행히도 그가 치던 양은 모두 다 늑대들에게 잡아먹혀 버렸다.
한 번 거짓말을 해서 신뢰를 잃은 거짓말쟁이는 비록 나중에 진실을 말한다 해도 사람들이 다시는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 소년의 말을 믿었으나 몇 번씩이나 거짓말하며 동네사람을 속였던 불량소년을 그 누구도 다시는 믿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는 우리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물론이요, 세상 사람들도 지금 이 시대가 입으로는 말세라고 말하지만 점점 더 현실에 동화되어 가면서 말세라는 말은 옛날 얘기책에나 있는 것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두려움을 모르고 담대하게 죄를 짓고 또 짓는다.
사람들의 심리란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빨리 안 오면 처음에는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하며 기다리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온갖 상상을 하다가 결국은 자포자기하고 만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 산 아래에 있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전해 줄 율법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내려오는 것이 지체되자 백성들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금으로 우상을 만들어 자신들을 인도할 신이라고 말하게 된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지체되는 것을 보고, 백성들이 아론에게로 함께 모여들어 그에게 말하기를 “일어나서 우리 앞에 갈 신들을 우리에게 만들라.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던 그 사람 모세로 말하면 그가 어찌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함이라.” 하니』(출 32:1).
이들은 모세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시고, 이집트에 재앙을 내려 자신들을 탈출하게 하셔서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마른 땅처럼 걸어가게 하신 그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으면서도 잠시잠깐 모세가 나타나지 않자 이처럼 망발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금을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고 어리석게도 그 송아지가 자신들을 인도할 신이라며 광란의 파티를 벌였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길에서 급히 벗어났으며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조한 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에다 경배하며 거기에다 희생제를 바치며 말하기를 ‘오 이스라엘아, 이것들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너의 신들이라.’ 하였도다』(출 32:8).
물론 성경은 그들을 향해서 목이 굳은 백성이라고 하시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치고는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결코 그냥 묵과하지 않으시고 진멸시켜 버리시겠다고 하셨으나 중보자 모세로 말미암아 계획하신 재앙에서 잠시 돌이키셨다(출 32:10~14).
그러나 산에서 내려와 실상을 눈으로 확인한 모세의 진노와 함께 그들을 철저하게 응징해 버리셨다.
『그때에 모세가 진영 문에 서서 말하기를 “주의 편은 누구냐? 내게로 오라.” 하니, 레위의 아들들 모두가 다 함께 그에게로 모이더라. 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각 사람은 옆에 칼을 차고 이 문에서 저 문으로 진영을 두루 오가며 각 사람이 자기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 이웃을 살해하라.’” 하니, 레위의 자손들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그날에 백성 중에서 약 삼천 명이 쓰러지니라』(출 32:26~28).
오늘날 대한민국 교회들의 모습도 이처럼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며, 하나님의 교회를 흉내 내는 교회놀이를 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벌였던 광란과 흡사한 일들을 벌이고 있다.
오늘날 제도화된 교단 교회들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이고 너도나도 교회 안에서 벌이는 축제와 이벤트에 빠져들고 있다. 찬양과 경배라는 것을 도입하여 드럼과 전자악기를 통해 강력한 비트로 사람들의 혼을 뒤틀리도록 하는가 하면,
경건 댄스라는 명목으로 강단에서 춤을 추게 한다. 각종 헌금 명목으로 돈을 걷어서 그 돈을 전혀 영적이지 않은 곳에 사용하고도 하나님의 일에 썼다고 떠벌린다. 이들은 각 교파의 생각들이 다르면서도 연합운동을 꾀하며, 성경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들을 향하여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날로 힘차게 나아가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가짜들이 시한부 종말론을 들고 나와 사람들을 협박하고 돈을 끌어 모으는 등 비리를 저지르다 거짓으로 발각되어 사람들이 실망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몇 년 몇 월 몇 일, 심지어 몇 시에 오신다며 자주 거짓말을 한 통에 이제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증거해도 믿지 않게 되었다. 마치 늑대와 양치기 소년 이야기처럼 되어 버렸다. 삯군들의 거짓말에 참된 양치기들의 외침에도 귀를 닫아 버린 것이다. 오늘날에는 교회라는 곳들에서 주님의 재림을 믿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가 분별력을 발휘하여 그리스도의 날까지, 즉 주님의 재림의 그날까지 순수하고 흠 없게 되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이것을 기도하노니 너희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판단에 있어서 더욱더 풍성하게 되어 너희가 가장 좋은 것들을 분별하며 또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수하고 흠 없게 되기를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의의 열매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이 되기를 바라노라』(빌 1:9~11).
주님의 재림의 임박성은 어느 시대에서나 강조되어 왔고 앞으로도 주님께서 오시기 직전까지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떤 시간에 너희 주께서 오실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시간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라』(마 24:42-44).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를 정확하게 못박아두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방심하고 방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주님께서 성경에 그 날과 시간을 못박아 두시지 않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재림 직전까지 잔꾀를 부리며 건전하게 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아신 하나님의 장치일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분명히 오실 것이다. 반드시 오실 것이기에, 그날과 그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약 5:7,8).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런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점 없고 흠 없이 평강 가운데서 그분께 발견되도록 힘쓰라』(벧후 3:14).
박재권 / 캐나다 주재 기자
출처; http://www.biblemaster.co.kr/bbs/board.php?bo_table=B56&wr_id=30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3;1-5)(갈5;19-21)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질투와 분노와 투쟁과 분열과 이단들과 시기와 살인과 술취함과 흥청거림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미리 말하노니 그런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갈 5:20,21).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가증스런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시더라. (계21;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