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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동정

[스크랩] 왜 견인의 교리를 반드시 바르게 알아야만 할까요? VIII (변승우 목사님의 "다이아몬드 같은 진리!" 중에서)

작성자광화문|작성시간26.06.12|조회수5 목록 댓글 0

  ■ 왜 견인의 교리를 반드시 바르게 알아야만 할까요?

 

  (3) 구원의 확실성과 버림받을 수 있다는 진리는 충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2) 궁색하고 조잡한 변명은 진리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립니다.

 

  로마서 8장 31-39절을 읽고 칼빈주의자들은 환호하지만, 저처럼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당황하고 당혹감을 느낍니다. 이 구절에서 어떻게든 구원이 안전하게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를 찾아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이 이 구절들 안에 '나' 혹은 '죄'가 들어 있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글라스 무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이렇게 썼습니다. 

 

  "까다로운 독자가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을 빠뜨렸다고 생각할까 봐, 그는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라는 포괄적인 말로 끝을 맺는다. 그리스도인들 자신의 책임 있는 결정들까지 이 마지막 어구에 포함되는가? 칼빈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바울이 여기서 믿는 자들의 안전을 분명히 가르친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바울이 신자 자신의 자유롭고 책임 있는 선택 사항들의 범위 밖에 있는 것들에만 은연중에 초점을 모으며, 그러므로 바울이 여기서 그리고 이 종속 문단에서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기로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예컨대 Godet; S-H를 보라)."

 

  데이비드 포슨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라는 탁월한 책에서 신자가 버림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믿는 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고 그의 손에서 나를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나 '사람'의 목록(list)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빠뜨리고 있다. 성경에는 내가 그리스도로부터 나 자신을 끊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한 구절이 단 한 구절도 없다. 반대로 그 반대의 가능성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이 있다('너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 갈 5:4)"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7-39)

 

  이 주장은 포괄적이면서도 절대적이다. 여기에 더 덧붙여 할 말에 무엇이 있을까? 이 구절이 모든 의문들을 다 해결해주는가? 스프링 하비스트( Spring Harvest)에서 사람들은 나를 향해 이 구절을 외쳤고 나를 반대하기 위해 이 구절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프롤로그를 보라). 그러나 나는 놀랍게도 이 목록에서 빠진 것이 한 가지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것은 사실이며 전혀 엉뚱한 주장이 아닙니다. 바울이 언급한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 혹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짓는 죄들'은 실제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에 순종하며 잘 달음질하다가 중단한(갈 5:7)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바울이 다음과 같이 권면한 것입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서 5:4)

 

  5장 7절을 고려할 때 이 구절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 되어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을 중단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수 있다는 것까지 말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상황과도 잘 맞는 지적입니다. 그러므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지적과 설명(로마서 8장 31-39절 안에 '나' 혹은 '죄'가 들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 다소 궁색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명확히 알기 때문에 이런 설명을 쉽게 받아들이겠지만, 과연 칼빈주의자들 중에 몇 명이나 이런 설명을 듣고 생각을 바꾸겠습니까? 저는 이런 불완전한 설명이 오히려 진리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방적인 설명이 아니라 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더 완벽한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3) 로마서 8장 31-39절은 절대로 버림받을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로마서 5장 9-10절과 8장 31-39절은 견인과 궁극적인 구원의 확실함에 대해서 쓰고 있습니다. 이 단락은 액면 그대로 진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은 신자가 절대로 버림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권연경 교수님은 『행위 없는 구원?』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현재의 칭의가 마지막 심판 때에 얻게 될 종말론적 칭의의 선취라는 말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현재의 칭의 혹은 화목은 미래 구원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근거로 작용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라면,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로서 미래의 구원 또한 받게 될 것은 당연하다(롬 5:9-10).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와 미래의 시간 구분이 무의미하거나 미래의 구원이 '무조건' 보장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바울의 진술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게 해주시는 십자가의 사랑이 가장 확실한 확신의 근거가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확신은 '그러니까 무조건 구원받을 것이다'는 식의 오만한 착각과는 거리가 멀다."

 

  권 교수님은 『로마서 산책』이라는 책에서 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운명이 확정된 것처럼 말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미래를 확신한다. 하지만 이 확신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에 근거한 것이지(8:31-39), 우리의 미래가 무조건 보장되어 있다는 식의 결정론적 오만 때문이 아니다. 바울의 성령론 역시 열린 미래를 전제한다. 멸망(죽음) 혹은 영생이라는 두 미래를 향한 두 가지 상이한 길, 곧 성령의 삶과 육신의 삶 사이의 선택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로마서 5장과 8장의 말씀이 진리이면서 동시에 구원받은 사람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도 진리일 수가 있을까요? 불가능해 보이는 그것에 대해 설명해드릴 터이니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로마서 5장 9-10절은 그 자체에 무조건적인 견인이 아니라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겉으로는 이 구절이 무조건적인 견인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같은 로마서, 그것도 바로 다음 장인 6장에 신자가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이 나옵니다(16절). 그러므로 앞의 것을 통해 뒤의 것을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둘 다 인정해야 합니다. 이 구절들은 '무조건' 궁극적인 구원이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고도의 의도를 갖고 기록된구절입니다. 그 의도를 권연경 교수님이 파악하여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구원의 확실성이란 신학적 타임머신을 조작한 유사논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 혹은 그의 언약적 의지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표현이다. 십자가가 무조건 미래를 보장한다는 식의 억지나 미래가 이미 현재가 되었다는 식의 언어유희가 아니라(8:24-25), 마무리 험한 미래일지라도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신념, 곧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향한 인격적 신뢰의 표현인 것이다(8:31-39). 그런 점에서 소망을 결국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4:17)."

 

  또한, 10절에 나오는 "그의 살으심으로 말미암아"는 9절의 "그로 말미암아"에 병행하는 것으로 보아 수단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어구는 더글라스 무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가 획득했고 신자들이 동참할 새 생명이 그들이 심판 때 구원받게 될 수단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데이비드 포슨도 같은 주장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부활 없이 십자가만으로는 죄를 없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고전 15:17). 우리의 구원은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서 현재도 계속되고 장차 완성될 것이다. ... 바울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갈 2:20)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는 죽음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우리를 대신하시는 분이 되실 수 있다. 그분이 우리의 죽음을 대신 담당하셨기에 우리는 그의 생명을 우리 안에 가져올 수 있다. 그분이 우리의 죄를 거두어 가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의(의로운 삶)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무조건 확실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새 생명 대문에 확실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으면 어떻게 살든 궁극적인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새 생명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만 궁극적인 구원이 확실한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5장 9-10절은 궁극적인 구원의 무조건적인 확실성을 말한 구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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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주사랑,주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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