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두 번째로 봅니다 산지 마을인 가나에서 해안가 마을인 가버나훔까지 거리 약 80리(32km)로 지대가 400m로 높아 올라가는데 힘이 들어 하룻길 이었다고 합니다
가버나흠은 < 위로의 마을 >로 가버나훔은 카파르( 덮다 속죄하다 정결케하다 )+ 나훔 (위로하다,강하게 숨쉬다 )= 속죄로 정결케하므로 성령의 위로를 받는 것, 위로를 받으므로 속죄를 받고 정결케 되는 마을이란 뜻입니다 즉 성령으로 속죄함을 받고 위로를 얻는 마을입니다
마9장에서는 가버나훔을 예수님의 본 동네라고 합니다 본래 고향은 나사렛인데 예수께서 상징적인 뜻으로 미래를 내다보고(오순절) 가버나훔에서 사역을 하셨던 이유이기도 하엿습니다
그래서 본 동네라고 합니다( 속죄로 성령을 주시기 위하여 머문 동네 ) 그리고 구약에 위로의 나훔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훔1:7 >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예수께서는 본 동네인 가버나훔에서 명칭그대로 죄 사함으로 성령을 받게 하여 위로를 얻게 하고 구원해줄려고 머물렀는데 그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를 잡아서 낭떨어지로 밀어서 죽일려고 했던 것을 봅니다
어쨌든 왕의 그 아들 즉 왕의 속한 사람은 예수의 소식을 듣고 가서 거지가 되어 청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잘 낫다고 왕으로 살아온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을 왕으로 믿고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살아온 모든 사람이 해당 됩니다
때문에 여기에 나오는 구원의 여정을 반드시 다시밟아야 왕의 아들처럼 구원을 얻기에 순차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잘 따라 오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병든 자를 살리기위하여 오셨기에< 먼저 구원을 얻을려면 >
1) 세상에서 내가 왕이다 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첫째로 죽을 병에 걸려야 합니다 ( 영적으로 , 육적으로) 왜냐면 그래야 이것 저것 다 해봐도 안된다는 자기 한계를 알고 지푸라기 잡은 심정으로 왕의 신하처럼 절실하고 간절한 애타는 마음으로 예수를 찾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고후1:9 >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어쨌든 사람은 육적 죽음이나 영적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 비로소 생명의 귀중함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죽음의 고통을 알아야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왕의 아들 죽음을 육신적인 죽음인 텔류타오“를 쓰지 않고 헬라어 아포드네스코“ (예수님 대속의 죽음의 근거로 자기도 죽었다고 하면서도 자기 힘으로 열심을 품고 육신대로 사는 사람을 두고 죽었다할 때 쓰입니다( 열기 때문에 죽게 될 병)
롬8:13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아포드네스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 다나토스= 십자가에 실제적 죽음 ) 살리니(조예)----
때문에 왕의 아들처럼 열병으로 아구까지 숨이 막히고 차서 죽어가야 사는 길이 보입니다 생명은 죽은 자들에게 필요하지 죽지 않은 자들에게는 생명이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마9:13 >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것을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베드로처럼 자신이 무능한 죄인인줄 깨달아 이런 고백이 자기 입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여 저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2) 이렇게 죽게 된 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이 되어 누가 용한가하고 소문을 듣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롬10:15 >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복음을 듣게 하고 표적으로 소문이 나야 예수를 믿을려는 마음이 생기고 그래서 행동으로 움직여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듣지 않고 어떻게 나오겠으며 누가 믿게 되겠습니까
요5:25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 나리라
3) 이제 소문을 들었으면 내 자신 의지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확실하게 정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역사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잠재된 마음 밑바닥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여 하나님께 굳건히 믿고 나가면 자기도 반드시 고침을 받겟다는 확고한 자기 마음에 소망을 기대하며 기어히 믿음으로 끝장을 보고 말겟다는 시작의 결단이 확고히 있어야 합니다
히3:14 > 우리가 시작 할 때에 확신 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4) 믿었다면 이제 행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찾을 수 있는 곳)... 왕의 신하가 소문을 듣고 죽을 둥 말둥 헐레벌떡 주님을 찾앗듯이 구약의 아람나라 나아만 장군은 어린 계집종의 말을 듣고 문둥병을 깨끗하게 고침을 받기 위하여 이스라엘 땅의 엘리사(예수님 모형)를 찾아 그 먼 거리를 나섯습니다
갈릴리로 가서에서 가다는 헬라어 ”아페르코마이“—아포(분리 ,출발,완성) + 엘코마이( 임하다, 도달하다 ,도착하다, 완성, 내가 속히 임하리니,---갈리리로 간 목적이 분명하게 나옵니다
자기 믿음이 현재 하나님과 분리된 믿음에서 예수가 자기에게 임하므로 완성된 믿음으로 기어이 도달하겠다고 아펠덴” 하는 것입니다
마11:12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가버나훔 해안가 마을에서 가나의 산지 마을의 오르막길을 계속해서 올라가야 하기에 평지보다 두 배의 힘이 드는 길을 그래도 믿음으로 한가닥 소망을 품고 땀이 범벅이 된 째 걸음아 나 살려라 숨가쁘게 올랐을 신하를 머리에 그려 봅니다
히11:6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5) 이제 예수님 앞에 나왔으면 왕의 신하처럼 간절히 청하여 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신하가 병을 고쳐주라고 청하는데 헬라어 원어에는 병을 고쳐주라 할 때 병이라는 구체적으로 질병이란 단어가 없고 단지 “이아오마이”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병을 치료하다, 치유하다는 주로 두 단어로 쓰이는데 하나는 “ 테라퓨오= 치료하다, 시중들다> 이고 다른 하나는 ” 이아오마이“= 치유하다 , 고치다,회복하다, 온전케 하다입니다
즉 테라퓨오”는 주로 육체적 질병을 치료하는데 쓰이는 단어이고 “이아오마이”는 영적으로 온전케 고쳐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에서( 분리) 바른 관계로( 연합) 회복하는데 쓰이는 단어입니다
때문에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이 든 것은 영적인 문제로 모든 것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가인같이 자기 의가 충만하여 자기 삶에 표적과 기적을 바라고 열심히 율법 신앙생활로 인하여 생긴 열기(열병)였다고 52절에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
때문에 이 열기는 헬라어 퓌레토스“(열병)-퓌르에서(불) 파생된 단어로 참된 말씀의 물이 없어 비진리로 불 붙게하여 욕심으로 열불나게 하여 계8장에 나오는 불 붙는 산처럼 열기가 너무나 뜨겁습니다
하여 이 불붙는 산은 세상이라는 바다에 세상 죄를 지고 죽으신 예수와 함께 빠져 죽어야 합니다
어쨋든 불같은 열정과 혈기로 열과 성으로 하다 보니 나중에 자기 스스로 지쳐 자기 한계에 부딪칩니다
이 모든 원인은 그 안에 예수 생명이 없기 때문으로 살았다 하나 실상 죽은 자로 자기 삶에 참된 의와 희락과 평안을 맛보지 못하고 점점 영이 병들고 몸은 피페하게 살다 마침내 솔로몬이 노래하였듯 허전하고 허무하고 허탈감으로 두려움 가운데 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눅4장에 베드로 장모가 열병이 들엇는데 예수께서는 열병을 꾸짖었다고 나옵니다“ 에피티마오= 꾸짓다 , 경고하다, 뜻으로 이것은 장모 속에서 불붙는 열심을 내게하는 죄된 생각과 욕심으로 가득찬 불붙는 마움을 꾸짖어 머리 뚜껑 열리게하는 열불 귀신을 떠나 보내니 예수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섬기게 됨을 봅니다
눅4: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그리고 “청하다 >는 “에로타“= 요구하다, 구걸하다로 반복적인 동작으로 계속 거지처럼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 제발 내려 와서 고쳐주라고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눅18장에 나오는 과부가 주야로 한을 풀어달라고 하였듯이 애걸복걸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려오셔서 내려오셔서 (카타 바이노) 반복하여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거의 죽게 되었나이다 “... 카타바이노”는 아래로 내려오다로 이것에 영적의미는 지금 높은 하늘에(가나) 계신 예수님을 땅 아래로(가버나훔) 내려오셔서 성령으로 속죄하고 살려주라는 말씀입니다
고전16:22 >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
제가 원어 단어만 띄엄띄엄 읽을 줄 아는 수준인데 부득불 원어를 살펴서 해석을 하는 것은 제가 아무리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은혜로 해석한다 해도 믿지 못하겟다고 우기는 사람이 잇을까 확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저도 사람인지라 보다 실수하지 않고 보다 더 확실하게 하므로 저의 해석이 결코 알레고리로 자의적 해석이 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못된 해석은 차라리 안한 것만 못하고 자칫 제 글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실족시킴으로 나중에 하나님께 무서운 책망을 받지 않기 위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하고 있으니 이점을 널리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쨌든 왕은 예수님께 내려오소서“카타바이노” 청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려오라는 말은 살전4:16에 강림하다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는 헬라어 “아판타오=아포+ 안타오”로 영접하다 , 만나다, 마주치다“이고 히브리어로 ”파가 (만나다, 탄원하다) 입니다
이 단어는 ”아판테신‘의 파생으로 하나님과 떨어져서 살다가 탄원하여 중재로 다시 만나서 자기 집으로 영접하므로 연합하여 완성된다는 것을 뜻하는데 묘하게도 살전4:17절에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다에서 “람바노“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영접으로 “ 아판테”(오다가 만나서)를 씁니다
이렇게 단어 용례를 살펴보니 이상하게도 요4장 왕의 아들의 죽을 병에서 나음을 입고 온 집안(나의 성전된 마음집)이 믿게 되었다는 일련의 과정속에서 우리가 말하는 살전 4장에서 말슴한 공중의 혼인잔치와 자꾸 연관이 되는 것을 봅니다 ---
그 종들이 오다가 주님을 만난다(한쪽에서 이끌려 올라가고 한쪽에서 내려오다 그래서 마주치다, 영접하다)
어쨌든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그 아이가(파이스=나약한 아들, ,하인, 종 ,신하,) 살았다고 알립니다 이것의 영적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아이가 나아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 속에는“파이스라는 단어를 특별히 쓰는 것으로봐서 그 율법의 종들도 함께 나음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해석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즉 표면적이며 율법적 신앙인 표적 신앙으로 죽을 병에 놓인 젖먹이 어린아이를 주님이 강림하여 영접하여 하나님 아들이 되도록 하나님 뜻대로 보살펴 구원하여 주라는 말입니다 하여 자기와 온 집안이 연합하여 믿게 되엇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저는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로 하소연 하는 이 왕 신하의 모습 속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였던 예수님의 모습이 오버랩 되엇습니다
참고로 예수님은 ”카타바이노( 땅으로 내려오다)에서 “아나바이노(하늘로 올라가다)하셨습니다
요3:13 >하늘에서 내려온(카타바이노)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아나바이노)자가 없느니라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내려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하여 다시 성령으로 내려 오셨고 현재 성령으로 내려와 계시며 지금도 약속하신 성령으로 내려 오시고 계십니다
나의 왕되신 예수여 지금 내려오셔 강림하셔서 저를 영접하여서 내 병든 마음을 고쳐 새롭게 하소서------ 마라나타
어쨌든 맹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표적을 보고 병들어 죽은 생명이 깨끗이 나음을 입고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의 표적을 볼려면 부자되시고 왕되신 하나님의 상으로부터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받아 먹고 참 생명을 얻을려는 거지 나사로 심정으로 간절히 구하여야 합니다
엡4:9-10 > 올라 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야 / 내리셨던 그가 곧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망하게 하려하심이라
6)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렇게 간청하는 그에게 가겟다 ,가지 않겠다 말슴하지 않고 갑자기 동문서답격으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한다...이 말씀은 역설적으로 왜 너희는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야만 믿을려고 하느냐란 뜻입니다
왜 너희들은 표적과 기사로만 믿을려고 하느냐 , 너희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더란 말이냐, 왜 너희들은 표적과 기적으로 생겨난 믿음을 가지고 온전한 믿음을 가졌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그 믿음에 만족하고 추구하며 안주할려고 하느냐
요6:26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께서는 표적을 보고서 예수 자신을 찾으라고 분명히 밝히시고 떡을 먹고 배불리려고는 찾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표적자체를 보지 말고 믿어라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표적속에 감춰진 숨은 의미 즉 견지망월로 보고 믿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표적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자기 몸을 의탁하지 않았고(요2장) 오히려 숨으셨습니다 참된 믿음이란 어떤 표적이나 기사를 보고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수가성 여인이나 사마리아인들처럼 보지 않고도 말씀을 경험하므로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롬8:24-25 >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엇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으로 기다릴지니라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어 믿게 할려고 오지 않았다 내가 너희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보여줄 것은 오직 너희 죄들을 짊어지고 너희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 그러니 왕이 된 너는 그만 청하고 돌아가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합니다
마12:39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우리들에게 표적과 기적을 보고 믿음을 가질려고 하지 말라면서 내가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때문에 요나의 표적을 보고 (민21장 불뱀에 물린 자는 쳐다보면 살리라) 믿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궁극적으로 무슨 말이겟습니까 바로 이런 역설적 말씀이 됩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로 표적을 보일 것인데 그 떄 너희들이 믿음을 가질려면 절간의 중들도 들어서 알고 잇는 성경에 나온 예수가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는 단지 역사적 사실로 받아 들이지 말고 네 자신이 실제적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는 표적을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곧 십자가를 경험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여에서 불뱀에게 물려 죽어갈 때 기둥에 달린 놋뱀을 쳐다본자는 살아났듯이 이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를 경험하므로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사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의 책망에 그 사람은 정신이 번쩍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끈질기게 에로타“ 하는 것을 봅니다 그가 처음에 예수를 만날때는 주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앗는데 책망을 듣고는 겸손하게 49절에 주여”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여 내 아들이 병들었다고 할 때 아들은 처음에는 휘오스“( 영적의미를 부여한다면 아직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데도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여기는 것)라고 하였는데 책망을 듣고 대답한 아이는 ”파이디온“= 어린아이, 유아 , 아기=율법적 철부지 젖 먹이 신앙 ) 입니다 그리고 종들은 ” 파이스( 어린 아이, 종.신하)로 구분하여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아이가 낳았다 할 때 낫다는 ”콤프소테론’으로 콤프는 코메오“로 부드럽게하다 , 보살피다 “소테론은 ”소조“에서 유래로 구원하다 ---돌보고 보살펴서 구원하다, 더 나아지다, 회복하다입니다
한마디로 표적과 기적으로 믿을려고 하고 믿음을 가지고 여전히 자기 스스로 왕이 되어 잇는 그 사람이 우격다짐으로 예수에게 어떻게 보면 내려오라고 명령하여 주님의 책망의 소리를 듣고는 처음과는 다르게 예수님을 주인으로 겸손하게 이렇게 바뀌어 부름을 봅니다
”주여 저는 아직 표적과 기사없이는 믿지 못하는 아직 변화 받지 못한 철부지 어린아이 믿음입니다 때문에 제가 교회에 충성 봉사로 머리에 열불이 나도록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쩔땐 믿음에 회의가 생기며 삶에 기쁨이 없고 평강이 없고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함으로 제가 지금 병이드러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모든 원인이 제 안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임하지 않아서 그런줄 아오니 지금 강림하셔서 저를 고쳐주시고 주님의 생명으로 나음을 입고 나머지 삶을 주님의 생명으로 왕의 아들로 살아가게하소서—마라나타 마라나타
여기에 영적의미가 잇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하나님의 왕궁에 속한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이라는 자부심과 자존심이 대단하였는데 예수님의 날카로운 책망에 소리를 듣고 새롭게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왕에 속한 그 사람은 주위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참된 고백을 합니다 한마디로 나는 말할줄도 모르고 들을 줄도 모르는 믿음이 적은 어린 죄인의 생명으로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어도 살수 없는 병들어 죽어 가고 있는 어린아이 믿음인 저를 고쳐서 의인의 생명으로 구원하여 주십시요라는 간청인 것을 봅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앗을 때 더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세상왕으로 , 주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나아가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된 백성이라는 우월감으로 예수님을 처음에 주“라고 부르지 않앗던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50절에 왕의 신하를 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아서 더욱 그러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믿음에는 두 종류의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말씀을 듣고 주님이 믿어지게하여 믿어지는 말씀의 신앙과 또 하나는 표적과 기사를 보고 내 자신이 믿어 주는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을 듣고 믿어지는 신앙은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로 오시기 전에 수가성 여인을 만나 선문답을 통하여 예수님 입으로 자신을 메시야로 밝히며 믿음을 주시니 이 여인은 물동이를 내동갱이치며 동네에 들어가 예수를 증거하여 마을 사람들도 믿게끔 하는 신앙입니다
이들은 표적이나 기적도 보지 못하엿으나 수가성 여인의 전도를 통하여 믿었으며 급기야는 자기들도 예수를 직접 만나 원색적인 말씀을 듣고 확실하게 믿어져 믿어지게됨을 봅니다
때문에 복음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믿어 믿음이 생기는 신앙은 자기 마음과 행동에 내면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즉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 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신앙이 됩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반면에 표적과 기사를 보고 믿는 신앙은 자기 머리로 계산하여 듣고 보고 머리로 믿어주는 것은 모두 것이 자기에게서 생겨난 믿음으로 이 믿음은 믿음의 주인되시는 주님이 주시는 본질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단지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고 중풍병이 낫고 소경이 눈을 뜨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오병이어가 나타나고 어쨌든 가나에서 첫 번째로 물이 포도주로 만들어진 것처럼 그 물질적 표적을 보고 물질을 추구하며 믿는 신앙입니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본래 취지는 그런 뜻이 아니지만 분명히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예수 자신을 믿게하였고 또 믿을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 믿게할려고 표적과 기사를 보여 주며 믿게하였습니다그래서 제자들도 믿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유대 관원인 니고데모가 표적을 보고 밤중에 예수께 나와서 말슴을 듣고 구원을 얻고 거듭낫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왕의 신하도 소문을 듣고 니고데모처럼 나왔는데 왕의 신하를 두고는 너희는(복수)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모두 싸잡아 책망을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