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하며 하나님의 더 섬기기 위해 교회도
크게 지었고, 헌금도 많이 했고, 선교하고, 봉사하고,
예배란 예배는 빠지지 않고 열심히 드렸다.
세월이 흘러 세상과 이별하고 주님 앞에 갔다.
그런데 주님은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신다.
진짜 이렇다면 끔찍하지 않나?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은혜 안에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잘지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듯이 하나님도
섬기려고 한다. 큰 교회당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줄로 생각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똑같은 일들이 있었다.
이사야 66: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이사야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집에 개념은 쉬며 안식하는 공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와 같은 인본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을
자신들이 크고 질지은 성전에만 거하시는 그런
하나님으로 생각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그는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지치지도 않으시며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안식 그 자체이시다.
하나님은 현대교회와 같이 탑을 높이 쌓고 건물을
화려하게 건축하는 종교적인 것에 만족하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금으로 치장하며 크고
화려하고 멋지게 지었어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건물 조차도 돌위에 돌하나
남지기 않고 다 파괴시키신 분이시다.
이런 역사적인 교훈을 성경에서 보면서도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하고 눈먼 목사들과 눈먼 교인들은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고 죄로부터 돌이키기는
커녕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했던 것처럼
교회당을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건물을 화려하고
크게 지어 목사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고
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심을 자랑하려고 한다.
말로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서로 사람들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악한 것이다.
신약에 들어오면서
성전은 눈으로 보이는 건물이 아닌 우리 각자의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되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교회는 그 성전인 몸들이 모인 것이 교회다.
교회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못하는 돌이나 시멘트로
만든 죽은 건물이 아니라
교회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느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머리는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전과 교회 건축이라는 명목으로 성도들의
헌금을 강요하고 감정을 자극하여 반강제적으로
드리게 하는 그런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그 화려한 성전도 두번이나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뜨리셨다. 하나님은
마지막 시대 이방 건물 교회당도 흔적도 없이
무너뜨리실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시대인 것을 모르는 잠자는 교회를
비롯하여 마지막를 전한다는 교회를 까지 정신 차리지
못하고 교회 건물들을 화려하게 지으려고 애쓴다.
교회의 본질은 그 속에서는 날마다 회개와 거룩함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대 교회의 현실이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도 지금 상황과 하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사야 66: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이 말씀을 오늘 현대 상황으로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수라는 이름으로 예배 드리지만 그 예배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두번 못 박는 것과 같고,
많은 헌금을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하며,
찬양을 하지만 그 찬양은 우상을 찬양함과 다름이 없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는데 지금 이런 일들이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다.
예배를 드리면 자기 길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택해서 가야하며,
가증한 마음을 버리고 신실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지 못했고,
지금 수많은 교회들도 그렇다.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부터 통회하거나 떨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권고를 멈추셨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유혹에 넘셔주시고
그들이 무서워 하는 그것을 임하게 하셨다.
이사야 66:4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신앙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봉사와 선교와
희생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죄를 회개하며 통회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것이 없이
예배와 찬양과 봉사와 희생과 선교와 목회 등 그 어떤
종교적 행위나 열심도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본인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고
이런 종교적 행위가 거듭될수록
본인에게 더 안 좋은 결과만 가져오게 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열심있는
종교적 행위들이 아니라 말씀과 같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애통하며 회개하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말씀 앞에
떨며 두려워하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말씀으로 권고해 주시고
성령으로 지혜 주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지금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찿고 계신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 애통함과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형제라는 자들이
하나님에 말씀 때문에 떠는 자들을
미워하며
그들 가운데서 쫓아내며 핍박을 가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런 행위가 하나님 앞에 정당하며
그 행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예전부터 그래 왔다.
(KJV흠정역) 이사야 66:5 ¶ {주}의 말에 떠는 자들아,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를 미워하고 내
이름으로 인하여 너희를 쫓아낸 너희 형제들이
이르기를, {주}께서 영광 받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서 너희의 기쁨이 될 것이요,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그러나 하나님 앞에 애통과 두려움이 없는 그들을
하나님은 미혹에 넘기실 것이며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애통과 두려움이 없는 그들은
종교통합주의( WCC, WEA, NCCK 등 )와 예배당에
백신패스를 도입한 자들 등 말씀과 하나님의 법에서
떠난 교단과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이다.
진리를
깨닫는 것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있나? 없나? 에 달려있다.
잠언 1:7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거늘
(KJV흠정역) 이사야 33:6 지혜와 지식이 네 시대의
확고함이 되고 구원의 힘이 되리라.
{주}를 두려워함이 그의 보배이니라.
마지막 시대는 진리가 비진리가 되고,
비진리가 진리가 된 시기다.
때문에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여 미혹에 빠지지 않고
진리의 길로 걷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고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으로 권고를 받지 아니하면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미혹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에 심령이 통회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함은 매우 중요하다.
통회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 밭이 회개를 통해
좋은 땅이 되었기에 그마음 밭에 하나님의 권고의
말씀이 뿌려지면 30배 60배 100의 결실이
맺어지는 것이다.
지금 당신은 애통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고를 받고 있는가?
오직 예수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