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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연구방

디아스포라와 야고보서

작성자passover|작성시간15.05.16|조회수418 목록 댓글 3

diasporav(디아스포라)와 야고보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디아스포라)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약 1:1)

 

 

야고보와 베드로의 서신서는 바울의 서신서와 조금 다른 특징이 있다. 바울의 서신서들은 지역이나 특정 인물을 수신자로 하고 있다.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를 대상으로 편지를 쓰고 있다. 흩어져 있는 이방인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이들도 흩어져있는 사람들 곧 디아스포라지만,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 디아스포라들이다.

이에 비해 야고보는 흩어져있는 유대인 열두지파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을 일컬어 ‘디아스포라’ 한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이민족의 침입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흩어짐이 시작된다. 다니엘서는 포로로 잡혀간 청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니엘서는 흩어져 있을 때 겪게 되는 시험의 전형이기도 하다. 유대를 떠나 각지에 흩어지게 되는 까닭은 여러 경우가 있겠다. 신약에서의 ‘디아스포라’는 구약의 경우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겨우 3회 등장한다. 요한복음과 야고보서, 그리고 베드로전서에서다.


인생은 모였다가 흩어지고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의 반복을 통해 그 정신이 성숙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을 한다. ‘디아스포라’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야고보서는 야곱의 신약적 이름이다. 공교롭게도 야곱의 12 아들, 곧 이스라엘의 아들들에서 12지파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애굽의 풍요를 누리다가 애굽의 노예가 되었고, 출애굽하여 고토를 회복하고 12지파로 정착했다가 다시 유대를 떠나 흩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모름지기 인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노예가 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기꺼이 노예가 되도 좋지만 인생은 처음 좋아하는 것에만 머물 수가 없다. 애굽의 풍요에 노예가 되고나서야 풍요의 노예가 된 것에 정신이 들게 되고, 출애굽을 단행한다. 이것이 정신의 특성이다.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흩어져 있는 12지파에게 보내는 것은 아비가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방불한다. 유대인들에게 12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바는 매우 독특하다. 12지파, 12000명, 12제자, 십사만사천은 모두 12라는 숫자와 연관을 갖는다. 광야에서 성막은 12지파의 십사만 사천에 둘러 쌓여 이동한다. 베드로가 이방의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면, 야고보서는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예수를 중심으로 12제자가 있었고, 예수가 떠나고 나서 이들은 흩어져야 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한다면 잠시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지만 흩어지게 되어 있고, 이를 염려한 제자들이 예수에게 묻는다. “당신이 떠나고 나면 우리는 누구에게 가야합니까?(도마호음 12)” 이 때 등장하는 이름이 ‘야고보’다. 예수는 후계자를 ‘야고보’로 낙점한 것이 아니다. ‘야고보’에게 가라는 뜻은, 야고보가 안내하는 그 지점을 일컫는다. 야고보의 생각은, 야고보가 안내하는 바는 야고보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도자가 떠나고 흩어져 살아내야 하는 삶의 지침서(?)다. 리더가 떠난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리더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이제 스스로 발걸음을 내딛고 흩어져 그곳이 어디이든 스스로의 삶을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고, 이는 너무도 당연한 구도의 길이다.


지도자는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도우미요, 산고를 통해 정신이 홀로 설(살) 수 있도록 낳는 역할을 한다.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가 이를 명증하게 보여준다. 뭉쳐야 산다. 그러나 뭉치면 죽는다. 흩어지면 죽는 줄 알고 죽기 살기로 모이는 데만 열중할 때 이를 흩기 위해 예수는 떠나간다. 제자들은 결코 스스로 흩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때가되면 흩어져야 산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게 생명의 원리의 연속성이다.


물론 생명으로 여물기 전에는 흩어질 수 없다. 모여 있어야 한다. 뭉쳐있어야 한다. 어미로부터 모유수유를 받아야하고 아비로부터 건강한 정신을 물려받아야 한다. 여물기 전에 흩어질 수는 없다. 여물기도 전에 흩어지는 것은 죽는 길이다. 민들레는 여무는 동안은 모여 있지만, 여물고 나면 홀씨가 되어 날아간다. 더 이상 모여 있지 않는다. 어디로 흩어질지 알 수 없지만, 날아간 그 곳에서 뿌리를 내린다. 이게 생명의 원리다.


흩어져서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 흩어지면 잠시 시험에 들게 된다. 아세라 목상에 또 다시 절하는 일을 반복하는 게 흩어져서 빠져들게 되는 시험이다. 해서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의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홀로 서서 살아가는 삶의 원리를 설파한다. 디아스포라는 마침내 우리가 걷게 되는, 걸어야 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모여라. 열심히 모여라.

또 다시 권하노니

그러므로 흩어져라. 두려움을 떨치고 흩어져라.

이는 모두 각각의 때를 따라서 일어날 일이다.

 

야고보서를 읽어가기 위한 문은 여기서부터 열어야 하고 시작된다.

이렇게 읽어가는 야고보서와 베드로 전후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읽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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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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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passov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5.17 아무래도 어떤이들에게는 불편한 글이기도 하겠지요. ^^ 교회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만남만큼이나 떠남이 중요하다는 것~ 그 모두를 소중히 여겨야하지 않을까합니다. 부모와 자녀는 한가족이지만 때가되면 부모품을 떠나는게 효이듯...
  • 작성자창일 | 작성시간 15.05.18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눅24:31)

    육체의 눈으로 예수를 바라 볼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떠나십니다.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29)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5:7)

    그러나 육체의 눈을 떠나 보이지 않는 것으로 행할 때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육체 안에서 예수를 바라보는 것과 이별할 때 영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이별이 없습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 이니라.
  • 작성자passov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5.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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