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째부활〕,〔십사만사천과 두 증인〕,〔칠십이레〕를 필자는 개혁주의 전 천년설의 3대 핵심주제로 본다. 민병석 목사님이 주창하는 가장 중요한 종말계시이다. 그렇기에 본 사이트에만 해도 관련 글들을 다수 찾을 수 있다. 그러함에도 이렇게 올리게 된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논문 형식을 취했다. 독자들이 조금 더 쉽게 연구하는데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Ⅰ 서론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은 논란거리가 되는 것이 십사만사천이다(이하144000).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단 가운데 하나가 ○○○○○○○○○○○○이다.
교주는 ○○○로 자신만이 요한계시록을 완전히 해석한 자로서 사도요한이요, 두 증인이며,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라고 주장한다.
이 집단은 144000을 자신들의 만수로 본다. ○○○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이렇게 144000은 이단 사이비들에게 악용을 당해왔다. 그러므로 144000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 정립이 필요하다.
명확하게 해석할 수 없는 난제로 또는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려고 상징으로 덮어 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
144000은 개신교 내에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144000이 구원받은 총수로 모든 믿는 백성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144000이 모든 믿는 성도들을 상징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144000의 자격에 대해 ‘신앙순결이 있는 자’, ‘어린양을 따르는 자’, ‘사람가운데 속량함을 받은 처음 익은 열매’, ‘입에 거짓말이 없는 자’,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계14:4-5).
이상 다섯 가지를 모든 성도들의 조건으로 본다면 무리한 해석이 될 뿐만 아니라 구원론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된다.
구원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 받은 자가 예수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를 갖는 것과 위에 열거된 것을 구비해야 할 자격으로 본다는 것은 억지이다.
144000에게 ‘하나님의 인’을 쳤다는 근거를 구원의 인으로 주장하기도 한다(계7:2-3).
그러나 성도의 구원은 ‘성령 인침 받았다’고 하였다(엡1:13).
예수님도 인침 받았다(요6:27). 그렇다면 이것이 구원의 인침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소유와 권세와 능력을 아들에게 주신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종말의 시대 사명을 감당할 종들을 천사들을 통해 인친 것이다.
다음으로 144000을 육적인 이스라엘로 주장하기도 한다.
12지파의 원형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스블론, 잇사갈, 단, 갓, 아셀,납달리, 요셉, 베냐민이다(창35:23-26;49).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로 나뉘게 된다(창4:5-6;수14:4;16:4). 대신 레위가 제외된다(민1:47).
이 지파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제사장과 성막을 위해 봉사하는 자들로 성별되었다(민1:50-53;18:1-2;수18:7).
변형된 12지파는 에브라임, 므낫세, 르우벤, 시므온, 유다,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베냐민 순으로 되었다.
그런데 144000에 대한 지파를 살펴보면 레위가 포함되어 있는데 요셉과 므낫세가 함께 기록되어 있고 단 지파는 빠져있다(계7:4-8). 원형을 볼 때 요셉과 레위가 있다면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가 포함될 수 없다.
변형을 볼 때도 므낫세가 있다면 에브라임이 포함되어야지 요셉과 레위가 함께 있을 수 없다.
사도 요한이 12지파를 몰라 오류를 범하고 오기를 했다면 성경의 권위에도 타격을 입히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실제적 12지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144000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답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요한계시록 7장 3절에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정의해 주고 있다.
성경에서 종이라는 단어는 광의적으로 모든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의 사자를 일컫는 말로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호칭한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종들’을 무엇으로 해석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개혁주의 전 천년설에서는 종말의 사명자들로 본다.
이제 본론에서 그 논지에 대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종말의 예언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선별한 종들이다.
요한계시록은 ‘교회들에게 주신 서신’(계1:4)으로 시작하여 ‘교회에 주신 계시’(계22:16)로 끝맺고 있다.
교회에게 종말에 있을 일을 알려 주신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성도들이 장차 있을 종말의 풍파 속에서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서 ‘우리’는 ‘교회’로 보아야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교회 안의 하나님의 종들’이 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택한 종들로 종말의 예언 사역을 감당할 사명자들인 것이다.
7장 4절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라는 말씀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에서 ‘이스라엘’은 ‘모든 믿는 자’ 즉, 교회를 가리킨다.
신약에 와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볼 때 교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 6장 16절에는 이방인을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각 지파 중에서’는 바로 교회 중에서 택한 하나님의 종들인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는 ‘모든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택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는 것이다.그들이 144000이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라고 하였다(롬2:28-29).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린 지금 교회시대에 유대인은 혈통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모든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인 것이다.
“6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8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하였다(롬9:6-8).
은혜 시대인 지금에는 이스라엘 지파 출신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다(롬10:12-13).
지금은 성령시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교회시대 하나님 백성이 되는 길이다.
144000을 종말의 예언 사역을 감당할 하나님의 종들이란 것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이들 중에는 7장 9절 ‘큰 무리’와 같이 해석한다. 전체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르지 않다. 144000은 ‘큰 무리’와 전혀 다른 존재이다. 144000은 교회에서 나온 종들이다.
큰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성도들로 분명히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다.
즉 세계의 교회들에서 나온 성도들이다. 종말의 사명자로 부름 받은 144000이 전 3년 반 동안 예언 사역을 통해, 깨어 준비된 성도들이 후 3년 반 동안 예비처로 인도함을 받게 되는데, 이 성도들이 큰 무리인 것이다. 144000이 종말의 사명자들이라면 큰 무리는 종말에 144000을 통해 영적으로 무장된 성도들을 말한다.
이외에도 144000에 대한 견해들은 다양하다. 그 중 현존하는 개혁주의의 산실로는 가장 대표적인 곳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김명용 박사의 설명을 들어 보겠다.
14만4천의 기본적인 정신은 무엇인가. 그 당시 콘텍스트(초대교회) 속에서 어쩌면 예수 믿는 사람의 전체 숫자가 14만4천이 안되던 시절이라고 볼 수가 있다. 당시 워낙 박해가 심하기에 박해 속에서 누가 과연 구원을 받을 것인가 하는 회의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요한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내가 확실하게 다 보았다는 것이다.
무려 14만4천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서 어린양 앞에 서서 찬양을 하더라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내가 확실히 보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印)치신 사람은 한사람도 남김없이 다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다 어린양 앞에 서서 찬양하는 그 영광의 비전을 확실하게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14만4천이라는 숫자는 엄청난 희망을 주려는 희망의 숫자이다. 우리 가운데 구원에 실패할 사람이 한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치신 백성을 틀림없이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14만4천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이다(계14:4).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 큰 음녀 바벨론이 나온다. 그것은 로마제국이다. 로마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기에 이미 사라져간 바벨론 왕국을 가지고 표현한 것이다. 음녀는 우상숭배하는 것이다.
주님만 섬기고 예수님만 따라야 하는데 우상을 섬기는 그리고 우상 섬기기를 강요하는 로마제국을 음녀라고 표현한 것이다.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라는 의미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로마황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고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라가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하늘나라에서만 주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제 멀지 않는 장래에 세상 나라도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계 11:15).
그리고 너희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세토록 왕 노릇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어떤 책인지를 잘 이해하고 요한계시록에 있는 상징과 암호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잘 인식하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이단들의 말들이 너무나도 우습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
김 박사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수가 144000이 안되던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심한 박해 속에서 누가 과연 구원을 받을 것인가 하는 회의에 빠져있는 초대교인들을 희망을 주기 위한 수’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 시대이면 A.D. 90년대인데 전체 교인 숫자가 144000이 안 된다는 것을 어떤 근거에서 말하는 것인지?
당시 초대교인들이 믿음에 대한 회의 퍼져나갔다는 것은 어떻게 확신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카타굼, 갑바도기아, 데린구유등에서 마라나타 신앙을 지킨 초대교인들은 무엇으로 설명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어떻게 이런 해석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144000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14장 4절을 인용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자로 음녀를 따라 우상숭배하지 않은자라고 하는 것은 동의한다. ‘그러나 하나님만 섬기고 예수님만 따라야 하는데 우상을 섬기는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로마제국을 음녀라고 표현한 것이다’고 한 것은 다시 초대교회로 회귀하게 된다.
종말 시대 종교다원주의 등으로 교회를 변질시킬 음녀, 거짓선지자등의 존재에 대한 대비는 주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큰 문제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 예수가 왕이 되어 세세토록 왕 노릇할 그리스도의 나라에 관하여,
144000으로 상징된 초대교회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나라에서만 주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제 멀지 않는 장래에 세상 나라도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그리고 너희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세토록 왕 노릇 하게 될 것이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지상의 천년왕국을 인정하는 것인지 이 땅에서 왕 노릇한다는 것은 현재 천국에 있는 성도들이 영적으로 왕 노릇한다는 무천년주의 주장과 상반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2)
김 박사는 ‘칼 바르트의 신학’3)을 출간 하면서 부제로 ‘20세기 최고의 신학이 교부’라고 칼 바르트를 극찬할 정도로 칼 바르트 신봉자로서 신정통주의자에 속한다. 어떻게 보면 자유주의 신학자에 가까운 그의 논지는 그 각도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된다.4)
그러나 정통보수개혁주의에서 수학한 목사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분당우리교회를 개척 대형교회로 성장을 이끌고 있는 이찬수 목사는 개신교 차세데 리더로 까지 손꼽히고 있다.
그는 주일예배에 요한계시록 1장 7절을 본문으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라는 제하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을 강해하였다.5)
그 중 요한계시록 7장을 ‘환난 중에 보호하시는 하나님’(계7:1-14.6.2), ‘좁은 마음을 깨뜨리고’(계7:9-12.6.9),
‘지금은 전쟁 중이다’(계7:13-14.6.16), ‘눈물 씻어주실 그 날을’(계7:13-17.6.23). 네 번에 나누어 강설했다.
이 목사는 144000이 구원 받은 성도들로 그들의 올려드리는 찬양과 영광의 삶에 초점을 두고 설교했다.
구체적으로 144000에 대하여는 “이필찬 박사는 전투하는 교회임을 전제하는 숫자라고 주장합니다.
부연하기를 ‘민수기 1장에 이스라엘 군대에 계수 기록을 자료로 하여 이 요한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다’고 해석합니다.”고 강해했다.6)
그러나 민수기 1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군대와 요한계시록 7장에 등장하는 144000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발견할 수 없다.
두 곳에 기록된 숫자도 지파도 동일하지 않다. 이 역시 전형적인 무천년주의 입각에서 상징적 영적으로 해석하는데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결과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7)
정성욱 박사는 “‘십사만사천을 장차 나타날 참 선지자들의 총수를 상징하는 숫자로 해석하는 관점’을 가진다고 밝히면서,
‘이런 해석 역시 정통교리와 충돌하지는 않기에 이단적이거나 사이비적인 해석이라고 말할 수 없다.’”8)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해석이 가장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부합한다고 하였다.9)
144000은 육적 이스라엘도 아니고 모든 성도들도 아니다. 144000은 종말에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만방에 알릴 사명자들인 것이다.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깨워 준비시켜 예수 재림의 신앙으로 무장하도록 만드는 사명을 감당할 하나님의 종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언제나 지도자를 먼저 세우신다. 대표적인 것이 모세를 들어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출애굽 역사이다. 종말도 예외일 수 없다.
2. 두 증인 연결
144000을 해석할 때 벽에 부딪히는 난점이 있다. 144000은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처음 기록되어 있다.
이후 전혀 언급이 없다가 14장 1절 ‘시온 산’에 선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면 그 사이 144000의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7장에 등장한 144000이 무엇을 하였기에 14장에 시온산 보좌 앞에 섰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이것을 성경에서 찾아 바른 해답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종말 시대에 직면할 성도들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들에게 훈련받고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지 않고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된다(마24:45).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144000을 첫 번째로 언급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7장 1절부터 8절까지.
그리고 ‘흰 옷을 입은 큰 무리’에 대한 기록인 9절 사이에 한 절 사이에 144000이 사명을 받는 모습과 사역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도록 하겠다.
10장에는 ‘작은 두루마리’가 기록되어 있다(2). 천사로부터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먹고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사명을 부여 받는 장면이 나온다(11).10) 이 말씀은 7장 9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한 맥인 것을 알 수 있다.
10장 11절 사명의 결과가 7장 9절에 ‘큰 무리’로 나오는 성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10장 10절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먹고 사명 받은 자는 7장의 144000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10장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먹고 다시 예언해야할 종말의 사명자로 부름 받은 후, 11장 3절에 ‘두 증인’이 등장한다.
이 두 증인의 존재는 누구인가? 두 증인은 1260일 동안 예언사역을 감당한다(계11:3).
그 후 짐승(적그리스도)에게 죽임을 당한다(계11:7). 그의 유해는 전 세계에 걸쳐 널려지는 모욕을 당한다(계11:9).
땅에 사는 자들로 상징된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이를 즐거워하며 기뻐한다(계11:10).
그러나 하나님은 대 반전을 준비하고 계셨다. 삼일 반 후 두 증인은 부활 승천하게 되는 것이다(계11:11,12).
이를 통해 볼 때 두 증인은 144000과 연결된 계시인 것을 알 수 있다.
144000이 종말의 사명자로 택함 받은 후 두 증인으로서 전 세계에 흩어져 예언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그 후 짐승에 의해 순교를 당한 후 부활 승천하게 된다. 그리고 두 증인은 144000으로 시온산 보좌 천국에 서게 된 것이다.
144000과 두 증인을 동일한 존재임을 증거 하는 또 다른 단서는 그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예언 사역을 감당했다는 점이다.
요한계시록 10장 11절에서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사명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이 두 증인이라고 하는 데에는 전술한 바와 같다.
7장 9절에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왔다고 하였다.
그들은 144000 두 증인에 의해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 즉 전 3년 반 동안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인도함을 받은 자들이다(계7:14).
11장 8절에서는 전 3년 반 동안 예언 사역을 마치고 순교한 두 증인의 유해가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 있다고 하였다
. 이상에서 10장 11절, 7장 9절, 11장 8절에 기록된 전 세계를 의미하는 구절들에 등장하는 144000과 두 증인의 사역을 볼 때 이들은 한 사명자들 임을 입증하고 있다.
12장에서도 144000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표현이 두 증인도 아닌 또 다른 표현으로 나온다.
‘해를 옷 입은 여자가 낳은 아이’(1,2)로 이 아이는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5)로 기록하고 있다. 음녀와 반대인 해를 옷 입은 여자란 종말 시대에 두 증인 즉 144000을 배출할 교회를 의미한다.
이 ‘아이’와 ‘남자’가 144000인 것은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5).
이 구절은 두 증인이 예언 사역을 마친 후 짐승에 의해 순교된 후 삼일 반 만에 부활 승천하는 11장 12절과 한 맥이다.
‘하늘로 올라간’ 두 증인(두 선지자)이 144000이기 때문이다. 두 증인을 낳은 해를 옷 입은 여자는 그들에게 훈련받고 용(사탄)을 피해 ‘1260일 예비처에서 양육 받는다’고 하였다(계12:6,14). 이 말씀은 7장 14절의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해를 옷 입은 여자가 낳은 아이를 요한계시록 12장 5절의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는 구절을 근거로 이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고, 그를 낳은 ‘해를 옷 입은 여자’은 마리아로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계12:1,2).
이렇게 되면 재림의 사건을 기록한 종말계시인 요한계시록을 교회시대이전 초림으로 되돌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예수로 해석하는 나름대로의 근거를 든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계19:15). 이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세상을 심판하실 모습이다.
그 때 ‘철장으로 다스리며’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계12:5). 그렇지만 이것은 예수만을 지칭하는 말씀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부터 두아디라교회에 대한 교훈이 기록되어있다.
그 중 26, 27절에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수신자인 일곱 교회는 종말시대의 전 교회를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면 두아디라 교회에게 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철장’은 누구에게 준 것인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준다고 하였다. 여기서 ‘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가 교회에게 준 것이다.
이것은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 볼 때 예수께서 하나님에게 받으신 것을 그의 종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창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종말의 사명을 감당할 두 증인이요 144000인 것이다.
이와 같이 144000 두 증인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전체에 나타난 동일한 계시들을 찾아 하나의 완성된 문장으로 해석하였다.
정성욱 박사도 이 견해에 합일하고 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의 (여자의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고 주장합니다(시2:9;계19:15).
이 주장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계시록 12장의 내용이 ‘장차 될 일’에 포함된 바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라면 해 입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사건을 예수님의 초림과 연결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계시록 2장 26-27절은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일반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심판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받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선택된 참 선지자 즉 십사만사천의 두 증인으로 해석하는 것 역시 일리가 있습니다.11)
144000이 왜 두 증인인가? 그들은 택함 받은 후 종적을 감추었다가 14장에 시온산 천상에 서 재등장한다.
그 사이 이들은 무슨 일을 했을까? 바로 7장에서 선택받은 후 10장에서 작은 두루마리 종말계시를 받아먹고,
11장에서 종말의 사명을 감당한 후 적그리스도에게 죽임을 당한 후 부활 승천한다. 그리고 14장에서 시온산 천상에 서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 문장이 될 때 바른 계시의 뜻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144000이 7장에 출현 후 14장에서 왜 보좌에 있는가에 대해 아무런 답을 할 수 없다.
144000과 두 증인을 연결하지 못하면 144000은 택함 받은 후 왜 시온산에 서있고, 두 증인은 전 3년 반 동안 예언 사역을 한 후 죽임을 당하고 부활 승천하여 어디로 가있는지 도대체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종말계시가 미궁에 빠져버리게 된다. 그러나 144000과 두 증인을 연결하면 그 해석이 자연스럽고 분명해 지게 된다.
3. 수학적 용어와 법률적 용어
144000과 두 증인 연결을 부정하는 분 가운데는 두 증인을 수학적 둘로 본다. 하나, 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둘이 144000일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한다.
이에 대해 바로 알기 위해서는 왜 두 증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두 증인은 수학적 용어가 아닌 법률적 용어와 같다.
어느 집에 도둑이 침입해서 물건을 훔쳐갔다고 가정해보자.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전력 있는 이웃집 사람이라는 심중은 가는데 범인이 얼마나 용의주도한지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문 잡이에 지문도 남기지 않았고 바닥에 신발 자국도 없다.
그런데 범인을 목격한 증인이 나타났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다.
물적인 증거가 없어도 어느 사건에 대해 2명 이상의 동일한 증인이 있으면 사실로 인정된다.
성경에도 신명기 19장 15절에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이라고 하였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17절에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라고 하시면서 앞의 구절을 인용하셨다.
144000이 두 증인인 것은 그들이 숫자가 둘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고,
주 재림의 소망을 한 목소리로 증거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예수님께서 12사도와 70제자들을 보내실 때도 둘씩 보내셨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막6:7;눅10:1).
또 두 증인이 순교 후 그 유해가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보게 되었다’는 말씀을 통해서도 입증되는 것이다(계11:9).
두 증인이 숫자적인 두 명을 말하는 것이라면 전 세계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전 세계 교회들 가운데서 나온 하나님의 종들로서 마지막에 주의 종들과 성도들(교회)를 깨우기 위해 작은 두루마리(요한계시록)를 받아먹고 종말의 일들을 예언하는 증인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144000과 동일한 존재이다. 둘 이라는 숫자에 매여 핵심을 놓쳐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성욱 박사도 이 논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 두 증인이 누구일 것인가에 대하여 학자들 간에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 두 증인은 장차 대환난 기간 동안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대항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참 선지자들 또는 마지막 추수의 종들을 의미합니다.
이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할 문자적,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두 사람일 것이냐, 아니면 불특정한 다수의 사람들일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저는 단순히 문자적인 두 사람이 아니라,
불특정한 다수의 사람들일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둘’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대환난 기간 동안에 나타날 참 선지자들을 의미하는 십사만사천과 두 증인은 동일한 존재를 가리킨다고 보여집니다.12)
그렇다면 144000과 두 증인은 한 계시인데 왜 다르게 기록되었는가?
144000이라고 표현된 것은 ‘택함 받았을 때’와 ‘사명을 마친 후 시온산에 섰을 때’ 그 전체를 지칭한 것이다(계 7:4;14:1).
두 증인으로 사용된 곳은 예언 사역을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전하는 각 각을 가리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로도 144000과 두 증인을 설명할 수 있다. 성도들이 예배의 자리에 모인 것은 전체이다.
예배 후에는 각 가정과 처소로 돌아갔을 때는 각각이지만 여전히 교회 성도인과 같다.
우리는 한 증인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다. 두 증인은 수학적 용어가 아니라 법률적인 용어인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요한계시록 7장 8절과 9절은 한 절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사건들이 담겨있다.
이렇게 한 맥들을 찾아 계시의 분명한 뜻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요한계시록을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立脚 문장적해석으로 연구하면서 체계화시키는 방법을 취했기에 가능한 해석이다.
4. 사역
(1) 재림 이전의 사역 - 예언사역
144000의 사역은 예수님 재림 이전 7년 환난 중 전 3년 반과 재림 이후 사역으로 나뉜다. 먼저 재림 이전의 사역을 살펴보겠다. 144000 두 증인은 종말계시가 담긴 ‘작은 두루마리’ 즉 요한계시록을 받아먹은 후에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사명을 받는다(계10:10-11).
그리고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계11:3).
요한계시록 7장에서 종말의 사명자들로 택함 받은 하나님의 종들인 144000은,
두 증인으로서 어마어마한 권세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들이 굵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종말의 시대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성도들을 경성하여 재림의 신앙으로 무장할 것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따른 성도들은 알곡 성도들이 되지만 따르지 못한 성도들은 쭉정이가 된다(마3:12).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 말씀과 같이 마지막 시대 대배교자가 되고 만다.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한 것은 두 증인 144000의 사역기간이다. 천이백육십 일은 전 3년 반을 말한다.
전 3년 반 동안 144000 두 증인의 권세가 얼마나 강한지 “5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고 하였다(계11:5-6).
전 3년 동안 144000 두 증인이 종말의 예언 사역을 감당할 때는 누구도 그를 해할 수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원수도 대적도 손댈 수 없다. 구약의 엘리야가 아하시야 왕이 보낸 군사들을 불로 소멸하고,
하늘의 문을 닫고 비가 오지 못하게 하는 능을 행하기도 하는 것 같은 권능을 행하는 것이다(왕상17:1;왕하1:9-12).
그러므로 “5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144000 두 증인에게 주는 것은 종말의 시대 적그리스도와 맞서 영적인 전투를 벌여야 하는 대역사 앞에 쓰임 받는 하나님의 종들이기 때문이다(계11:5-6).
144000 두 증인이 예언사역을 마친 후 “7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고 하였다(계11:7-10). 짐승 적그리스도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들의 시체가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널려있다는 것은 144000 두 증인 어느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에 걸쳐 종말의 시대 예언사역을 감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는 말씀은, 144000 두 증인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선포한 종말의 예언 사역을 듣고, 종말에 깨어 무장된 알곡이 된 성도들이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전 세계에서 나타남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계7:9).
144000인 두 증인이 적그리스도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종말의 사명을 감당한 144000 두 증인의 유해가 안장도 되지 못한 체 거리에 널려 조롱거리 모욕거리로 남겨두지 않으셨다. “11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11:11-12). 하나님께서는 삼일 반 후 144000 두 증인을 예수님과 같이 부활 승천시켰다.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였고,
144000 두 증인을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 광경을 원수들 144000 두 증인을 죽인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거짓선지자 그리고 음녀 배교자가 된 교회들이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7장에서 택함 받은 144000이 14장에 천상인 시온산에 왜 올라가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11장에서 사명을 마치고 부활 승천하여 시온산에 선 모습이 14장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11장의 두 증인은 144000과 한 맥인 것이다. 이제 두 증인이 왜 144000인가? 라고 누가 묻는다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다.
144000은 7장에 택함 받은 후 10장에서 종말계시를 받아먹고 다시 예언할 종들로서.
11장에서는 예언 사역을 마친 후 순교 부활하여 14장에 시온산에 서 있는 것이다.
재삼 반복하여 강조하지만, 이렇게 144000과 두 증인을 연결 한 문장으로 만들 때 바른 계시의 뜻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144000이 7장에서 출현 후 14장에서 왜 보좌에 있는가에 대해 아무런 답을 할 수 없다.
두 증인은 11장에서 예언 사역 후 부활 승천하여 어디로 가있는지 종적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일관성 없이 중구난방으로 해석하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나님께서 장차 될 일 속히 될 일 종말을 준비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을 알지 못하면 헤매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144000을 두 증인과 연결해야만 바른 해석이 가능하다.
(2) 재림 이후의 사역 - 심판사역 - 하늘군대, 첫째부활자
그러면 종말의 사명을 마친 후 천상에 올라간 144000의 마지막은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을 바로 알면 예수님 재림 이후의 사역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부활 승천하여 시온산에 있던 144000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함께 ‘하늘의 군대’로 강림하여 이 세상 심판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말씀을 처음 듣기에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 모습을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라고 말씀한다(계19:11). 그런데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고 말씀하고 있다(계19:14).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혼자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군대’가 함께 임한다고 하였다.
이 하늘의 군대가 예수의 명을 받들어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세상 임금들과 그 군대들을 남김없이 심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의 군대가 누구일까? 천사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셨을 때 말고의 귀를 자른 베드로를 향해 ‘지금 열두 군단(로마군단 3,000-6,000명) 더 되는 천사를’ 부려 자신을 잡고자하는 자들을 물릴 칠 수도 있음을 말씀하셨다(마26:53).
이러한 근거들을 들어 천사로 해석하려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실 때 천사들에게 맡기실 것인가? 아니면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 당한 144000 두 증인에 맡길 것인가 우리는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 방법들을 통해 신중한 결론을 내려야한다.
스가랴 14장 5절에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주와 함께 임할 ‘모든 거룩한 자들’이 등장한다.
고린도전서 15장 23절에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라고 하였다.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 자’가 있다고 말씀한다. 유다서 1장 14절에도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수만의 거룩한 자’가 함께 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누구인가?
바로 종말의 사명자들인 ‘십사만사천’(계7:4;14:1), 곧 ‘두 증인’(계11:3)이다. 이들이 사역을 마친 후 순교 부활 승천하여 시온산에 있다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함께 임할 자들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도 예수께서 재림 때 함께 임할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자들’이 있다고 하였다.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싸워 승리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자들’은 요한계시록 14장 4,5절에 기록된 144000의 자격 ‘신앙순결이 있는자’, ‘어린양을 따르는자’, ‘사람 가운데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 ‘입에 거짓말이 없는자’, ‘흠이 없는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19장 14절에는 ‘하늘에 있는 군대’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144000은 전 3년 반 동안 예언의 사역을 마치고 적그리스도에게 순교를 당한 후 부활하였기에,
요한계시록 20장 5절에는 첫째부활자라고 말씀하고 있다(계20:5). 성도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부활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죽는다면 천국에 가게 된다. 그렇지만 부활하여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몸은 이 땅에 묻히고 영만 천국에 가서 안식을 누리게 된다. 부활이라는 것은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영과 하나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이 부활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리고 사람 가운데 첫 번째 부활한 것이 144000 바로 두 증인이다.
이들은 종말의 사명자로 전 3년 반 동안 예언 사역을 마친 후 적그리스도에게 죽임을 당하고 삼일 반 만에 다시 살아나서 승천한 부활자들이다. 그래서 144000을 첫째부활자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5장 23절 부활에는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라고 하였다.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라고 말씀한다. 부활이 첫 열매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에 대해서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 다음 사람 중의 첫 번째가 ‘그가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라고 말씀한다.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사람 중에 첫 번째로 부활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예수 재림 때 함께 임할 하늘의 군대인 144000 두 증인인 것이다.
그들을 요한계시록 20장 5절에 첫째부활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부활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다. 부활은 똑같은 부활지만 분명히 순서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부활의 순서를 거부하는 분들이 있다. 에녹과 엘리야는 승천했다. 그러면 그들이 어디에 가 있겠는가? 천국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떤 존재로 가 있겠는가? 변화체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보다 앞서 부활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부활이란 죽음이후 죽지 않을 몸을 입는 것이다.
에녹과 엘리야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 가운데 첫 번째 부활자는 144000이다. 그들은 우리 앞서 부활한 것이다.
에녹과 엘리야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살아있는 성도들이 휴거되고 천년왕국이 마친 후 변화체를 입게 될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렇게 성경에는 변화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 가운데 먼저 부활하는 것은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변화체는 생존한 상태에서 죽지 않는 몸을 입는 것이고 부활체는 죽음이 후 썩지 않는 몸을 입는 것이다.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144000은 우리 앞서 부활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4장 4절에 144000에 대하여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사람 가운데 먼저 부활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144000의 자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 가운데 가장 먼저 부활한 자들이다. 또한 14장 3절에 144000을 가리켜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다.
이것은 7년 환난 중 전 3년 반 동안 예언의 사역을 마치고 순교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144000이 부활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하늘의 군대로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심판한 후,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한다’고 요한계시록 20장 6절에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종말의 시대 적그리스도와 맞서 예언의 사역을 감당하고 순교한 144000 두 증인을 사람 가운데 가장 첫 번째로 부활시키고, 예수 재림에 참예하며,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세상 임금들을 심판하게 할 것이며, 천년왕국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는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종말에 택함 받은 사명자 144000 두 증인 첫째부활자의 영광이다.
종말 계시에 있어 144000 두 증인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은 마지막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이제는 추수 꾼이 낫을 들어 벼 끝에 갖다 댄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만큼 종말은 임박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교회는 올바른 종말의 사명자를 만나야 살 수 있기 때문에 144000 두 증인은 강조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44000 두 증인이 없다면 장차 7년 환난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알 수 없고, 그 간교한 미혹에서 벗어날 수도 없으며, 전 3년 반 동안 대배교자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고, 폭풍 같이 몰아닥칠 환난 기간인 후 3년 반 동안 예비처로 인도함 받을 수 없다.
서론에 이어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성경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는 먼저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을 선택한 후 시작된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하셨다(암3:7).
종말 때에도 예외일 수 없다. 적그리스도에 맞서 당당히 진리를 선포할 하나님의 종들이 택함 받는다. 이들을 통하여 교회를 깨우고 준비시켜 성도들을 마지막까지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내로 믿음을 지켜야만 하는 종말의 각종 시험에도 흔들림 없이 성도들이 구원 받도록 먼저 종말의 사명자를 택하는 것이다. 그들이 144000이고 두 증인이요 첫째부활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144000 두 증인을 빼놓고는 종말을 바로 대비 할 수 없다.
5. 그때에 내가 내영을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사도행전 2장 17, 18절에 “17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 이 말씀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개막된 교회시대를 알리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초대교회 당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17절의 ‘말세’와 18절의 ‘그때’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초대교회와 오늘 뿐만 아니라 종말의 시대를 뜻하는 이중계시가 담겨져 있다.
‘그 때’ 어느 때요 종말의 시대가 되면 ‘남종과 여종을 택하겠다’는 말씀이다. 남종과 여종이라는 표현은 종말의 시대 사명자인 144000은 신분고하 성별여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교직제도로 목회자만이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에 합한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 2절에 천사가 하나님의 인을 144000에 친 것 같이 하나님이 택하는 것이다.요한계시록 10장 11절에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리라’고 하였다.
144000이 세계교회에서 택함 받을 것을 말씀한다.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고 예언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1장 3절 두 증인 144000이 큰 권능을 받고 1260일 동안 감당할 종말의 예언 사역과 동일한 말씀이다.
요한계시록 1장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고 했다. 예수께서 종말의 계시 요한계시록을 주신 대상은 ‘그 종들’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천사를 요한에게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종들의 대표로서 천사를 통해 받은 것이지 사도 요한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 ○○○ 같이 자신만이 요한계시록을 완전히 했기에 사도요한이라는 말은 요한계시록 1장 1절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소리이다.
요한계시록 1장 1절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사람의 해석한 것이라고 내놓은 것은 뻔 한 내용 아니겠는가?
요한계시록은 모든 주의 종들에게 주신 것이다. 목회자들은 자신 있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다니엘 12장 4절에 기록된 종말의 계시가 봉함된 때가 아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닫힌 계시이지 교회시대 이방인인 우리들에게는 요한계시록 22장 10절 말씀과 같이 열린 계시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인봉하지 말라 덮어 두지 말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모든 종말의 계시가 활짝 열린 시대가 오늘이기 때문이다.
1장 19절에 ‘장차 될 일’이라고 하였다. 22장 6절에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하였다.
장차 될 일 속히 될 일인 종말을 알리기 위하여 교회에 준 계시라고 22장 16절에 말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이 시대에는 성도들이 신부로 단정하도록 해야 한다(계19:7,8). 그리하여 ‘흠도 없이 보존하여 신랑 되신 예수를 맞이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살전5:23). 재림을 갈망하는 신앙을 갖도록 하여 악한 권세자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목회자에게는 이것이 소망이요 가장 큰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말씀한다(살전2:19-20).
지금까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144000 두 증인에 대해 문장적 해석으로 논증했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살펴보았지만,
문맥을 찾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 144000을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결론을 맺고자 한다.
7장에서 우리 하나님의 종들로 선발된다. 10장에서 두 증인으로 예언 사명자로 준비된다.
11장에서 1260일 동안 전 세계에서 증인 사역을 감당한다.
12장에서 해를 옷 입은 여자가 낳은 아이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로 교회를 훈련시켜 예비처로 인도함을 받게 한다.
14장에서 땅에서 구속 받은 자로 시온산에 등장한다.
19장에서 하늘의 군대로 흰말 탄자로 예수님과 함께 지상에 내려온다. 20장에서 첫째부활자의 영광으로 천년왕국의 왕권자가 된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민병석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계시의 문장을 무시하면 안 된다. 계시록은 주로 한 장 안의 계시가 하나의 문장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계시록의 내용은 그의 계시의 맥이 계시록 전체에 걸쳐 연결되어 있다.
계시록 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계시의 맥을 무시하거나 끊어버리면 안 된다.13)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문장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을 잊고 한 구절에 나타난 단편적인 사실만을 갖고 해석하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한 사건을 두 세 개의 사건으로 또는 같은 계시를 전혀 다른 계시들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잘못된 해석을 극복하고 좋은 모범이 되는 문장적 해석으로 144000 두 증인을 지금까지 해석한 것이다.
Ⅲ 결론
144000 두 증인은 전체 구원 받은 백성이 아니다. 현재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 같은 이단들이 주장하는 자기들만의 구원 수는 더더욱 아니다.
144000 두 증인은 종말의 시대 예언 사역을 감당할 하나님의 종들이다. 종말 시대 교회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보배롭고 성스러운 존재들이다.
종말계시가 모든 종들에게 열려 있기에 이를 잘 감당하는 자를 예수님께서는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이라고 하였다(마24:45).
그들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자’라고 하였다.
‘때를 따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느 시대인가를 바로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지금은 임박한 종말의 시대라는데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양식을 나눠줄자’, 지금 종말의 시대에 맞는 말씀을 성도들이 먹도록 해야 하는 것은 교회 지도자의 몫이다.
그러나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들과 반대로 ‘악한 종’에 대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한 자들이라고 하였다(마24:48). 이들은 열왕기상 22장 18절부터 기록된 자들과 같이 항상 좋은 것만을 말했던 구약의 길吉 선지자들과 같다.
자신들과 다른 말을 전하는 자들을 흉凶 선지자라고 몰아붙였다.
모욕을 하고 뺨을 때리기까지 하였으며 심지어 감옥에 가두어 입을 막아 버렸다.
이같이 종말의 때에도 평안만을 외치는 악한 종들은 대각성을 촉구하는 ‘동료들’ 즉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들을 때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마24:49). 그러나 이들의 말로는 비참 그 자체이다.
“50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하였다(마24:50-51).
예수께서 악한 종이라고 칭한 자들이 누구인가?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지 못한 자, 웅장한 예배당을 건축하지 못한 자가 아니다.
잠자는 성도들을 깨워 재림을 준비시키지 못한 자들이다.
부르짖어야 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들이 먼저 세워져야 종말의 시대 건강한 교회 성도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종말의 메시지를 부르짖는 것이다.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
본서는 사명으로 생각하고 재림의 임박함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망이 있다면 정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 종말의 사명을 감당하는 종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고 곧게 하였다(막1:2).
이 말씀을 이사야 40장 3절과 말라기 3장 1절의 예언에 대한 성취이기도 하다.
그리고 말라기 4장 5절에 하나님께서 앞으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엘리야 ’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으로 이루신 것이기도 하다. 이를 인정한다면 말라기 4장 5절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을 상고해 보라.
이 말씀에서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2000여 년 전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신 것만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 말씀은 세례요한뿐만 아니라 종말의 사명자들에 대한 예언을 포함하고 있다.
사도행전 2장 17절의 ‘말세’와 18절의 ‘그때’는 요엘 2장 28-31절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여기에도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31).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세례요한 같이 종말의 시대 다시 오실 예수님의 첩경을 평탄케 할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144000 두 증인이다.
세례요한이 초림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자라면 십사만사천은 재림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도하고 갈망해야 할 것이 있다.
‘주여 교회가 종말의 예언 사역을 감당할 144000 두 증인을 배출할 수 있게 하옵소서’ 라고 먼저 기도해야 한다. 1
44000 두 증인은 교회에서 나오는 종들이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나오는 종들이 아닌 것이다.
두 번째 기도할 것이 있다. ‘주여 교회 성도들이 7년 환난에 들어간다고 하여도 전 3년 반 동안 144000두 증인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모두 알곡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후 3년 반 모두 예비처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하옵소서.
한 성도도 적그리스도의 무시무시한 통치에 놓이지 않게 하옵소서’. 세 번째 기도할 것은 ‘주여 우리 생전에 예수 재림을 맞이한다면 우리교회 어린이주일학교에서부터 노년 성도들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휴거되게 하옵소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 같이 신부로 단정되어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게 하옵소서.’
이 간절한 기도 속에서 ‘해를 옷 입은 여자’로 상징된 깨어있고 준비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계12:1).
그래야 종말의 예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로 상징된 144000 두 증인을 배출할 수 있다(계12:5). 그들을 통해 종말의 최대 징조인 적그리스도의 등장이 알려지고 그를 따르려는 배교에 맞서 교회를 진리로 수호하는 위대한 역사를 결론으로 한다.
脚註)
1) “요한계시록 14만4천은 희망의 숫자”. 장신대 김명용 총장, 뉴욕 교협 요한계시록 세미나 인도. 이종철. 2013. 6.6. http://www.newspower.co.kr
2) 김명용 박사의 더 자세한 종말론 연구는 이재현. 『종말론 연구 시리즈(20) 김명용 박사의 요한계시록 해석에 대한 변증』. PGMC. 2014.를 참조하라.
3) 김명용. 『칼바르트의 신학(20세기 최고의 신학이 교부)』. 도서출판:서울 이레서원 2007.09.11.
4) 본 연구에 사용된 김명용 박사의 요한계시록 해석 발췌본은 기자에 의해 정리된 것이다. 편집 과정에서 진의
와 다르게 문서화된 것에 대해 저자가 변증을 한 것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5) 2013년 3월 17일
6) “지금은 전쟁 중이다”(요한계시록 7장:13-14절). 이찬수. 2013.6.16. 이필찬박사는 “민수기 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군대의 계수 기록을 자료로 하여 요한의 목적에 맞게 사용한다. 요한은 민수기의 603,550명의 숫자를 144,000으로 변경시킨다. 이것은 144,000이라는 숫자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한 숫자를 계시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144,000은 12×12×1000으로서 약속으로서의 구약의 백성(12)과 그 성취로서의 신약의 백성(12)에다 완전성과 무한성을 나타내는 숫자인 1000을 곱하여 나온 숫자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의 온전한 숫자를 시사한다” 고 한다. 이 박사는 144000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나안 입성 전 군대 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각 지파별로 인구를 계수한 민수기를 배경으로 보고 있다. 그와 같이 교회시대에 사탄과 전투할 그리스도 군사인 성도총수를 상징한다는 주장이다(이필찬,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도서출판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0. 11.23. pp91.).
7) 김명용, 이찬수, 이필찬 세 분에 대한 인격을 손상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그 분들의 종말론에 관한 반론이다.
8) 정성욱, 「정성욱교수의 밝고 행복한 종말론」, (주)눈출판그룹, 2016.3.7, p.160.
9) Ibid.
10) 10장에서 천사에게 작은 책을 받아먹은 것은 사도 요한을 가리킨다(계10:10). 10장은 11장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분명한 바 11장 3절 ‘내가 나의 두 증인’에서 두 증인은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역시 요한을 지칭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도 요한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는 종들을 대표하는 자로서 계시를 받은 자이다. 사도요한은 1장 1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 종들’에게 계시를 주기 위해 먼저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주신 것이다. 그리고 10장과 11장에서는 사도 요한이 두 증인과 연결되는 계시임을 알아야 한다. 곧 14400과 한 고리인 것이다.
11) 정성욱, 「정성욱교수의 밝고 행복한 종말론」, (주)눈출판그룹, 2016.3.7, pp.203-204.
12) Ibid. p.202.
13) 민병석, 『‘종말론 단기대학’“계시록 12장과 13장의 전개”』, 3p. 밤중소리사역회, 2009.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