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극단적인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부정합니다.
자신이 그렇게 힘써왔던 것들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육체의 할례(빌3:4,5), 이스라엘 족속(빌3:5), 지파, 바리새인이란 정체성의 무의미함을
고백합니다.
왜 이런 정체성의 혼란이 일어난 것일까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 - 빌3:6>로 자신의 과거를 표현했는데,
왜 그토록 신랄하게 자신을 부정하는 것일까요?
심지어 자신의 모든 정체성을 배설물이라 표현합니다.
*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8,9)
바울의 이런 고백은 마치 로마서 7장의 격렬한 자기부정을 보는 듯 합니다.
* 오호라, 나는 곤곤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맘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4,25)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행한 <과거의 모든 것들은 무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보게 됨으로 성령의 내주와 조명을 얻게 됩니다.
실체를 보지 못하면 예표가 예표되지 못합니다.
이런 면에서 칼빈의 율법접근은 놀랄만합니다.
칼빈은 율법에서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율법이 존재했던 목적을 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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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심령이가난한자 작성시간 17.09.06 율법은 우리 자신의 더러운 죄를 보게 하는 거울이에요..율법을 예수그리스도와 동일시 하거나 그 이상으로 치중하면 종교행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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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그네1004 작성시간 17.09.06 그래서 칼빈을 이단이라고 하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2 :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의롭게 되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고 믿음으로 된다는데..
참으로 답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