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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이단의 추억 182, 기록의 태동(1)

작성자하늘천|작성시간26.06.14|조회수29 목록 댓글 0

이단의 추억 182, 기록의 태동(1)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이말은 철학자 데카르트의 어록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사용하고 싶다. 

‘나는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로.

 

오랫동안 디지털 기록을 이어왔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을 언제든지 찾아보기 쉽도록 디지털 기록으로 보관해 두고 있다. 오늘 그것을 다시 꺼내어 보면서 ‘이단의 추억’이 한 시대의 증언이요 기록으로 태동하게 된 경위를 다시 기록으로 남겨놓으려 한다. 

 

디지털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끝내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남는 것은 기록뿐이다. 기억은 사람과 함께 사라지지만, 기록은 시대를 넘어 후세와 대화한다. 그 가운데 책은 한 인간의 사유와 경험을 담아 먼 미래로 보내는 작은 배와도 같다. 

 

언젠가는 '이단의 추억'이라는 이 모든 기록을 몇 권의 책자로 남기려 한다. 혹여 여의치 못하여 그 일을 내 손으로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뜻을 함께하는 누군가가 이를 이어받아 세상에 전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디지털 시대로의 입문]

 

군 복무시절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에는 유일한 홍일점 여군하사 타자수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따뜻한 봄날 병영의 양지바른 잔디밭 벤치에 앉아 그녀는 동생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군에 들어왔다고 입대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안경이 무척 잘 어울리던 그 여군 타자수가 통근버스를 타고 여군본부 숙소로 퇴근하고 나면 나는 그 타자기 앞에 혼자 앉아 독수리 타법으로 군생활의 무료함도 달랠겸 가끔 어디론가 날려 보낼 편지를 타이핑 하곤 했었다.

 

먹지를 끼워놓고  타이핑해서 남겼던 부본 한장이 아직 이렇게 내 잡동사니 가방속에 남아 있다.  

 

여군 타자수의 현란한 손가락 놀림과 사무실에 울려퍼지는 그 규칙적 파열음은 조용한 실내를 늘 경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당시 공병우 타자기의 활자체는 지금의 컴퓨터 글씨체에 비하면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군복무를 마친후 곧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있어 컴퓨터가 회사에 설치되어 업무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나는 컴퓨터의 운용에 꽤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직장의 전산실을 들락거리며 컴퓨터 베이직 언어들을 배우곤 했는데 개인이 컴퓨터를 소지해서 운영한다는 것은 상상 자체를 아예 못하던 컴퓨터의 원시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윈도우 시대가 도래했고 개인의 데스크탑 시대가 활짝 열리더니 금방 개인 노트북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값이 워낙 비싸서 개인 소유의 노트북을 구입 할 엄두가 나질 않았는데,

 

드디어 어느날 큰 결심을 하고 노트북 하나를 장만했다. 당시 DAEWOO에서 만든 60메가짜리 용량이었다. 책 몇권 정도가 입력되면 CPU 메모리 용량이 꽉 차는 정도인데 당시는 그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1980년대말 당시 120만원을 주고 구입했는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외형의 크기와 노트북의 값은 거의 비슷하지만 용량은 수백기가짜리로 확장되었으니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한 수준이다.

                        .     

나는 이 DAEWOO 노트북의 자판을 부지런히 두드려 글자판을 익혔다. 독수리 타법을 벗어나 기필코 열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지에 이르리라 단단히 결심했다.

 

우선 먹기 달콤하다고 두 손가락으로 자판을 콕 콕 찍어대는 독수리 타법의 유혹을 벗어나기 위해 아예 그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않고 아무리 늦어도 열 손가락을 자판위에 올려놓고 더듬더듬거리고 헤매기를 아마도 수백, 수천번...  

 

각고의 노력으로  드디어 열 손가락을 자유자쟤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어느 날부턴가는 분당 300타의 수준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당시 열심히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은 자판 익히기에 아주 훌륭한 교재였고 어느듯 자판을 보지않고 손가락의 감각만으로 글씨나 자료를 보면서 바로 타이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 컴을 다루는 요령을 체득한후 직장에서 각종 업무도 처리하고 메모도 기록해 두고 일정관리도 하고 차분하게 일기도 기록하는등 책상 위에 종이가 거의 필요없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컴의 깊이 있는 운용실력을 습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작은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던 날, 데스크탑 컴을 하나 구입해서 자취방으로 가져가는 짐과 함께 싣고 가서 컴을 켜는 방법과 부팅시키는 방법을 작은 아이에게 상세히 설명해주고 돌아왔는데,

 

작은 아이가 대학의 첫 방학을 맞이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는 벌써 컴의 박사가 되어 있었다. 신세대들은 그만큼 지식의 습득 속도가 엄청  빨랐다. 내가 10년 넘게 걸려서 터득한 지식을 불과 반년도 안되어 나를 훨씬 능가해 버렸다.

 

지금도 나는 노트북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추가하거나 팩스, 프린트등의 설치는 꼭 작은 아이를 불러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간혹 원인불명의 고장이나 작동불능의 경우도 작은 아이는 거뜬이 고쳐내고야 만다.

 

내가 보기에는 신통방통한 일이다. 손가락만 까딱거리면 못고치는 것이 없다. 그동안 데스크탑 컴을 버리고도 몇번 더 교체된 나의 노트북 안에는 숱한 자료와 수많은 삶의 기록들이 누적되어 있다.

 

그 안에는 수십년의 일기도 들어있고 각종 자작글도 분량이 상당하다. 아마도 책으로 발간한다면 십수권에 이를만한 분량이다. 나는 이것들을 잘 정리하고 분류해서 USB에 담아 나중에 손자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대의 추억으로...

 

손자들은 분명 그 불안한 국내외정세 속에서도 할아버지가 숨쉬었던 역동의 시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빛나는 삶의 흔적들을 궁금해 하고 반추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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