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추억 183, 기록의 태동(2)
1993년 무더운 8월의 어느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준비해서 서울로 향발, 시청앞 플라자호텔 커피숍에 도착, 직장과 관련된 몇 사람을 만나 업무상의 대화를 나누고 소공동 소재 롯데백화점 본점으로 가서 잠간의 쇼핑을 하고 있는 중에 아직 세칭 동방교에 몸담고 있는 옛 후배 한명을 만났다. 아주 우연히...
세칭 동방교의 본부격인 서울 용산의 수원정에서 순회자와 전도사를 하다가 탈출한지 거의 20여년이 흐른 시점이다. 개인적으로는 군복무를 마친후 40대의 중반에 이른 나이에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한창 사회활동이 왕성하던 시기이고 세칭 동방교에 세뇌되었던 두뇌는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어 의식적으로 멀리하고 있던 시기였다.
후배와 나는 서로를 알아보고는 하도 오랜만이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커피숍을 찾아 같이 차 한잔을 나누었다. 가만이 그의 근황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보기엔 참으로 딱한 정경이었다. 어찌그리 옛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단 사이비 세칭 동방교에 아직까지 얽매여 있는지, 참으로 종교란 불가사의한 것이란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그날은 그냥 헤어졌다.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이나 흘러 16년이나 지난 2009년 늦가을에 다시 그를 만나는 계기가 있었다. 여러 경과를 각설하고 두부버섯전골로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오랜시간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리를 이동하여 맥주와 치킨까지 시켜 먹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아마 그는 나를 다시 세칭 동방교로 인도하려는 욕심이 있었거나 아니면 현재 세칭 동방교내에서의 자기 위상을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턱도 없는 헛수고인 일이었지만.
나는 그때 그 후배에게 세칭 동방교에서의 내가 겪었던 경험과 그 실상을 가감없이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다고 말을 했고 그 후배는 ‘함 해보이소 머...’ 라고 대수롭지 않은듯 대답했다. 그가 무슨 별다른 뜻이 없이 그냥 말했다고 생각되지만 나는 그날 ‘이단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세칭 동방교의 추악한 실상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사연들을 하나하나 메모해 나가면서 기록을 남기기 위한 기초자료들을 차근차근, 꾸준히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더 지난 2013년부터 ‘이단의 추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첫 기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단의추억 # 1, 기록을 남기고져 한다.
인생은 어차피 자기 책임이 아니던가.
원망도 후회도 없다.
다만 아쉬움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세칭 동방교에 몸 담았던 그 미망의 한 시절,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
우스운 해석으로 ‘적는 자 만이 살아 남는다’고 하던가.
기록을 남기고져 한다.
거짓도 과장도 없다.
진실과 경험을 기록해 놓고 싶을 뿐이다.
읽어 볼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설령 아무도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록을 남기고져 한다.
본 것과 들은 것, 직접 체험 한 것만 기록할 것이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의무요,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글을 배운자의 책무다.
짙게 드리워진 내 인생의 어두운 그림자였던 세칭 동방교에서의 한 시절,
그것 자체가 남이 아닌 바로 내 인생의 한 부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니,
지나가 버린 세월이었으되 때묻지 않은 백지위에 물들여진 소중한 단면들이기에
더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 두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천하보다 귀중한 생명들을 위하여...
인간의 영혼을 사냥하는 이단 사이비의 사슬에 메인 안타까운 이땅의 모든 이들을 위하여...
2013. 7. 24
☆
카페를 개설하여 이 글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기록들을 올린 이후 많은 분들이 카페 멤버로 참여하였고 게시글과 댓글을 통하여 세칭 동방교에서 겪었던 경험과 진실을 공유해 주었으며 관심을 가진 방문자는 수만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진실은 기록의 공유를 통해서 드러났고, 기록은 역사 앞에 두려움이요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었다.
(세칭 동방교에서는 지금 이곳을 OO수도원이라 칭한다. 예전에는 교주盧의 무덤이 있어 해마다 忌日(陰6.19)이 되면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던, '聖地'라고 한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