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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이단의 추억 184, 기록의 태동(3)

작성자하늘천|작성시간26.06.16|조회수33 목록 댓글 0

이단의 추억 184, 기록의 태동(3)

 

[간추린 단편 기록들--1]

--본 단편 기록의 상세 내용은 '이단의 추억' 기록 중 여러 곳에 詳述(상술)되어 있음--

 

세칭 동방교 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은 1983년 미국으로 도망치듯 출국했고 미네소타주에서 거주하다가 파킨슨병으로 2003년 63세 사망, 그의 처 유스도 김여사를 비롯한 가족은 현재 뉴저지에 거주, 큰아들은 근O종, 작은아들은 저O아로 결혼이 어렵고, 盧교주의 장남 아바(노O도)는 사망.

 

盧교주의 장손 요한(농아-아바 노O도의 아들)은 삼촌(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에 의해 애초부터 세칭 동방교와는 멀리 떨어지게 했고 독일에서 공부했으며 결혼하여 현재는 미국에서 생활, 

 

유스도 김여사(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의 처)를 위시하여 가족 모두는 세칭 동방교와는 무관하게 로열패밀리로 생활비는 세칭 동방교 자금으로 지원.

 

소사(성지라고 불리며 세칭 동방교의 盧교주 무덤이 있던곳)에는 한빛수도원이 들어서 있고 전국에 50여교회, 목회자 60여명, 수도자 300여명, 전체교인 5,500여명.

(각 실제숫자는 의문)

 

한국총회를 비롯 명목상의 독일총회, 미국총회, 카나다총회, 콜롬비아총회, 호주총회등이 있고 한국총회장은 경주출신 홍O표로 당시 교주행세를 하던 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이 왜 이 사람에게 책임을 맡겼는지는 의문.

 

지금의 충남 금산에 있는 청남수양관은 청해(세칭 동방교의 교주 盧의 호)와 부남(扶南)(세칭 동방교의 교주 盧의 차남 아브넬의 호)에서 한자씩 따서 수양관, 기념관이 됐고, 

 

충남 금산군 군북면 내부리 소재 야산 35,000평을 구입, 대지 9,500평을 형질변경하고, 대지 구입 자금과 토목공사에 50억 정도, 건축공사에 100억 정도를 투입, 기념관과 교회당, 체육관, 약 30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숙사와 식당시설등을 배치.

 

홍종기박사의 ‘생사의 피안’이라는 책자를 어느 세칭 동방교 신도가 부산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그대로 복사하여 여러 사람이 가지고 있음.

 

세칭 동방교에서 그토록 자랑하던 홍종기박사가 썼다는 ‘생사의 피안’을 실제로 찾아보고자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일부러 찾아가서 검색해 보니 그런 책은 없고 양주동박사의 ‘생사의 피안에서’라는 책만 검색상으로 나타남.

 

세칭 동방교의 사주중 한명인 요나단(정O덕)이 盧교주의 사후 자기가 교주가 될려는 욕심으로 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을 독살하기로 했다는 이야기, 큰집(세칭 동방교 신자들의 합동숙식소)에서 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이 속이 안좋아 음식을 안먹고 아까워서 개에게 주었는데 그 개가 바로 죽어버렸다는 것.

 

그 요나단(정O덕)은 지금 비무장지대 늑대로 환생하여 울부짖고 있으며, 그런 생을 몇번 더 거쳐서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것이라고 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이 발언. 

 

요나단(정O덕)이 마지막에 1~2천만원 정도의 지성(헌금)을 가져와서 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에게 받아달라고 애원했는데 거절당하고, 꼭 그러면 파고다공원의 노인들에게 식사나 대접하라고 했는데 그 마누라가 돈이 아까워서 안했다.

 

그런 인간을 왜 어르신(여기서는 盧교주를 말함-그는 죽었지만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으니까)이 용서하는지 모르겠다고 어르신(여기서는 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을 말함, 같은 어르신이라도 지칭은 다름)이 말했다.

 

불어교사 출신인 D(이단의 추억 #50, 그 시절 편린 하나 참조)는 프랑스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세칭 동방교 盧교주의 일제시대 활동기록을 찾아내어 전해야 되는 사명을 갖고 있다고 하는 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프랑스를 다녀왔다. 물론 빈털터리로 돌아왔지만.

 

세칭 동방교의 盧교주 조상들을 모시는 차례식을 어느곳 한군데서만 지키고 있는데 그때는 성가(세칭 동방교의 구슬픈 가락)도 부른다. 이런 것을 비롯한 구성민과 현재 일반 교인들과의 괴리문제가 현재 세칭 동방교의 가장 큰 고민거리.

 

김희O는 서울대 약대출신, 김두O는 서울대 상대출신으로 김희O는 김국장으로 불리면서 세칭 동방교의 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있었는데 인삼관련 논문제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그후로는 김박사로 불렸고 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이 산기도 다녀오기를 종용했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듣지 않더니 결국 행정총괄업무를 뺏기고 지금은 어디있는지 연락두절 상태.

 

김두O는 김여사(유스도-盧교주의 차남 아브넬의 처)의 이화여대 친구인 간호원(미국거주)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가서 마누라가 버는 돈에 얹혀 살고 있고, 세칭 동방교와는 멀어진 상태.

 

미국에 살고 있는 유스도  김여사가 환갑후에 청남수양관 공사 현장에 들렀고 그 부근에 있는 JMS타운을 구경갔을때, JMS타운에서는 바위를 JMS가 손으로 쩍 갈라서 바위같은 그 큰돌을 JMS가 그의 능력으로 세웠다는등 우상화시키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고 김여사가 ‘우리는 안그랬어요’ 라고 함.

                           (청남수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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