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추억 188, 기록의 태동(7-終)
이단의 추억, 그 기록의 胎動(태동)을 가감 없이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그것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붙들어 두려는 작은 몸짓이기도 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것들은 잊히고, 또 일부는 의도적으로 감추어진다. 그러므로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기록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당시의 정황과 사람들의 증언,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드러난 사실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왜곡되기 쉽다. 그러므로 비록 누군가에게 불편한 진실이 될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수집한 더 많은 자료와 대담 기록을 간직하고 있다. 문서와 편지, 구술 증언, 그리고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과의 대화가 그 바탕이 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차마 입에 올리거나 글로 옮기기조차 민망한 사실들도 존재한다.
인간의 욕망과 오만, 그리고 그 이상한 사이비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었던 얼척없는 일들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어떤 것은 믿기 어려울 만큼 기이하며, 또 어떤 것은 차라리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편이 나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사는 언제나 아름다운 순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숨기고 싶어 하는 어둡고 칙칙한 그림자 속에서 더 많은 교훈이 발견되기도 한다.
선사 이래 역사는 기록을 통해 살아남아 왔으며, 기록은 인간을 빛나게도 하고 두렵게도 한다. 문자 이전의 시대에도 인간은 동굴 벽화와 구전 설화를 통해 삶의 흔적을 후대에 전하려 하였다.
문자가 생겨난 이후에는 돌에 새기고, 죽간과 양피지에 기록하였으며, 종이와 인쇄술의 발달을 통해 기억을 더욱 견고하게 보존해 왔다. 그 모든 기록은 인종과 시대를 건너 오늘날 우리에게 도달하였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선인들의 영광과 비극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기록은 인간을 영속하게 만드는 수단인 동시에, 허위와 위선을 폭로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이름 없는 한 사람의 일기장이 거대한 권력의 거짓을 드러내기도 하고, 사소한 메모 한 장이 시대의 진실을 증언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록은 때로 칭송의 대상이 되지만,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이 남는 것을 경계하였고, 때로는 문서를 불태우거나 역사를 새롭게 쓰려 하였다.
그러나 진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일부가 훼손되고 왜곡되더라도, 다른 곳에 남겨진 흔적들이 서로가 서로를 증명하며 결국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내가 남기고자 하는 기록 또한 그러한 의미를 지닌다. 세칭 동방교의 여러 단면을 있는 그대로 후세에 전하고자 함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기억에 유리한 부분만을 취사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억은 흐려지고 감정은 변한다. 반면 기록은 당시의 언어와 숨결을 간직한 채 오랜 세월을 견뎌낸다. 비록 그것이 완전한 진실을 담보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후대의 사람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일 또한 또 다른 기록의 일부가 될 것이다. 먼 훗날 누군가는 이 문장들을 읽으며 당시의 시대와 사람들을 상상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여기에 담긴 사실들을 토대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역사의 본질이다. 역사는 끝난 과거가 아니라, 끊임없이 읽히고 해석되며 새롭게 이해되는 살아 있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남겨진 자료와 증언들을 함부로 폐기하지 않으려 한다.
침묵이 미덕이 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기록이 의무가 되는 순간 또한 존재한다. 비록 드러내기 민망한 사실과 차마 언급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지라도, 그것들 역시 세칭 동방교라는 이해하기 힘든 희대의 집단을 바라보기 위한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행 기록에 나타난 아마샤와 마태목사 외에도 나다, 니고데모, 다대라, 사무엘, 스불론, 요엘, 디몬, 고니아, 디베료, 미리암, 누가, 하난, 가바다, 두루실라, 비디아, 에노스, 드보라, 베냐민, 두기고, 야이로, 실라, 오벳등등 많은 이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이들은 모두 한 시절 세칭 동방교에서 동시대의 애환을 함께했던 추억 속의 인물들이며, 격동의 세월을 증언하는 산증인들이다. 세월은 흘러 사람은 흩어졌으나, 그 이름들은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으며, 각자의 삶과 함께 그 시대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름만으로 남겨진 이들 역시 한때 같은 공간에서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 대한 기억의 표식이자, 세월의 증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좋은 기록은 반드시 거창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의 기억과 몇 장의 사진과 문서, 그리고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는 단단한 마음이 훗날 그 시대를 증언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과거는 말이 없다. 다만 그것을 기억하는 자들의 가슴속에서 숨 쉬고 있을 뿐이며, 마침내 기록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결국 역사는 기억하는 자들의 것이 아니라 기록하는 자들의 것이며, 기록은 인간을 빛나게도 하지만 동시에 두렵게 만드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