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6.15. 레지오 훈화- 행복은 느끼는 것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한 한 주를 잘 보내고 계십니까?
일찍이 톨스토이는 “행복론”에서 “행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행복을 잘 느끼고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행복을 찾아 나섭니다. 마치 벨기에의 극작가 메테렐링그의 명작 “파랑새”를 찾아 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행복의 조건을 돈으로 사려고 하고, 좋은 집에서 얻으려고, 하지만 행복은 조건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조건이 잘 갖춰졌다 하더라도 그 마음속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 행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기문학의 대표자였던 아미엘은 말하기를 “행복의 진정한 이름은 만족”이라고 했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만족을 아는 인간의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운을 행복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행복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선이지만 행운은 운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요행이요 우연히 굴러오는 것입니다. 행복은 행운처럼 우연히 얻어지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창작하고 힘쓰는 가운데 얻어지는 보람입니다. 앞에서 잠깐 나온 “파랑새”의 끝머리에 보면 “아니 저것이 우리가 찾아 헤매던 파랑새로구나. 우리는 멀리 가서 찾았는데 바로 우리 집 처마 끝에 있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두 어린이가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멀리 떠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강을 건너도 산을 넘어도 행복의 파랑새를 찾을 수 없었는데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집 처마 밑에서 노래를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행복을 꿈꾸며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연애시절처럼 남편이나 아내가 행복을 주기만을 기다리다보면 권태가 오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행복하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고 협력하면 행복한 나날을 느끼고 살게 될 것입니다.
행복을 만드는 신앙인의 삶을 말씀드리자면 먼저 감사하는 것입니다. 만사를 감사로 이어가야 합니다. 흔히 결과만 놓고 마음에 들면 감사하고 불만족스러우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불평합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바쿡 예언자는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는 딸 것이 없고, 밭은 먹을 것을 내지 못할지라도, 우리에서는 양 떼가 없어지고, 외양간에는 소 떼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리라.”(하바쿡 3,17-18)라고 했습니다. 하바쿡 예언자처럼 없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지면 어떤 경우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베푸는 것이 행복입니다. 받는 것으로 행복하려 할 게 아니라 주는 마음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보람으로 삼을 때 행복한 삶이 됩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만드는 보람이 행복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을 느끼는 행복한 한 주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