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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주는 초림 때의 능력을 폐하시고 책망하신다

작성자티끌|작성시간26.06.10|조회수2 목록 댓글 0

 

 

재림주는 초림때의 초자연적 능력을 폐하시고 책망하신다

 

 

 

 

1. 오늘의 재림예수님은 왜 초자연적 능력을 폐하시는가?

 

성경기록시대는 구약 때나 신약 때나 오로지 초자연적인 능력을 위주로 성령이

역사되었다. 오늘날의 기독인들도 그러한 성경을 읽고 믿는 신자들이므로

"성령" 이라고 하면 우선 당연히 온갖 초자연적 능력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성령의 본질은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말씀(로고스=이성=논리=형이상학)이다.

초자연적 능력이 아니다. 능력이 아님에도 성경기록에서 성령은 모두 초자연적

능력으로 행사되었고 기록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본질은 초자연적

능력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말씀(진리)과 초자연적인 능력이란

어떤 관계인가를 알아보기로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곧

사람 하나님이 되시는 분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초림 때와 재림 때가 있다.

왜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가?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육체를 입고 오셨으며 하나님을 온전히 알면 영생을 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초림 때는 말씀을 비유로 주시고 재림 때는 말씀을 낱낱이 풀어주신다.

 

예수님이 초림 때는 비유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었다.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중에 지금까지

영생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수제자 베드로도 죽고 없고,

사랑하는 요한도 죽고 없고, 심지어 예수님을 낳아주신 마리아도 죽고 없다.

 

이처럼 예수님이 초림때는 말씀을 비유로만 주셨기 때문에 우리 중에 아무도

영생할 수가 없었지만, 그 대신에 예수님은 초림 때 온갖 초자연적 능력을

보여주셨다.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주시고,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고

흉흉한 바다도 잠잠케 하시고, 물위도 걸으시며,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시며, 심지어 죽었던 자들도 다시 살게 해주시는 등,

온갖 초자연적 능력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그와 같은 온갖 초자연적 능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한 온갖 능력이란 "영생" 이라는 구원속에 모두 포함되는 부분들이다.

즉 영생을 받으면 온갖 초자연적 능력을 한 몸에 받는 일이 된다.

 

죽음도 없고, 아픔도 없고, 귀신 들리지도 않고, 눈물도 없는 영원한 삶을

살게 될터이므로 그렇다. 이같이 능력의 궁극적 목표는 오직 한 가지

영생이며, 영생의 조건은 말씀을 깨닫는 데 있다.

 

그러므로 과거 초림 예수님의 온갖 능력이 중요한가? 오늘날 재림때 말씀을

온전히 깨닫는 것이 중요한가? 두말할 나위없이 오늘날 재림때 말씀을 깨닫는

일이 절대로 중요하다. 과거 초림때의 초자연적 능력은 오늘날 영생하게

될것을 영화의 예고편격으로 보여주신 것이 되기 때문이다.

 

본 영화가 아니고 예고편이므로, 병을 고침받고 죽음에서 다시 살려주심을

받은 자들도 다시 병들고 죽고 없다. 하지만 오늘날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그 상급으로 영생을 받게 되면 다시는 병들지 않으며 죽지 않는다.

 

예수님은 초림 때 능력을 보여주셨으나, 그 능력이란 오늘날 재림 때

말씀을 깨달은 자에게 영생을 주시리라는 그 약속을 미리 보여주신 예언격일

뿐이다. 오늘날은 말씀을 깨달으면 영생을 받기 때문에, 과거 초림 때

보여주신 그런 능력이란 필요가 없다.

따라서 그런 능력을 주시지도 않거니와 그런 능력을 불법이라고 정죄했다.

그 일례로서 마태복음 7장 21절 이하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라고 했다.

예수님이 초림 때는 온갖 능력을 행하시고도 재림때는 그런 행위를 불법이라고

정죄했다. 재림 때는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상급으로 곧장 영생을 주실

터이므로, 그런 능력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폐하신 것이다.

 

오로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오늘날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아버지의 뜻)을 깨달아야만 영생(지상천국의 영생)

받는 절대조건이 되기 때문이다(요17:3). 따라서 마지막 때는 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깨닫는 일 뿐이다. 오로지 비유의 말씀을 깨닫고 지켜 행하는 일,

그것이 영생을 받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2. 오늘의 재림 예수님은 왜 기독인을 책망하시는가?

 

히브리서 9장 28절에서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라고 했다.

 

히브리서 필자인 바울은 예수님이 초림 때 주신 복음이 비유임에도

불구하고 그 복음으로 이미 죄사함과 구원을 다 받았다고 가르쳤으며,

그리하여 재림 때는 하나님을 모르는 죄와 상관없이 두번째 나타나시리라고

했던 것이다.

 

죄와 상관없이 두번째 나타나신다는 것은 재림주가 초림주의 복음을 믿는

기독인들을 무조건 하늘로 데려갈 일만 남았다는 뜻인데,

그게 참으로 황당무계하고 천인공노할 궤변인 것이다.

 

바울의 믿음은 예수님의 재세시에 허락된 믿음일 뿐, 오늘의 믿음으로는

어림도 없는 불합격 판정이다.

마치 초림 때 예수님이 보여주신 온갖 초자연적 능력들이 그 당시에만

적용될 뿐 오늘날엔 폐해졌듯이, 그 당시 바울의 기록도 그같이 폐해져야 한다.

즉 예수님의 초림 때의 믿음과 오늘날 재림 때의 믿음은 서로 달라야 한다.

 

초림때는 복음의 씨를 뿌리는 때로서 능력을 보여주셨으나 그 능력들이

추수기의 재림 때는 영생을 의미하는 비유였으므로 마땅히 폐해져야 한다.

초림때는 육체의 피를 흘려서 죄를 사해주신다고 하셨으나, 그 죄사함의

방법이 재림 때는 말씀의 피를 흘려주시는 일로 대체되어야 하는

비유이므로 마땅히 폐해져야 한다.

 

때문에 초림 때 이미 단번에 죄사함과 구원을 받았다고 믿으며 재림 때는

죄와 상관없이 두번째 나타나시리라는 바울의 기록은 오늘날의 양식이

될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 아주 흉악한 마귀의 비진리 일뿐만 아니라

하늘로의 휴거란 노망난 망상인 것이다.

 

오늘날 재림 때야말로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의 죄를

엄중히 묻고 책망을 하시게 됨을 알아야 한다.

그 일례로 예수께서 요한복음 16장 8-11절에서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라고 하셨다.

"그가 와서" 라고 했는데 그는 다시 오시는 재림 예수님을 칭한다.

오늘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했다. 성경은 무교자가 아니라 믿는 신자를 대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기독인들(기성교단)을 책망하신다는 것이다.

 

믿는 신자들을 왜 책망하시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주기도문에서도 알려

주셨듯이, 초림 때와 재림 때에 먹는 양식이 달라야 하는데 사람들이

재림 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림 때의 구양식을 먹고 있기 때문에

책망을 하신다는 것이다.

 

 

1)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란 무슨 뜻인가?

 

사람들은 예수님이 초림 때 흘려주신 육체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예수님이 초림 때 행하신 능력을 달라고 간구한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초림 때의 믿음과 양식이지, 재림 때의 믿음과 양식은 아니다.

때문에 오늘날은 재림 예수님을 믿지 아니한 죄가 있는 것이다.

즉 재림 예수님을 믿지 아니한 그 죄를 책망하신다고 한것이다.

 

 

2)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란 무슨 뜻인가?

 

말씀을 알면 영생이라고 했는데(요17:3), 예수님은 초림 때는 말씀을

비유로만 주셨기 때문에 아무도 영생하는 자가 없었다. 즉 예수님은 지상

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께로 떠나가셨기 때문에 다시는 초림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된다.

 

만일 초림 예수님을 오늘날 다시 보게 된다면, 즉

오늘날에도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초림 때처럼 비유로 말씀하시고 육체로

피를 흘려주신다면, 그것은 천국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전히 초림 예수님께서 행하신 능력이나 육체의 피로

구원을 이미 받았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실 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초림 예수님께만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절대로 아니기 때문에 "의에 대하여 책망하신다" 고 한것이다.

 

 

3)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의 뜻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초림 때 천국복음을 비유로 주시고 땅끝까지 전해지면

다시 오신다고 했다. 왜 다시 오시는가? 말씀을 비유로 주셨기 때문에

그 비유말씀을 낱낱이 창세부터 해독하시어 구원하러 다시 오시는 것이다.

말씀을 알면 영생이라고 했듯이. 우리에게 말씀을 온전히 알려주시고

영생의 천국을 안겨주시려고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비유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는 자는 영생이요,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심판이다.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심판을 받기 때문에, 심판의 대상은 저 무교자가 아니라 믿는 신자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수억의 믿는 신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스스로 믿고

있으면서, 심판의 대상은 믿지 아니하는 무교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믿는 신자들은 세상의 임금들(무교자인 세상사람들)을 심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은 비유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의 임금들은

오늘날 잘못 믿고 있는 교회지도자들을 위시하여 모든 신자들을 말하고

있는데, 모든 신자들은 반대로 심판의 대상은 문자 그대로 세상의 임금들

이라고 잘못 믿고 있다. 믿는 자기들은 구원이요, 믿지않는 세상사람들은

멸망이라고 심판하고 있다.

 

이처럼 믿는 신자들이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고 있는 그 잘못된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고 한것이다. 왜 세상사람들이 아니고 믿는 신자들에게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는가?

 

예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먹으라고 했다. 구약때의 사람들은 예수님(초림)이

오셨을 때는 즉시 예수님께 유월하여 그날의 양식을 먹어야 하고, 오늘날엔

재림예수님이 주시는 새양식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 시대나

과거 전통적 교단의 교리에 익숙해서 새진리의 말씀으로 유월하기를 두려워한다.

 

이처럼 성경은 어느 시대나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되었으며 따라서 구원도 심판도 책망도 믿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결코 무교자인 세상사람들을 대상으로 성경은 기록되지 아니했으며

그들에게 구원도 심판도 책망도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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