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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동력과 관련된 글 시리즈-1

작성자금충|작성시간02.11.02|조회수118 목록 댓글 0
『아누』의 출간에 덧붙여



양자역학의 기초를 다진 하이젠베르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모습은 우리가 탐색하는 방법에 의해 드러난 것일 뿐 실제의 모습은 아니라는 요지의 내용을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깊은 통찰을 통하여 얻어진 것으로서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모습은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탐색하는 장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자연의 모습을 알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탐색하는 방법 자체에 대해서도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축구공만한 탐침봉으로 축구 골대의 그물을 탐색한다고 하자. 우리는 골대에 그물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탐침봉을 서서히 골대에 갖다 대보니 탐침봉이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는 골대에는 어떤 막이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더 정밀한 측정을 시도한 결과 편평한 막은 아니고 중간 중간에 일정한 배열로 약간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흐른 다음에 골프공만한 탐침봉이 새로이 개발되었다. 이것은 당연히 축구공만한 탐침봉보다 정밀하고 감도가 높을 것이다. 이것을 이용하여 축구골대를 측정한 결과 막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 사실은 중간 중간에 숭숭 구멍이 뚫어진 그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축구공만한 탐침봉으로 얻어진 축구 골대의 모습과 골프공만한 탐침봉으로 얻어진 축구골대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다. 전자에서는 더 나아가지 못하는 막으로 인식되었으나 후자에 따르면 숭숭 구멍이 있어서 그물코보다 작기만 하면 얼마든지 통과하여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된다. 자연과학적으로 비유하여 말한다면 전자는 파장의 길이가 수백 ㎛가 되는 가시광선이고 후자는 이보다 1,000분지 1만큼이나 짧은 감마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탐침봉을 사용하여 자연을 탐색할 때 탐침봉의 감도 이상의 정보를 얻지 못한다.

위의 예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한 가지는 탐침봉을 이용하여 얻어진 자연의 모습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이것은 자연적으로 탐침봉의 한계는 어디인가 하는 데로 귀결된다. 논리적으로는 그 한계가 있을 수 없게 되므로 끝없는 여정이 반복될 것이며 결국 우리는 우주의 참 모습을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탐침 방법 자체에 대한 것이다. 자연은 과연 탐침봉을 이용한다고 하는 모습으로 탐지가 완전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이 물질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과도 연결이 된다. 쉽게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인체는 마음과 몸과 기운이 같이 어우러져 작용한다. 그런데 탐침봉이라고 하는 장비는 몸을 측정하는데는 적절하나 마음을 측정하는데는 적절하지 않다. 물리학에서는 우주의 구성에 대해 11차원 이론 등이 전개되고 있는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3차원의 잣대로 다른 높은 차원의 세계를 재려 한다는 것은 무모한 시도가 될 것이다. 2차원의 자로는 3차원의 공간을 잴 수 없으며 3차원을 측정하려면 3차원적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물리학에서 지금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보어의 원자모델을 한번 살펴보자. 우선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의 가설에 근거한 모델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 모델은 원자의 여러 가지 특성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하고는 있으나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외각 전자들의 숫자가 수소와 텅스텐의 경우, 각기 1개와 74개이나 원자반경은 오히려 1 : 0.88로서 텅스텐이 더 작다. 어떻게 하여 텅스텐의 전자들은 그렇게 밀도 높게 눌려 있는 것일까? 또한 전자가 일정한 궤도를 따라 도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으나 불행하게도 아무도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직접 관찰한 사람은 없다. 양자역학적으로는 확률론에 따라 전자 궤도구름이라는 억지 설명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 궤도운들이 겹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없다. 결국 전자 하나하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탐침봉을 발견하기 전 까지는 아마도 이렇게 움직일 것이다라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설사 새로운 탐침봉을 발견하였다 하여도 그 다음 문제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물질적인 세계관과 비물질적인 세계관이 같이 어우러져 발전하여 왔다. 물질적인 세계관은 우리가 오감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어 보편적이고 역사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신비한 경험을 한 사례가 매우 많이 있고 다른 세상에 대한 경험담은 항상 사람들에게 신비한 느낌과 함께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왔다. 중세에는 종교적 신념과 연계되어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기도 하였으나 신비한 능력에 대한 사례는 비록 주류의 역사는 아니어도 전 세계에 걸쳐 골고루 퍼져 있으며 인류 문화 유산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전통이 있어 인류의 역사는 다양함을 더하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두 가지는 과학과 예술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이 있어 삶이 풍부해지는 것과 같다.

인류의 역사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드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이다. 다양한 문화적 전통이 수용되는 환경에서 새로운 세계관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고 창의적인 활동이 왕성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인류의 역사는 또 다시 살을 찌우고 풍요로운 전통을 전수하게 된다. 이러한 전통을 고수하고 이어져 내려가게 하는데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어느 한 가지만이 옳다고 하는 교조적인 신념이다. 이러한 신념이 강요되었던 시대에는 인류의 역사가 정체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다.

최근 들어서는 현대문명이 물질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발전 한 때문에 물질론적 세계관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물질적인 인식론에 대해서는 주류의 과학계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거부감까지도 보이고 있다. 비록 우리가 물질문명의 혜택을 많이 누리고 있으나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항상 그래 왔듯이 회의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서양의 역사에서 보면 뉴튼역학의 기초를 이룬 뉴튼이 30대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유도한 다음에 죽을 때까지 신지학에 푹 빠져들었던 데에서도 보듯이 비물질적인 세계관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 내려 왔고 서구 역사의 중요한 일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신지학에서는 그 특성상 인간의 오감에 의존하지 않는 때문에 그 접근방법이 보편적이지 않고 또한 그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지극히 드물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타당성을 검증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접근 방법이 탐침봉을 이용하는 방식보다 나을 수도 있는 것이 탐침봉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대상을 건드리지 않고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고 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능력에 의존하여 대상을 탐구하는 경우의 정보 취득 방식은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공명을 통하여 대상과 같은 상태가 됨으로서 스스로 아는 방식이어서 정확한 정보가 얻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신지학적인 방법에 의해 얻어진 결과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하고 기존의 사고체계나 가치관에 따라 판단을 내리기 전에 하이젠베르그가 말한 내용을 상기하면서 일단 판단을 유보하고 이를 인류 역사에서 하나의 전통을 이루고 있는 유산으로 받아들여 여유롭게 읽어 나간다면 그만큼 우리의 사고는 더 풍부해질 것이다. 만약에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는 기존의 사고체계를 고집한다면 그 틀 안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 것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기존의 사고체계가 완벽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사고체계의 틀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배척하게 되어 사고의 확장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지학의 전통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보다 여유가 있게 되고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사고의 유연성이 회복되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소개된 것들은 영적 세계와 같은 저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고 실질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에 대한 것으로는 이것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 사실 서양의 근대화학은 신지학을 기초로 한 연금술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이는 이미 알고 있다. 예술의 영역이었던 연금술을 화학이라는 과학의 영역으로 만들어낸 것이 오늘날의 과학문명이다. 언젠가 신지학도 모든 이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옳다 그르다 하는 판단은 잠시 유보하고 이러한 설명이나 방법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풍부한 인류의 유산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항해하시기 바란다. 시시비비에 대한 논쟁은 우리가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한에 있어서는 무의미한 시간낭비일 뿐이다.

남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해 오랜 동안 궁구하면서 신지학의 또 다른 면을 소개하는 좋은 책을 쓰신 문성호씨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이러한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한 출판사의 용기에 대해서도 경의를 보낸다. 모쪼록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서 많은 분들이 풍요한 인류의 유산을 누리고 사고의 유연성,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각의 유연성을 회복하면서 사시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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