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들의 쉼터 카페의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금일은 무술년 08월 27일의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상쾌한 월요일의 하루이었으나 이른 시간부터 온종일 비가 내리더니 오후 늦게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필자는 금년 02월 28일부로 그 동안 약 35년간 재직하던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직을 하였는데 그 동안 변하여버린 사항이 교육 현장에서 엄청나게 변하여 적응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우리 금천초등학교가 아닌 금천국민학교 재학 시절에는 아마도 대부분의 동문들이 병신생으로 원숭이들인데 물론 일부는 양과 말도 존재하고 닭도 존재하지만 그 시절에는 보통 화폐는 십환이라는 동전을 1원으로 이용하고 보통 지폐도 1원권과 5원권이 존재하였으며, 보통 학용품은 1원이면 연필이나 지우개를 구입하였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특이 우리들은 삼거리(현재는 사거리) 소재의 동남이 부모님이 운영하셨던 수강상회와 또 다른 동문인 순옥이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대중상회가 존재하였는데 우리는 보통 대중식당이라고 하였으니 정말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필자가 창피한 고백을 하자면 최초의 도서 구입은 국민학교 제2학년 재학시절로 기억하는 바로 지난 1964년의 05월 중순의 어느날 대중상회에서 2원을 지불하고 "뿔"이라는 만화를 구입하였습니다.
금천국민학교의 교정도 현재와는 전혀 달라서 운동장 주변으로 벚나무가 존재하고 서편 도로변으로 거대한 소나무가 한그루 존재하였는데 당시에 귀신나무라고 소문이 났는데 현재는 머나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버린 승근이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일월식당에서 돼지고기를 구입하여 밤에 이동하면 그 귀신나무에 존재하는 처녀 귀신이 고기를 빼앗기 위하여 나타난다고 소문이 나기도 하였으며, 당시의 가게는 학교 교문옆에 존재하는 조구만 구멍가게는 우리의 1년 후배로 역시 얼마전에 머나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버린 시의원 출신 환균이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와 포장도 되지 않은 도로변에 초가집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가게는 노인 부부가 운영하였는데 우리는 그 가게를 영감할멈네 가게로 명명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는데 당시에 학교앞 근처에는 모두 논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현재는 각종의 빌딩과 열립주택 및 상가가 존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재학 시절에는 학년당 재학생은 약 300여명으로 학생수가 무려 1,800여명이 되었으나 현재는 전교생이 87명으로 모든 학년당 학급수도 모두 1학급으로 알려지고 있는 상황인데 지난 시절에는 금천남국민학교가 존재하고 그 이후에는 금천동국민학교가 존재하였으나 현재는 금천남초등학교와 금천동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학생수가 급감하였으니 정말 대단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벤또라고 명명되었던 도시락에 보리밥과 김치를 담아 책가방이 아닌 책보자기에 넣어 등교하여 교실에서 책보자기를 풀어 헤치면 교과서와 공책은 온통 아름다운 적색으로 염색되어 당황하였는데 바로 김치국물이 흘러 염색을 하였으며, 신발은 모두가 운동화가 아닌 보생산업의 타이어표 검정고무신으로 구입하면 누군가 가져간다는 이유로 문구용 칼로 바닥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도 하였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검정 고무신은 가끔 논두렁이나 하천에서 의복이 물에 젖은줄 모르고 손으로 피래미나 우렁이 및 미꾸라지를 잡아서 고무신에 넣고 귀가하여 부모님으로부터 "호랭이나 콱 물어갈 놈아, 염병허고 공부나 허재 지랄허고 댕기냐 !"라고 하시면서 회초리나 빗자루로 전국구 맛사지(?)를 당하면 울면서 마을의 골목길로 달리기 경주를 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민족의 대명절인 구정이나 한가위는 그렇게 좋을 수 없었으니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은 마치 전역을 앞둔 군인들이 군모에 달력을 기록하고 매일 하루씩 지워나가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절이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명절이 다가오는 정말 괴로운 시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 농번기라는 미명하에 보리 탈곡 시기와 모내기 기간이나 가을철 추수기에 가끔 휴무일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으나 농번기가 끝나면 이삭줍기라는 미명하에 보리나 벼를 가져오도록 하였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또한 보리베기와 모내기 등의 노력 동원을 하기도 하였고 어떤 경우는 논두렁에 막대기를 이용하여 구멍을 뚫고 콩을 넣어 콩을 이식하기도 하였으니 정말 대단합니다.
필자 또한 국민학교 재학 시절에 가장 좋은 달은 바로 10월로 10월 01일은 국군의 날로 휴무일이고 10월 03일은 개천절로 휴무일이고 10월 09일은 한글날로 역시 휴무일이었으며, 10월 24일은 유엔의 날이라고 휴무일로 지정되었던 것인데 세상에 어떻게 학생들이 국군의 날과 유엔의 날이라고 휴무일로 정할 수 있었는지 이제와서 생각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상태입니다.
물론 현재는 이러한 휴무일이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토요 휴무일이 등장하여 수업일수가 훨씬 더 감소하여 학사운영에 애를 먹고 있는 상태입니다.
위의 사진은 지난 유년 시절에 농번기에는 당시에 식량 부족으로 보리를 경작하였는데 이러한 보리베기 노력동원에 참여하고 또한 보리를 수확한 후 모내기를 할 경우에도 고사리같은 손으로 모내기 노력동원에 참여를 하였으나 오히려 어린 아이들이 모내기 근로 동원은 농민의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고사리같은 어린 아이들이 노력한 댓가는 당시에 학교 비품을 구입하거나 학교의 도서를 구입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농민들이 보리를 경작하지 않는 상황으로 변하고 또한 천년 목사골 소재의 본가 마을앞의 논은 대부분 매립하여 배나무와 포도나무 및 복숭아나무를 식재하여 과수원을 경작하고 있는데 오늘날 싱싱하고 맛이 좋은 열대과일이 저렴하게 물밀듯이 진입하여 배의 고장 나주는 현재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 있는 지경으로 실제로 필자의 과수원 맞은편에 존재하는 마을 주민의 배나무 과수원에 매도가 되지 않아 지난해 모두 절단하고 다시 논으로 경작을 하고 있으며, 필자의 배나무 과수원 옆의 약 3,000평의 배나무 과수원도 금년의 경작을 마치면 모두 절단하겠다고 그 농장 주인이 직접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금일은 이른 시간부터 차분하게 비가내리더니 오후에는 온종일 흐린 날씨로 몹씨 스트레스가 쌓이는 날씨로 마무리를 하고 이제 목욕을 한 후 몇년 전 구입한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을 구독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