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위기인 이유>
한국 교회가 위기라고 말하면 싫어합니다. 여전히 교회에 사람이 많고 열심히 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왜 계속 부정적인 말을 하냐”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 신학교와 교단, 교회들을 만나왔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텅 비어있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변화되어야 하는 ‘주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좀 더 사역이 잘(?) 풀릴지도 모르겠으나 그게 하나님 부르신 제 소명이 아니기에.
1. 통계
지금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탈종교화입니다. 무교 비율은 이미 60%를 넘어섰고, 코로나와 AI, 개인주의를 거치면서 ‘교회’, ‘목사’, ‘교회’라는 키워드는 신뢰를 잃고 ‘혐오 키워드’에 가까워졌습니다.
지표는 냉정합니다. 개신교 인구는 불과 8년 만에 약 200만 명이 감소했습니다. 반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성도’는 226만 명에 달합니다. 개신교인 10명 중 약 3명(30%)은 공동체 없이 떠도는 시대입니다. 공동체 없는 성도는 결코 교회로 작용할 수 없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는 다음 세대입니다. 다음 세대 복음화율은 2%로 추청, 20대까지 모두 포함해도 고작 4% 수준입니다. 그마저도 최근 몇년간 제가 청소년 수련회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기도 제목을 물었을 때,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부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 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수님을 ‘주(主)’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주인은 자기 자신인 상태, 즉 거듭나지 못한 '교회 다니는 멤버십'만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위기입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는 더 심각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2. 거듭남이 사라진 교회
현재 교회 시스템은 성도의 삶에서 일어나는 정직한 선택이나 예수의 성품, 제자화의 능력을 보고 리더십을 주지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성도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리더들이 교회 건물 안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요일 하루 동안 교회 안에서 보여주는 태도, 헌금 액수, 봉사의 양, 주일 성수율 같은 종교 생활의 평가지표만으로 신앙을 판단하고 직분을 줍니다.
이것은 중세의 면죄부와 다를 바 없는 구조적 에러입니다. 진짜 신앙이 아니라 종교 생활을 얼마나 잘하는가로 신자들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거듭남, 즉 삶의 주인이 나에게서 하나님으로 완전히 바뀌는 주권 이양(Lordship)이 없어도 교회에서는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보장해 줍니다. 이것은 2026년판 면죄부와 다름 없습니다.
일요일 하루에만 집중하는 기성 교회 구조는 성도의 진짜 일상과 삶의 현장을 볼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 다니는 교인은 늘어날지 몰라도 진짜 거듭난 성도는 줄어들어, ‘말씀이 희귀하고 여호와의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삼상3:1) 거듭남이 빠진 예배와 봉사는 그저 내 믿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행위로 인정받으려는 종교적 수단으로 변질됩니다.
3. 재생산이 멈춘 교회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은 생명이 생명을 낳는 ‘성도의 재생산’입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 성도들은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저 교회로 ‘데려오는 것(초대)’까지만 자신의 역할이라 믿고, 그들을 거듭난 성도로 훈련시키는 책임은 목사, 부목사, 전도사 같은 사역자에게 전부 떠넘깁니다. 이는 성도의 거룩한 직분, 즉 ‘성직’을 완전히 방임한 것입니다.
성도의 삶에서 직접적인 재생산이 일어나지 않으니, 교회는 새로운 신자가 거듭나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차장이 넓다’, ‘프로그램이 잘 돼 있다’, ‘목사님 설교가 좋다’는 명분으로 이동하는 ‘수평 이동’을 통해서만 규모를 유지합니다. 실제 1,000명이 모이는 대형 교회의 집회에 가서 확인해 보면, 교회에 온 지 1년 미만인 신자는 단 한 명도 없고 대부분 10년 이상 된 기성 신자나 모태신앙뿐입니다. 재생산의 기능을 잃어버린 교회는 형태 유지에만 막대한 비용울 쓰고 여러 프로그램을 도입하지만, 결국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잊은 교회
하나님의 통치와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있는 교회들이 점점 사라집니다. 수능 특별 기도회에서 부모들이 붙드는 기도 제목들을 보면, 절에서 기와장에 글을 쓰거나 연등을 올릴 때 기원하는 내용과 명확하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세상이나 다른 종교와 완벽하게 구별되는 지점은 “네 인생의 주인공과 주인은 네가 아니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능 시험 점수가 나오지 않더라도 자녀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본질이어야 하지만, 교회는 헌금 많이 하면 복을 받아 부자가 된다는 기복주의 신앙만 부추깁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 손해를 보더라도 순종하자는 메시지는 대중에게 인기가 없기 때문에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어야만 교회는 온전한 한 몸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는 순간, 머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됩니다. 성도가 100명이면 머리가 100개 달린 기형적인 조직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의 몸이 될 수 없으니 주일에 모여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지체를 한 몸으로서 살피지 못하고 각기 다른 목적으로 유기되어 움직이게 됩니다.
5. 종교 소비자
이 모순이 교회 안에 양성해 낸 가장 무서운 존재가 바로 '종교 소비자'입니다. 이들은 일상 가운데서 진짜 교회를 세우는 성도로 살 생각은 전혀 없이, 그저 주일에 와서 한 주 동안 살아갈 감정적 ‘은혜’와 종교 서비스만 향유하려고 합니다. 목사의 설교가 조금이라도 부담스럽고 찌르면 언제든 이웃 교회로 쇼핑하듯 떠나버립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는 있지만 머리의 뜻대로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기생체’이자 ‘기생충’입니다. 이 기생 현상이 더 심해지면, 공동체의 다른 세포들을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먹어 치우며 결국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병들어 죽게 만드는 치명적인 '암세포'이자 ‘암덩이’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직시해야 할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6. 우리가 가야할 길
우리가 직면한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주일 하루 동안 은혜를 쇼핑하는 종교 소비자인가, 아니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내 일터에서 직접 제자를 재생산해내는 살아있는 교회인가."
건물이 없어도, 소수여도 상관없습니다. 내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완전히 넘겨드린 성령 충만한 한 사람만 있다면, 그곳에서 진짜 교회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이 글은 누구를 정죄하려고 쓴 글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읽고 불편했다면, 그 불편함은 정확합니다. 통계, 사라진 거듭남, 멈춘 재생산,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 종교 소비자. 이 모든 진단에서 저 역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저 역시 주일의 은혜에 안주하고 싶고, 재생산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건 ‘너희가 틀렸다’는 고발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누군가는 물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 끝났다는 거냐."
아닙니다. 문제를 정확히 보는 이유는 단 하나,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디가 무너졌는지 모르면 어디서부터 다시 세워야할지 알 수 없습니다.
비판은 목적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주일 하루 동안 은혜를 쇼핑하는 종교 소비자인가, 아니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내 일터에서 직접 제자를 재생산해내는 살아있는 교회인가.”
혹 당신이 목사, 전도사라면
“나는 교회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공무원인가, 아니면 목사라는 명찰을 떼고도 내 일상에서 말씀대로 살아내며 한 사람을 제자화하고, 모든 성도가 그 성직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돕는 진짜 교사이자 코치인가.”
진단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길을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무너진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하는지 그 길을 함께 이야기하려 합니다.
여전히 ‘교회가 되겠다’는 마음이라면 댓글로 “교회가 되겠습니다”라고 남겨주세요.